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49화 (49/192)

< 17화. 불카스 산맥 (2). >

4.

‘미치겠군!’

사자 옷을 입은 히르칸이 숲을 바람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질주하던 히르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히르칸이 사자 옷 곳곳에 달린 주머니, 개중 한 곳에서 자그마한 해골 조각 하나를 꺼내고는 곧바로 바닥에 버리듯 던졌다.

버려진 해골 조각은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오르며 한 마리의 해골 전사가 됐고.

딱!

히르칸이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형태를 갖춘 해골 전사가 자세를 낮춘 채 방어 모드에 돌입했다.

그런 해골 전사의 앞으로.

크왕!

괴물의 울음이 터졌다.

송곳니인지 아니면 드릴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송곳니 네 개를 가진 거대한 늑대, 투스 울프는 그 울음과 함께 자신이 쫓던 타깃을 히르칸에서 해골 전사로 바꾸었다.

푸듯, 푸듯!

말처럼 질주하는 투스 울프와 해골 전사의 거리가 무섭게 좁혀졌다.

해골 전사는 그 무시무시한 거대 늑대 앞에서 기죽지 않았다. 해골 안, 그 시커먼 눈두덩이 공간 속에 담긴 불빛의 눈빛을 활활, 더 활활 태우며 응전 그리고 분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힐끔, 그 광경을 달리던 히르칸이 뒤돌아 바라봤다. 히르칸이 이를 꽉 물며,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타타, 털장갑 때문에 제대로 소리조차 나지 않는 그 손가락 튕김이 끝나기 무섭게 해골 전사가 자세를 풀고,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오는 투스 울프를 향해 덤벼들었다.

히르칸은 그 광경을 바라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

대신 짧게 기도했다.

‘해골아 미안해.’

결과는 너무나도 뻔했으니까.

60레벨의 중형 몬스터 중에서도 매우 강한 편에 속하는 투스 울프를 상대로 그 어떤 재료도 제물로 삼지 않고, 그냥 만든 오리지날 해골 전사가 벌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보통은 1초. 잘하면 2초. 운이 좋으면 3초. 그뿐이다. 그마저도 히르칸이 키운 해

골 전사이니까 가능한 시간이다. 히르칸의 해골이 아니었다면, 그저 볼링핀 쓰러지듯 단박에 박살이 났을 터.

그리고 이 순간 해골 전사는 2초를 벌어줬다. 투스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내민 주둥이를 피했다. 그 후 곧바로 날아온 투스 늑대의 앞발 공격에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 앞발 공격이 투스 늑대의 거침 없던 질주에 영향을 줬다. 투스 늑대가 바닥에 착지를 했다. 착

지를 했다는 건, 다시 달려야 한다는 의미.

그 짧은 시간 동안 히르칸은 다시금 투스 늑대와의 거리를 수십 미터 더 벌렸다.

크르르…….

투스 늑대가 나지막한 울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투스 늑대의 발치에 불빛 사라진 해골 전사의 두개골이 너부러져 있었다. 투스 늑대는 그 해골을.

빠직!

짓밟아 뭉갰다.

그 소리가 히르칸에게 들릴 리 없지만, 달리던 히르칸이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젠장.’

그런 히르칸이 숨을 돌린 건, 그 질주를 3분여 정도 더 해낸 다음이었다.

숨이 차는 일은 없었다. 게임이니까. 히르칸은 여전히 힘이 넘쳤고, 그 힘을 이용해 곧바로 굵직한 기둥의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원숭이처럼 잽싸게 올라가는 솜씨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나무에 올라간 히르칸은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고오오…….

고요한 소리가 날 정도로 주변은 적막했다. 그 적막함을 깨지 않기 위해, 히르칸은 속으로 조심스럽게 한숨을 돌렸다.

‘어휴.’

그 한숨을 뱉은 후에야 히르칸의 멈춰 있던 사고가 흐르고, 긴장이 풀렸다.

‘몬스터 벨트가 해제됐어도, 내 기준에서는 지랄 맞은 곳이군.’

현재 히르칸은 자신이 일찌감치 정해둔 목적지인 볼카스 산맥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일찌감치 볼카스 산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브 성에서 대기 중이었다.

히르칸이 머무른 허브 성은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장소였다. 허브 성의 동쪽으로는 현재 그 어떤 성도 발견되지 않고, 그 누구도 탐사를 위해 나서지 않는 장소였다.

워로드 시스템이 게임 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진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저들의 활동에 제약을 거는 지역, 일명 블럭 필드였기 때문이다.

워로드 세계관은 매우 방대하지만, 서비스가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유저들이 발견하고 활동하는 영역은 워로드 전체 영역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블럭 필드 때문이다.

물론 이 블럭 필드는 조건을 충족하면 사라진다. 대개는 퀘스트를 누군가 받거나 혹은 완료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블럭 필드가 사라진다. 그동안 게임 시스템에 따라 계속 같은 지역을 맴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지역을 넘어갈 수 있게 되는 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블럭 필드가 사라졌다는 건 그 너머에 숨겨진 보물에 닿을 기회가 생겼다는 의미이고, 이런 블럭 필드 근처에는 항시 유저들이 대기 중이다. 그냥 대기하는 게 아니라 경쟁자나, 주변인들의 낌새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그래서 허브 성이 인기가

없었다. 무엇을 하든 의심을 받는 곳이었으니까.

어쨌거나 히르칸은 이미 허브 성 너머에 볼카스 산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어떤 루트를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동시에 타락 백작이 잡히는 순간, 블럭 필드가 해제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 블럭 필드를 넘어 볼카스 산맥에 도달하는 건 히르칸이 최초일 터.

단지 문제는, 히르칸이 지나가야 하는 그 영역이 60레벨에서 80레벨 사이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장소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실력 대단한 히르칸이라고 해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르칸이 위험을 감수하고 달리는 이유는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한숨을 돌리던 히르칸이 고개를 돌려, 우거진 숲 너머를 바라봤다.

‘예전에는 이 레벨에 발견 타이틀은 꿈도 못 꿨었는데.’

저 우거진 숲 너머에 볼카스 산맥이 있다.

그리고 그 볼카스 산맥에는…….

‘볼카스 산맥 레인저만 만나면, 못해도 그 자리에서 타이틀 3개를 확보할 수 있었지?’

매우 훌륭한 보물들이 있다.

일단 볼카스 산맥에서 활동하는 레인저들은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유명한 존재들이 될 자들이다. 유명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참 고마운 놈들이야.’

주는 게 많으니까.

원래 게임이라는 게 그렇다. 게임에서 유저를 제외한 몬스터, NPC가 유명한 경우는 아주 강하거나 아니면 아주 가치 있는 무언가를 주거나,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볼카스 산맥의 레인저들은 후자였다.

60레벨에서 80레벨대의 사냥터인 볼카스 산맥은 다양한 레벨대의 유저들이 사냥터로 삼기 좋았다. 효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작정하면 60레벨부터 80레벨까지 이 사냥터에서만 올릴 수 있다.

여기에 볼카스 레인저들은 볼카스 산맥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퀘스트를 준다. 이 보상이 경험치나, 골드면에서 짭짤하다. 때때로는 꽤 괜찮은 보상을 품은 퀘스트도 준다. 퀘스트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타이틀을 얻을 기회도 많다.

여러모로 아낌없이 주는 레인저들.

하지만 그런 아낌없이 주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결정적인 건.

‘더군다나 볼카스 레인저의 대장, 마웅을 포섭하면 배덕의 왕자 퀘스트에 숟가락을 일단 집어넣을 수 있지.’

볼카스 레인저 마스터, 마웅이다.

그가 배덕의 왕자 퀘스트의 핵심 열쇠 중 한 명이다.

이것만으로도 히르칸이 목숨을 걸고 도망칠 이유는 충분하다. 히르칸이 다시 주변을 훑었다.

보통 유저라면 오금이 저리고, 게임오버가 두려워서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터.

하지만 히르칸에게 이런 위기에 대한 짜증은 있어도 공포감은 없었다.

많이 경험했으니까.

‘그래도 날 배신한 동료 새끼들에다가 우레사냥꾼의 허접스러운 쓰레기들에게 추격당하는 것보단 이게 낫지.’

아주 많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경험은 이미 질리도록 해봤다.

그 경험 덕에 히르칸은 다시금 달릴 수 있었다.

5.

남자 같은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여성 마법사와 붉은빛이 감도는 큼지막한 비늘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보이즈 성의 성도를 걷고 있었다.

그 둘의 모습은, 정확히는 갑옷 입은 유저의 모습은 주변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와, 저 사람 봐! 파이어 리자드 풀세트를 입고 있어!”

“대단하네. 저거 풀세트는 못해도 10만 골드를 넘어갈 텐데? 그보다 저거 90레벨 넘어야 입을 수 있잖아?”

“누구지?”

최고 레벨의 유저들만이 입을 수 있는 아주 고가의 갑옷!

사람들 많은 길거리에서 잘생긴 미남 혹은 미녀가 최고급 오픈카를 끌고 다니는 것하고 다를 바 없다.

넘치는 관심. 그 덕분에 생기는 어수선함 속에서 그 둘은 보이스톡을 이용해 중얼거림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제보자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이야기 들어보니까 감조차 잡히는 사람이 없다더군.”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냥 사건도 아니고, 그 정도 중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유저는 소수에 불과한데.”

“그 소수 중에 정보를 29개 길드에 제보할 만한 이유를 가진 이는 한 명도 없지. 아무리 봐도 그들은 아니야.”

“그렇다는 건 우리들 범위 내에 잡히지 않는 어마어마한 실력자가 있다는 의미 아닙니까?”

“사실 랭커들 중 몇 명의 정체를 모르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랭킹 밖 인물은 우리가 알 도리가 없고.”

“벌써 일이 틀어지는 조짐이 생기는군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우리가 하는 건 고용주가 이거 하라면, 이거 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대단한 의무감을 가지고 고용주 밑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깔렸다. 그 침묵은 그들이 좀 더 걸은 후에 풀렸다.

“그보다 이번에는 어디로 파견 나가?”

“스위퍼즈 쪽으로 파견을 나갑니다.”

“왜 스위퍼즈에 내가 아니라 네가 가는 거지? 그쪽은 마법사를 더 필요로 하지 않나?”

“반대 아닙니까? 마법사는 많으니까 그 외 전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아무렴. 그보다 스위퍼즈가 움직이는 거 보니, 블럭 필드들을 골라서 쓸어버릴 속셈인가 보네. 귀찮아지겠어.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드래곤 리자드 알. 그건 어떻게 됐어?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냈어?”

그 질문이 나오는 순간 갑옷을 입은 유저의 발걸음이 멈췄다. 마법사 유저가 고개를 돌렸다. 그 둘이 시선이 마주쳤고, 덕분에 마법사 유저는 잔뜩 찌푸린 검사 유저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든 걸리면 그냥 두진 않을 겁니다.”

그 후에 검사 유저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6.

한 발자국이었다.

[타이틀 ‘볼카스 산맥을 처음 밟은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누더기나 다름없이 줄어든 마력, 그렇게 마력을 연료 삼아 내디딘 단 한 발자국이 히르칸에게 새로운 타이틀을 주었다.

더불어 그 한 발자국은 여러 의미를 가진 한 발자국이었다. 이제까지 남들 뒤만 쫓았던 히르칸이 남들보다 먼저, 더 먼저 나아갔다는 의미였으며, 그것은 곧 히르칸이 남길 역사적인 사건의 시발점을 알리는 발자국이기도 했다.

물론 히르칸은 지금 자신의 발자국에 그런 깊은 의미 따위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다.

히르칸은 곧장 시계를 통해 능력치 창을 확인했다.

“옵션 괜찮네?”

능력치를 통해 이번에 획득한 타이틀의 옵션을 확인하는 히르칸. 히르칸에게는 그게 더 중요했다.

확인을 마친 히르칸이 고개를 들었다.

마치 송곳처럼 뾰족한 잎을 가진 나무들로 가득 찬 불카스 산맥은 대단하기보다는 아득했다.

이 드넓은 숲 속에서 우글거릴 무수히 많은 몬스터, 그에 비해 그 몬스터를 상대할 유저는 현재 유일하게 히르칸 밖에 없다는 사실은 분명 아득한 사실이었다.

‘확실히 지금 가진 마력으로는 여기서 섣불리 움직이는 건 위험하지.’

물론 정말 아득한 건 히르칸의 마력이었다. 히르칸은 자리에 앉아 마력 회복 껌을 씹었다.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자, 정말 먹은 단물만큼 마력이 차올랐다.

‘돈만 많으면 비싼 회복 아이템 물쓰듯 써서 그냥 채울 수 있을 텐데.’

워로드에는 다양한 종류의 회복 아이템이 있다. 효과가 좋을수록 당연히 비싸다. 예를 들어 150레벨 희귀 몬스터인 흡혈나무의 진액을 이용해 만든 사탕의 경우에는 입안에 머금고 있는 동안 HP가 퍼센티지로 차오르는데,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올리고, 제대로 속

성 저항 세팅을 마친 탱커가 그걸 머금으면 사실상 그 사탕이 유지되는 동안은 무적 상태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 흡혈나무 진액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최고 레벨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 꼭 필요한 물품으로 공급에 비해 수요가 곱절 이상으로 많기에, 이번 타락

백작 레이드처럼 아주 중대한 레이드를 앞두고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는 한다.

그 외에도 정말 레벨업에 집중하는 자들은 이런 회복 아이템을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퍼스트원 설우다. 그는 최고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풀버프, 아이템 및 스킬로 최대한의 버프를 갖추고 싸운다. 버는 돈도 어마어마하지만, 쓰는 돈은 그 이상이라고 할 정도다.

물론 당장 기본적인 껌, 그마저도 값이 껌 하나에 5골드나 하는 바람에 마음껏 씹지도 못하는 껌을 씹어야 하는 현재 히르칸의 입장에서는 먼일이다.

하지만.

‘왔다.’

아득할 정도로 먼일은 아니다.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푹!

히르칸의 발치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꽂혔다. 히르칸이 그 화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17화. 불카스 산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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