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미기를 찾아서 (2). >
4.
[타락 추적자의 반지]
*주요 속성
-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 레벨에 비례하여 직업 관련 능력치 상승
- 모든 능력치 +9
- 요구 레벨 : 없음
- 요구 조건 : 타이틀 ‘타락 추적자’
*보조 속성
- 타락 추적자 목걸이 착용 시 모든 능력치 +21
- 이 아이템은 소유자에게 귀속됩니다.
아힘브리에게 받은 타락 추적자의 반지를 바라보는 히르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냥 미소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성한 놈 아니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헤프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히르칸이 얻은 반지는 그런 헤픈 웃음을 지을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거래불가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크로니클 유니크를 액세서리로만 얻을 줄이야.’
일단 당장 추가로 얻은 마력 스탯만 50포인트였다. 명시된 아이템 효과와 세트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30포인트. 레벨에 비례해 레벨의 절반에 해당하는 능력치 증가로 마력과 지력이 각각 20포인트씩 올랐으니까. 여기에 3천 골드를 털어서 부족하나마 마력 스위
칭 세팅을 확보한다면, 지금 아이템 세팅 때보다 많게는 50포인트 이상의 마력을 더 확보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100포인트 가까운 마력 스탯을 확보하는 셈이다. 심지어 히르칸은 여기에 유망주, 아힘브리의 제자 타이틀로 6퍼센트가 오르니, 106포인트가 오르는 셈.
‘여기에 해골학까지 더해지면…….’
히르칸이 곧장 반지를 뒤로한 채 왼손 손목시계를 조작해 새로 입수한 스킬을 확인했다.
[해골학]
- 숙련도 : F랭크
- 소환 가능한 모든 종류의 해골 부하의 모든 능력치가 5퍼센트 증가합니다.
- 해골 부하를 소환하는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10퍼센트 감소합니다.
- 해골 부하를 부리는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10퍼센트 감소합니다.
- 해골 부하를 추가로 (1)마리 더 소환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여유는 충분해.’
마력 스탯을 100포인트 이상 확보하고, 해골학 스킬 효과로 해골을 부리는데 쓰이는 마력이 10퍼센트 이상 감소한다면, 해골 부하들을 다루고도 여력이 남는다.
당연히 이 남은 힘은 곧바로 투자로 이어진다.
‘남은 건 골렘인가?’
그렇기에 이제는 골렘, 그 녀석을 만나볼 때다.
5.
신장은 3미터.
마치 찰흙으로 고릴라를 대충 만든 듯한 외형을 가진 골렘의 외형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예쁘진 않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골렘의 등을 바라볼 때의 듬직함을 느낀다면, 왜 골렘이 네크로맨서의 꽃으로 불리는지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히르칸이 그랬다.
‘아주 좋아.’
클래스 타워에서 골렘 소환 마법을 배우고, 곧바로 인적 드문 사냥터로 이동한 뒤에 골렘을 소환했다. 소환하기 전에는 분명 마력이 100퍼센트 가깝게 차있었는데 골렘을 소환하는 순간 마력의 1/4이 날아갔다. 마력 스위칭 세팅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타락
추적자 엑세서리 세트의 도움으로 히르칸의 마력이 적잖게 올랐던 걸 고려하면 마력 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러나 히르칸은 소모된 마력이 아깝지 않았다.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온몸을 아끼지 않을 골렘은 이제부터 히르칸과 평생 함께할 파트너가 될 테니까.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전투를 하겠네.’
탱커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하다.
더군다나 골렘의 탱킹 능력은 일반 유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배운 사람은 없겠지만, 해골학처럼 골렘과 관련된 패시브 스킬들 중에 파이어 골렘, 아이스 골렘과 같은 골렘의 속성을 바꾸는 스킬들이 있다. 이 스킬을 이용하면 골렘이 상대하는 몬스터의 속성으로부터 가장 적은 데미지를 받는 속성으로 얼
마든지 변환이 가능하다. 여러 속성에 대한 저항력 세팅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아이템 슬롯에 찬 아이템을 수시로 바꾸는 탱커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정말 편리한 기능이다.
또한 골렘에는 탱킹 능력 외에도 인상적인 능력이 두 가지 더 있었다.
일단 하나는 이동 모드다. 골렘의 등에 탄 채로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방문했던 성과 성 사이를 이동할 때는 내비게이션 모드가 활성화되어 자동으로 이동한다. 현재 워로드에는 유저들 사이에 이렇다 할 탈것이 없다. 그 점을 고려하면 다른 직업을 가진 유저들
의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능이다.
두 번째 모드는 카피 모드다. 카피 모드란 쉽게 말해서 주인의 행동을 골렘이 따라 하는 거다.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히르칸이 가장 기대하는 모드이기도 했다.
오래전 히르칸이 우연히 봤던 휴 잭맨 주연의 영화, 리얼 스틸. 덩치 큰 로봇 간의 복싱이 유행하는 세계관을 가진 그 영화는 히르칸에게 나름 큰 인상을 남겼다. 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로봇이 따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며 그런 날이 언젠가 오리란 꿈을 꿨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로봇 복싱보다는 가상현실이라는 더 놀라운 시대를 먼저 맞이하게 됐지만.
“카피 모드.”
히르칸의 명령어와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서 있던 골렘이 히르칸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히르칸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자, 골렘 역시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고, 히르칸이 두 팔을 들자, 골렘도 두 팔을 들었다. 히르칸이 주먹을 쥐자, 골렘도 주먹을 쥐
었다.
그리고.
쉬익!
히르칸이 잽을 날리자.
후웅!
골렘도 잽을 날렸다.
여기서 기대감 어린 히르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히르칸이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잽, 잽, 스트레이트!
골렘이 곧장 히르칸의 행동을 따라 했지만, 박자는 분명 달랐다. 달리 말하면 골렘의 행동은 굼떴다.
‘생각 이상으로 느리고, 딱딱해.’
영화 속에 나오는 로봇처럼 펀치를 연사하고, 상체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잽싸게 피하는 것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골렘의 움직임은 기대했던 것 이하였다.
‘욕심이 과한 내 잘못이지.’
히르칸이 양팔을 내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골렘도 양팔을 내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히르칸이 실소를 머금었다.
사실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카피 모드는 공격을 하라고 만든 모드가 아니다. 카피 모드의 진가는 적을 제압하는데 있다. 적을 껴안거나, 몸을 부딪쳐서 넘어뜨리는 것, 그 정도만 해도 골렘은 자신의 몫을 다한 셈이다.
“카피 모드 종료.”
히르칸의 명령어에 골렘이 다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히르칸이 그런 골렘의 몸뚱이를 밟고, 어깨 위에 앉았다. 이제는 승차감을 확인할 때다.
“이동 모드. 목적지는 방츠 성.”
히르칸의 명령에 골렘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정확히 3분 후.
“젠장.”
히르칸이 골렘을 회수하며 짜증 섞인 분노를 토해냈다.
“이게 무슨 골렘이야? 거북이지!”
6.
가상현실 덕분에 이제 세상은 언제든 시간과 여유만 있으면 가상공간에서 채팅하듯 만날 수 있게 됐다. 지금 모인 다섯 역시 그런 가상현실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모일 수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원탁을 둘러쌓듯 앉은 다섯 명. 한 명은 노인이었고, 한 명은 젊은 여인이었으며, 한 명은 평범한 청년이었고, 한 명은 중년의 사내였으며, 한 명은 앳돼 보이는 작은 체격의 여인이었다.
가지각색.
공통점이라고는 어느 한 곳 찾아볼 수 없는 그들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공통점이 있었다.
워로드를 즐기는 유저라는 것과 길드, 그것도 30대 길드에 속한 인원이라는 것, 모두가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진정한 의미의 랭커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길드의 주인이라는 것.
“용케 다섯 명이나 모였네.”
30대 길드에 속한 다섯 길드의 길드 마스터들. 그들이 지금 한자리에 모였다.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30대 길드는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다. 보다 많은 시청자를 빼앗기 위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으니까.
물론 때때로 두세 개의 길드가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처럼 길드 마스터가 다섯 명이나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극히 보기 드문 경우였다.
무엇보다 위험한 경우이기도 했다. 다른 길드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다섯 길드를 의심하고,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모임을 가질 테고, 그러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바쁜 시간 내서 모인 만큼 괜한 인사 같은 건 하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 사실을 여기 모인 다섯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말장난 따위로 분위기를 망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단도직입.
“이미 알고 있겠지만, 히드라 길드가 타락 백작의 정체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곧바로 이 모임이 구성된 이유가 등장했다.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 길드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디데이는 3월 10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워로드 서비스 1주념을 앞두고 퍼뜨리겠다는 거죠.”
타락 백작.
현재 워로드 최고의 이슈다.
동시에 타락 백작 퀘스트는 기승전결에서 결 부분에 다다르고 있다. 30대 길드 대부분은 타락 백작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와 관련해서 80퍼센트 수준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히드라 길드의 경우에는 진척도가 다른 길드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냥 빠른 정도가 아니다. 히드라 길드는 이미 타락 백작의 정체를 파악했고, 타락 백작을 잡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아직 타락 백작의 정체를 모르는 다른 길드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3월 10일에 히드라 길드가 타락 백작을 잡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타락 백작을 히드라 길드가 잡을 경우, 그들이 얻는 이익이 너무 크니까.
일단 타락 백작 관련한 크로니클 유니크 아이템을 어마어마하게 얻을 수 있다. 히드라 길드에서 1군으로 활약하는 실력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을 타락 백작 관련 크로니클 유니크로 무장시킬 수 있다. 크로니클 유니크의 가치를 생각하면 히드라 길드는 그 어떤
길드보다 강력한 에이스 카드를 쥐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필시 아주 대단한 타이틀도 획득할 수 있을 터.
가장 큰 문제는 세간의 평가다.
“히드라 길드가 타락 백작을 잡으면, 장담컨대 이번 2분기 시청률은 히드라 길드가 독식하다시피 할 겁니다.”
방송에서 유행은 절대적이다. 히드라 길드가 타락 백작을 잡으면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히드라 길드의 방송을 주력 방송 채널로 삼을 테고, 히드라 길드는 그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테고, 그건 곧바로 히드라 길드의 전력 강화로 이어진다.
히드라 길드 기준에서는 선순환이 되는 거고, 히드라 길드를 경쟁자로 두고 있는 나머지 길드 입장에서는 악순환이 되는 셈이다.
그냥 단순히 게임을 하는 거라면, 그 정도 악순환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워로드 그리고 30대 길드는 단순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다. 이미 사업을 하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일자리가 걸려 있고, 수천만 명이 넘는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다. 악순환을 감수한다, 같은 선택지는 없다.
답은 하나.
“그런 만큼 여기 다섯 길드는 히드라 길드를 막기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악순환을 막는 것!
그걸 위해서 다섯 길드가 손을 잡았다. 그들은 히드라 길드의 타락 백작 사냥을 막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일단 평화 협정을 맺읍시다. 여기 모인 길드는 지금부터 3월 31일까지 그 어떤 물리적 충돌도 하지 않습니다. 반대하시는 분?”
손을 드는 자는 없었다.
“평화 협정 다음은 정보 공유입니다. 타락 백작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유합시다. 어차피 타락 백작이 잡히는 순간 우리가 가진 타락 백작 관련 정보는 쓰레기가 됩니다. 당장은 아깝더라도 휴짓조각이 되기 전에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는 게 좋을 겁니다. 반대
하시는 분?”
이번에도 손을 드는 자가 없었다.
“협의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보다 자세한 협의 내용 관련 문서는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7.
채설연은 V기어 헬멧을 벗으며 자신의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상념에 잠겼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타락 백작.
채설연은 그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이를 꽉 물었다. 그것만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그녀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 진짜 짜증 나!’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 그리고 자신이 만든 길드가 모든 길드를 제치고 타락 백작 퀘스트를 완료하리란 자신!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히드라 길드의 독주를 막기 위해 다른 길드와 손을 잡는 굴욕까지 맛보게 됐다.
‘쳇.’
이 순간 그녀는 왜 자신이 이런 굴욕을 맛보게 됐는지, 그 이유를 한 번 되새김질해봤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그녀 그리고 그녀가 주인으로 있는 우레사냥꾼 길드 수준이 히드라 길드보다 떨어졌다는 것, 그뿐이다. 유저의 수준, 길드의 수준이 전부 히드라 길드에 뒤처졌기에 생긴 결과물이다.
달리 말하면.
‘아직 부족해.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확실한 실력자를 포섭해서 내 옆에 둬야 해.’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타락 백작 다음의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서도 히드라 길드를 비롯한 다른 길드에 밀릴 것이다. 채설연과 우레사냥꾼 길드는 들러리가 될 것이다.
채설연은 그 사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확실한 실력자. 보석보다 더 가치 있는 재능과 실력을 가진 자.’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한 유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 15화. 미기를 찾아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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