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36화 (36/192)

< 13화. 해골 잡는 해골 (1). >

13화. 해골 잡는 해골.

1.

히르칸은 둥지의 알을 확보하는 순간 전력을 다해, 조금도 쉬지 않고 방츠 성을 향해 달렸다.

‘빨리빨리!’

방츠 성으로 전력으로 달려온 히르칸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복장을 바꾸고 방츠 성 토벌협회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힘브리의 방을 향해 말 그대로 돌격을 했다.

‘방금 그거 뭐지?’

‘뭔가가 지금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누군가 퀘스트를 물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하이에나처럼 대기하던 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해 볼 틈 같은 건 없었다.

히르칸이 현실에서 밥 먹을 시간조차 아낀 채 급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꼬리를 밟히기 전에 잽싸게 처리하자.’

리자드 늪에 아힘브리의 테스트 과제가 있었다. 그리고 히르칸은 그 테스트 과제를 통과했다. 만약 히르칸을 찾아왔던 그들이 그 사실을 눈치챈다면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렇기에 히르칸은 그들이 아힘브리 퀘스트를 확보한 유저를 찾기 위한 작업에 나서기 전에

잽싸게 아힘브리와의 일을 마칠 생각이었다.

속전속결!

그렇게 단숨에 아힘브리의 방이 있는 층에 도달한 히르칸은 아힘브리의 방을 향해 달려갔고, 문을 벌컥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가지고 온 알을 미식축구에서 터치다운을 하듯 아힘브리의 책상 위에 알을 올려놓았다.

아힘브리가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의 입이 열린 건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생각보다 빠르군.”

아힘브리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히르칸은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히르칸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생각보다 빨랐다고? 20일이 넘게 걸렸는데?’

히르칸이 아힘브리 퀘스트를 받자마자 리자드 늪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20일을 보낸 후에 퀘스트를 완료했으니 퀘스트 수행에 20일이 걸린 게 맞긴 하다. 물론 히르칸이 보낸 20일 대부분은 레벨업을 올리기 위한 시간이었지만.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빠르다고 했다.

‘여러모로 정신 나간 게임이라니까.’

보통 게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개념. 그리고 그게 워로드란 게임이었다.

그런 히르칸의 잡념은 금방 꺼졌다. 히르칸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아힘브리가 말로 뱉는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진행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까. 솔직히 이번 테스트는 히르칸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드래곤 리자드를 발견하는 건 그렇다 쳐도, 드래곤 리자드를 혼자서 처리할 능력이 히르칸에게는 없었으니까.

“일단 잘했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자네는 이게 뭔지 알고 있나?”

그런 히르칸의 마음을 아는지 아힘브리는 곧바로 본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모릅니다.”

“타락의 돌. 나는 일단 이것을 그리 부르고 있네.”

‘아, 이게?’

이제야 히르칸은 자신이 가져온 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타락의 돌!

타락 백작 시나리오 퀘스트에서 나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다. 히르칸은 타락의 돌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봤고, 실제로 타락의 돌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걸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타락 백작은 물론 그다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인 배덕의 왕자 편에서도 히르칸은 엑스트라조차 되지 못했으니까. 그때는 레벨 올리고, 사냥 영상 찍기 바빴다.

‘이거 잘하면…….’

여기서 히르칸은 기대감을 품었다.

타락의 돌을 알고 있는 이유는 크로니클 유니크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히르칸이 획득한 타락 추적자의 목걸이와 같은 크로니클 유니크의 재료가 된다. 물론 그냥 이대로 재료로 쓸 수는 없다. 히르칸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금 당장 히르칸은 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잘하면 콩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타락 추적자의 목걸이와 같은 콩고물 말이다.

혹은 만약 이대로 타락의 돌을 아힘브리가 히르칸에게 준다면…… 나중이긴 하지만 정말 엄청난 돈을 받고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꿀꺽!

히르칸이 살짝 긴장했다. 10만 원어치 로또를 구매하고 로또 추첨을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히르칸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아힘브리는 자기 할 말을 계속 담담히 이어갔다.

“이 타락의 돌 때문에 몬스터들이 최근 타락한 자의 힘에 취한 채 문제를 일으키고 있네.”

“그럼 그 돌을 찾아 파괴해야겠군요.”

히르칸이 곧장 대답했다. 그 돌을 찾아 파괴할 테니까 빨리 퀘스트를 달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 돌은 자네 능력으로 파괴할 수 없네. 더군다나 돌을 찾아 파괴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돌이 어디에서 왔으며, 이 돌이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이 돌을 운반했는가? 그 사실일세.”

“그럼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자를 찾아서 응징을 해야겠군요. 제가 그리하겠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나서서 이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자를 응징하겠습니다.”

‘빨리 다음 퀘스트를 줘!’

히르칸이 속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그런 히르칸의 마음속 작은 소원에.

“자네 실력으로는 부족하네.”

아힘브리가 찬물을 부었다.

‘뭐?’

찬물을 부은 후에.

“하지만 자네에게 가능성은 충분하지. 그렇기에 지금 자네에게 중요한 건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과 맞서 싸울 힘을 얻는 것일세.”

[퀘스트 ‘아힘브리의 가르침(2)’이 시작됩니다.]

곧바로 아주 제대로 뜨거운 물, 그냥 용암을 부어줬다.

‘와우!’

히르칸이 터져 나오려던 감탄을 꾹 참았다.

‘아힘브리 가르침 퀘스트? 스킬북?’

하지만 그런 히르칸의 참을성은.

“조금 더 강해진 후에 나를 찾아오게. 그럼 내가 자네가 나아갈 방향을 지도해주겠네.”

[타이틀 ‘아힘브리의 제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우와아아아!”

이후 연속해서 터진 대박 소식에 결국 터지고 말했다. 히르칸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머리 위로 크게 들며 소리쳤다. 정말 이성을 잃고, 당장 아힘브리를 향해 달려들기라도 할 기세로 기쁨을 표현했다

“음?”

그 모습을 본 아힘브리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슨 의미인가?”

그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히르칸의 얼굴에서 표정이란 단어가 싹 사라졌다.

“아, 그게…….”

히르칸의 워로드 게임인생에 새로운 흑역사가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2.

[아힘브리의 가르침(2)]

- 퀘스트 등급 : 유니크.

- 퀘스트 수행 레벨 : 3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40레벨을 달성하신 후에 아힘브리를 찾아가십시오.

- 퀘스트 보상 : 스킬북, 타락 추적자의 반지.

[아힘브리의 제자]

- 직업 관련 능력치가 3퍼센트 상승합니다.

시계를 통해 2개의 새로운 소식을 파악한 히르칸은 기쁨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아힘브리의 제자 타이틀이라니?’

아힘브리의 제자 타이틀은 모든 마법사 유저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타이틀이었다.

일단 직업 관련 능력치를 퍼센트지로 올려준다.

이미 유망주 타이틀을 확보한 히르칸은 기본 능력치가 6퍼센트나 상승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여기에 40레벨만 찍으면 스킬북이 하나 더 나온다, 이거지?’

매드니스 헬름을 얻은 것처럼 새로운 스킬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40레벨만 찍으면 돼.’

40레벨만 찍으면 모든 게 히르칸의 것이 된다. 새로운 유니크 마법은 물론 원래 배우고자 했던 골렘 소환 마법도 배울 수 있으며, 다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로 넘어갈 수 있는 권한까지!

그럼 이제 고민할 것은 오직 하나다.

30레벨인 히르칸이 최단시간 내에 40레벨을 찍을 수 있는 사냥터는 어디일까?

히르칸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을 내놓았다.

‘그럼 다음 사냥터는 죽은 자의 숲인가?’

죽은 자의 숲.

언데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공포의 숲이다.

3.

리자드 늪이 소란스러웠다. 늪 곳곳에 기둥처럼 솟아오른 나무들은 마법사의 불덩이 공격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늪 사이를 비추는 횃불 같았다. 시커먼 늪 위로 떠오른 횃불의 존재감은 여러모로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기괴한 분위기 속에 늘어진 용과 흡사한 모습을 가진 거대한 도마뱀이 축 늘어져 있었다. 스멀스멀 녹아내리는 도마뱀의 정체는 리자드 늪의 보스 몬스터, 드래곤 리자드였다.

“전투 중지!”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늪을 울렸다. 그 울림을 기다린 듯, 곳곳에서 응답이 터졌다.

“우와! 끝났다!”

“간만에 제대로 한 번 잡아봤네.”

“모두들 수고했어요!”

“드디어 우리 길드도 큰 거 하나 잡아보네요. 다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말과 함께 늪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유저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방츠 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레이드 전문 길드, 아폼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아폼 길드는 뛰어난 실력보다는 레이드를 하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모여 있는 단체였다. 강한 규율과 레이드를 통한 수익 확보가 아닌, 레이드란 워로드의 핵심 콘텐츠 자체를 즐기기 위한 무리. 일종의 산악회 같은 동호회였다.

그게 이유였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짜 소문보다 더 대단하시군요. 다섯 명 이상은 게임오버를 각오했는데 덕분에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번 레이드를 주관한 공대장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한 유저를 찾아와 고개부터 숙이는 이유.

“별말씀을. 다들 실력이 출중하셔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고개 숙인 공대장의 앞에는 그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번쩍이는 백색 비늘 갑옷을 입고 있는 유저가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고레벨의 유저, 40레벨대 보스 몬스터인 드래곤 리자드 레이드에 참가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유저였다.

헬퍼였다.

레이드 도우미라고도 부른다. 워로드의 최고 백미는 레이드다. 하지만 레이드는 난이도가 꽤 높다. 사람도 모아야 하고, 공략법도 필요하고, 공대원들 간의 호흡도 중요하다.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 만큼 이런 레이드를 즐기고 싶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력과

능력이 부족한 자들은 돈을 들여서 도와줄 사람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을 워로드에서는 헬퍼라는 표현을 쓰고는 했다.

단순히 고레벨 유저가 저레벨 유저를 데리고 일명 렙업 버스, 택시, 쩔이라 불리는 행위를 해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부류였다. 헬퍼는 무작정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 보스 몬스터 레이드 과정을 지휘하고, 자신을 고용한 고객들이 레이드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했으니까.

어쨌거나 이런 헬퍼를 고용할 경우, 사실상 레이드를 통한 이득은 포기하는 셈이다. 오히려 레이드를 치르고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좋은 헬퍼는 몸이 서너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넘친다. 모든 세계가 그렇지만, 워로드에

도 게임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아닙니다. 아, 그보다 이거. 약소하지만 골드입니다.”

그리고 정말 실력이 좋은 헬퍼에게는 일이 끝나면 나름 팁을 챙겨주는 게 이 바닥의 미덕.

“괜찮습니다. 이미 보수를 받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번 거절하는 것도 헬퍼의 미덕이다.

“에이, 그러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술값 정도는 나올 겁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거절이 오고 간 후에 서로 미소를 지으면서 마무리를 짓는 게 보통.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번 헬퍼는 생각보다 단호했다. 공대장은 그런 헬퍼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니 절대 받을 수 없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공대장이 눈치를 채고, 더 이상 권유를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골드가 든 주머니를 치웠다.

‘이런 걸 거부하다니, 확실히 보통 헬퍼가 아니란 말이야. 실력도 너무 뛰어나고. 우리가 지불한 돈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돈 받고 고용할 만한 실력자가 아닌데…….’

이 순간 공대장은 레이드 시작과 함께 품었던 의구심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보통 헬퍼가 개입하는 레이드에는 브로커가 낀다. 브로커는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헬퍼를 준비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워낙 돈이 많이 오고 가는 게임이라, 그런 브로커나 헬퍼가 만지는 돈은 일반인의 생각 이상으로 컸다.

당연히 헬퍼의 수준은 지불하는 액수에 따라 달라지는 법.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공대장의 눈앞에 있는 헬퍼는 액수 이상의 실력자였다. 가격에 비해 수준 낮은 이가 오는 경우는 있어도 수준 높은 이가 오는 경우는 없다.

“그보다 사전 계약 내용 그대로, 드래곤 리자드 레어에 있는 아이템은 전부 제가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번 헬퍼의 경우에는 어떤 조항보다 드래곤 리자드 레어에서 습득하는 아이템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보통은 그런 식으로 아이템을 주장하는 경우 역시 없다.

“물론이죠.”

더군다나 드래곤 레어에 목숨을 건다? 드래곤 타입 몬스터의 레어에 비싼 재료 아이템 등이 있다는 건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보통 막 리젠된 보스 몬스터는 소위 빈털터리 둥지다.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는 사냥한 유저들의 아이템을 레어에 모아두니까. 막

리젠된 보스 몬스터가 많은 유저를 잡았을 리 없다.

그런 레어에 가치를 둔다? 여러모로 이상했다.

“레어 찾는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공대장 입장에서는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본인이 저렴하게 나오게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 대답과 함께 갑옷을 입은 헬퍼는 등을 돌린 후 검은 늪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런 곳에서 타락의 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줄이야.’

공대장의 의심대로 그는 사실 이런 곳에 올 만한 수준의 헬퍼가 아니었다.

그 이상.

그는 심지어 30대 길드의 레이드에 헬퍼로 참가할 정도로 엄청난 자였다.

그런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오직 하나.

검은 늪이라는 요소 때문이었다. 타락의 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곳에 왔다.

달리 말하면 그가 나설 정도로 타락의 돌이 가지는 가치는 엄청났다.

‘그보다 리자드 늪에 타락한 드래곤 리자드가 등장하는 건 아힘브리 테스트를 포함해서 타락 백작 퀘스트를 누군가 받은 채로 리자드 늪에서 일주일 이상 활동했을 때인데…… 대체 누구지?’

그 생각을 끝으로 그는 레어를 찾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그로부터 몇 분 후.

"FUCK!"

한 사내의 절규가 리자드 늪을 짧게 뒤흔들었다.

< 13화. 해골 잡는 해골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