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34화 (34/192)

< 12화. 타락의 돌 (2). >

4.

히르칸이 목표였던 30레벨에 도달한 건, 리자드 늪에 들어온 지 20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동시에.

[타이틀 ‘리자드 헌터’를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타이틀을 확보했다. 30레벨까지 수백 마리가 넘는 리자드를 잡은 덕분이었다.

동시에.

[해골 조각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마귀 저주 스킬 랭크가 E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매드니스 헬름 스킬 랭크가 E랭크로 상승했습니다.]

3개의 스킬이 동시에 랭크업에 성공했다. 리자드 헌터 타이틀 그리고 30레벨 달성이란 성취가 세 스킬들의 숙련도를 대폭 올려준 덕분이었다.

히르칸에게 이런 연쇄적인 알림은 그야말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소년소녀 합창단의 하모니였다. 연쇄적으로 알림이 고막을 두드릴 때마다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부르르!

히르칸이 주먹을 쥐고 몸을 떠는 건 당연했다.

‘그래, 이거지. 이게 영웅도살자 히르칸의 실력이지!’

솔직히 히르칸 본인도 지금 자신이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예전 기록보다 4일이나 단축할 줄이야.’

과거로 돌아오기 전 히르칸이 20레벨에서 30레벨을 찍는 데에 걸린 시간은 24일이었다. 정말 24일 동안 사람이 아니라 시체처럼 게임을 했다. 그것도 혼자 한 게 아니었다. 그때는 게임만큼은 평생 같이하리라 생각했던 김동수, 그와 호흡을 맞췄다.

그때가 전성기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 과연 게임으로 정말 인생역전이 가능할까? 그런 의구심을 가졌던 히르칸과 김동수는 30레벨을 달성하면서 충분히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가질만했다. 게임 좀 한다는 유저들이 30일 걸리는 걸 24일, 6일이나 단축했다는 건 퍼센티지로 따지면 20퍼센트의 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하는 사람과 8초 안에 주파하는 사람 간의 비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히르칸은 거기서 다시 4일을 줄였다.

20일!

‘신기록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현재 100위 랭커들의 평균보다 빠르다.’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히르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으며, 랭커들보다 10개월이나 늦게 게임을 한 히르칸이 그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증거였다.

히르칸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나는 통해.’

동시에 작은 푸념도 뱉었다.

‘이 정도면 소고기 좀 먹어도 될 정도로 훌륭한 거야.’

며칠 전에 홧김에 비싼 소고기를 제대로 먹지도 않고 버린 것에 대한 푸념이었다. 솔직히 그날 밤에 단백질 파우더를 먹으면서 진심으로 그때의 행동을 후회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늦은 법.

‘어휴, 내가 등신이지.’

히르칸이 애써 그날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음?’

그런 히르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등장했다 사라지는 게 잡혔다. 히르칸은 고민하지 않고 해골 전사들을 조각 상태로 만들어 회수한 뒤에 잽싸게 이동하며,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찾아!”

그러자 숨어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히르칸이 있던 곳으로 전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빨리 찾아서 쫓아!”

다급하게 외치는 유저 한 명. 그 유저를 나무 뒤에서 바닥에 엎드리듯 몸을 낮춘 채 살펴본 히르칸이 피식, 웃었다. 히르칸도 잘 알고 있는 유저였다.

‘진짜 등신 새끼가 등장했네.’

며칠 전 세 미녀의 농간에 넘어가 그녀들을 대신해 간악한 히르칸을 응징하겠다고 덤볐다가 제대로 개박살이 난 유저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동료 둘을 이끌고 왔다.

‘30레벨 달성 기념 선물이 알아서 제 발로 오는군.’

히르칸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방문이었다. 때문에 히르칸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오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모습을 드러내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알렸다.

자신감이었다.

세 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해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히르칸은 혼자가 아니다. 그에게는 이제 네 마리의 믿음직한 해골 부하가 있다. 물러설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번에도 괜찮은 거 나오면 소고기 사 먹어야지. 이번에는 절대 버리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젠장 내가 미쳤지.’

5.

한 사내가 늪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사내는 두 눈이 고문을 받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히르칸은 그런 사내를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나 잡으면 그 계집년들이 현실에서 만나서 뽀뽀라도 해준다고 했나? 찐한 키스라도 해주겠다고 각서를 받기라도 했어? 그게 아니면 대체 왜 나를 잡으러 이 고생을 하는 거지?”

히르칸의 말에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짜 뽀뽀를 해주는 거에 목숨을 건 거야? 정말로? 아무리 워로드 목숨값이 현실 목숨값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해도 고작 그 뽀뽀에 목숨을 걸다니. 목숨 걸 게 그렇게 없나?”

“……너 이 새끼,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히르칸의 놀림에 상대가 발끈하며 히르칸을 협박했다. 당연히 히르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협박이었다. 이 정도는 솔직히 히르칸에게 협박도 아니다.

히르칸은 씨익 웃었다.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왼손 손목을 오른손 손날로 툭툭 내리쳤다. 그러자 해골 전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의 왼손 손목을 내리쳤다. 한 번으로 손목은 잘리지 않았다. 제법 묵직한 느낌의 철장갑을 착용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쾅, 쾅!

해골 전사는 마치 해머질을 하듯, 거듭해서 장갑을 제 칼로 내리쳤다. 불똥이 튈 정도로 격렬한 충돌 끝에 철장갑이 망가지고, 상대의 손목이 잘려나갔다.

히르칸이 잘려나간 손목을 집어 들고, 시계만을 빼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살려는 드릴게.”

히르칸은 그 말과 함께 정말로 상대를 확실하게 끝장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이제 슬슬 리자드 늪을 떠날 때가 왔군.’

리자드 늪에서 많은 소득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슬슬 정리를 할 때가 왔다.

무엇보다 히르칸에게 당한 인간이 너무 많다. 애초에 정정당당한 이유가 아니라, 그저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혼자인 히르칸을 잡으려고 다수가 덤벼들던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히르칸을 상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리 없다.

작정하고 덤벼들 것이다. 어쩌면 실력 좋은 랭커를 고용해서 데려올지도 모른다. 워로드에서 돈으로 안 되는 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 전에 정리를 해서 리자드 늪을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사냥터로 매력적인 곳도 아니다. 히르칸의 레벨에는 맞지만, 히

르칸의 능력을 고려하면 지금 히르칸에게 어울리는 사냥터는 30레벨 후반대의 사냥터다.

때문에 남은 건 하나.

‘3일 동안 둥지의 알을 찾아보고, 못 찾으면 포기한다.’

둥지의 알 퀘스트.

데드라인은 3일이다. 3일 동안 전력을 다해서 찾아보고, 없으면 일단은 포기하고 다음 예상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만약 그곳에도 없다면 그때 가서 다시 리자드 늪으로 돌아오는 게 정답이다.

더불어 히르칸은 꾸준히 둥지의 알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고, 나름의 분석도 해봤다.

‘둥지의 알이라지만, 단순한 알은 아니겠지.’

일단 정말 순수한 의미의 둥지 그리고 알일 가능성은 없다.

이 퀘스트는 타락 백작 퀘스트다. 그럼 타락한 힘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알이 타락한 힘에 노출된 걸까? 하지만 그럼 둥지가 의미하는 건 대체 뭐지?’

타락의 힘에 노출된 어떤 몬스터의 알.

참고로 리자드맨의 알은 정말 찾기 힘든 소재다. 몬스터와 다르게 일종의 재료 아이템으로 보물 찾기 하듯 찾아야 한다. 이제까지 히르칸이 찾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히르칸이 찾아야 하는 건 그냥 둥지의 알이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타락한 힘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아힘브리가 그저 평범한 알 하나를 가져오라는 퀘스트를 내줬을 리 없다. 특별한 둥지, 특별한 알이 필요하다.

‘타락한 몬스터가 나오면 나름 확신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타락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몬스터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타락 백작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방츠 성 리자드 늪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검색해봐도 타락한 몬스터 같은 변종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오히려 히르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리자드 늪에 정말 특이한 네크로맨서가 미쳐 날뛰고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더불어 정말로 특이종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 정보를 공개된 게시판에 올리는 경우는 없다. 보통 그런 몬스터는 희귀한 재료 아이템을 드랍하기 마련이다. 그럼 당연히 발견자가 잡으려고 한다. 혹은 그와 관련된 정보를 돈을 받고 팔거나.

팬사이트 관련 정보만으로 해결책을 찾는 건, 솔직히 정말 의미 없는 짓이다. 그저 로또를 사서 당첨을 바라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답은 하나.

‘발로 뛰어야지.’

6.

‘젠장.’

히르칸은 열심히 발로 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로는 일곱 명의 유저들이 열심히 뛰고 있었다.

“잡아!”

“이번에도 놓치면 안 돼!”

히르칸은 뒤에서 들려오는 적의 가득한 목소리에 이를 꽉 물었다.

‘미친 새끼들 게임에서 여자 때문에 저런 짓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젠장!’

히르칸에게 당한 자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의 힘만으로는 히르칸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힘을 합쳤다. 물론 그들이 알아서 모였을 리는 없다. 이제껏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일리아를 포함한 그 꽃뱀 세 마리가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그들은 나름 작정을 하고 히르칸을 잡기 위해 무려 열 명의 무리를 조성했다.

전후 사정은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미녀의 말에 홀딱 넘어가 모이는 숫자치고는 꽤 많은 숫자였다. 그런 그들은 곧바로 히르칸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후의 결과가 지금 이 결과였다.

히르칸은 도망치고 있었다.

솔직히 히르칸이 아무리 대단해도 지금 전력에서 자신보다 레벨이 높거나 비슷한 10명을 상대로 정면에서 붙어 이길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동시에 히르칸은 지금 이 시점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싶은 생각 역시 추호도 없었다.

그럼 남은 답은 줄행랑뿐!

그나마 다행인 건 히르칸이 올힘 네크로맨서인 덕분에 도망치는 데에는 선수라는 점과 리자드 늪의 지형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빠삭하게 머리에 인지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너 이 새끼!”

절체절명의 순간.

‘해골 전사 소환!’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바쳐줄 희생양을 부릴 수 있다는 것.

히르칸이 소환한 해골 전사를 잽싸게 히르칸이 지나간 길목을 막아섰다. 그런 해골 전사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앞서 달리던 검사 유저들이 동시에 해골 전사에게 칼을 휘둘렀다.

휘익!

첫 번째 검사 유저의 칼은 피했지만.

콰직!

두 번째 검사 유저의 칼은 해골 전사의 어깨뼈를 분질렀고.

쾅!

세 번째 검사 유저의 칼은 방패로 막아냈으나.

콰직!

앞서 칼을 휘두른 첫 번째 검사의 재차 이어진 칼질에 해골 전사의 목뼈가 부스러지며 머리통이 바닥에 굴렀다. 그런 해골 전사의 몸뚱이는 검사들의 분풀이 앞에 잘게잘게 부서졌다.

히르칸은 빠져나가는 마력으로 그 사실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히르칸이 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내 부하를…….’

어차피 죽는 게 일상인 해골 전사다. 죽는다는 표현도 웃기다. 애초에 언데드 타입 아닌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해골 전사가 적에게 농락당하듯 죽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게 되니 속이 썼다.

무엇보다 해골 전사는 충신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히르칸을 배신하지 않았고, 히르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쳐줄 고마울 자들이었다. 비록 그게 설계된 인공지능 때문이라고 해도, 배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쓴맛을 맛본 히르칸에게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부하이자, 동료였다. 그런 그들의 가차 없는 희생에 분노를 느끼지 않기에는 히르칸의 피는 그 누구보다 뜨겁기 그지없었다.

‘이 새끼들. 얼굴 다 기억해뒀어. 내가 조만간 아주 작정하고 복수를 해준다. 전부 다 죽여서…….’

그때.

‘어?’

히르칸은 당황했다.

‘뭐지?’

당혹감의 이유는 주변 환경이었다. 히르칸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지형지물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이제까지 리자드 늪을 거의 뒤지다시피 들쑤셨던 히르칸이다. 물론 그런 그가 모르는 장소가 있을 순 있다. 분명한 건 히르칸이 모르는 장소라면, 그에게 유리할 건 하나도 없다는 의미다.

히르칸이 긴장했다.

‘리셋? 이벤트 필드?’

모르는 장소가 아니라면, 지역이 리셋됐을 가능성도 있다. 워로드는 식물이 마구잡이로 자라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 점을 노리고 때때로 유저들이 작심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식으로 지역을 개간한다. 그럴 경우 상황에 따라서 지역을 리셋한다. 유저가 단 한 명

도 없는 공간의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날 경우, 그 공간의 환경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벤트 필드는 말 그대로 이벤트를 위해 갑자기 필드가 바뀌는 경우를 말한다. 특정 몬스터를 만나거나, 인스턴스 던전 등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쨌거나 히르칸은 주변을 경계했다.

지리를 모르는 만큼 어디에 깊고 넓은 늪 지역이 펼쳐져 있는지, 어디가 그나마 싸우기 좋은 탄탄한 땅이 있는지, 늪에 빠지지 않고 지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그 사실 역시 알 리 없다.

그 순간 히르칸의 눈앞에 검은 늪이 모습을 드러냈다. 늪을 보는 순간 히르칸은 위기감을 느꼈다.

‘저기 들어가면…… 좋은 꼴은 보기 힘들어.’

그 순간 히르칸이 늪을 향해 해골 조각 하나를 던졌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세 번 튕겼다.

검은 늪 위에 등장한 해골이 늪에 빠진 채 되지도 않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사이 히르칸이 모습을 감췄다.

7.

“저건 또 뭐야?”

갑자기 등장한 검은 늪 속에서 춤을 추는 해골 전사를 발견한 히르칸 척살대 무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빌어먹을 네크로맨서 새끼가 이런 식으로 장난을…….”

정말 귀신보다 더 귀신 같이 도망치는 히르칸을 쫓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도발을 당하니, 짜증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접고 싶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섰다. 늪으로 들어가, 해골 전사를 가차 없이 뭉개기 위한 작업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했다.

“단숨에 죽이지 말고, 녀석 때문에 네크로맨서 새끼가 마력을 소모할 수 있도록 파손만 해! 어차피 네크로맨서는 마력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그 말에 늪으로 들어간 세 명의 검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사제와 마법사,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는 검사들은 주변을 경계했다. 상대는 이제까지 그들을 애처럼 가지고 놀았던 괴상망측한 타입의 네크로맨서였다. 이미 히르칸에게 몇 번이나 살해당한

입장에서 방심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때.

“응?”

검은 늪을 향해 모든 감각을 집중하던 사제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자신의 두 눈을 개구리처럼 껌뻑였다.

‘뭐지?’

그런 사제의 눈에 다시금 무언가가 잡혔다. 빠른 속도로, 검은 늪을 물처럼 헤엄치면서 등장하는 그것은 6미터는 될 법한 아주 긴 몸길이를 가진 괴물이었다.

스으, 스으!

그 몬스터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검은 늪에 발을 들여놓은 세 명의 검사 그리고 한 마리의 해골 전사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조심……!”

사제가 위기를 파악하고, 경고를 외치려고 하는 순간.

푸홧!

검은 늪이 폭발하듯 터지며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가 등장했다. 거대한 입을 벌린 채 등장한 도마뱀은 그 입으로.

덥석!

검사 유저 한 명의 몸뚱이를 물어버린 후에 잽싸게 검은 늪 안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감추었다.

순식간에 한 명이 사라졌다.

‘어?’

‘뭐지?’

그 광경을 보던 모든 이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동안 사고가 정지됐다. 해골 전사만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은 채 춤을 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패닉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건, 근처에서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히르칸이었다.

히르칸은 그 찰나의 순간 등장한 괴물의 정체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드래곤 리자드. 설마 둥지라는 게 드래곤 리자드의 레어를 의미하는 거였나?’

드래곤 리자드.

몬스터 레벨은 40레벨. 보스 몬스터 타입으로 일반 몬스터에 비해 곱절이나 되는 방어력과 체력, 공격력을 가진 존재였다.

< 12화. 타락의 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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