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45화 (45/192)

< 15화. 미기를 찾아서 (3). >

8.

[히르칸]

- 레벨 : 40레벨

- 직업 : 마법사

- 타이틀 : 14개

- 능력치 : 근력(277)/체력(83)/지력(183)/마력(240)

‘마력이 드디어 240포인트를 넘겼다.’

히르칸은 예전보다 대폭 업그레이드된 자신의 능력치 창을 보면서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오른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히르칸이 착용하고 있는 황금빛 털장갑이 동그랗게, 앙증맞게 말렸다.

‘마력 스위칭 세트, 40렙제 세트를 구매하는데 3천 2백 골드.’

히르칸이 보고 있던 능력치창에서 고개를 돌리자, 히르칸이 쓰고 있는 사자 인형 머리탈에 달린 갈색빛 털들이 휘날렸고, 히르칸이 몸을 돌리자 그가 입고 있는 사자 인형 옷의 꽁무니에 달린 가짜 꼬리가 따라 움직였다.

사자 인형 옷.

할로윈 이벤트에서나 볼 법한 앙증맞은 이 방어구가 이번에 히르칸이 거금을 들여 구매한 마력 스위칭 아이템 세트였다.

가격은 3,200골드!

40레벨짜리 아이템에다가 꽤 괜찮은 마력 스탯이 붙은 걸 고려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었다. 보통 이 정도 수준의 아이템을 세트로 구매하려면, 못해도 4천 골드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그 저렴함의 이유는 히르칸이 몸으로 직접 격렬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 싸게 구하긴 구한 건데…….’

히르칸이 슬그머니 자신의 신발을 바라봤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의 발처럼 큼지막한 사자발 털신발의 모습에 히르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싸게 산 것 같지가 않단 말이야.’

유행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8개월 전, 40레벨이면 거의 최고 수준의 레벨이던 시기. 당시 40레벨이 넘는 랭커급 마법사들이 동물 인형 옷을 디자인해서 입고 다니는 영상이 대박을 치면서, 동물 인형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잠시나마 유행이 됐다. 어떻게든 주목을 받기 위해

시도하는 소위 컨셉질이 먹힌 결과물이었다.

물론 유행이란 건 언제나 잠깐인 법.

그때 만들어진 동물 인형 옷들은 다음 구매자들에게 외면을 당하면서,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옷들에 비해 퍽 저렴한 값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주인을 거치면서 이제 히르칸에까지 온 것이다.

‘여하튼 워로드에 미친 컨셉종자들이 너무 많다니까. 당시에는 현금으로 따지면 1천만 원이 넘었을 텐데, 이런 옷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사실 그나마 시세가 내려가서 이 정도인 거지, 이 옷을 제작할 당시에는 40렙제 마력 스위칭 세트 아이템의 시세는 어마어마했다. 게임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자들이 쓰던 아이템이었으니까.

“젠장.”

어쨌거나 구리다.

아무리 좋은 옵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냥터에서 이런 옷을 입고 사냥하는 광경은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로 히르칸이 쓴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니었다. 정말 최악은 이 옷이 아니다. 이 동물 인형 옷이 히르칸이 그동안 입고 다니는 옷보다 낫다는 사실이다. 히르칸은 새삼스레 자신이 얼마나 추레하고, 추악한 옷을 입고 다녔는지 자각할 수 있었

다.

‘진짜 50레벨 때는 아이템 맞출 때 능력치 조금 더 손해 보더라도 보기에 멀쩡한 걸 입어야겠어.’

그렇게 새로운 옷을 입은 히르칸이 새로운 다짐을 하며 츠류 성을 향해 사자처럼 달렸다.

9.

츠류 성.

방츠 성으로부터 꽤 먼 거리에 위치한 이 성은 이제까지 히르칸이 방문했던 두 곳, 피거스 성이나 방츠 성보다는 크기가 작았다. 두 성에 비하면 1/3 정도 되는 크기.

하지만 그 두 곳과 가장 큰 차이점은 크기보다는 성 내에 흐르는 분위기였다. 일단 성문 주변의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앞선 두 성은 성문 근처에 모든 종류의 어중이떠중이가 모여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몇몇 유저들만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고 가

는 사람들을 눈여겨볼 뿐이었다.

세 번째 아이템 슬롯에 저장된 토벌협회 보급 세트를 착용한 히르칸을 보는 순간 몇몇 유저들이 곧바로 이야기를 나눴다.

“토벌협회 옷이네.”

“여기까지 혼자 왔나? 아이템 세팅을 감추는 걸 보면, 레벨이 높은 건가?”

나지막한 목소리의 대화. 당연히 그들의 대화가 히르칸의 귀에 들릴 리 없다. 그러나 히르칸은 지척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것마냥,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있었다.

‘눈초리들이 하이에나가 아니라 늑대 같네.’

츠류 성은 7개월 전에 30대 길드 중 한 곳인 스위퍼즈 길드가 발견한 성으로 스타팅 포인트에서 제외되어 있다. 스타팅 포인트에서 제외된 만큼 어눌한 초보들을 노리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없다. 동시에 여기까지 오는 길은 최소 3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이 우글거

리는 곳으로 일정 수준의 실력과 경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 유저들은 분명 게임 좀 할 줄 아는 자들이란 의미. 바라보는 시선이 초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수밖에 없다.

히르칸은 그런 눈초리를 즐겼다.

‘여기까지 왔다.’

이건 곧 증거였으니까.

‘아직 멀리 있지만, 그래도 이제 충분히 랭커들을 따라잡을 만한 기반은 마련했어.’

히르칸이 자신의 예상대로 충분한 성장을 했다는 증거.

현재 워로드에서 게임 좀 한다는 유저들의 레벨은 50레벨에서 70레벨 사이다. 히르칸처럼 게임에 일생을 바칠 각오를 한 이들은 80레벨대에 머물고 있으며, 랭킹 1위는 109레벨, 랭킹 100위는 101레벨을 기록 중이다.

아직 그들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지만, 히르칸의 성장 속도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빠르다. 게임 시작 두 달이 넘은 시점에서 40레벨을 달성한 유저는 현재 최상위 랭커들 정도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히르칸은 자신 있었다.

‘나한테 따라잡히면 네놈들은 다 죽었어.’

히죽히죽, 입가에 미소를 지은 히르칸이 토벌협회를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10.

[미기를 찾아라.]

- 퀘스트 등급 : 레어

- 퀘스트 수행 레벨 : 4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아힘브리의 지령에 따라 미기 요원의 흔적을 찾고, 그의 임무를 대신 수행해야 한다. 츠류 성에 위치한 토벌협회 지부에 가서 미기 요원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라.

- 퀘스트 보상 : 500골드 및 추가 보상.

- 기타 : 이 퀘스트를 (29일 9시간 33분) 내에 완료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습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히르칸은 한숨을 내뱉었다.

‘젠장.’

그런 히르칸의 머릿속으로 조금 전 NPC와 나눴던 대화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토벌협회 츠류 성 지부에 도착한 히르칸은 곧바로 토벌협회 3층에서 NPC와 대화를 나눴다.

“아힘브리님께서 보낸 자로군.”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다.

“미기 요원의 임무라…… 그의 임무는 감시였네. 여러 차례 타락의 돌을 회수했음에도 거듭 타락의 돌과 타락한 몬스터가 등장하는 지역을 감시하고, 타락의 돌을 운반하는 자를 찾아내 추적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지.”

퀘스트 내용도 특별할 건 없었다.

아마도 미기 요원은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지역에서 시체가 된 채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시체를 찾은 후에 그의 임무인 감시 임무를 건네받아, 그 지역에 타락의 돌을 가져오는 작자를 발견하고, 추적하면 된다. 딱히 몬스터와 싸우는 게 아니니, 도망치는 재주를 가진 자라면 누구든 완료할 수 있는 퀘스트였다.

문제는 그 지역.

“그곳이 어디입니까?”

“보보르 수림이네.”

“뭐?”

보보르 수림.

그 말을 듣는 순간 히르칸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도 저도 모르게 반말을 지껄였다.

“그게 무슨 개…….”

험한 말도 나올 뻔했으나, 히르칸이 간신히 험한 말은 삼켰다. 그런 그를 보며 상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뇨, 없습니다. 단지 너무 위험한 지역이라서…….”

“보보르 수림이 위험한 곳이긴 하지. 그렇기에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일세. 아힘브리님께서 아무나 이런 중대한 임무를 맡기시진 않을 터. 이미 아힘브리님의 시험을 통과한 자네라면 충분히 미기 요원을 찾아내고, 그의 임무를 이어받아 수행할 수 있을 걸세.”

담담한 표정을 짓는 히르칸의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분노가 솟구쳤다.

‘지랄하네.’

보보르 수림은 히르칸은 잘 알고 있었다.

‘미친, 도대체 퀘스트 난이도가 뭐 이래? 40레벨 이상? 보보르 수림은 7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이용하는 사냥터잖아!’

보보르 수림은 보보르 산 아래 펼쳐진 드넓은 숲이다. 수림이란 표현 그대로 굉장히 넓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거주한다. 이게 보보르 수림의 특징이다. 보통 워로드에서 사냥터로 분류되는 곳은 일정 지역 내에 제한된 종류의 몬스터들이 머문다. 그렇게

되면 사냥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공략법이나 아이템 세팅을 단순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보르 수림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있으니, 아이템 세팅은 물론 다양한 공략법을 머릿속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불어 몬스터 레벨이 40레벨부터 70레벨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 역시 골치 아픈 문제다. 40레벨 유저들이 사냥터로 삼기에는 여러모로 난이도가 높다. 그렇다고 해서 70레벨 유저들이 사냥터로 삼기에 40레벨 몬스터는 돈은 돼도, 경험치는 안 된다. 차

라리 다른 사냥터가 레벨업에 유리한 셈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보스 몬스터인 보보르 오우거다. 사실상 보보르 숲은 이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꽤 돈이 되는 놈이다.

어쨌거나 히르칸에게는 머나먼 땅이다. 난이도가 너무 높다. 리자드 숲이나 죽은 자의 숲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가진 지역이다.

‘무조건 죽어.’

전투가 아니라 미기를 찾고, 그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는 게 퀘스트의 목적이라도 해도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문제는 이 퀘스트를 히르칸이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돌에는 마법이 걸려 있네. 미기 요원 역시 이 돌을 소지하고 있으니, 미기 요원 근처로 간다면 이 돌이 반응을 할 걸세.”

“알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회상은 여기까지였다.

히르칸은 그때 받은 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장 돌을 저 머나먼 우주로 던지고 싶은 충돌이 솟구쳤다. 그 정도로 지금 히르칸의 기분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아니, 아무리 워로드 퀘스트 난이도가 개차반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앞서 아힘브리가 내준 퀘스트 전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둥지의 알 퀘스트만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히르칸의 레벨로 수행 가능한 수준의 퀘스트가 아니었다. 파티가 아니라 길드 단위로 움직여야 완료 가능한 수준. 그리고 실제로도 길드 단위의 참가를 염두에

둔 퀘스트였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워로드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퀘스트였고, 파티 단위가 아닌 길드 단위의 참가를 기준으로 삼는 건 매우 타당한 밸런스 설정이었으니까.

사실 그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히르칸은 자기 능력과 자기 수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퀘스트를 수행해냈다.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든 퀘스트를 수행했으니, 다음 퀘스트를 줘야 하고, 그러다 보니 본래는 60레벨에 받아야 하는 퀘스트를 40레벨에 받은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일이다. 히르칸이 너무 대단해서 그런 거니, 오히려 살짝 기분 좋아질 만한 일이다. 워로드 시스템의 상정 범위 이상으로 히르칸이 대단하다는 의미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니었다.

다른 퀘스트면 몰라도 이번 퀘스트는 정해진 시간 내에 수행하지 못하면 페널티가 붙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그 페널티는…….

‘이 퀘스트 못 깨면 반지를 빼앗기겠지.’

타락 추적자의 반지 반납이 될 것이다.

이 반지를 받는 대가로 의무를 짊어지게 됐고, 그 의무가 지금 퀘스트인 셈이니까.

‘미치겠네.’

타락 추적자의 반지를 빼앗기는 순간 지금 히르칸이 가진 마력 스탯은 최소 50포인트 이상 감소한다. 앞으로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무엇보다 타락 추적자의 반지 수준의 반지 아이템을 확보하려면 돈 천만 원으로는 턱도 없다.

이걸 포기한다?

받지 못하는 거라면 속 한 번 쓰리고 넘어가겠지만, 이미 받았던 걸 뱉어야 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히르칸 사전에 그런 건 없다.

‘어떻게 하지?’

그렇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보르 수림으로 가는 건 미친 짓 중의 미친 짓.

그나마 차선은 대략 30일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최대한 레벨업을 하고,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보보르 수림을 뒤져보는 것 정도. 하지만 이 역시 성공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 한달 내내 사냥을 해도 히르칸이 50레벨을 찍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보

보로 숲은 히르칸이 50레벨을 찍어도 쉽지 않은 곳이다.

‘차라리 좀 더 레벨업을 하고 아힘브리를 만났으면…….’

이럴 줄 알았다면 의도적으로 아힘브리를 늦게 만났을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후회다. 이렇게 될 줄 히르칸은 물론 아힘브리도 몰랐을 테니까.

‘이거 방법이 어떻게 없네?’

히르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토벌협회 1층 구석에서 온갖 궁상을 떠는 히르칸의 주변으로 유저 무리가 지나가면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히드라 길드가 조만간 타락한 자를 잡을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구경이라도 갈까?”

“어디에 누구인 줄 알고? 그것보단 타락한 자를 잡으면 과연 얼마가 나올까? 무슨 타이틀이 나올지도 궁금하네.”

“난 다른 30대 길드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제일 궁금하던 말이야. 그냥 순순히 있진 않을 것 같은데…….”

“아마 지금 히드라 길드 행사를 방해하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지. 여기서 히드라 길드가 자기들 원하는 시점에 타락한 자를 잡아봐. 히드라 길드가 1인자 되는 거지.”

“그런데 타락한 자를 잡으면 지금 진행 중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건가? 다 완료로 끝나는 건가, 미완료로 종료되는 건가?”

“글쎄, 이번이 첫 번째 시나리오 퀘스트라서 그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그 대화.

‘응?’

그들이 그저 내뱉은 그 짧은 대화가 히르칸의 머릿속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가만, 타락 백작 잡으면 타락 백작과 관련한 모든 시나리오 퀘스트는 그 자리에서 종료되는 거잖아?’

아무래도 미기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15화. 미기를 찾아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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