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60화 (60/192)

< 21화. 던전 지도 (1). >

1.

[‘마웅의 시험’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타이틀 ‘베어 워리어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불카스 산맥의 우두머리를 잡은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마지막 일격’을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첫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골렘 소환의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매드니스 헬름의 스킬 랭크가 C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완벽!

그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히르칸은 혼자서 베어 워리어를 잡은 대가를 톡톡히 누렸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완료했고, 사냥 한 번에 획득한 타이틀은 무려 네 개나 됐으며, 스킬 두 개의 스킬 랭크도 올랐고, 레벨도 올랐다.

마지막으로.

“그래, 이거지.”

맛깔나기 그지없는 베어 워리어의 녹은 살덩어리, 아이스크림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맛보는 사이, 녹아내린 살점 사이로 주먹 크기의 보석 세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히르칸은 보석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래야 득템이지!’

칼원숭이에게 먹었던 엿으로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순간! 히르칸은 이 말도 안 되는 기분 앞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최근 들어 잘 추지 않던 어깨춤도 추기 시작했다. 어깨춤을 곁들이며, 히르칸은 자신이 잡은 베어 워리어로부터 나온 모든 것을 재료 코인으로 바

꾸었다. 그 작업은 귀찮은 작업이었지만, 작업을 하는 히르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히르칸이 워로드를 시작한 이후로 지은 행복한 표정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코인의 양은 히르칸이 준비해온 성인 남자 머리 크기의 주머니를 묵직하게 채울 정도로 그 양이 상당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대박이 터지겠는데?’

재료 보석이 세 개나 나올 줄은 솔직히 몰랐다.

하나가 나온 것과 둘이 나온 것 그리고 세 개가 나온 거 이야기가 다르다.

‘이거 세트로 팔면 더 받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워로드 어디에도 베어 워리어 세트 아이템은 없다. 보석 세 개면 레어 아이템을 세 개 이상 제작 가능하고, 그럼 곧바로 세트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셈.

‘이것만 팔아도 만 골드는 가뿐히 넘는다.’

이런 아이템을 수집할 정도로 돈 많은 양반에게 팔 수만 있다면 당장 소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소 한 마리를 사육해도 된다.

‘진짜 간만에 위장에 기름칠 좀 해줄까? 소기름으로?’

이뿐만이 아니다. 영상도 기가 막히게 나왔다. 네크로맨서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잡는 영상은 히르칸이 봐도 최소 오백만 이상의 조회수, 천만도 노려볼 수 있는 조회수였다.

천만 조회수의 가치는 엄청나다. 스폰서가 달라붙고, 달라붙는 스폰서가 제기하는 금액 단위가 달라진다. 보통 엔과 원을 비교한다. 원을 받던 게 엔으로 바뀐다! 쉽게 말해서 10배 가까이 뛴다는 의미다.

“……와우.”

잠시 행동을 멈춘 히르칸이 자신의 알통에 쪽! 입을 맞췄다.

‘잘했어. 히르칸, 역시 넌 최고야.’

자화자찬.

누가 보면 미친놈처럼 보일 법한 광경이지만, 히르칸은 스스로에게 칭찬을 할 만큼 이번 전투 결과에 만족했다. 만족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이건 워로드 역사상 최초이자, 히르칸 최초의 성공이었다.

‘그래, 안재현이! 이거지! 이거야! 네 선택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

레이드 솔플 첫 성공!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반대로 히르칸은 이번 레이드 성공을 통해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는 확신을 뛰어넘는 자신이 생겼다.

‘이대로만 가자.’

나는 틀리지 않았다!

머릿속을 울리는 그 메아리가 히르칸이 이번 레이드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2.

“젠장.”

“응?”

“씨팔.”

“야! 지금 뭐라고 했어?”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

불카스 산맥 중턱에 목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드넓은 불카스 산맥에서 유저들이 유일하게 휴식을 취하고, 기본적인 소비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고, 토벌협회 및 불카스 레인저 관련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당연히 불카스 산맥을 찾은 이들은 최소 한 번

이상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를 방문하게 된다.

더군다나 최근 불카스 산맥이 60레벨에서 80레벨 사이의 유저들에게 꿀맛 나는 사냥 지역이란 게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하루 단위로 유입되는 유저들이 증가하는 중이었다.

“뭐긴 뭐야, 상황이 씨팔 같으니까 씨팔이라고 하는 거지.”

그런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에서 딱 한 명, 그것도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 없고 그냥 몽타주만 본 게 전부인 유저를 찾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쌍욕이 나올 만한 일일 터.

지금 쌍욕을 내뱉은 유저는 그 심정을 이제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었다.

“야, 그러다 간부들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좀 조용히 해.”

“간부들이 퍽이나 여기까지 오겠다. 그 새끼들도 저들끼리 모여서 씨부렁거릴 텐데, 오라면 오라지. ”

아폴로 길드 소속인 그 둘은 현재 아폴로 길드의 유저 세 명을 처치한 유저를 찾기 위해 불카스 레인저 빌리지의 문 근처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낸 시간은 시간으로 따지면 예일곱 시간 정도.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워로드에서는 사냥터에서 사냥터로 이동하거나, 성으로 돌아가는 데에만 대여섯 시간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빠른 이동을 위해 아예 이동 속도만 대폭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도배

하는 유저들도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짜리 게임기를 사다가, 수십만 원짜리 요금을 내면서 하는 게임 속 세상에서 그저 사람 하나를 찾기 위해 보내기에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요에 의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

욕만 나오면 다행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PK 당한 새끼가 병신 아니야? 왜 우리가 그 병신들 복수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해야 해?”

“야, 목소리 낮춰!”

“세 놈이 덤벼서 한 명을 못 잡은 게 말이 돼? 심지어 자기들이 따라가 놓고서? 그러고서 복수를 해달라고? 뒈진 놈들을 길드에서 자르는 게 정상 아니야?”

“야. 너 입 조심해. 그러다 걸리면…….”

“뭐? 걸리면 길드 탈퇴하면 되는 거지. 워로드에 길드가 수만 개가 넘는데 이딴 길드 버리면 버리는 거지.”

거듭 분노를 표출하던 유저는 스스로 말을 뱉는 순간 더더욱 짜증이 올라왔다.

‘젠장.’

길드를 탈퇴한다? 할 수는 있다. 못할 것도 없다. 길드라는 게 무슨 강제력을 가지는 집단도 아니고, 나온다고 해도 국제법에서 위법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후환이 무서울 뿐.

길드 나왔다는 이유로 도망자 같은 신세가 되어 게임을 하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진짜 내가 더러워서…….’

심지어 아폴로 길드는 그런 건 확실했다. 돈이 넘치다 못해 썩는 중인 길드 마스터 아폴로는 자기 무시하는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응징했다. 더군다나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게 워로드란 게임이다. 당장 랭커 급 인사에게 돈만 두둑이 찔러주면 얼마든지 손을

빌릴 수 있다.

물론 꾹 참고 할 수는 있다. 대여섯 번 죽으면 된다. 그러나 그런 죽음을 치르고, 넝마가 된 정신과 캐릭터를 가지고 거의 처음부터 게임을 하는 것과 그래도 나름 도움이 꽤 되는 쓸모 있는 길드에서 욕 좀 보면서 일반 유저들보다는 편하게 게임을 하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보통은 후자를 고르고는 한다.

“진짜 엿 같아서…….”

그 순간.

“야!”

“또 왜? 괜히 나까지 말려들게 하지 말고 좀 닥쳐!”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그냥 대충 한 놈 잡는 게 어때?”

“뭐?”

화가 머리끝까지 돋아난 아폴로 길드원이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강구했다.

“툭 까놓고 말하면, 우리가 찾는 그 인간, 얼굴도 모르는 인간이잖아? 그럼 그냥 호구 같은 새끼 잡아다가 이 새끼가 그 새끼입니다! 하고 간부들 속이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걸리면?”

“잘못 봤다고 하지 뭐. 애초에 우리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사진이라도 잘 주던가.”

그 말에 다른 한 명은 금방 넘어왔다. 그 역시 동료처럼 입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지만 않을 뿐, 이미 심기는 뒤틀리다 못해 끊어지기 직전 상태였으니까.

그런 그들의 눈에.

“쟤 어때?”

“쟤?”

“딱 봐도 호구 같은 느낌 물씬 풍기는 게, 아니더라도 뒤탈은 없을 것 같은데?”

“확실히 호구 같긴 하다.”

아주 좋은 표적 하나가 걸렸다.

3.

해치는 고개를 돌렸다.

‘또 뭐야?’

소란이 일어나 있었다. 유저 한 명이 다수의 유저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해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워로드는 바람 잘 날이 없다니까.’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이런 일에 일일이 개입하기엔 그는 이미 귀찮은 일투성이였으니까. 지금도 타이틀 확보를 위해 퀘스트 하나를 완료하고 오는 길이었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만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퀘스트 팀이 퀘스트를 거의 완료 상태로 만들

면, 막판에 끼어들어서 퀘스트 완료 결과만 얻는 식으로 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30대 길드의 핵심 유저라면 모두가 하는 일이었으니까. 이 역시 귀찮은 일이고, 그 일을 마친 상황에서 더 귀찮은 일에 코가 꿰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 근데?’

적어도 그 다수의 무리들이 해치가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면.

‘쟤네 아폴로 뭐시기 애들 아니야?’

그리고.

‘가만, 저 새끼들이 하회탈 노리고 있잖아?’

그놈들이 해치가 만나야 하는 상대를 노리고 있지만 않았다면, 해치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해치, 그가 곧장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대화 소리가 들렸다.

“글쎄 난 그쪽을 모른다니까!”

“발뺌하지 마! 정당하게 대가를 치러라!”

“아니, 무슨 대가?”

“아폴로 길드를 건드린 대가!”

“글쎄 그러니까 난 그쪽 길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니까! 난 오늘 여기 처음 온다고!”

해치가 고개를 돌렸다. 평범한 여행자 복장. 정확히는 토벌협회 보급품 세트를 입고 있는 평범하다 못해 호구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저 한 명과 아폴로 길드원 여섯 명의 면면이 자세히 보였다. 개중에서도 해치는 호구 느낌 물씬 풍기는 유저를 직시했다.

‘쟤가 하회탈 히르칸?’

하회탈 히르칸의 맨얼굴을 본 적 없는 해치 입장에서는 그가 하회탈인지 아닌지 알 도리는 없는 상황.

여기서 해치는 나름 머리는 굴렸다.

‘하회탈 히르칸이 바보가 아니라면, PK로 길드 소속 유저를 해치운 후에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자기라고 광고하면서 돌아올 리는 없지.’

히르칸의 상징은 하회탈이다. 그는 모든 영상에서 하회탈을 쓰고 등장한다. 달리 말하면 그는 하회탈만 벗으면 언제든 정체를 감출 수 있다. 그 부분을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히르칸이 멍청한 인간일 것 같진 않았다.

즉, 얼굴을 보고 그가 하회탈이 맞다, 아니다를 논하는 건 해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본 적도 없으니까. 어쩌면 아폴로 길드가 히르칸의 정체를 알 가능성이 높다. 직접 당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히르칸의 맨얼굴에 대한 정보는 그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가

능성이 높다.

여기서 해치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맞으면 오케이, 아니면 구박받는 인간 구하는 거니, 명분상 문제 될 건 없고.’

밑져야 본전.

그럼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잠깐.”

해치가 나섰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해치를 향했다. 아폴로 길드원들의 표정은 구겨졌다. 구겨진 그들의 표정이 이 새낀 또 뭐야? 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아폴로 길드원에게 둘러싸인 이의 얼굴은 더 심각할 정도로 굳어졌다. 그 표정은 앞선 아폴로 길드원들이 지은 표정과

달랐다. 이 새낀……! 이런 느낌의 표정.

그런 그들의 표정이 해치의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애초에 그는 남의 안색을 살피는 인간이 아니었을뿐더러, 눈앞의 상대는 더더욱 그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치는 자기 할 말만 했다.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그쪽 분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그냥 좀 놓아줘.”

해치의 말에 아폴로 길드원 중 한 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넌 또 뭔데?”

해치가 실소를 머금었다.

‘가끔 30대 길드 애들이 정체 감추고 돌아다니는 게 이런 기분 때문이었구나. 이게 이런 맛이 있네?’

워로드 시작 이후 처음 느끼는 이 광경에 그에게는 불쾌하기보다는 신기했다.

“나?”

그 순간 해치가 슬그머니 시계를 조작했다. 30대 길드는 물론, 유명세가 있는 길드들은 저마다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 우레사냥꾼 역시 유니폼이 있다. 아이템 옵션은 별로지만, 유저를 대상으로는 워로드에 있는 그 어떤 방어구보다 방어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

다.

그 순간.

‘아차!’

해치는 아이템 슬롯에서 유니폼을 집어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해치의 표정이 구겨졌다.

‘젠장,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잽싸게 시계에서 손을 뗀 해치가 뒤집어쓴 후드를 뒤로 넘겼다. 유니폼은 없지만, 그래도 얼굴은 제법 알려진 그다. 상대방이 알아서 자기 얼굴을 보고 넘어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드를 벗은 그의 얼굴을 당장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몇몇 이들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대체 누구지? 하는 눈빛을 품은 채 머리를 굴리긴 했지만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다. 오히려 해치가 얼굴을 드러내자 다른 한 명이 소

리쳤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응? 지금 우리 길드에 시비를 거는 건가? 너도 게임 접게 해줘?”

그 말에 해치는 터져 나오는 실소와 구겨지는 표정, 두 가지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그의 얼굴이 괴팍하게 변했다.

그때.

“야! 해치!”

앙칼진 목소리 하나가 터졌다.

“왜 너 혼자 빠져! 단체 행동 안 해? 뒈질래?”

누군가 그들 무리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다른 유저들도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헉!”

“우레사냥꾼 길드다!”

워로드를 대표하는 최강 길드 중 한 곳인 우레사냥꾼 길드, 그들의 존재감은 워로드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있어 하늘 위의 별이나 마찬가지. 그 별이 바로 코앞에 왔는데 숨이 막힐 수밖에.

딱 한 명.

‘대체 오늘 일진이 왜 이래?’

이 무대의 중심에 있게 된 히르칸, 그만 유일하게 놀란 표정 대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21화. 던전 지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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