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50화 (50/192)

< 17화. 불카스 산맥 (3). >

7.

덥수룩한 수염에 베레모를 쓰고 있는 중년 사내의 꾹 다문 입이 천천히 열렸다.

“자네의 실력을 믿어보겠네.”

“예.”

짧은 대답과 함께 몸을 돌린 사내, 히르칸의 귀로.

[타이틀 ‘개시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확보를 알리는 알림이 흘러들어왔다. 예상했던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히르칸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몸이 근질거렸다. 그 근질거림을 꾹 참으며, 통나무로 만들어진 초소 밖으로 나왔다. 초소 밖으로 나온 후에야 참았던 것을 터뜨렸다. 오른

주먹을 꽉 쥔 채 흔들었다.

예스!

누가 보더라도 그런 의미를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어디에서도 히르칸의 지금 속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제스처였다.

‘이것으로 타이틀 3개째!’

불카스 산맥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 히르칸은 곧바로 불카스 레인저와 조우했다. 그들과 조우하는 순간 ‘불카스 레인저와 첫 조우자’ 타이틀이 나왔다. 직업 관련 능력치를 7포인트나 올려주는 매우 괜찮은 타이틀이었다.

조금 전 얻은 ‘개시자’ 타이틀은 최초로 성, 마을, 지역 등을 발견하고 그 지역 내에서 첫 퀘스트를 받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타이틀로, 모든 능력치를 7포인트씩 올려주는 정말 좋은 타이틀이었다.

더불어 불카스 산맥에 처음 발을 들여놓자마자 얻은 타이틀 ‘불카스 산맥을 처음 밟은 자’는 모든 능력치를 4포인트씩 올려주는 옵션이었다.

레벨업 한 번 하지 않았음에도 타이틀만으로 엄청난 수준의 포인트를 얻었다.

‘그래, 이게 워로드의 참맛이지.’

워로드가 타이틀 경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4∽5레벨은 올려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 포인트를 타이틀만으로 얻을 수 있으니, 이게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만족하는 건 하수다. 정말로 이 정도 성과를 의도해서 얻을 실력자라면, 이 이상의 가치를 낼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뭘 잡을까?’

새로운 지역을 발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메리트는 다름 아니라.

‘뭘 잡아야 인기가 좋으려나?’

새로운 몬스터 사냥 및 공략 영상이다.

워로드 시청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강하든, 약하든, 대단하든, 가소롭든, 새로운 뭔가가 나오면 일단 본다. 더불어 새로운 몬스터 관련 영상은 일단 뜨면, 워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온갖 워로드 관련 팬사이트에 알아서 영상을 올리며 영상을 광고하고, 퍼뜨

려준다.

더불어 최근 히르칸은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더블 베어 편이 꽤 괜찮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스컬 클라운 만큼은 아니지만, 히르칸의 팬들의 기준을 충족해주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더불어 더블 베어 영상 효과 덕분에 스컬 클라운 영상 조회수가 다시 속도가

붙으며 9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여기에 신종 몬스터 같은 걸 끼얹는다면?

‘불카스 산맥이라면, 아머 몽키가 적당하겠지.’

히르칸이 히죽 웃었다.

8.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는 메이스를 들고 있는 1.5미터의 신장을 가진 원숭이 한 마리.

끼이끼이!

그 원숭이 한 마리가 육중한 골렘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힘차게 메이스를 내리치듯 휘두르고 있었다. 그 메이스는 날렵하게 움직이며 골렘의 머리, 어깨, 등 따위를 가차 없이 가격했다.

푸홧!

살점이 튀듯, 흙덩이가 사방으로 튀겼고.

후웅!

골렘이 그런 원숭이를 잡기 위해 두 팔을 머리 위로 들려 휘저었으나, 원숭이는 마치 놀이를 하듯, 육중하지만 느릿하게 다가오는 골렘의 팔을 가뿐하게 피해냈다. 여차할 때는 골렘의 몸 아래로 내려간 후에 다시 달라붙어 골렘을 괴롭히는 꾀도 부렸다.

무게감은 있으나 속도감이 없는 골렘의 손짓은 그저 허우적거림이 될 뿐이었다.

그야말로 농락.

그 광경에 가장 분노한 건.

“아 쫌!”

골렘으로부터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카피 모드로 골렘을 조종하고 있는 히르칸이었다.

서서 머리를 감듯, 손으로 머리 주변을 열심히 휘젓던 히르칸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도 히르칸은 폭발을 참으며, 골렘을 조종해 골렘을 농락하는 아머 몽키를 잡으려고 했다.

‘잡혀라. 제발 잡혀라.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잡혀?’

그런 히르칸이란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끼이 끼이!

아머 몽키의 신명 나는 울음이었다. 신명이 나는 건지, 그냥 설정에 따라 예의상 내뱉은 울음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히르칸에게는 마치 자신을 보고 병신, 등신! 그리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넌 뒈졌어.’

히르칸이 카피 모드를 해제한 후 곧바로 전력을 다해 골렘을 향해 질주했다.

달리는 히르칸의 몸놀림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치타와 흡사했다.

타닷, 타닷…… 사람이 달리는 게 아니라 짐승, 그것도 맹수가 달리듯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던 히르칸은 자신이 가진 근력 스탯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단숨에 골렘과의 거리를 5미터 남짓으로 좁혀졌다.

그 순간.

파앗!

속도를 점프력으로 일순간에 바꾼 히르칸의 몸이 발끝을 창끝처럼 앞세운 채, 날아가는 창처럼 날렵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퍽!

골렘의 어깨 위에서 신명 나게 메이스를 휘두르던 아머 몽키의 등줄기를 관통했다.

드롭킥!

워로드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그 공격에 맞은 아머 몽키의 몸뚱이가 포탄처럼 날아갔다. 날아가는 힘이 대단했는지 갑옷을 두른 아머 몽키의 몸뚱이는 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그대로 멈추지 않고 일곱 바퀴를 더 굴렀다.

끼익!

바닥을 구르는 아머 몽키의 입에서는 울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렇게 몇 번을 구른 후에 간신히 멈춘 아머 몽키가 끼익! 재차 울음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일어나면서,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직시하기 위해 골렘이 있던 곳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런 아머 몽키의 시야에 들어온 건.

빠악!

히르칸의 무릎이었다.

드롭킥을 날린 후에 히르칸은 이미 두 번째 공격을 위한 질주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히르칸의 무릎은 아머 몽키의 머리를 날렸다. 머리에 몸이 달린 이상, 몸도 같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노릇. 아머 몽키의 육중한 몸뚱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올힘 네크로맨서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위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위력적이고, 힘도 넘치고, 강렬하지만 실질적인 데미지는 클 수가 없었다. 아머 몽키는 60레벨의 몬스터였고, 히르칸은 46레벨에 불과했으니까.

데미지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그저 사소한 수준의 데미지. 어그로를 끌기에 적당한 데미지일 뿐.

끼이이!

분노한 아머 몽키는 분노가 심심하게 섞인 울음을 토해내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틀어진 투구를 고쳐 쓰고, 손에 든 메이스로 땅을 두 번 내리치며 히르칸을 한 번 노려본 뒤 곧바로 히르칸을 향해 움직였다.

둘 사이의 거리는 3미터 남짓, 그 둘의 능력치를 고려하면 한 걸음조차 필요 없는 거리.

제자리에서 한 번의 도약만으로 히르칸과 아머 몽키의 거리는 지척이 됐다.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만큼 아머 몽키가 내리치는 메이스와 히르칸의 거리도 좁혀졌다.

끼이!

아머 몽키가 내지른 울음은 거리가 좁혀지며 보다 선명해졌다.

후우웅!

그런 상황 속에 메이스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메이스는 히르칸의 머리를 단박에 박살을 낼 기세였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었지만, 히르칸은 찌푸린 표정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은 채, 메이스가 가까워지는 순간 가볍게 상체를 옆으로 비틀었

다.

후웅!

메이스가 히르칸의 눈앞을 스쳐 갔다.

그 뒤.

푸홧!

애꿎은 바닥에 꽂혔다.

아머 몽키의 몸뚱이도 바닥에 착지했다. 투구 속 아머 몽키가 두 눈을 부라렸다.

감히 이걸 피해?

……그런 느낌.

아머 몽키는 더더욱 분노했고, 곧장 다음 공격을 위해, 표적을 확인하기 위해, 히르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투구 속 이빨을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퍼억!

히르칸은 그런 아머 몽키의 머리통이 자신을 바라보기도 전에 녀석의 머리통을 축구공 차듯 차버렸다.

끼이이이!

아머 몽키가 이번에는 구슬픈 울음을 터뜨리며 옆으로 넘어졌다. 히르칸이 그런 아머 몽키를 보며 하회탈 가면 속으로 여전히 표정을 찌푸린 채 소리쳤다.

“이제부터 아머 몽키를 엿 먹이…… 아니, 아머 몽키 공략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머 몽키를 향한 사형, 아니, 고문 선고였다.

9.

[타이틀 ‘아머 몽키 최초발견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사냥이 끝나는 순간 히르칸은 바닥에 축 늘어진 아머 몽키의 시체를 지그시 바라봤다.

히르칸을 짜증 나게 만든 놈이다.

예전이라면 당연히 짜증을 내고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히르칸은 예전과 달랐다.

‘이 녀석을 해골 조각 재료로 써먹으면 어떨까?’

네크로맨서를 육성하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과연 어떤 몬스터를 재료로 삼아야 좋을까? 몬스터를 잡고 나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은 전투력에만 초점을 맞췄다. 일단 해골 전사로 만들면 잘 싸우는 놈이 최우선이었다. 그다음으로 고려되는 건 보이는 그림이었다. 일단 동일한 개체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게 확실하게 있어 보이니까. 영상을 찍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보기 좋은 떡이

팔기 좋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동일한 개체가 있는 게 기본적인 전투에서는 유리했다. 대부분의 네크로맨서들은 선방어 후공격이란 전투 시스템을 쓴다. 이 전투는 기계처럼,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기계라면 당연히 규격이 똑같은 부품을 쓰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최근 히르칸은 생각이 바뀌었다. 부릴 수 있는 해골 전사가 많아진다고 해도, 전투가 시작되면 몬스터에 달라붙어서 공격을 하는 숫자는 정해져 있다. 대형 몬스터를 잡을 때라면 보다 많은 인원이 필요하겠지만, 대형 몬스터와의 전투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해골 조각 스킬 자체가 생각보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폭이 넓었다.

일단 재량만 되면, 해골 조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해골 조각을 회수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해골 전사가 파괴됐을 경우, 주먹을 움켜쥐고 회수라고 하면, 주먹 안에 해골 조각이 돌아온다.

똑같은 재료만 쓸 필요도 없고, 쿨타임과 마력이라는 제약이 허락하는 내에서는 얼마든지 재량껏 조합을 바꿀 수 있다.

즉, 다양한 성향을 가진 해골 전사 그룹을 만들 수 있다.

전쟁에서의 다양성은 곧 효용성인 법.

히르칸이 눈앞에서 이제 슬슬 아이스크림이 되어 녹아내리는 아머 몽키의 시체를 지그시 바라봤다.

‘얘는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히르칸, 그는 이제 착실하게 네크로맨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일단 해골 부하로 만든 후에 얼차려부터 시켜야지. 감히 날 약올리다니, 넌 죽어도 못 죽어.”

물론 성격은 그대로였다.

9.

타락 백작 편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워로드를 업으로 삼은 이들이 다시 한 번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무대, 새로운 콘텐츠…… 모두가 똑같은 시작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이 신시대는 기회였으니까.

타락 백작을 잡지 못한 30대 길드들에게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였고, 30대 길드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한 세력과 저력, 팬과 실력자를 확보한 대형 길드에게는 30대 길드가 가진 라이브 채널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전쟁의 시작.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상의 이목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신들에게 끌어오는 일이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됐다.

미인 랭커와 인기 남성 랭커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열애설을 터뜨리는 길드도 있었고, 과감하게 적대 길드에게 정면승부를 내거는 곳도 있었으며, 다른 길드의 약점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신시대에 가장 확실한 이슈는 이런 가십거리가 아니었다.

“우고 산체스가 38일 만에 30레벨을 달성했다네. 역시 더 머신에서 랭킹 3위를 찍은 실력자답다니까. 게임 못하는 인간은 100일을 줘도 30레벨을 못 찍는데…… 이 정도 레벨업 속도라면 신기록 아니야?”

“로니 잭슨 사냥 영상 공개됐던데, 장난 아니더라. 난 20레벨에 그렇게 싸우는 사람은 처음 봤어. 장담하는데, 로니 잭슨이 조금만 더 성장하면 랭커들하고 PVP를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거야. 몬스터와의 전투도 전투이지만, 유저를 상대할 때는 귀신 같더라.”

신시대를 맞이한 신성들, 그들이 현재 워로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들이었다.

특히 다른 가상현실게임에서 랭커로 활약하며 이미 검증을 마친 후에 워로드를 뒤늦게 시작한 이들에 대한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누군가가 자체적으로 루키 랭킹을 만들었고, 그 루키 랭크는 100위 랭킹만큼이나 주목도를 받았다.

루키를 뛰어넘는 슈퍼 루키가 되기 위한 루키들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전쟁에.

“너 그 영상 봤어? 아머 몽키라고,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했는데 벌써 공략 영상이 올라왔어.”

“새로운 몬스터 공략 영상? 당연히 유료겠지?”

“아니, 공짜. 무료야.”

“신 몬스터 공략 영상이 공짜라고? 대체 누가? 어느 길드가 올린 거야?”

“길드가 아니라, 개인이 올린 건데…… 이상한 가면에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는 유저가 올렸어. 이름이 뭐였더라…….”

“개인이라고? 직업이 뭔데?”

“네크로맨서.”

“뭐?”

하회탈 히르칸, 드디어 그의 이름이 올라왔다.

< 17화. 불카스 산맥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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