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황금 해골 (3). >
7.
PK를 잘하는 검사 클래스의 유저들은 근력과 체력이 어느 정도 비율을 맞추고 있다. 체력만 높거나, 근력만 높은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벨업을 통해 얻는 능력치를 균형 있게 투자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오로지 PK만 해야 하는 직
업이 된다.
때문에 보통은 근력이나 체력 중 하나에 능력치를 대거 투자하고, 아이템 세팅을 통해 다른 능력치를 채운다.
조인은 레벨업 보너스로는 체력을 찍고, 아이템 세팅을 통해 근력 스탯을 확보한 타입이었다.
그런 조인의 근력 수치는 149.
거기서 이미 승부는 났다.
콰앙!
히르칸의 해머가 조인의 투구를 종을 치듯 두드렸다. 조인은 비틀거렸고, 비틀거리는 그의 몸뚱이를 그의 뒤에 있던 해골 전사가 재차 해머로 두드렸다. 조인의 몸이 붕 떴고, 쾅! 땅바닥에 추락했다.
'젠장.'
조인이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그의 몸은 무척 무거웠다.
'저주까지 배웠어.'
마귀 저주 그리고 나태 저주.
두 가지 저주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마치 손발에 철구 달린 수갑과 족쇄를 찬 기분이었다.
'대체 뭐하는 놈이야?'
더불어 그를 도와줄 마법사, 인트는 이미 해골 전사들의 거듭된 합격에 죽은 지 오래였다. 마법사의 마력이 위력적이지만, 단발성이다. 한 번의 마법이 해골 전사에게 강력한 데미지를 줬지만, 다른 해골 전사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인트의 몸을 해머로 후려쳤다.
그것 한 방으로 게임은 사실상 종료였다. 넘어진 마법사를 가차 없이 두들기는 해머 공격에 버티기엔 마법사의 체력은 높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조인은 낙담하기보다는 다시 한 번 상대의 전력을 가늠했다.
‘해골 네 마리를 부리는 네크로맨서에, 근력도 올렸고, 저주 법사까지.’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동료들은 이미 이 순간 황금 해골과 전투를 시작했으니까.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최대한 정보를 모아 동료에게 전달해주는 것이었다.
조인이 검을 들었다.
히르칸이 그런 조인을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거리가 지척이 되기 전, 조인이 히르칸을 베기 위해 수평으로 검을 휘두르고자 했다.
그 전에.
“부스터!”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휘두르는 조인의 검은 정말 빨랐다. 검의 칼등에 부스터를 달아놓은 것처럼 움직였다.
후웅!
그러나 조인의 검은 허공만 갈랐다. 자세를 낮춘 히르칸이 가뿐하게 검을 피해낸 후에, 곧바로 해머를 휘둘렀다. 밖에서 안쪽으로, 조인의 왼쪽 무릎 바깥쪽을 후려쳤다.
콰직!
조인의 무릎이 묘한 소리를 냈고, 조인의 몸뚱이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한 후에 바닥에 착지했다.
바닥에 착지한 그가 갑작스러운 시야의 회전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이.
쾅!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 위로 해머가 떨어졌다.
쾅쾅!
쉴 새 없이 떨어졌다.
8.
- 당했어.
조인트 콤비의 보고를 받는 순간, 황금 해골 사냥팀은 이미 황금 해골과 사냥 중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두 명의 사제는 모든 버프를 돌린 상황이었고, 마법사 한 명도 자신의 가장 강력한 마법 캐스팅을 마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황금 해골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건…… 이제까지 바친 시간 때문에라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검사 두 명이 앞장섰고, 마법사가 후방 지원을 했다. 그 사이 사제 한 명이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이용해 게임오버 된 조인트 콤비와 대화를 나누었다.
- 실력이 상당해. 네크로맨서인데, 소환물은 물론 네크로맨서도 전투력이 상당해. 아무래도 함정을 판 거 같아.
“함정?”
- 그게 아니고서는 그만한 실력자가 우리들 주변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잖아? 심지어 그녀석하고 싸우던 해골은 스켈레톤이 아니라 놈이 소환한 소환물이었어.
“끄응.”
함정.
그 말에 사제는 당황하기보다는 올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어코 문제가 터지는군.’
죽은 자의 숲은 30레벨 이상의 유저들이 이용하는 사냥터다. 지금 시점에서 30레벨 이상 찍은 유저는 워로드에 나름 돈 좀 꽤 쓴 양반들이다. 이유도 없이 PK를 당하고 가만히 있을 양반들이 아니다. 기회가 되면 보복을 하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PK짓이 먹히는
것도 10레벨에서 20레벨대 뿐이지, 그 이상이 되면 리스크가 크다. 아주 작심하고 PK를 낙으로 삼는 부류가 아니면, PK보다는 그냥 1대1 대결, PVP를 선호한다.
그걸 황금 해골 사냥팀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단시간 내에 결과를 내는 게 중요했다. 어쨌거나 결과를 내고, 자리를 뜨면 그 이후 보복을 당할 가능성은 낮으니까. 얼굴은 영상 촬영이 되지 않고, 입고 있는 방어구는 바꿔 입으면 된다. 애초에 주민등록증 같은
게 있는 세계도 아니고 CCTV나, 지문인식이 있는 세계도 아니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그들에게 당한 자들 중에서 뒷배경이 대단한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복수를 대행해줄 실력자를 찾아올 줄이야?
“정말 한 명뿐이었어?”
- 한 명이었어. 다른 동료는 없었어.
“한 명.”
하지만 반대로 급하게 처리한 탓에 한 명 밖에 구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한 명이란 사실이 사제를 고민케 했다.
‘한 명 정도면, 여차할 경우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어.’
여러 명이 왔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피했겠지만, 한 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조인의 생각은 달랐다.
- 상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일단 놈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 황금 해골을 잡는 게…….
조인의 그 말에 사제는 반대했다.
“오늘도 황금 해골을 놓치면 내일 다시 시도해야 해. 그럼 분명 우리를 잡으려고 더 올 거야.”
잡으려면 지금이 기회다. 시간은 끌 만큼 끌었다. 지금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애초에 계획에도 없었다.
- 그야…….
조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특징만 말해줘.”
- 좋아.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내뱉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게임오버가 됐고, 이제는 동료들이 성과를 올려주길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더불어 모두가 이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 잡으려면 지금 당장 잡자고.”
“한 놈이라며? 놈이 오더라도 그때 내가 어그로 끌고, 나머지가 전부 달려들면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냥 빨리 끝내자고. 대신 정신 차리고!”
어차피 오늘 못 잡으면 내일은 그냥 이곳, 죽은 자의 숲을 떠나는 게 낫다.
그렇게 시작된 황금 해골과의 전투는 두 명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난하게 진행됐다.
극도의 긴장감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이어졌고, 황금 해골과 거듭된 전투 덕분에 전투에 익숙해졌고, 다섯의 호흡이 나름 여러 전투를 거치며 잘 맞아들어간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염려한 것과 다르게 놈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평소라면 소란을 느끼고 왔어야 할 스켈레톤과 스켈레톤 워리어도 얼마 없었다. 황금 해골 사냥팀은 오로지 황금 해골만을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덕분에.
“추격 준비!”
“2페이즈다!”
그들은 예상한 것보다 더 일찍 황금 해골의 HP를 절반 이하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HP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황금 해골은 모든 전투를 뒤로하고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
“이번에는 놓치면 안 돼.”
이게 녀석을 잡기 힘든 이유였다. 도망가는 황금 해골을 시야에서 놓칠 경우, 녀석은 도주에 성공한 게 되며, 다시 내일 등장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기다려야 했다.
앞선 두 번째는 여기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세 번째는 실패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앞선 두 번의 실패로 얻은 교훈을 밑거름 삼아 무작정 쫓지 않았다. 포메이션을 구축하고, 움직였다.
검사들은 물론 마법사도 움직였고, 사제 둘도 추격전에 포함됐다.
다섯이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이군. 의외로 잘 잡네?’
이제까지 숨죽인 채 상황만 지켜보던 히르칸도 움직였다.
9.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황금 해골과의 추격전에 성공했을 때, 황금 해골 사냥팀은 우오오! 기세 좋은 소리를 내뱉었다.
추격전에 성공한 덕분에 황금 해골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전투 결과를 봤을 때, HP가 절반 남은 녀석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툭 등장한 이상한 옷차림에 이상한 가면을 쓴 유저의 이상한 헛소리는 황금 해골 사냥팀의 어이를 삭제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뭐?”
사실 이미 보고는 받았다.
조인트 콤비는 히르칸의 특징에 대해 전부 설명해줬고, 히르칸이 가진 특징은 결코 누군가와 헷갈릴 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하물며 그게 아니더라도 변수가 등장하면,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곧장 움직이겠다고 앞서서 각오와 계획을 세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얼빠진 반응을 보인 건, 히르칸의 그 말 한 마디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동시에 그들이 황금 해골과의 전투에 빠져들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두 가지 요소 때문이었다.
히르칸은 그렇게 얼빠진 그들을, 특히 후방에서 전투 지원만 하는 사제 둘을 향해 재차 말했다.
“무고한 유저분들에게 PK를 저지르는 비매너 행위, 그에 따른 충분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계속 말했다.
“특별히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과뿐입니다.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당신들이 가져간 유저 시계를 돌려주는 것. 그것만을 원합니다.”
히르칸의 정중하고도 담담한 그 말은 확실히 정당했다. 비매너 짓을 했으니, 사과를 하고 그를 통해 얻은 부당한 이익을 돌려줘라! 이보다 공명정대한 말은 없을 터.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저 새끼 뭐지?’
‘지금 우릴 놀리는 건가?’
그냥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너무 헛소리라서 잠시 얼빠진 표정이 지어질 정도의 헛소리.
히르칸이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곧바로 행동에 앞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너 혼자서 몇 분 정도 버틸 수 있어?”
“2,3분 정도는 문제없어.”
“잘 부탁한다.”
“3분 안에 저 새끼나 처리하고 와. 미친 새끼인 거 같으니까.”
일단 전투를 위해선 검사가 앞장을 서줘야 한다. 녀석은 혼자이지만, 해골 부하를 부리는 네크로맨서이니까. 마법사와 사제만으로 전투를 치를 수는 없다.
때문에 황금 해골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던 검사 중 한 명이 위치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이 황금 해골의 모든 어그로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공격에 나섰다.
검사가 검을 높게 들었고, 황금 해골을 향해 돌진했다.
“크래쉬!”
돌진하던 검사가 짧은 외침을 내뱉는 순간, 검사가 든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빛나는 검.
황금 해골은 그 검을 향해 자신의 칼을 휘둘렀다. 두 자루의 검이 부딪쳤다.
콰앙!
청아한 쇳소리 대신 강력하기 그지없는 폭발음이 터졌다.
그 폭발음 사이로 황금 해골의 눈빛이 검사를 향했다.
“끌었어!”
어그로를 전부 자신에게 집중하는데 성공시킨 검사가 소리쳤고, 그 사이 히르칸과 대치하고 있던 두 사제가 잽싸게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제를 노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
그러는 사이 뒤로 빠졌던 검사가 사제와 히르칸 사이를 가로 막고 등장했다.
여전히 가속 마법이 걸린 덕분에 잽싸게 등장한 그는 히르칸을 향해 곧장 공격을 시도했다. 검을 쉴 새 없이 휘둘렀다. 수평으로 휘두르고, 수직으로 내리꽂고, 사선으로 베어내고…….
후웅, 후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히르칸의 귓가에 맴돌았다.
“오케이, 시간만 끌어. 뜨거운 거 한 방 날릴 테니까.”
마법사 역시 히르칸을 잡기 위한 마법 캐스팅에 들어갔다. 강력한 마법이 아니라, 빠르게 쓸 수 있는 마법을 준비했다. 여차하면 동료가 당하는 걸 감수하고라도 마법을 쓸 것이다. 어차피 상대는 혼자고, 황금 해골 사냥팀에게는 사제가 두 명이나 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히르칸은 마지막 경고를 했다.
“사과만 받으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정당방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경고에 대답은 없었다. 어차피 피 튀기며 싸울 사이에 잡담을 할 이유는 없을 터.
동시에.
‘이 새끼 뭐 이렇게 잘 피해?’
검사는 거듭된 자신의 공세 속에서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고,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는 히르칸을 보며 놀란 상황이었다. 잡담을 할 이유가 있었어도, 여유는 없는 상황.
“마법 준비 끝.”
그때 마법사의 보고를 받은 검사가 타이밍을 잡았다.
“부스터!”
공세를 가속하기 위해 공격 가속 마법을 사용했다. 검사의 검놀림이 보다 빨라졌다.
쉬익!
바람을 가르던 묵직한 소리가 날카로운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마법사가 묵직한 화염구를 손에 쥐었다. 거리를 계산하며 화염구를 던질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딸그락딸그락!
뿔 달린 해골 전사 한 마리가 본 아머를 두른 채 황소처럼 마법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제 한 명이 잽싸게 마법사 근처에 도착한 후에 손바닥을 펼친 채 소리쳤다.
“라이트 실드!”
텐트 크기의 보호막이 마법사와 사제를 감싸줬다. 해골 전사가 해머를 휘둘러 쉴드를 내리쳤다.
동시에.
휘익!
마법사는 흔들림 없이 히르칸과 동료 검사를 향해 화염구를 던졌다. 던진 화염구는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히르칸의 등 뒤쪽으로 떨어졌고, 그곳에서.
콰앙!
폭발했다.
화염구는 폭발하며 불꽃 파편들을 사방으로 토해냈다. 그 위력이 굉장했다.
“젠장!”
비명이 터졌다.
“도와줘!”
“뭐?”
“무슨 일이야?”
황금 해골의 어그로를 끌던 검사의 입에서 터진 비명이었다.
< 14화. 황금 해골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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