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황금 해골 (4). >
10.
히르칸의 노림수는 황금 해골 사냥팀이 황금 해골 사냥에 미련을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황금 해골 사냥에 미련을 가진다면, 히르칸이 등장하는 순간 한 명이 혼자서 황금 해골을 상대하는 사이 남은 네 명이 히르칸을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 움직일 테니까.
그 한 명, 황금 해골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 남은 그 한 명이 히르칸의 표적이었다.
동쪽에 해골 전사 두 마리와 해골 마법사 한 마리를 방어 모드로 배치했고, 히르칸 본인은 해골 전사 한 마리와 함께 서쪽에서 소란을 피울 준비를 했다. 그야말로 성동격서…… 아니, 성서격동의 묘리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두 번 튕기는 순간 전투가 시작됐다.
히르칸이 먼저 등장하며 네 명의 시선을 끄는 사이, 두 마리의 해골 전사와 해골 마법사는 황금 해골과 그를 상대하고 있는 검사 유저를 향해 달려들었다.
효시는 해골 마법사가 던진 파이어붐이었다. 파이어봄이 황금 해골과 검사 유저 사이에서 폭발했고, 해골 전사 두 마리가 잽싸게 달려와 검사 유저의 투구와 옆구리를 해머로 두드렸다.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이었지만, 결정타는 여전히 검사 유저에게 모든 어그로가 집중된 황금 해골이 날렸다. 4미터의 거대한 신장과 긴 팔 그리고 긴 칼을 쥐고 있는 황금 해골이 제 칼을 채찍처럼 내리쳤다.
콰직!
검사 유저의 왼쪽 어깨, 두툼한 철갑을 두른 그 어깨를 황금 해골의 칼이 종잇장 부수듯 찢었다. 갑옷이 찌그러지고, 어깨가 잘려나갈 정도로 위력적인 한 방이었다.
“젠장!”
검사 유저는 일순간 어깨에서 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워로드에서 그 정도의 통증은 심각한 부상을 의미했다.
“도와줘!”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보스 몬스터인 황금 해골이 이렇게 잡은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쉴 새 없이 칼을 휘두르며 공격을 거듭했다. 심지어 왼팔을 당한 탓에 방패를 들지 못하게 된 검사 유저는 황금 해골의 거듭된 다섯 번의 공격을 전부 상체 갑옷과 투구
로 받아내야 했다. 좋게 표현해서 받아낸 것이고, 그냥 맞은 것이다.
여기에.
콰앙, 콰앙!
마치 약을 올리듯, 해골 전사들이 검사 유저의 몸뚱이를 해머로 두드리며 검사 유저가 자세를 잡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한 번 난타를 당하기 시작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긴박한 상황.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동료를 도와주기에는 남은 네 명의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완전 꼬였어!”
“실드 해제할까?”
현재 사제가 전개한 30레벨 방어 마법, 실드 안에는 사제 두 명과 마법사 한 명, 총 3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실드를.
쾅, 쾅, 쾅!
매드니스 헬름 효과를 받고 있는 해골 전사 한 마리가 해머를 이용해 악기를 연주하듯 박자를 맞추며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실드 마법을 해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드 마법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마법과 스킬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마법사는 새로운 마법을 캐스팅하는 도중이다. 여기서 실드를 해제하면…… 셋 중 한 명은 필시 해골 전사에게 걸려서 몹쓸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
실드 속 셋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먼저 다음 행동으로 넘어간 건 히르칸이었다.
‘개판 됐고.’
히르칸이 의도했던 건 여기까지다. 애초에 어느 정도 게임에서 짬밥을 먹은 넷을 상대로 히르칸이 정면승부로 이길 가능성은 없다. 지금만 해도 히르칸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마법사가 던진 마법은 훌륭했다. 적의 후방으로 마법을 던져 폭발시키는 건, 방법 자
체는 간단하지만 의외로 익숙해지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잽싸게 자세를 낮추고, 이미 발동시킨 본 아머 덕분에 피해를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피해는 컸다. 가뜩이나 없는 HP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여기에 마력 상태는 더 심각했다.
해골 전사 세 마리와 해골 마법사 한 마리를 소환했고, 한 마리에게는 매드니스 헬름과 본 아머를 걸어줬고, 본인에게 본 아머를 걸었고, 해골 마법사가 마법도 썼다.
솔직히 더 이상 뭔가 시도를 해볼 만한 마력은 없다.
히르칸이 정면을 바라봤다.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검사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무슨 행동을 하기보다는 히르칸을 경계하고만 있었다.
히르칸은 그런 그에게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뒤.
‘튀자.’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11.
히르칸이 도망치는 순간, 열심히 싸우던 모든 해골들이 부리나케 히르칸의 꽁무니를 쫓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네 유저는 그저 말없이,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너무 기가 막혀서, 탄식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도와달라고!”
황금 해골과 맞짱을 뜨고 있던 검사 유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제야 네 명이 움직였다.
“실드 해제!”
금이 잔뜩 간 실드가 사라지자마자, 곧바로 마법사가 황금 해골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자리에서 멈췄다.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불덩이를 황금 해골을 향해 던졌다. 날아간 불덩이는 큼지막한 불화살이 되어 황금 해골의 두개골을 관통했다.
황금 해골이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바라봤다. 머리에 꽂힌 불화살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섬뜩했다.
그 사이 히르칸과 대치했던 검사 유저가 황금 해골을 향해 달려갔다. 사제 둘도 움직였다.
사제들이 각각 검사 한 명에게 붙었다.
“일단 캉부터 살려! 내가 시간을 끌게!”
도주를 하든, 전투를 계속하든 일단 숨을 제대로 돌릴 수 있을 만한 상황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황금 해골은 쫓는 것도 힘들지만, 도망칠 때 뿌리치기도 힘든 놈이다. 도주를 계획하더라도 제대로 도주할 준비가 필요한 놈이었다.
전열 수습을 위해 걸린 시간이 5분이었다.
사제들은 마력이 바닥이 날 때까지 힐 마법을 썼고, 마법사와 검사는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쉴 새 없이 스킬과 마법을 난사했다. 다행인 건, 사망자는 없다는 점이었다.
“죽다 살았네. 그거 알아? HP가 한 자릿수가 될 뻔했어.”
사제들의 힐 덕분에 게임오버를 간신히 피한 유저가 한숨을 돌렸고, 그 한숨에 나머지들도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이제 어떻게 해? 싸워? 아니면 그냥 튀어?”
“아까 그 이상한 새끼는 어떻게 하지? 또 올 거 같은데?”
그런 그들이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순간. 그러면서 계속 전투를 치르는 순간.
“사과를 요구합니다.”
히르칸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히르칸은 혼자 본 아머를 두른 채 등장했다. 그 꼴도 굉장히 괴상망측했다. 스냅백 모자에 본 아머, 여기에 하회탈 조합은 어딜 보더라도 이상한 조합이었으니까.
성(城) 같은 곳에서 그 모습을 봤다면 웃음이 나왔을 터.
하지만 전장에서의 그 모습은 괴기, 그 자체였다.
‘어디서 저런 또라이 새끼가?’
히르칸을 보는 다섯 명은 분노보다는 소름이 끼쳤다.
필드 사냥터에서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방해받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순번 없이, 레이드 선언 없이 무작정 주변 유저들을 PK로 제거하고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나서면 탈이 날 경우가 많다.
하지만 히르칸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는 짓이 끔찍하다. 아마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을 것이다. 이게 라이브 방송이었다면, 실시간 채팅 창은 웃음으로 도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욕만 나오는 상황.
심지어 히르칸은 강하다. 그가 부리는 해골 전사는 스켈레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스켈레톤 워리어 급이었다. 여기에 해골 마법사의 존재까지!
그러니까.
“야이 개새끼야! 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응?”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야!”
“아…….”
“너 미쳤어?”
“미, 미안.”
사제 한 명이 감정 섞인 말을 뱉었고, 곧바로 옆에 있던 마법사가 사제 입을 제 말로 막았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
워로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다. 길드 단위, 파티 단위로 움직이는 세상인 만큼 문제 생기면 뒷배경을 내세울 수밖에 없으니까.
또한 그들이 속한 블루캣 길드는 대형 길드에 비할 바는 못하지만, 그래도 백 명 넘는 길드원을 보유한 길드였다. 어중이떠중이 길드가 넘치는 워로드에서는 어디 가서 뒷배경으로 써먹을 만하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
애초에 여기 모인 다섯 명, 죽은 두 명을 포함한 일곱 명은 황금 해골을 서로끼리만 나눠 먹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지금 그들이 하는 짓은 길드에서 강제로 축출당하고, 길드에 응징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짓이었다.
그런데 그런 길드를 드러낸다?
미친 짓.
다행히 길드 네임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길드 소속이시군요. 그럼 그쪽 길드를 밝혀주십시오.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하겠습니다.”
히르칸이 이 틈을, 간극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히르칸이 제 말로 다섯 명의 등골을 재차 오싹하게 만들었다.
‘들키면 끝장이야.’
히르칸이 혹여 자신들이 속한 길드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터.
이 무렵 이미 이성은 마비된다.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 리 없다. 그게 가능하면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이지도 않았다.
“저 새끼 그냥 죽이자.”
“그래, 다 포기하고 저 새끼 잡자.”
보통 때라면 만사 다 제쳐놓고 히르칸을 작살내기 위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침착해. 일단 황금 해골 HP가 30퍼센트 근처로 떨어졌어.”
눈앞의 황금이 그들의 판단을 재차 흐트러지게 만들었다.
동료를 구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황금 해골과 계속 전투를 했다. 마법사가 마법을 계속 날렸고, 검사가 계속 데미지를 줬다. 그 과정에서 깎인 황금 해골의 HP는 적지 않았다.
대략 1/3 정도 남았다.
거의 다 온 셈이다.
더군다나 황금 해골은 다른 보스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놈이었다.
‘황금의 뼈…….’
‘보석 재료라도 나오면 대박인데.’
잡으면 최소 5백만 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으로 가서 몬스터 잡아서 돈 5백만 원 벌 수 있다고 하면 모두가 미친 새끼 취급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기본 5백만 원이고, 낮은 확률이지만 보석 재료가 나온다면 더 벌 수 있다. 천만 원 이상도 벌 수
있다. 그 돈을 일곱이 나누면 두 당 백만이다.
그런데 그런 놈을 거의 다 잡고 그냥 포기하자고?
“저 새끼가 덤비면 아까처럼 해. 한 명이 어그로 끌고, 나머지가 저놈을 견제하면 돼. 어차피 저 녀석도 혼자야.”
어림도 없는 소리다.
더군다나 히르칸이 유니크 아이템으로 도배를 한 게 아니라면, 그의 마력은 분명 한계가 있다. 네크로맨서가 유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결국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과 같은 공세는 없다.
견적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지랄하지 말고, 싸우고 싶으면 덤벼!”
사제 한 명이 모두를 대표해 히르칸에게 시비를 걸었다. 히르칸이 그 외침에 등을 돌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히르칸이 사라지자, 다섯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혼자서는 못하겠지?’
‘제발 그냥 가라.’
그들은 이대로 히르칸이 포기하고 물러나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소원은 통하지 않았다. 정말 딱 3분, 정확히 3분이 지난 후 히르칸이 등장했다. 이번에도 해골을 이끌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 해골은 히르칸이 부리는 부하가 아니었다.
“이제 사과 요구는 없습니다.”
히르칸이 급하게 주변에서 공수한 스켈레톤 3마리와 스켈레톤 워리어 1마리가 전장에 참가했다.
진짜 개판이 시작됐다.
12.
황금 해골과의 전투에 스켈레톤 3마리와 스켈레톤 워리어 1마리 그리고 또라이 한 마리가 더해지는 순간, 전투는 난전이 됐다. 이 난전 속에서 가장 먼저 당한 건 사제였다.
스켈레톤 워리어가 사제 한 명을 가차 없이 난도질했다. 난도질 당하던 사제는 소리쳤다.
“씨팔!”
그가 오늘 느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단어였다.
사제가 죽는 순간 이미 전세는 흔들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사 두 명과 마법사 한 명을 사제 혼자서 서포트하는 건 힘들었다. 결국 사제 한 명이 마법사와 함께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였다. 이렇게 되면 마법사의 지원은
가능해지지만, 사제가 검사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건 힘들었다.
검사들의 처지도 마땅치 않았다. 사제의 버프는 이미 끝났고, 검사 중 한 명은 황금 해골 때문에 방어구가 심각한 수준으로 파손된 상황이었다. 탱커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반쪽짜리 검사가 이 난전 속에서 사제의 지원 없이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하나씩 붕괴하는 시나리오.
결국 검사 한 명이 스켈레톤 워리어와 싸우다가 당하는 순간, 세 명은 더 이상 계산을 하지 않았다.
끝이니까.
히르칸이란 적도 여전히 전장에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흩어져!”
“빌어먹을…….”
사제, 마법사, 검사.
세 명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남은 스켈레톤 1마리와 스켈레톤 워리어 1마리 그리고 황금 해골이 도망치는 유저들을 바라봤다. 스켈레톤은 마법사를 쫓았고, 스켈레톤 워리어는 사제를 쫓았다.
그와 동시에.
콰앙!
히르칸의 해머가 황금 해골과 대치하고 있던 검사의 투구를 아주 세차게 흔들었다.
“이 새끼가!”
당하는 입장에서 욕이 절로 나오는 순간.
그러나 히르칸은 그 욕지거리에 대답하기보다는 다음 행동으로 넘어갔다. 상대의 머리를 해머로 쳐서 균형을 잃게 만든 후에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 후에 뒤로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 해골이 쓰러진 검사의 몸뚱이 위로 거대한 칼을 벼락처럼 내리찍었다.
콰직!
거대한 칼이 검사의 몸뚱이를 단숨에 반으로 토막 냈다.
확실한 게임 오버.
자연스럽게 검사 유저를 향했던 어그로가 곧바로 히르칸을 향했다.
“와우.”
히르칸이 자신을 바라보는 황금 해골의 눈빛을 바라보며 입가에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는데.’
말과 함께 히르칸이 손가락 두 번을 튕긴 후에 황금 해골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13.
스컬 클라운으로 나름 소소한 유명세를 얻게 된 하회탈 히르칸의 새로운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스컬 클라운 영상으로 이미 몸이 달아오른 구독자들은 부리나케 히르칸의 유튜브 페이지에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제목은 어벤져.
- 이번에도 전투 영상인가?
- 또 해골 상대로 싸우는 영상 같은데? 그럼 좀 질리는데.
그 첫 제목은 누가 보더라도 긴박하고, 처절한 전투 영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상 내용은 시청자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영상의 첫 장면은 유튜브에 달린 댓글로부터 시작됐다. 복수를 요구하는 그 댓글을 보여준 후, 하회탈 히르칸이 육성으로 말했다.
“제가 착한 놈은 아니지만, 저를 응원해주시는 제 팬을 위해 최선을 다해 비매너 유저들을 응징토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영상.
- 이 새끼 골 때리네. 저번 스컬 클라운 영상 보고 전투만 잘하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미친놈이었네.
- 사과를 요구한대 ㅋㅋㅋㅋㅋ
- 세 번째에 몬스터 끌고 왔어! 이야, 이거 기똥차네. 나도 어디서 한 번 써볼까?
그건 코미디였다.
비매너 파티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본인을 미끼 삼은 뒤에 다른 한 명을 노리고, 그 후 다시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게 안 먹히자, 몬스터를 끌고 오는 모습.
- 난 이런 또라이가 좋더라. 솔직히 그냥 싸우기만 하는 영상보다는 이게 웃기네.
- 10분짜리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음!
- 얘가 이런 놈이었구나. 더 마음에 드는데?
- 진짜 간만에 제대로 볼 만 한 놈이 등장했네.
영상 속 히르칸은 귀기(鬼氣) 넘치는 전투의 귀재가 아니라, 장난기 넘치는 광대였다.
- 그런데 좀 심하지 않나?
- 보는데 좀 그렇긴 하네. 너무 야비하지 않나?
- 솔직히 실망함.
어떻게 보면 히르칸의 장난은 누군가에게는 과하고, 부담스러울 정도.
- 나도 저기서 사냥하다가 저놈들한테 PK 당했어요. 이거 보니까 속이 시원하네요.
- 댓글 달았던 사람입니다. 복수 감사합니다.
- 어차피 비매너 저지른 새끼들 상대하는 건데 뭐가 문제? 버그나 핵을 쓴 것도 아닌데?
- 비매너 저지르는 놈들은 저렇게 당해도 싸.
하지만 비매너 행위에 대한 복수, 정의 집행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 아니, 일곱 명을 혼자 상대했는데, 이게 비열한 짓이면, 뭘 어떻게 해야 비열하지 않은 거임?
결정적으로 히르칸은 일곱을 상대로 혼자 복수를 행했다. 다수의 힘으로 응징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혼자서 다수를 응징하는 영상은 보기 힘든 법.
오히려 작은 논쟁이 조회수 증가에 불을 붙였고, 어벤져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2만을 기록했다. 스컬 클라운 때보다 조회수가 오르는 페이스가 더 빨랐다. 후원금 역시 스컬 클라운 때와 비슷하게 들어왔다.
당연히 안재현이 현실에서 춤을 춰도 이상할 게 없는 성공!
그러나 안재현은 평소와 다르게 기쁨의 어깨춤을 추는 대신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계산기처럼 두드리고 있었다.
‘후원금에 시계 팔아 번 돈에, 황금 해골 잡고 나온 돈에 그동안 내가 모은 돈까지 합치면…….’
계산을 마친 안재현은 안경을 벗으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간신히 사채는 털어낼 수 있겠군.’
안재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족쇄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14화. 황금 해골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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