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58화 (58/192)

< 20화. 베어 워리어 (1). >

1.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선 채 투구 사이로 검은 눈동자를 빛내는 베어 워리어의 모습에서 뿜어지는 위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히르칸, 저거 잡을 수 있겠어?”

베어 워리어.

불카스 산맥의 우두머리이자, 불카스 산맥에 일어나는 기사( 奇事)의 중심에 있는 녀석은 배경에 맞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는 순간 나름 사냥 좀 해본 유저라도 겁에 질리거나 끄응, 앓는 소리를 내뱉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매우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형, 나 히르칸이에요, 히르칸. 슈퍼스타 히르칸!”

그 무시무시한 보스 몬스터 앞에서 겁에 질리거나 앓는 소리를 내뱉기는커녕 헛소리를 지껄이는 부류가 오히려 괴팍하고, 괴상하며, 일방적이지 못한 부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르칸은 그때부터 자신의 비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각, 그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 너 진짜 그 별명을 밀게?”

“재현아, 다른 별명은 다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래도 슈퍼스타는 좀 아니지 않냐?”

“재현이, 쟤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가끔 진짜 머릿속이 이상하다는 걸 꼭 온몸으로 증명한다니까.”

“저런 또라이니까 그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막말로 맨정신에 올힘 찍고 저런 괴물한테 달려드는 게 가능키나 하겠어? 한 방만 맞으면 게임오버로 이틀 동안 손가락이나 빨아야 하는데?”

“아 쫌! 총대 메고 선두에서 열심히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사람을 그렇게 혓바닥으로 놀려야 직성이 풀려요? 자꾸 그러면 나 확! 이 길드 나가버린다?”

히르칸은 그런 존재감을 드러내며 언제나 증명했었다.

“여하튼 군소리 말고 시작합시다. 내가 저 새끼 시선 끌고 등짝 만들면, 마법 쏴주시고.”

그가 그 어떤 유저보다 확실한 실력과 능력과 전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더 나아가.

“나 죽을 거 같으면 좀 도와주시고. 힐 좀 아끼지 말고 걸어주시고. 자자! 빨리 잡고 끝내자고요! 우리가 이런 곳에 있을 수준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시다!”

자신을 따라오면, 하늘에 다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내 기억력이 이렇게 좋은 줄 오늘 처음 알았군.’

물론 지금은 추억…… 아니, 이제 감히 추억이라고 말하고 회상할 수도 없는 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히르칸은 떠오르던 것을 다시금 망각 아래로 가라앉혔다.

‘그딴 놈들 기억할 필요는 없지.’

기억이란 게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 일단은 버렸다.

필요한 기억만을 취했다.

‘베어 워리어가 가진 페이즈는 총 3개.’

베어 워리어 HP상황에 따라 총 3개의 페이즈가 있다.

HP가 70퍼센트 이상일 때는 두 가지 기본 스킬을 섞은 일반 공격만을 한다. 어그로는 마지막 공격 대상을 향한다. 더불어 녀석이 가진 기본 스킬은 기합과 돌진, 두 가지다. 돌진의 경우에는 스킬 쿨타임이 60초이고, 기합 스킬은 170초다. 여기에 보스 몬스터가 가

지는 기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피어 스킬도 있으며, 피어 스킬의 경우에는 쿨타임이 900초다.

HP가 7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면 2페이즈에 돌입한다. 돌진 스킬의 스킬 쿨타임이 30초로 줄어들고,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상승한다. 동시에 마법 공격을 당할 경우 공격의 차례와 상관없이 무조건 마법사를 공격하는 특수 패턴을 보인다.

HP가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면 3페이즈가 시작된다. 기합 스킬이 패시브 스킬로 바뀐다. 모든 디버프 계열의 스킬이 통하지 않으며, 돌진 스킬의 쿨타임은 사라진다. 여기에 모든 능력치가 33퍼센트 상승한다.

이런 베어 워리어를 공략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는…….

‘갑옷과 방패를 벗기는 게 포인트.’

무장해제다.

녀석은 유저를 기준으로 본다면, 풀세트에 가까운 무장 상태다.

일단 투구를 쓰고 있고, 흉갑을 입고 있으며, 어깨 갑옷도 있고, 장갑까지 착용하고 있다. 상체는 갑옷으로 완벽하게 두르고 있는 모양새다. 하체의 경우에는 허벅지 바깥쪽과 무릎 그리고 정강이 부분을 가리고 있다. 허벅지 안쪽은 털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전

투 중에 노리긴 매우 힘든 부위다. 부츠도 신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몸통보다 큰 방패와 성인 남자보다 훨씬 큰 칼을, 시미터 모양의 칼을 들고 있다.

이 상태에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법이다. 특히 화염계 마법은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에게 직통으로 통한다. 하지만 화염계 마법이 통한다고 마법 위주로 데미지 딜링을 하다 보면 2페이즈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상황이 꼬인다. 마법사만을 노리

고 여전히 갑옷으로 무장한 채 돌진 스킬로 마법사만 노리고 달려드는 놈은 불도저, 그 자체이니까.

하물며 그 상태로 3페이즈에 돌입하면 지옥이 시작된다. 마법사가 줄어든 상황에서 무장은 그대로인 채로 디버프마저 걸리지 않는다? 남은 탱커, 스트라이커 입장에서는 답이 없다.

그렇기에  2파츠 이상, 특히 흉갑과 방패를 처리할 수 있으면 베스트다.

흉갑을 없애면 상체 전부가 피격 대상이 된다. 여차하면 등에 달라붙어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갑옷이 사라진 베어 워리어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놈이 아니다.

방패를 빼앗으면, 돌진 스킬의 위력이 매우 감소한다. 녀석은 돌진할 때 방패를 앞세워서 하니까. 더 나아가 방패 없이 녀석이 돌진을 하면, 그 자체로도 녀석의 HP는 감소한다.

여기까지는 기본 공략이다.

‘양쪽 어깨, 갈비뼈 부근에 위치한 29개의 포인트.’

진짜 중요한 공략은 녀석의 갑옷을 이어주는 이음새가 29개가 있으며,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기본 공략은 그냥 몬스터 설정만 봐도,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정도 공략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진짜 공략은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을 찌르는 거다.

지금 히르칸이 알고 있는 포인트, 이게 정말 돈 받고 팔만한 공략이 되는 셈이다.

‘일단 방패를 들고 있는 왼쪽 어깨부터 노리자고.’

이제부터 히르칸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 공략을 실현해내는 것이다.

“후우!”

히르칸이 심호흡을 마친 후에 스킬을 사용했다.

“골렘 소환.”

2.

4미터 신장을 가진 골렘과 4미터 신장을 가진 베어 워리어의 충돌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일방적이었다.

쿠오!

흉포한 울음을 토해내는 베어 워리어는 울음과 다르게 영악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쾅!

녀석은 골렘이 휘두르는 팔을 방패로 막아냈고, 틈이 생기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칼을 휘둘러 틈을 내리찍었다.

푸홧!

지금처럼 골렘의 왼쪽 어깻죽지를 단숨에 잘라버릴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당하는 입장에서 내리찍는 무기가 도끼가 아니라 칼이란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대단하군.’

그 광경을 보는 히르칸은 본인이 맞은 것이 아님에도 왠지 모르게 자신의 어깨가 찌릿찌릿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였다. 베어 워리어의 공격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위력적이면서도 훌륭한 공격이었다.

‘감탄할 때가 아니지.’

히르칸이 이를 콱 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런 히르칸이 오른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후웅!

골렘이 그런 히르칸을 따라 자신의 오른팔을 채찍처럼, 느릿하게 휘둘렀다. 베어 워리어는 골렘의 공격을 방패를 들어 가볍게 막아냈다.

콰앙!

보이는 과정은 가볍게 보였으나, 소리는 가볍지 않았다. 교통사고에서나 들을 법한 격렬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났다.

크오!

그 굉음 뒤로 베어 워리어의 울음이 터지고.

콰직!

베어 워리어가 내리찍은 칼이 아직 복구를 마치지 못한 골렘의 왼쪽 어깨를 다시 한 번 깊게 파고 들어갔다. 골렘의 어깨를 내리찍은 칼이 골렘의 가슴팍을 지나갔다. 사람으로 따지면 즉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처. 하지만 골렘이기에 멀쩡했다.

더 나아가.

‘오케이!’

히르칸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단단해지기!”

히르칸이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흙으로 된 골렘이 돌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단단해진 골렘의 몸뚱이는 그 상태로 베어 워리어의 칼을 꽉 잡았다.

쿠쿠, 쿠쿡!

베어 워리어가 칼을 뽑아내기 위해 칼을 흔들었으나, 골렘의 몸뚱이는 베어 워리어의 칼을 물고 놔두지 않았다.

딱!

그 사이 히르칸이 손가락을 튕겼다.

쉬익!

신호가 나오자마자 구석에 대기 중인 두 마리의 해골 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 오크 해골 전사 둘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베어 워리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베어 워리어가 그 낌새를 느낀 듯, 크르르! 낮게 깔린 울음을 토해냈다. 베어 워리어의 눈빛이 달라졌다. 검은 보석 같던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

푸홧!

그 순간 베어 워리어가 골렘의 몸을 발로 확 차내며, 골렘의 몸에 박혀 있던 자신의 칼을 단숨에 뽑아냈다. 칼이 뽑힌 골렘은 꼿꼿하게 굳은 상태로 뒤로 넘어갔다.

쿠웅!

돌덩이 골렘이 바닥에 넘어지며 땅을 가볍게 흔들었고, 베어 워리어는 곧장 몸을 돌려 다가오는 해골 전사를 바라봤다. 해골 전사를 바라보던 녀석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 벌어진 입 사이로.

크아아아!

[해골 전사들이 베어 워리어의 피어를 무시합니다.]

피어가 터져 나왔다.

물론 해골 전사들의 거침없던 움직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언데드 몬스터에게 공포가 있을 리 없다. 해골 전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인 셈.

하지만 굳이 그것이 상관없을 정도로 해골 전사와 베어 워리어 사이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쉬익!

베어 워리어는 개중 한 마리를 여유 있게 검을 휘둘러 처치했다.

푸홧!

해골 전사 한 마리가 단칼에 반 토막이 난 채 바닥에 너부러졌다.

다른 한 마리가 베어 워리어를 향해 칼을 휘둘렀지만, 깡! 큼지막한 방패가 그 공격을 가뿐하게 막아냈다. 방패에 공격이 막힌 해골 전사가 재차 공격을 하려는 순간 방패 너머에서 칼 한 자루가 해골 전사를 향해 벼락처럼 떨어졌다.

해골 전사가 그 공격을 파악하고 피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편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콰직!

하지만 베어 워리어의 검이 훨씬 더 빨랐다. 해골 전사의 왼팔이 어깨로부터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균형을 잃은 해골 전사가 비틀거리는 사이, 베어 워리어가 그 해골 전사를 자신의 방패로 쳐냈다. 해골 전사의 몸뚱이가 하염없이 날아갔다.

압도적인 위엄!

보통 유저라면 숨이 막힐 법한 위엄이다. 하지만 히르칸, 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위엄이었다.

히르칸, 그는 그 순간, 베어 워리어가 방패로 해골 전사를 쳐내는 순간, 베어 워리어의 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히르칸의 칼끝이 향한 건 베어 워리어의 왼쪽 어깨였다.

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다른 부위보다는 얇게 만들 수밖에 없는 그 부위에 검을 내리꽂았다.

콰직!

두꺼운 갑옷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으로.

푹!

가죽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거기까지였다.

‘좀 얕네.’

더 이상 깊은 소리는 없었다. 대신 다른 소리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베어 워리어가 마귀 저주에 걸립니다.]

저주가 걸림을 알리는 소리가 나왔고.

크왕!

베어 워리어의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없애기 위해 내지른 기합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가 베어 워리어에 꽂은 검에 대롱대롱 매달린 히르칸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베어 워리어의 외침에 저주가 날아갑니다.]

기합과 함께 사라진 저주!

하지만 히르칸은 당황하지 않았다.

‘게임은 게임이지.’

오히려 히르칸은 그 외침을 기다렸다는 듯이 베어 워리어의 몸에 꽂힌 검을 축 삼아, 자신의 몸을 시곗바늘처럼 단숨에 회전시켰다. 6시에서 10시로, 히르칸이 단숨에 베어 워리어의 어깨에 올라탔다. 올라타는 순간 히르칸이 찌른 검, 오크 히어로 검은 뽑혀 있었

다. 히르칸이 뽑았고, 히르칸은 뽑은 그 검을 어디론가 던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들어낸 구멍, 그 사이로 새로운 검을 뽑아 집어넣었다.

푹!

좀 더 깊은 소리가 났다.

“아하!”

히르칸의 입 사이로 웃음소리도 났다.

[베어 워리어가 마귀 저주에 걸립니다.]

[베어 워리어가 나태 저주에 걸립니다.]

[베어 워리어가 부식 귀신에 홀립니다.]

세 개의 저주가 베어 워리어의 몸을 빠르게 좀먹었다.

효과는 빨랐다.

베어 워리어가 제 어깨 위에 올라탄 히르칸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 채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베어 워리어의 움직임은 앞선 움직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다.

히르칸은 잽싸게 베어 워리어의 어깨를 디딤돌 삼아 도약했다. 도약하고도 여유가 남았다. 히르칸이 그 여유를 낭비할 리 만무.

‘옜다!’

히르칸이 크게 벌린 베어 워리어의 입안으로 자신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해골을 던졌다. 던진 해골은 점차 크기가 커지더니, 사과 크기로 변했다.

그리고는.

콰앙!

폭발했다.

히르칸이 새롭게 배운 60레벨 스킬, 뼈폭탄이었다. 해골 전사처럼, 재료 삼아 만드는 폭탄으로 조금 전 히르칸이 던진 건 50골드짜리였다. 말이 뼈폭탄이지, 그냥 돈벼락이다.

위력은 확실했다.

그러나 베어 워리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줄 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뼈폭탄에 당한 베어 워리어는 바닥에 착지한 히르칸을 향해 갑작스럽게 돌진을 시작했다 방패를 앞세운 채 이루어진 그 공격은 그야말로 정말 완벽한 기습이었다.

모르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흥.’

그러나 히르칸은 오히려 이 패턴을 예상하고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히르칸은 곧바로 자신의 오른편으로 발을 옮겼다.

후웅!

히르칸이 있던 자리로 불도저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다. 돌진하는 베어 워리어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본인조차도 그 돌진을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콰콰콰콰!

결국 아름드리 기둥을 가진 나무 다섯 그루를 부러뜨린 후에야 베어 워리어는 멈출 수 있었다.

자리에 멈춘 녀석이 처음과는 다르게 꽤 지저분해진 모습으로 몸을 돌려 히르칸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히르칸은 이 광경에 미소 짓지 않았다.

‘158초.’

오히려 히르칸은 보다 냉철하게 변했다.

‘158초 안에 10포인트 이상 따낸다.’

< 20화. 베어 워리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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