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해골 잡는 해골 (3). >
7.
우람한 덩치, 두꺼운 갑옷, 섬뜩한 칼, 불꽃 같은 안광을 토해내는 투구.
스켈레톤 워리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요소들이다. 죽은 자의 숲에서 사냥을 하는 유저들에게는 저승사자를 의미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바닥에 쓰러진 스켈레톤 워리어의 몸뚱이 어디에도 그를 상징하는 요소는 없었다. 무릎과 어깨가 박살이 난 탓에 덩치는 반의반이 됐고, 상체를 덮은 갑옷은 발에 수십 번 치인 깡통 꼴이 되었고, 칼은 반의반 토막이 난 채 너부러져 있었으며, 불꽃 같
은 안광을 토해내던 투구는…….
깡깡깡깡!
가죽 재킷 입은 유저의 옆구리 속에서 열심히 두들겨 맞고 있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감정이 있었다면 눈물을 줄줄 흘려도 이상할 게 없는 광경. 그런 광경을 만든 건 당연히 히르칸이었다.
하지만 막상 히르칸 본인 역시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이 빌어먹을 놈의 마력.’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히르칸은 최고의 기분이었다. 정확히 오늘 전투 일정의 시작점부터 느낌이 달랐다. 리자드 늪에서 느꼈던 컨디션 이상의 컨디션이었다. 비단 히르칸만 그런 건 아니었다. 해골 전사들 역시 평소보다 훨씬 더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거
듭된 전투 과정 속에서 누적된 전투 데이터가 슬슬 해골 전사들의 전투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서 히르칸은 작심을 했다.
타임 어택 영상을 찍자!
목표도 크게 잡았다.
100분 동안 스켈레톤 100마리 잡기!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히르칸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목표가 높아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초반에는 정말 그 정도 페이스가 나왔다. 이러다가 정말 100마리 잡는 거 아니야?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히르칸의 고질적인 악재 속에 금방 실망감으로 변했다.
‘아무리 올힘 네크로맨서라도 내 레벨에 비해 마력 수치가 아주 적은 건 아닌데…….’
마력 부족.
특히 좀 더 과감하고 무리한 전투는 마력의 소모량을 당겼다. 빨리 잡기 위해 해골 마법사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마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해골 전사 머릿수를 줄였고, 이제는 히르칸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골 전사들이 깡통으로 만들어준 스켈레톤 워리어를 마무리한 히르칸은 곧바로 자신의 능력치 창을 살폈다. 능력치 창을 살피는 건 전투 종료의 신호와 마찬가지였다.
[히르칸]
- 레벨 : 33
- 직업 : 마법사
- 타이틀 : 9개
- 능력치 : 근력(190)/체력(35)/지력(101)/마력(141)
141포인트.
현재 히르칸의 마력 스탯이었다.
보통 평범한 네크로맨서는 1대4 비율로 마력에 4포인트를 투자한다. 이 경우 아이템을 통한 능력치 증가를 제외한 순수 마력 스탯은 150포인트다. 타이틀 확보에 따라서 그 이상도 나온다. 여기에 아이템 세팅을 통해서 200포인트를 넘긴다. 유니크 아이템으로 도
배를 한다면 300포인트는 물론 400포인트를 넘길 수도 있다.
그것에 비하면 히르칸의 마력 수치는 적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올힘 네크로맨서라는 고약한 육성법에 비하면 꽤 준수한 수치였다. 그리고 최근 동안은 문제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점을 느꼈다.
‘안전 주행할 때는 문제 없지만 악셀 한 번 밟으면 연료가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구나.’
히르칸만이 느낄 수 있는 문제점이었다.
애초에 워낙 개인 성능이 뛰어났으니까. 히르칸은 차로 따지면 람보르기니 같은 놈이다. 그런 히르칸의 몸뚱이에 중소형차 수준의 연료탱크를 부착해줬는데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쯧.’
솔직히 말하면 치명적일 정도로, 크게 고민될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다. 언제나 전력으로 달릴 수는 없는 법. 워로드로 밥을 벌어먹는 이들은 대개 안전하게, 꾸준하게 달리는 걸 목적으로 한다. 빠르게 달리는 건 가끔 뿐이다. 워로드는 마라톤이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니까.
그래도 자기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는데, 그냥 넘어가는 거 쉬울 리 없다.
무엇보다.
‘40레벨 이후는 진짜 위험하겠네.’
이 정도면, 골렘 소환 이후에는 문제점이 더 커질 것이다. 아니, 골렘 소환이 문제가 아니다. 40레벨이 되면 해골 조각 스킬 랭크도 다시 오를 테고, 소환 가능한 해골 전사가 하나 더 늘어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젠장, 돈만 있으면 되는데.’
돈!
아이템만 좋으면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당연한 문제고, 히르칸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차선은?
효율.
연비를 개선해야 한다.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치러야 한다. 과감하고,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라도 마력을 덜 소모할 수 있는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당장 바뀌어야 하는 건…….
‘느낌은 좋았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나보다는 못해.’
히르칸, 바로 본인이었다.
그동안 해골 전사를 앞세운 채 전투를 치르다 보니, 막상 본인은 예전만큼 못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최고가 되는 건 다르니까.
히르칸이 능력치 창을 껐다.
‘해골 애들을 굴릴 게 아니라, 내가 좀 굴러야겠어.’
8.
로매니는 열광했다.
“와우!”
최근 많은 작업…… 정확히 말하면 정말 지루하고, 흥미도 없는 작업을 억지로 하느라 미칠 지경이었던 그에게 오랜만에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의뢰인이 영상 제작을 요청했다.
하회탈 히르칸.
그는 엄청난 분량의 전투 영상을 보내줬고, 로매니는 개중 그냥 하나의 영상만을 무작위로 골라 봤다. 그냥 하나 골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 하나의 영상을, 약 60분 남짓한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그 정도였다.
‘그냥 어중이떠중이하고는 비교가 안 돼. 차원이 달라!’
많은 종류의 유저들 영상을 봤다. 솔직히 제 딴에는 잘 싸웠다고 생각되는 영상들만 추려 보냈겠지만, 개중 대부분은 정말 억지로 편집을 하고, 연출을 해도 그저그런 수준으로 남을 영상들이었다.
그러나 히르칸의 영상은 솔직히 겁이 날 정도였다. 이걸 과연 어떻게 해야 더 멋지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자체로도 훌륭한데!
‘미치겠군.’
몸놀림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남들은 그저 턴제 게임을 하듯 공수를 주고받지만, 히르칸은 상대방의 공격은 허락지 않은 채 본인만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아슬아슬하게 근접전을 치르면서 공격을 피하는 모습은 보는 이마저 숨이 막히게 했다.
특히 개중 백미는.
‘해골들이 주인을 닮나? 해골들도 너무 멋지게 싸우는군.’
히르칸이 부리는 해골 전사들의 전투도 끝내줬다.
춤이란 건 혼자 추는 것도 괜찮지만 역시 여럿이서 출 때 더 멋진 법!
여기에 전투 파트너도 괜찮았다.
해골 대 해골!
타이틀만으로도 이미 흥미가 돋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실제 영상도 매력적이었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었다.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딱 하나.
‘그런데 대체 왜 패션이 이렇지? 일부러 이렇게 입는 건가? 아니면 문제가 있나?’
패션만 빼고.
“진짜 코디를 누가 해준 건가? 본인이 한 건가?”
어쨌거나 이걸 보기 좋게 만드는 게 로매니의 역할. 이미 시나리오는 완성됐다.
심지어 타이틀도 떠올렸다.
“스컬 클라운.”
해골 광대.
그게 이번 영상의 제목이었다.
9.
야구, 축구, 농구 등 프로스포츠를 보는 팬들을 설레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우승 그리고 슈퍼 루키의 등장. 특히 신인의 등장은 한 팀이 아니라, 그 스포츠 세계 자체를 뜨겁게 만들고는 한다.
워로드로 마찬가지였다. 출시 1주년을 이제 한 달 앞둔 2월, 워로드는 거듭 슈퍼 루키의 등장으로 몸이 더 이상 달아오르기 힘들 만큼 달아오른 상황이었다.
- 폴아웃 온라인 랭킹 10위, 로니 잭슨 히드라 길드 입단!
- 더 머신 랭킹 3위, 우고 산체스 레드불 전격 입단!
특히 최근 다른 가상현실게임에서 수준급 플레이로 활약하던 이들이 워로드로 넘어오는 이들과 관련된 기사, 인터뷰, 영상들이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왕도를 걷는 것보다는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진주의 활약을 보고 싶은 법!
그 덕분이었다.
스컬 클라운!
하회탈 히르칸이 죽은 자의 숲에서 스켈레톤들과 치른 15분짜리 전투 영상은 공개 3일 만에 15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슈퍼 루키의 등장을 알리는 오프닝이 되어줬다. 자연스럽게 히르칸과 관련된 이야기가 소수이긴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오고 가기 시작했다.
- 이 유저, 내가 리자드 늪에서 직접 전투하는 거 봤었는데 어마어마하더라.
- 나도 봤음. 특히 이 사람은 무조건 혼자서 사냥함. 솔플의 귀재임. 파티플 절대 안 함.
- 이거 보고 네크로맨서 키우러 갑니다.
- 그런데 옷은 일부러 이렇게 입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패션은 너무 한데?
- 일부러 입는 거겠지. 맨정신에 이걸 어떻게 입겠어? 다 눈에 띄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지.
여러모로 히르칸이 인지도를 쌓는 사이, 그 광경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없을 순 없는 법. 그런 부류 속에 채설연, 그녀가 있었다.
‘이게 뭐지?’
비서 박수지가 알려주기 전까지 채설연은 잠시 동안 히르칸에 대한 걸 잊고 있었다.
그렇게 박수지를 통해 히르칸이 올린 새로운 영상을 봤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러나 그 감탄사는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의문으로 바뀌었다. 박수지에게 물었다. 스카우트 제안을 했느냐고. 박수지는 당연히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과를 물었다. 여기서 박수지는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고, 답장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어디도 아니고 우레사냥꾼에서 영입 제안을 했다. 그럼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답장을 주는 게 예의다. 아니, 예의가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답장조차 없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우릴 무시하는 건가?’
거절 그리고 무시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영상만 툭 던지는 건, 우레사냥꾼 길드를 다른 중소형 길드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했다는 증거다.
여기서 채설연은 히르칸이 진심으로 우레사냥꾼 길드를 같잖게 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란 사실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워로드를 하는 인간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채설연의 기준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채설연은 오히려 다른 생각을 했다.
‘다른 길드 소속이라는 건가? 공식적인 대답을 하지 못한 건, 다른 길드가 숨기고 있는 패라서?’
다른 길드 소속이며, 현재 정체를 감추고 있다! 그게 채설연이 내놓은 답이었다. 그 외의 다른 답은 채설연 입장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게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흥.”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에게 오히려 불을 붙였다. 주인이 없는 보물과 주인이 있는 보물, 대체적으로 주인 없는 보물이 더 가치가 있지만, 과정에서의 스릴과 성취감은 주인 있는 보물을 훔칠 때 아닌가?
‘이 자를 제대로 키우면, 언젠가 우레사냥꾼에서 에이스가 될 수 있어. 나만큼…… 어쩌면 나 이상으로 활약할 재능이 있어.’
채설연 그녀가 다시 한 번 히르칸의 영상, 스컬 클라운을 재생했다.
< 13화. 해골 잡는 해골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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