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30화 (30/192)

< 11화. 리자드 늪 (1). >

1.

잡기 쉽고, 경험치도 많이 주고, 아이템 보상도 짭짤한 몬스터를 싫어하는 유저는 없다.

하지만 이런 아주 맛깔나는 몬스터들이 가득한 사냥터는 필연적으로 유저가 몰릴 수밖에 없다. 사냥 난이도가 일반적인 콘솔, PC게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워로드라면 더더욱 사냥터 쏠림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워로드의 사망 페널티는 생각보다 세

다. 쉽고 안전한 길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냥터에 몬스터보다 유저가 더 많이 출몰하고, 그런 곳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두고 다른 파티와 언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렇게 유저들 구경만 할 바에는 차라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힘들고, 인기 없는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은 생각.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길 경우 대개 피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젠장! 내가 이래서 여기 오지 말라고 했잖아!”

“말을 먼저 꺼낸 건 너였거든?”

지금 열심히 늪을 지나가는 두 명의 유저들이 그랬다. 원래 두 명은 아니었다. 두 명이 파티를 맺고 사냥터에 오는 경우는 없다. 필시 동료 중 한 명 또는 두 명이 이미 피를 보고 게임오버를 당했고, 남은 둘이서 도망치는 중일 터.

동료까지 잃고 도망치는 그들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는 없었다.

“빌어먹을 무슨 이런 빌어먹을 사냥터가 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돼? 넌 그 단어가 없으면 말이 안 나와?”

“뭐? 지금 시비 거는 거냐?”

당연히 기분도 안 좋은 상황에서 안 좋은 말만 뱉다 보면 시비가 붙을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리자드 늪은 여러모로 파티원들의 동료애를 확인하기 좋은 사냥터였다.

그린 리자드맨들이 모여 있는 리자드 늪은 30레벨의 사냥터다. 하지만 유저들은 리자드 늪을 30레벨 후반에서 40레벨 초반 사냥터로 평가한다.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리자드맨이 잡기 어려운 타입의 몬스터라는 점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칼이라는 무기를 쓰는 리자드맨은 기존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몬스터다. 그렇다고 사람하고 싸우는 것과 비슷한 것도 아니다. 경험이란 게 무색하다. 리자드맨

과 같은 몬스터와 싸운 경험은 가상현실게임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늪이라는 환경이다. 늪에서는 전투도 어렵고, 도망치는 것도 어렵다. 전투가 꼬이면, 상황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다. 특히 탱커 타입의 유저가 무너지기 쉽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만 제외하면, 리자드맨 자체의 공격력, 방어력, 체력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즉, 이런 요소들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면 리자드 늪은 나름 괜찮은 사냥터가 될 수 있다.

‘포인트는 여기인가?’

히르칸이 발을 구르며 땅바닥을 확인했다. 땅은 옅은 발자국만 남기는 것으로 자신의 단단함을 증명했다.

‘좋아. 여기가 C포인트.’

단단한 땅.

이게 늪지대 사냥터의 공략법 중 핵심이다. 늪에서 싸울 생각을 하는 것보단 변수 없는 전투를 치를 만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을 확보하고, 확보한 포인트를 중심으로 활동범위를 잡아야 한다.

이게 사냥의 기본이다. 원래 낚시꾼들도 포인트를 잡고 낚시를 하듯이 포인트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사냥에 나서는 건 정말 미련하고 동시에 위험한 짓이다.

그 후에는 유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워로드에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능력이 바로 유인 능력이다. 유인 능력이 뛰어난 탱커는 특급 대우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개인 역량이 중요한 부분이다.

히르칸의 주특기는 아니다. 하지만 리자드맨은 어그로가 잘 끌리는 몬스터다. 유인은 어렵지 않았다.

‘아깝네.’

그렇기에 히르칸은 리자드 늪에서 사전 전투 준비를 하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리자드 늪에서 사냥 하이라이트 영상 내놓으면 못해도 조회수 1만은 가뿐하게 찍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전투가 쉽게 풀릴 조짐이 곳곳에서 보였다. 리자드맨의 개체수도 적당했고, 포인트 삼을만한 지역도 많았다. 세간에서 난이도가 높다는 건 거품이 끼어 과장된 측면이 컸다.

덕분에 여러모로 괜찮은 영상이 나올 만한 조건을 대부분 성립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르칸은 참아야 했다.

‘정체도 모르는 새끼들 때문에 내가 왜 이런 손해를 봐야 하는 거지? 빌어먹을 놈들.’

고레벨 유저들, 세력들을 상대로 의심을 사도 될 만한 능력이 지금의 히르칸에게는 없었으니까.

‘오냐, 참는다.’

그러니까 이번은 참아야 했다.

물론.

‘나중에 내가 랭커 되면 다 죽었어.’

이대로 참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지금 페이스는 매우 우수하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할 만한 밑거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원하는 수준의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모든 게 역전될 것이다.

히르칸은 그 날을 상상하며 히죽 웃었다.

웃으면서 하회탈을 꺼내 뒤집어썼다.

2.

녹음(綠 陰)과 비슷한 초록빛의 비늘을 품고 있는 리자드맨은 얇고 길쭉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눈앞의 적을 바라봤다. 리자드맨의 눈앞에는 리자드맨의 골격을 가진 해골 전사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둘은 칼을 앞세운 채 서로 바라만 봤다. 충돌할 기미는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 둘을 붙인 건.

딱딱!

어디선가 들려온 손가락 튕기는 소리였다.

소리가 터지자, 해골 전사가 먼저 움직였다. 해골 전사가 높게 칼을 들고, 가볍게 그리고 날렵하게 리자드맨과의 거리를 좁혔다. 높이 든 칼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캉!

리자드맨은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해골 전사의 칼을 자신의 칼로 거침없이 쳐냈다.

쳐낸 후 곧바로 칼을 재차 휘둘렀다. 해골 전사는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허리를 뒤로 젖혀 피했다. 거기서 해골 전사는 뒷걸음질 치면서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리자드맨이 그 모습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본인이 거리를 좁히면서 칼을 휘둘렀다. 해골 전사가 날아오는 칼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금 칼을 휘둘렀다.

캉!

두 자루의 칼이 교차하며 쇳소리를 터뜨렸다.

그 쇳소리 사이로.

“헬름 온.”

주문이 스며들었다.

“본 아머.”

전투를 바라보던 히르칸이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해골 전사의 이마에 두 개의 뿔이 솟아났다. 그리고 해골 전사의 갈비뼈와 등뼈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허전했던 갈비뼈 사이가 메워지기 시작했다. 해골 전사가 마치 하얀 뼈로 만든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동시에 해골 전사의 눈동자가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해골 전사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뒤로 피하던 해골 전사가 이제까지와 다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거칠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리자드맨은 이 갑작스러운 거친 공세를 피하지 않았다. 본인도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맞부딪쳤다.

연거푸 터지던 쇳소리가 멎은 건 그 둘이 비슷하게 휘두른 공격이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끼릭, 끼익!

쇠끼리 맞물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 잡음 사이로.

‘깊은 늪 속 리자드맨 옆구리, 누가 와서 먹나요.’

히르칸이 움직였다.

히르칸은 해골 전사와 대치하고 있는 리자드맨의 근처까지 단숨에 접근한 후에 리자드맨의 옆구리 비늘 가죽을 향해.

푹!

자신의 검을 찔러 넣었다.

은밀하게 접근한 만큼 위력은 대단치 못했다. 들어간 깊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에 불과했다. 리자드맨의 덩치, 가죽의 두께 등을 고려하면 데미지를 염두에 두기 힘든 정도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히르칸이 하회탈 아래로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히르칸의 공격에 리자드맨이 반응을 했다. 대치 중인 상황에서 고개를 휙 돌려 히르칸을 바라봤다.

그뿐이었다.

리자드맨이 혀를 날름거리고 히르칸을 향해 눈알을 부라렸지만, 그게 녀석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당장 히르칸에게 본때를 보여주기에는 그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마저도 실수였다.

히르칸의 검은 마귀 저주를 머금고 있었다. 그 마귀 저주 효과가 발동했다.

리자드맨의 능력치가 10퍼센트 감소했다.

매드니스 헬름 버프로 20퍼센트의 능력이 증가한 해골 전사와 박빙을 벌이던 리자드맨의 능력치가 10퍼센트 감소한다는 건, 박빙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끼이익!

리자드맨의 검이 밀리기 시작했다. 리자드맨이 잽싸게 고개를 돌려 해골 전사를 바라봤고.

푹!

히르칸이 재차 리자드맨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츠릉!

그 순간 해골 전사가 리자드맨의 칼을 밀어냈다.

틈이 생겼다.

쉬익!

그 틈을 해골 전사가 자신의 칼로 거침없이 베어냈다. 해골 전사의 칼이 리자드맨의 어깻죽지를 베었다. 피가 심하게 튀길 정도로, 깊숙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이 순간에도 히르칸은 작업을 했다.

푹푹!

히르칸은 리자드맨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같은 부위를 거듭해서 찔렀다. 상처를 파냈다.

츠르르!

리자드맨이 혓바닥을 날림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 몸부림 앞에서 히르칸은 거리를 벌렸고, 해골 전사는 재차 리자드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투에서 나온 히르칸이 해골 전사 한 마리를 더 소환했다. 이후 전투는 쉴 새 없이 진행됐다.

매드니스 헬름 효과를 받은 해골 전사와 리자드맨은 다시금 전투를 시작했고, 히르칸과 새로이 소환된 해골 전사는 그런 리자드맨의 측면과 후면을 거듭해서 찔렀다.

서걱, 비늘과 살점이 잘리는 소리와 끼긱! 단단한 뼈가 긁히리는 소리 그리고 푹푹! 날카로운 것이 살점을 뚫는 소리가 뒤엉켰다. 리자드맨의 수명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고요한 전장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3.

‘1분 22초.’

히르칸은 녹아내리기 시작한 리자드맨의 사체 앞에서 전투 시간을 가늠했다.

“와우.”

‘나 좀 짱인듯?’

30레벨 몬스터인 리자드맨을 20레벨에 불과한 히르칸이 잡는데 9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리자드맨이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체력과 방어력이 강한 타입도 아니고, 대형 몬스터도 아니니, 숙련된 실력자로 조합된 3인 파티라면 3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놈이다. 달리 말하면 히르칸의 전투 능력이 숙련된 실력자로 구성된 3인 파티 이상이란 의미였다.

솔직히 히르칸의 기준에서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히르칸이 만약 과거로 돌아오기 전처럼 검사 직업을 택했다면, 이 정도 전투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유니크 아이템을 최소 다섯 부위 이상, 무기는 무조건 유니크 아이템을 착용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번 전투에서 히르칸은 리스크를 거의 감수하지 않았다.

‘매드니스 헬름과 본아머의 궁합이 이 정도로 좋을 줄이야.’

해골 전사가 제대로 탱커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매드니스 헬름은 소환물의 성격을 공격적으로 바뀌어준다. 임전무퇴, 뒷걸음질이란 선택지는 없다. 여기에 히르칸의 교육 덕분에 근접전에서의 회피 능력도 보여줬다. 회피 능력은 곧바로 전투 능력으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아머를 통해 방어력을 확보했다. 덕분에 해골 전사가 입는 데미지를 크게 줄였고, 마력 소모도 덩달아 줄일 수 있었다. 본 아머를 사용하는데 소모되는 마력이 적은 건 아니지만, 리자드맨이 아니라 그보다 더 센 몬스터를 상대를 할 때는 오히려 이

게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탱커가 몬스터를 잡아두는 사이 몬스터의 허점을 노리고 공격하는 건 히르칸의 주특기다.

‘베스트 포메이션이 완성됐군.’

이게 바로 히르칸이 바라던 전투였다.

모든 게 그렇지만 바라던 게 이루어질 경우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히르칸도 마찬가지였다.

‘이 기세를 식힐 이유가 없지.’

이런 날이 종종 온다. 정말 사냥이 끝내주게 잘 되는 날! 자주 오는 날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날이 오면, 이 상황에서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한다.

‘좋아. 알 찾기는 일단 내일로 미루자. 어차피 당장 찾을 수도 없는 놈이고.’

히르칸, 그가 본격적인 리자드 늪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정하고 사냥을 시작한 그의 전투는 곧바로 몇몇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4.

“여기에 오지 말자고 했잖아?”

“너무 힘들어. 언니, 그냥 돌아가자.”

“그래, 그냥 돌아가자.”

그 3인 파티는 조합이 독특했다. 모두가 여성 유저로만 구성되어 있는 파티였다. 행색은 좋지 못했다. 이곳저곳에 묻은 진흙이 그들이 늪을 굴렀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물론 워로드에서 생성되는 캐릭터 얼

굴과 현실 얼굴은 큰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나름 지나가다가 헌팅을 당할 정도는 됐다. 세 명은 각자의 개성을 가진 미녀들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고작 리자드 다섯 마리 잡고 돌아갈 순 없어! 그럼 손해라고!”

두 명의 푸념에 다른 한 명이, 리더로 보이는 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이동하자. 일어나.”

“힘들어.”

“게임인데 뭐가 힘들어? 일어나!”

그런 그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발견할 수 있었다.

“우와! 저 사람 봐!”

“누구지? 엄청나네. 실력 끝내준다.”

그녀들과는 다르게 말도 안 되는 전투를 통해 리자드맨을 잡는 어마어마한 유저를.

그 유저의 전투를 본 파티장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쟤한테 붙자. 어때?”

그런 파티장의 제안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전염병처럼 나머지 셋의 입가에도 번졌다.

< 11화. 리자드 늪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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