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황금 해골 (1). >
1.
‘2분 30초.’
안재현은 조금 전 클라이밍 테스트 결과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아직 전성기 수준에는 못 미쳐.’
최근 안재현은 가상현실에서 클라이밍을 기록을 쟀다. V기어를 구매하기 위해 피치 스토어를 방문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잰 기록은 2분 41초로, 피치 스토어에서 쟀을 때보다 시간이 단축되기는커녕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안재현은 그 기록을 받는 순간 당황하거나 놀라기보다는 씁쓸함을 곱씹었다.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안재현이 최전선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던 건 정말 오래전 일이다. 배신당한 이후 한동안 제대로 워로드를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과거로 돌아왔다.
짧지 않은 공백기.
여기에 안재현의 최근 전투 스타일은 안전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이었다. 필요하면 위기를 감수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기를 최대한 피해 가는 스타일이다.
모든 건 절정에 다다라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100미터 육상에서 9초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10초대 기록을 내봐야 하는 법이다.
어쨌거나 그때 이후 안재현은 워로드에서 좀 더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스스로를 내몰았고, 매일 클라이밍 테스트 기록을 측정하며 자신의 변화를 가늠했다. 2분 30초대까지 다시 기록을 복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
았다.
하지만.
‘여기서 10초를 더 줄이라니, 내가 그땐 미치긴 미쳤었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래도 아직 전성기 수준까지는 한참 멀었다. 안재현은 자신이 얼마나 괴물이었는지, 새삼스레 느꼈다.
‘결국 최고는 나란 말이야.’
동시에 아무리 소환물이 강해져도,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건 안재현, 자신이란 사실 역시 자각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최근 동안 잊고 있었다. 해골이 강해지는 것만 신경 썼을 뿐, 안재현 본인의 개인 기량 향상은 잊고 있었다.
‘육체 개조.’
그리고 그 부분을 살리기 위해 염두에 두었던 부분, 계획을 세웠던 부분도 잊고 있었다.
소환, 저주 그리고 육체 개조!
세 가지가 안재현이 추구해야 하는 바다. 이 세 가지가 전부 있어야 안재현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여기서 무엇이든 하나만 빠져도 안재현의 지금 노력은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개조 쪽은 이제까지 손도 못 대고 있었다.
‘돈이 웬수지, 웬수.’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다.
‘여유 자금은 3백만.’
돈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것치고 나름 제법 돈은 모았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3백만 원 정도다. 적은 돈은 절대 아니다. 당장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처분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를 확보할 수 있다. 남들은 안재현만큼 캐릭터를 육성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깨지는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일이다. 심지어 맨땅에 헤딩을 해서 번 돈이다. 자서전을 출판해도 될 정도다.
‘이 돈으로 나태 저주와 피부 재봉은 구할 수 있긴 한데…….’
그리고 이 돈이면 안재현이 원하는 마귀 저주 상위 스킬인 나태 저주와 육체 개조 입문 스킬인 피부 재봉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두 스킬북의 가격!
‘이걸 지금 1천 골드 넘게 주고 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돈으로 똥을 닦는 짓이야.’
나태 저주의 경우에는 즉시 구매가 가능한 가격은 1천 골드였고, 피부 재봉 역시 8백 골드였다. 두 스킬을 구매하려면 현금으로 18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낮은 레벨의 스킬치고 비싸다. 물론 비싼 이유는 있다. 나태 저주는 마귀 저주와 함께 저주 법사가 평생 써먹는 스킬로 효용성이 굉장히 높았다. 흑마법사라면 저주 법사가 아니더라도 마귀 저주와 나태 저주, 두 개의 저주 마법은 꼭 배워야 할 정도였다.
피부 재봉의 경우에는 입문 스킬이기에 비쌌다. 원래 입문 스킬은 모든 직업 구분 없이 비쌌다. 이 이후 스킬들의 스킬북은 그렇게까지 비싸지 않았다.
사실 그걸 고려하더라도 비싼 가격이었다. 최근 워로드 서비스 1주년을 앞두고 광고 및 여러 이벤트 때문에 유저 유입수가 워로드 서비스 시작 때보다 더 늘어난 탓에 하위 레벨 스킬들의 스킬북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결과물이었다.
‘어지간하면 사겠는데…… 워로드는 도무지 어지간한 경우가 없단 말이야.’
안재현은 푸념과 함께 침대 위에 누웠다. 이제는 꿈나라로 날아갈 때다.
‘아, 로매니 필름에서 나온 영상이 백만 조회수짜리 대박을 터뜨려주면 이런 고민도 필요 없는데. 그럼 당장 스킬북 사고, 그 빌어먹을 패션도 좀 바꾸고…….’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작은 소원도 빌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지.’
안재현은 곧장 자신이 빈 소원에 비웃음을 날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원이었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안재현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2.
안재현은 일단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예정된 계획 시간만큼은 채운다. 일정을 한 번 망가뜨리면, 다음 일정이 연달아 망가지기 쉽고, 그러다 탈이 나면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상황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1주일 정도를 날리
면, 앞서 가는 선발주자와의 차이는 다시 벌어진다. 랭커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랭커의 적은 경쟁자나, 워로드 몬스터가 아니라 감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
“뭐여?”
안재현은 아직 할당량을 채운 게 아님에도, 게임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헬멧을 벗은 안재현은 놀란 표정이었다. 집에 불이 나지 않은 이상 꿈쩍도 하지 않을 그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곧바로 태블릿 PC를 통해 자신의 후원금 계좌를 확인한 안재현은 다시 한 번 제 눈을 의심했다.
‘1천 달러? 1천 원이 아니고 1천 달러?’
유튜브 등, 동영상으로 수익을 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유료 영상 판매. 가장 대표적인 수익 루트다.
두 번째는 광고. 무료 영상도 조회수가 높다면 생각 이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이 외에 스폰서가 붙는 경우 액수는 더 커진다.
세 번째는 후원금. 말 그대로 팬들이 후원금을 보내주는 것으로, 이 수입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잘 나가는 유튜버는 후원금만으로도 매달 수백, 수천만 원을 번다.
이런 후원금은 워로드 내에서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후원금이 들어오는 걸 보는 게 의외로 쏠쏠한 재미다. 1천 원, 1달러, 백 엔, 1유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후원금이 온다는 걸 보면, 액수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
다가 때때로 10달러, 50달러 같은 굵직한 후원금이 지급되면 그날은 정말 기분 좋게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갑자기 후원자가 늘어났다. 심지어 후원금 액수의 평균치가 엄청났다. 그런 와중에 1천 달러짜리 대박이 터졌다. 도무지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안재현이 이유를 파악했다.
“됐다!”
게임에 접속하기 전, 기껏해야 5천 정도를 기록하고 있던 자신의 새로운 영상, 스컬 클라운의 조회수가 4시간 만에 조회수 4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조회수의 증가!
“됐어! 드디어 터졌어!”
워로드와 관련된 유명 팬사이트 영상 소개글 또는 추천글이 올라온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이런 폭발적인 조회수 증가 속도는 설명할 수 없다.
사실 기대는 했다. 로매니로부터 받은 영상은 정말 안재현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뽑힌 영상이었다. 최소한 못해도 보름 정도나, 한 달 후에 10만 조회수는 가뿐히 넘어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 기세를 보니, 1주일이 되기 전에 10만 조회수는 가뿐하게 넘을 듯했다.
‘10만이면…… 커트라인 넘을 수 있겠는데?’
커트라인이란 게 있다.
일정 수준을 기점으로 조회수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 부분을 넘으면 이후 인기 영상이 되어 꾸준히 조회수가 상승하는 반면, 그 부분을 넘지 못하면 빠르게 붙은 인기가 빠르게 식는다.
‘설마 백만 찍으려나?’
지금 안재현의 스컬 클라운 영상은 그 커트라인을 넘을 수 있을 만한 힘을 받은 상황이었다.
조회수만 높은 게 아니라, 조회수가 증가하면서 후원금도 늘어난 게 근거였다.
더불어 만약 스컬 클라운 영상이 백만 조회수를 찍는다면, 안재현은 최대 천만 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
보통 워로드 관련 무료 영상은 조회수 1에 대한 기댓값이 3원 정도다. 백만 조회수면 기본적으로 3백만 정도의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여기에 후원금 등을 더하면 액수는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다. 무엇보다 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면 어떤 식으로든 스폰서가
붙는다. 이 바닥에서 굴러봤던 안재현이 스폰서의 몸값을 모를 리 없다.
백만 조회수짜리 영상을 5개 정도 확보한 유저라면, 몸값이 한 달 기준으로 천만쯤 한다. 보통은 이걸 혼자 먹는 경우는 없다. 워로드는 기본적으로 길드, 공대 단위로 활동하는 게임이고, 최소 5명 이상이 이 돈을 나눠 먹는다.
하지만 지금 안재현은 나눠 먹을 사람이 없는 상황.
안재현이 그토록 원하던 것처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다 처먹는 구조다.
‘백만 넘으면 최대 천만.’
당연히 안재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르자.”
3.
[피부 재봉]
- 숙련도 : F랭크
- 괴물의 피부를 자신의 피부에 덧대, 보다 강한 피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태 저주]
- 숙련도 : F랭크
- 대상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저주를 겁니다. 이 저주는 대상의 덩치가 크고, 대상이 빠르고, 강할수록 더 많은 마력을 요구하며, 지속시간은 감소합니다.
히르칸은 새로 구매한 2개의 스킬 설명을 바라봤다. 그토록 원하던 스킬이었지만, 보는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매우 속이 쓰렸다.
‘젠장, 이거 두 개가 1천 9백 골드라니…… 아무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렇지 시세가 뭐 이래? 어떤 새끼들이 사재기해서 장난치는 건가?’
1천 9백 골드.
스컬 클라운 영상이 대박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가격이다.
달리 말하면 히르칸의 예상과 달리 스컬 크라운 영상이 대박을 치지 못하면, 이 투자는 히르칸의 식단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분간 고기는 꿈도 못 꾼다. 커피조차 동사무소에 가서 야금야금 훔쳐 먹어야 할지 모른다.
어쨌거나 속이 쓰린 것과 달리 두 개의 스킬은 지금 히르칸에게 충분히 유용했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일단 피부 재봉 스킬은 방어력을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검사들이 습득하는 스킨 아머와 같은 종류의 스킬이다. 하지만 스킨 아머와는 차이가 있다. 스킨 아머는 피부 자체가 스킬 숙련도에 따라 그냥 강해지지만, 피부 재봉은 다르다. 몬스터의 가죽, 비늘 등
재료로 삼는 대상에 따라서 오르는 방어력이 달라진다. 단점은 스킨 아머는 따로 추가금이 들어가지 않지만, 피부 재봉은 거듭된 타격을 입으면 새로운 재료를 써서, 다시금 새로운 피부를 재봉해야 한다. 네크로맨서가 돈 먹는 하마 소리를 듣는 이유다.
나태 저주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저주 법사를 대표하는 저주의 꽃이다. 대상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든다는 것, 워로드에서 이것이 가지는 효용성은 워로드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한 유저라면 뼈저리게, 피부가 아니라 심장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귀중한 스킬을 얻었다.
당연히 다음은 결과를 만들 때다.
‘이걸로 끝내주는 걸 만들어서,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스컬 클라운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달아 영상을 투척하는 게 정공법이다. 두 개의 영상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 수입은 2배 이상이 될 테니까.
‘백만 2개 뜨면, 사채 빚은 게임 끝.’
그리고 만약 정말 히르칸의 기대대로 2개 영상이 밀리언 무비가 된다면, 사채 빚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좀 더 툭 까놓고 말하면 V기어 기계값도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다.
더 나아가서.
‘나도 이제 좀 제대로 된 옷 좀 입자.’
이 비루한 패션도 사라진다.
그러한 사실들이 히르칸의 의지에 불을 붙였다.
3.
“빌어먹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죽은 자의 숲.
언제나 음험한 기운이 맴도는 그곳에서 한 유저가 두 유저를 앞에 둔 채 분노를 토했다.
“알 거 없고, 여기 들어온 당신네 파티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야.”
“개새끼들, 이런 식으로 갑자기 PK를 걸다니,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영상 다 찍었어!”
영상이란 말에 두 유저는 피식, 웃었다.
“그러시든지. 어차피 얼굴도 안 나오는데.”
동시에 두 유저 중 한 명이 거대한 얼음창을 만든 후에 쓰러진 유저를 향해 던졌다.
얼음창은 단숨에 유저의 가슴을 관통했다. 유저는 그 얼음창을 맞는 순간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게임오버.
그 모습을 확인한 둘이 서로를 마주 봤다.
“젠장, 그때 골든 스켈레톤을 놓치지만 않았으면 이런 귀찮은 일도 없잖아?”
“내가 놓쳤냐?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리고 골든 스켈레톤 몬스터 컨셉이 빌어먹을 설정인 걸 어떻게 하냐?”
“무슨 놈의 몬스터가 제한된 시간 내에 못 잡으면 처음부터 다시 잡아야 하는지…… 그 빌어먹을 설정 때문에 이틀 동안 이 근처에서 유저만 잡는 신세라니.”
“적어도 조만간 결판을 내야 해. 언제까지 오는 유저들 잡아서 정보 유출을 막을 순 없으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공론화될 테고 그때가 되면…… 여하튼 그 전까지는 무조건 잡아야지.”
그때 그 둘이 잠시 대화를 멈췄다. 보이스톡 프로그램을 통해 명령을 전달받은 그 둘이 등을 돌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 14화. 황금 해골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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