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52화 (52/192)

< 18화. 득템 (2). >

4.

득템!

게이머들에게는 레벨업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레벨업 알림이 택배 왔습니다! 라면, 득템은 배달 왔습니다! 라는 느낌이랄까? 굳게 닫힌 그 어떤 문도 활짝 열리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 같은 단어다.

이런 득템의 맛을 누리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냥 열심히 잡으면 된다.

키야아!

붉은색 뼈를 가진 2미터 장신의 도마뱀 머리를 가진 해골이 괴상망측한 소리를 토해냈다. 괴상망측한 소리를 토해내는 그 도마뱀 해골의 양손에는 큼지막한 불덩이 두 개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녀석의 정체는 그린 리자드 주술사를 재료 삼아 만든 히르칸의 해골 마법사였다. 그런 녀석이 당장 터지기 직전의 수류탄이나 다를 바 없는 마법을 손에 쥔 채 내뱉는 소리는 아군과 적을 향한 경고였다. 경고를 마친 녀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불덩이를 던졌

다.

표적은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등을 보인 채 전투를 치르고 있는 60레벨 몬스터, 칼원숭이.

날아간 불덩이는 쉽게 칼원숭이의 등에 닿았고, 붙었다.

끼이이이!

등에 불이 붙은 칼원숭이의 입에서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 터진 비명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등에 붙은 불이 온몸으로 번지는데 비명이 멈추는 게 이상한 일일 터.

정말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밤중에 들었다면, 그날 밤 결코 잠들지 못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름 끼치는 소리는 주변에 그 어떤 영향도, 여운조차도 남기지 못했다.

카앙!

곳곳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쇳소리와 다른 칼원숭이의 비명 소리가 불타오르는 칼원숭이의 비명 소리를 잡아먹었다.

다양한 종류의 해골 전사들과 칼원숭이들이 쉴 새 없이 칼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 사이로 기합을 위해 내지른 울음과 칼에 베이는 순간 내뱉는 고통에 찬 비명 속에서 한 마리의 칼원숭이가 내뱉는 격한 울음은 아무런 울림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이 소란 속에 울림을 만든 건.

후우웅!

골렘이 제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1.3미터 남짓한 신장의 칼원숭이를 때리는 소리였다.

퍼엉!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골렘의 팔에 맞은 칼원숭이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우거진 숲의 나무기둥에 처박혔다. 우지끈! 굵직한 나무 기둥이 내지른 울음 소리가 강렬했다.

골렘은 그 공격에 만족한 듯 고개를 돌려 자신이 휘두른 팔에 맞고 날아간 칼원숭이를 지그시 바라봤다.

끼이끼이!

반면 골렘 근처에 있던 칼원숭이는 동료가 당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골렘에게 달라붙어, 자신이 손에 쥔 칼로 골렘의 흙으로 된 몸뚱이에 쉴 새 없이 칼자국을 남겼다. 흙인 탓에 칼자국을 선명하게 남았다. 느릿느릿, 골렘이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내던 칼원숭이

를 향해 시선을 되돌린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히려 골렘보다 먼저 움직인 건 블러드 고블린 해골 전사였다. 그 어떤 해골보다 날렵하기 그지없는 녀석은 주인이 저주를 담아준 단검으로 골렘을 괴롭히던 칼원숭이의 등판을 푹! 찔렀다.

끼이이!

칼원숭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칼원숭이가 마귀 저주에 걸립니다.]

[마귀 저주의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그 비명의 결과물이 이 난전, 아수라장이자 아비규환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히르칸에게 신속하게 보고됐다.

하지만 히르칸은 그 알림을 무시했다. 해골 갑옷을 입은 히르칸은 자신이 부리는 해골들과 칼원숭이들 사이를 오고 가며 전투를 조율하는데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다른 무언가의 소식을 들을 여유는 없었다.

‘오른쪽, 저기 쟤 도와주고.’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히르칸의 전투 방식은 보조였다. 1대1의 싸움이 있으면, 자신이 잠깐 참가해서 2대1의 싸움을 만들었고, 1대2로 해골 전사가 머릿수에서 밀리면, 다른 한 놈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던져버려서 1대1의 구조를 맞춰줬다.

‘왼쪽 저 새끼에게 칼침 한 방 넣고.’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도와준다고 해도, 스쳐 지나가듯, 가랑비처럼 칼원숭이의 몸에 칼침 몇 방을 만들 뿐이었다. 물론 올힘 네크로맨서의 칼침은 침 좀 바른다고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위력은 확실했고, 결과는 더 확실했다.

‘이 녀석은 끝장내자!’

전장을 조율하던 히르칸이 칼원숭이 오른쪽으로 잽싸게 접근한 후에 칼원숭이의 오른손목을 잡아당겼다. 칼을 쥔 오른팔이 쭉! 늘어나자마자 녀석과 격전 중인 해골 전사가 자신의 칼로 늘어난 오른팔을 내리쳤다.

푸홧!

팔이 단숨에 잘렸다.

히르칸은 칼원숭이의 잘린 팔을 대충 근처에 던진 후에 자신의 칼로 칼원숭이를 쉴 새 없이 찔렀다. 해골 전사가 그런 주인의 행동을 보고 따라 하듯, 본인 역시 계속 칼을 휘둘렀다. 칼원숭이 한 마리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

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을 가득 채운 소리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히르칸이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2백 마리째인가?’

무기 득템을 위해 히르칸이 표적으로 삼은 몬스터는 불카스 산맥에서 조만간 가장 인기 있는 몬스터가 될 칼원숭이었다. 1.3미터의 신장에 칼을 휘두르는 칼원숭이는 뼈와 가죽은 정말 쓸모없지만, 칼원숭이 칼조각이란 재료 아이템은 괜찮은 옵션을 가진 50레벨

짜리 노멀 아이템 제작에 많이 사용됐다.

동시에 칼원숭이는 소형 몬스터로 분류되었고, 무리 생활을 짓기 때문에 단일 개체는 약한 편이었다. 잡기 쉬운 편이었고, 한 번에 많이 잡을 수 있는 녀석으로 불카스 산맥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몬스터였다. 더불어 지금 불카스 산맥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칼원

숭이의 가치를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히르칸이 재미를 보는 중이었다.

물론 히르칸이 노리는 건 칼원숭이 칼조각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제발 좀 칼원숭이 보석 좀 나왔으면 좋겠다.’

히르칸이 노리는 건 칼원숭이를 잡을 경우 낮은 확률로 나오는 재료 보석이었다.

그 재료 보석을 이용해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만드는 게 히르칸의 목적이었다.

즉, 재료 보석만 구하면 칼원숭이 사냥은 그만둘 생각이었다. 칼원숭이가 나름 잡기 괜찮은 몬스터인 건 맞지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일반 유저들의 기준이다. 히르칸의 기준으로는 너무 쉽다. 당장 치러진 전투가 그 증거였다.

13마리의 칼원숭이 무리와 히르칸과 그의 부대가 전투를 시작하고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칼원숭이 무리가 전멸했다. 히르칸의 전투력은 이미 레벨을 훌쩍 뛰어넘는다. 보다 빠른 레벨업, 성장을 위해선 더 강한 몬스터를 잡아야 했다.

문제는 백여 마리 정도 잡으면 나오리라 생각했던 칼원숭이 보석이 이백 마리 가까이 잡은 지금까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제발. 언제까지 이 원숭이 새끼들만 잡을 순 없다고.’

이번에는 제발…… 마치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리는 심정으로 히르칸은 칼원숭이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기자, 칼원숭이의 몸이 녹기 시작했다. 뼈와 가죽 그리고 칼원숭이가 쓰던 칼만 남았다. 히르칸은 그것들을 재료 코인으로 바꾸면서 바닥을 샅샅이 훑었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 제발.’

그러나 히르칸이 마지막 재료 코인을 회수하는 순간까지, 보석은커녕 돌멩이 하나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에이씨!”

기어코 히르칸이 폭발했다.

“왜 또 거지야? 대체 왜!”

히르칸이 근처에 있는 나무 기둥을 향해 열심히 주먹을 날렸다. 가지각색의 해골들 그리고 골렘이 주인의 이 볼썽사나운 행동을 말없이, 지그시 바라봤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봤다면, 히르칸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유튜브에 ‘워로드에서 발견한 제대로 미친놈!’ 이란 제목으로 올렸을 터.

‘진짜, 어떻게 이렇게 잡았는데 보석 하나가 안 나와!’

하지만 만약 사정을 안다면, 워로드를 하는 유저라면 히르칸의 심정을 무조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백 마리를 잡았다. 적은 숫자가 아니라, 무리 생활을 하는 놈이라고 해도 그 무리 생활을 아파트 단지에 사람 모이듯 하는 게 아니라, 군데군데 한다. 그걸 찾아다니고, 전투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때때로는 마실 나온 강력한 몬스터를 피해 도망치고…… 이러

다 보면 이백 마리를 잡는데 대여섯 시간은 금방 사라진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보석 하나가 나오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

‘내가 재수가 이렇게 없었나?’

보통은 백 마리 정도 잡으면 보석 하나가 나온다. 그런데 이백 마리를 잡는 동안 하나가 나오지 않는다니?

재수가 없는 게 맞다.

물론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재수가 없다고, 그냥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넘어가는 경우는 없다.

“……아니야.”

‘이렇게 잡았는데 다음에 잡으면 나오겠지.’

이제까지 안 나왔으면, 다음에는 나오겠지!

게임을 하는 모든 게이머들의 당연한 심리다.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순리!

히르칸이 고개를 들었다.

‘한 무리만 더 잡고, 안 나오면 그냥 넘어가자.’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히르칸.

물론 이런 각오가 결실을 보는 경우는 대개 없었다.

5.

[레벨이 올랐습니다.]

[타이틀 ‘칼원숭이 도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피부 재봉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타이틀도 획득했다.

스킬 랭크도 한 단계 상승했다

워로드 유저라면 기쁨의 춤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에 은은한 미소 정도는 지을 법한 결과물이다.

‘이번에는 제발.’

하지만 히르칸은 미소 짓지 못했다.

“제발.”

칼원숭이의 가죽을 벗기고 그들이 녹아내리기를 기다리던 히르칸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이윽고 칼원숭이들이 녹아내렸다. 도처에 칼원숭이의 칼과 뼈와 가죽이 너부러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보석은 없었다.

히르칸은 하회탈을 쓴 채, 해골 투구를 쓴 채, 해골 장갑을 끼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모습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퍼 보였다.

“진짜 씨팔…….”

천 마리째였다. 천 마리를 그냥 잡은 게 아니다. 잡은 놈들마다 가죽을 벗기는 작업까지 했다. 숨 쉬는 것도 숫자를 세면서 천 번을 세면 짜증이 나는 법인데, 천 마리나 되는 몬스터를 잡으면서 막상 그토록 원했던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면?

‘뭐지?’

대박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당장 본인이 쓸 아이템 좀 레벨업도 하는 겸, 자급자족하겠다는데 이 정도로 상황이 꼬일 줄은 몰랐다. 유니크 아이템도 아니고, 레어 아이템 만드는 일 아닌가?

그런데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단 하나도!

히르칸이 얼굴을 덮었던 손을 뗐다.

‘버그인가?’

이쯤 되면 기술적 오류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 보통 레어 등급의 재료 보석은 백 마리에 하나꼴로 나오고, 개체수가 많지 않은 중대형 몬스터는 그보다 더 적은 마리에서 아이템이 나온다. 보스 몬스터는 무조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냥 이제까지 번 돈 다 팔고 살까?’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칼원숭이 보석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일단 천 마리 잡으면서 얻은 재료 아이템만 팔아도 50레벨짜리 레어 등급 아이템 정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히르칸은 게임에서 아이템 습득 외에도 수입이 있었다.

아직 사자 털옷은 팔리지 않았지만, 그것도 팔면 꽤 돈이 된다. 유튜브에서 오는 수입도 적진 않다.

당장 무리를 한다면, 옵션은 구린 유니크 등급 아이템도 구할 수 있을 정도다.

‘젠장.’

그러나 인간이란 게, 특히 게이머들이란 게 한 번 독기가 품으면 조상님이 와도 말리지 못하는 법.

히르칸이 고뇌를 시작했다.

합리적인 이성은 말한다. 지랄하지 말고 가서 그냥 경매장에서 템이나 사.

본능적인 감성은 말한다. 이성이 하는 말대로 그냥 가서 템이나 사! 그게 다음에 나올 거 같아?

그러나 히르칸의 게이머 감각은 다음에는 나올 것 같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진짜 다음에는 나올 것 같은데…… 아니, 이렇게까지 잡았으면 진짜 억울해서라도 먹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한 번 더, 다음에는…….

인간이 도박에 중독되는 이유다.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무리만 더 잡자. 딱 한 무리. 그거 잡고 안 나오면 진짜 그냥 내가 원룸 보증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지른다.’

그 순간.

“어이!”

누군가 히르칸을 불렀다.

얼빠진 짓을 하고 있던 히르칸이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추면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고, 경계했다.

그런 히르칸의 시선 너머에는 언젠가 한 번 봤던 갑옷을 입고 있는 유저를 비롯해 세 명의 유저가 있었다.

“하회탈 히르칸이 맞네.”

“거 봐! 내 말이 맞았잖아. 하회탈 히르칸 여기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번에 나온 아머 몽키 공략 영상 여기서 찍은 거라고.”

“이거 재미있게 됐군.”

그리고 그들은 히르칸과 그의 별명마저 알고 있었다. 히르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팬은 아닌데, 이 새끼들 설마…….’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서, 그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게임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오리란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각오를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더불어 자신을 아는 자들이 언제나 자신에게 호의를 보낼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적의를 가졌던 세상을 경험했던 히르칸이다.

히르칸이 슬그머니 손가락을 튕길 준비를 했다. 히르칸이 긴장했다는 사실은 꾹 다문 그의 입가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이름은 키요테! 하회탈 히르칸, 당신에게 도전한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비늘 갑옷, 화이트 맘바 세트를 입은 사내가 히르칸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굳어있던 히르칸의 입가가 풀렸다.

‘캬.’

이제까지 받은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18화. 득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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