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타락의 돌 (3). >
8.
보스 몬스터는 같은 레벨의 일반 몬스터에 비해 모든 능력치가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일반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3인 이상의 유저가 파티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유저가 파티를 구성해야 한다. 그게 바로 레이드다.
이런 보스 몬스터는 여러 방법으로 등장한다. 개중에서 꾸준히 정해진 지역 내에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들은 필드 리셋 방식으로 등장한다. 보스 몬스터가 죽는 순간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임의의 지역에 보스 몬스터를 위한 필드가 생성된다.
최근 리자드 늪에서 드래곤 리자드 레이드가 이루어진 건 일주일 전.
더불어 드래곤 리자드 레이드는 무리 없이 이루어졌다. 평균 레벨 41레벨의 25인 공대가 레이드를 진행했고, 실패 없이 첫 번째 도전 만에 사냥에 성공했다.
그런 드래곤 리자드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필드 리셋과 함께 등장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리셋된 필드에 히르칸과 그를 쫓는 열 명의 추적자들이 들어오게 된 것도 괴팍하긴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히르칸이 의구심을 가지는 건.
‘검은 늪이라니, 원래 이런 설정이 있었나?’
검은 늪의 존재였다.
드래곤 리자드에 대한 정보를 리자드 숲에서 30레벨을 찍고자 했던 히르칸이 조사하지 않았을 리 없다. 주기적으로 드래곤 리자드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다. 더불어 이런 보스 몬스터 레이드 사냥은 사냥 직전에 공대가 경고를 한다. 레이드를 방해하지 말라는 의
미의 경고였고, 히르칸은 드래곤 리자드가 등장한 지역을 파악하면 그 지역을 피해서 움직였다. 동시에 드래곤 리자드가 등장할 경우 생기는 특징들도 파악해둔 상황이었다.
그런 히르칸의 지식에 검은 늪이란 특징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즉,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검은 늪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설마?’
히르칸의 머릿속에는 아힘브리의 퀘스트가 떠올랐다. 대략적인 상황을 보면, 아힘브리가 말한 둥지의 알은 지금 등장한 드래곤 리자드의 둥지에 있는 알을 의미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히르칸은 진심으로 욕이 나올 뻔했다.
‘미친.’
말도 안 되는 테스트 내용이었으니까.
‘평균 레벨이 40레벨이 넘어가는 20인 이상 공대로 잡을 수 있는 몬스터를 잡고, 알을 확보하라니?’
드래곤 리자드 사냥 난이도 자체가 높은 건 아니다. 보스 몬스터치고는 잡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개인이 하라면 절대 못한다. 애초에 보스 몬스터는 개인 또는 소규모 집단이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니다. 이런 난이도의 퀘스트를 그냥 툭 던져주듯 던져줬으니, 욕이 나올 수밖에.
어쨌거나 히르칸 입장에서는 기회가 왔다.
물론 히르칸이 여기서 드래곤 리자드를 잡는 건 쉽지 않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히르칸은 원래 자기보다 언제나 레벨이 높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전투 경험은 넘칠 정도로 많다. 전문가, 그 이상이다. 여기에 드래곤 리자드는 사냥 난이도가 높은
타입이 아니다. 잡으라고 하면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퍼센티지로 따지면 한 자릿수다.
당연히 이럴 때의 답은 하나다.
‘잡긴 개뿔.’
목숨 걸고 잡을 가치는 없다.
대신 이건 기회다.
‘흠.’
히르칸이 공황 상태에 빠진 아홉 명의 유저들을 바라봤다. 동료 한 명이 드래곤 리자드에게 끌려가자마자 당황했던 그들은 빠르진 않지만 차츰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들이 긴장 상태로, 경계 상태로, 자신들의 마음가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기본은 하는군.’
여자에게 홀라당 넘어가 멋도 모르고 히르칸에게 덤볐다가 아이템 잃고, 시간도 잃은 양반들이지만, 그래도 대부분 레벨이 30레벨이 넘어가는 자들이다. 레벨이 그 정도 된다는 건 원치 않아도 몬스터와 다수의 전투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순간 최선의 방법이 뭔지는 몰라도, 당장 뭐를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젠장, 일단 준비합시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한 명이 입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명령을 내렸다
“드래곤 리자드 같은데 전투라니, 레이드 돌입할 생각입니까?”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우문이었다. 전투에 익숙하다면, 이런 반문 대신 방법을 물어봤을 것이다.
“도망이라도 치려면 대비를 해야죠.”
“한 번 잡아보죠? 여기 아홉 명이 나름 열심히 하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누군가는 정신이 나간 듯한 발언도 했다. 멀리서 그들 이야기를 어렴풋하게 들은 히르칸은 헛웃음을 흘렸다.
‘병신들. 나조차 잡지 못하는 주제에 아홉 명이 드래곤 리자드를 잡겠다고?’
그러는 사이 늪까지 들어갔던 두 명은 방향을 틀어 늪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늪에서는 공격을 당하면 제대로 발악조차 못한 채 당할 게 뻔했으니까.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딜.’
그 모습을 히르칸이 그냥 두고 볼 리 만무.
히르칸이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춤을 추던 해골의 눈빛이 바뀌었다. 해골 전사가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히르칸은 그런 해골 전사에게.
“매드니스 헬름.”
더 큰 불길을 피울 수 있도록 기름을 끼얹고.
“본 아머.”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도 잔뜩 넣어줬다.
히르칸의 마법에 해골 전사의 머리에 붉은빛과 함께 두 개의 뿔이 솟아났고, 허전하던 갈비뼈가 메워지며, 뼈로 만들어진 든든한 갑옷 같은 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상태로 해골 전사는 빠르게 자신에게 등을 보인 채 늪을 빠져나가려던 유저들에게 접근했다.
매드니스 헬름 효과로 공격성이 극대화된 해골 전사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조심해!”
그걸 본 누군가가 당연히 경고했다. 그 경고에 검사 유저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봤다.
“젠장!”
지척까지 접근한 해골 전사, 이제 몇 초 후면 격돌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거리를 가늠한 검사 유저 한 명이 쓴소리와 함께 검을 들었다.
“내가 막을게!”
“고마워.”
한 명이 희생을 자처했고, 다른 한 명이 감사의 인사를 던지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 과정을 남은 일곱 명이 주목했다.
“도와줍시다.”
“마법사들 마법 준비하고, 사제들은 힐링 준비하세요!”
이 순간 그들은 동료를 구출하기 위한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히르칸은 피식, 웃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는 해본 적 없는 양반들이군. 지금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그런 히르칸의 웃음에 응답하듯, 늪을 바라보던 일곱 명의 유저들 오른쪽 측면에서 드래곤 리자드가 등장했다. 그 광경을 본 히르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늪으로 몸을 던졌다.
9.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 질문을 받으면 많은 대답이 나온다. 강력한 마법사의 존재, 어그로를 끌어줄 탱커의 필요성, 최전방에서 싸워줄 스트라이커의 역할, 유저들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사제의 활약…… 하지만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지겹게 경험한 이들은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간단하게 대답한다.
변수를 차단할 것!
그들이 말하는 변수란 보스 몬스터를 제외한 모든 몬스터 또는 적의를 가진 유저를 의미한다.
유인 능력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 앞서서 보스 몬스터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보스 몬스터의 관심 밖으로 유인한 후 처리하는 걸 잘하는 길드나 공대가 정말 우수한 능력과 인재를 가진 길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버프를 받은 해골 전사는 최고이자, 최악의 변수였다.
더군다나 그냥 해골 전사가 아니었다.
E랭크의 매드니스 헬름 효과를 받은 D랭크의 해골 전사다. 솔직히 이 정도 스펙의 해골 전사는 40레벨 근처의 네크로맨서가 소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히르칸의 1대1 교육을 매일 30분 이상씩 받으며 대인 전투에서의 회피 능력은 평균 이상을 보여주는 해골 전사를 상대로 보통 실력 혹은 보통 이하의 실력을 가진 검사 유저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해골 새끼!’
검을 휘둘러도 가뿐하게 피해내는 건 물론, 피해낸 후에 자신을 공격하는 해골 전사를 보며 검사 유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욕을 해골에게 토해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드래곤 리자드는 볼링핀처럼 모여 있는 일곱 명의 유저들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모여 있던 일곱 명의 유저는 일단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 꼴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여 있는 탓에 흩어지는 게 시원치 않았다. 해골 전사에게 관심이 빼앗긴 것도 컸다.
결국.
덥석!
한 명이 물렸다. 사제복을 입은 사제였다.
“씨팔!”
사제의 입에서 비명 대신 험악한 소리가 나왔다. 물론 특별한 광경은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하면 온갖 욕지거리가 실시간으로 튀어나오고는 하니까.
그러는 사이 해골 전사는 상대하던 검사 유저를 격렬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주인의 명령을 받은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 해골 전사의 격전에 검사 유저가 밀리는 걸 본 늪을 빠져나가려던 검사 유저는 가던 길을 멈췄다.
‘젠장!’
어차피 탄탄한 땅 위에서는 드래곤 리자드가 일곱 명과 난전을 펼치는 중이다. 차라리 자신이 도망치지 말고, 동료를 도와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검사 유저는 그리 생각하고, 등을 돌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질퍽거리는 늪을 성큼성큼 다시 뛰어갔다.
그러는 사이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해골 전사와 맞서 싸우던 유저의 등을 터뜨렸다. 동료를 도와주러 가던 다른 한 명이 기겁했다.
“뭐하는 짓이야?”
“시, 실수!”
동료를 도와주기 위해 나름 간신히 마법을 던졌는데, 그게 해골 전사가 아니라 동료를 공격했다.
“미친, 똑바로 보고 던져!”
이제는 동료를 향한 분노와 질타 섞인 욕지거리가 나왔다. 전형적인 망하는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10.
몬스터는 타입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가진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특징을 가진 건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다.
드래곤 타입의 몬스터는 둥지를 만든다.
일명 레어.
이 레어에는 보물이 있다. 귀한 재료 아이템이 기본적으로 있고, 둥지의 주인이 다수의 유저를 처치할 경우에는 그 유저로부터 획득한 완제품 아이템을 둥지에 보관하고는 한다.
이런 이유로 드래곤과 전투를 피한 채 드래곤 레어만 집중적으로 터는 경우가 있다.
일명 빈집털이다.
의외로 워로드에서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굳이 힘든 사냥 없이 값비싼 소득을 취할 수 있는 일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빈집을 턴다고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런 빈집털이는 레이드 영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요가 있다. 보물을 찾기
위한 탐험은 인디아나존스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 소재로 쓰일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히르칸도 예전에 이런 짓을 많이 했다.
때문에 히르칸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검은 늪의 나무를 원숭이처럼 타고 다니며 드래곤 리자드의 레어를 찾았다. 이동하던 히르칸은 해골 전사 한 마리를 재차 소환한 뒤에 늪에 그냥 놔두었다. 미끼이자, 경고등 같은 존재였다. 이 해골 전사가 당하면 마력이 빠
져나가면서, 드래곤 리자드가 접근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테니까.
그런 히르칸이 15분 정도 늪을 탐색한 끝에.
‘오케이.’
마치 비버의 집처럼, 무수히 많은 나무 기둥들을 모아 만든 둥지가 보였다. 거대한 둥지는 100평 남짓한 전원주택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컸다. 히르칸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둥지를 암벽 오르듯 타고 올랐다. 둥지 안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금속이 보였
고, 보석도 보였다.
그리고…….
‘알인가?’
알처럼 생긴 무언가도 보였다.
‘돌 아닌가?’
하지만 알이라기보다는 돌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알 모양의 돌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그 정체를 히르칸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히르칸은 머리로 고민하면서, 잽싸게 재료 아이템을 코인으로 바꾼 후에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알의 경우에는 코인으로 바뀌지 않았기에, 줄을 이용해 포장을 했다. 능숙하게 포장을 한 후에 가방처럼 짊어지고는 곧바로
레어를 빠져나왔다.
그때 히르칸의 마력이 쭉 빠졌다. 아홉 명의 신경을 끌기 위해 소환해둔 해골 전사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히르칸이 입을 꽉 다물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11.
히르칸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을 때,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드래곤 리자드가 몸부림을 친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부서진 나무기둥들, 마법의 흔적으로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길들 그 사이로 보이는 반짝이는 시계들.
그 아수라장을 히르칸의 눈이 훑었다. 히르칸의 눈에 드래곤 리자드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들어왔다.
“안녕.”
생존자였다.
유일한 생존자. 동료들의 죽음 속에서 몸을 숨겼던 그는 갑자기 드래곤 리자드가 몸을 돌려 늪으로 들어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히르칸, 그가 드래곤 리자드의 레어에 침입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찌 보면 히르칸이 그에게는 구명의 은인이 되는 셈.
물론 그 사실을 그 유저가 알 리 없었다. 안다고 해도 히르칸이 구명의 은인으로 보이는 일도 없었다.
어쨌거나 유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말이 돼?’
무려 열 명이 같은 복수를 위해 모였다. 온갖 일이 일어나는 워로드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그만큼 자신도 있었다. 제아무리 히르칸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라도 열 명이라면 충분히 놈에게 복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나오다니?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다.
망연자실.
유저는 그저 말없이 히르칸을 바라봤다. 반면 히르칸은 유저의 두 팔과 투구 사이로 보이는 얼굴색을 살폈다.
‘독에 당했군.’
드래곤 리자드의 독에 당한 듯 상대는 오른팔은 시커먼 숯처럼 변하고 있었고, 얼굴에도 시커먼 자국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사제가 있다면 금방 치료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던 모양.
이대로 놔두면 사망이다.
물론 마지막 발악을 한다면, 못할 건 없다. 원래 마지막이 가장 위험한 법이다.
그러나 히르칸은 그런 상대와 오히려 거리를 좁혔다.
“워로드라는 게임이 참 빌어먹을 게임이야. 이게 이상한 부분에서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니까.”
상대는 그런 히르칸의 접근에 두 눈을 부라렸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지막으로 발악을 해서라도 히르칸에게 피해를 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무엇도 하기 싫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씨팔 새끼.”
결국 상대는 주둥이만 움직였다.
히르칸은 그런 상대를 바라보며, 자신의 하회탈 가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하자고. 이 가면 잘 기억해둬. 앞으로 어디서든 이 가면을 보면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아니라 내가 먼저 널 발견하면, 조금 전 한 그 소리를 똑같이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 말에 상대가 발끈했다. 상대가 히르칸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푹!
히르칸은 그 주먹을 피하면서, 자신의 검으로 상대의 투구 사이의 눈구멍을 찔렀다. 한 번이 아니라, 연거푸 찔렀다. 사정없이, 마치 반복해서 작업을 하는 기계처럼 찔렀다. 눈 부위만을 가차 없이 찔렀다.
츠으, 층!
찔렀던 검이 나오면서 투구를 긁는 쇳소리는 그 어느 소리보다 섬뜩했다.
어느 순간 이미 강제로 로그아웃을 한 상대방은 더 이상 발악조차 하지 않았다.
히르칸은 그런 유저의 상태를 알고 있음에도 상대가 죽어서 시계를 남길 때까지 찔렀다.
이윽고 상대가 시계만을 남긴 채 녹아내렸을 때, 히르칸은 그 시계를 주웠다.
‘이렇게 당하고도 또 덤비면, 그때는 전쟁이지.’
이 방법을 우레사냥꾼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하회탈 길드 덕분에 몸에 새길 수 있었다.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상대가 다시는 워로드를 하는 게 싫어지도록 만드는 방법 말이다.
더불어 히르칸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상대방이 끝낼 생각이 없을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또 죽여주지.’
다시 한 번 복수와 응징을 다짐하던 히르칸이 고개를 돌려 검은 늪을 바라봤다.
바라보는 시간은 짧았다.
히르칸은 곧장 등을 돌렸고, 옆구리에 알을 껴놓은 채로 검은 늪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면서 시계를 통해 방츠 성 근처 지역에서 활약하는 길드, 공대를 검색했다. 검색을 마친 후에 그들 중 한 곳에 연락을 했다.
“리자드 늪에 드래곤 리자드가 리젠됐습니다. 정확한 위치 100달러에 판매합니다.”
몇 분 후 곧바로 답변이 왔다.
- 계좌 번호 불러주세요.
리자드 늪에서 얻은 마지막 수확이었다.
< 12화. 타락의 돌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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