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아힘브리 (1). >
1.
[히르칸]
- 레벨 : 20
- 직업 : 마법사
- 타이틀 : 5개
- 능력치 : 근력(116)/체력(28)/지력(70)/마력(71)
머드 트롤과의 전투가 끝나는 순간 레벨이 올랐다. 히르칸은 영상 촬영을 마친 후에 곧바로 시계를 조작해 능력치를 살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진 숫자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법했지만, 히르칸의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히르칸은 능력치 창을 오래 보지 않았다. 곧바로 종료한 후에 전투를 마친 해골 전사들을 바라봤다. 해골 전사들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곳곳에 너부러진 자신의 뼈 조각들을 주워 몸에 끼우고 있었다. 히르칸이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 ………란 의미의 제스처.
그러나 해골 전사들은 그 제스처를 보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히르칸이 손가락을 까닥이고, 자신의 발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해골 전사들이 멀뚱이 그 장면을 바라만 봤다.
히르칸이 결국 목청을 높였다.
“이리 오라고! 내 주변으로 모여!”
그제야 해골 전사들이 빠르게 히르칸의 주변에 모였다. 히르칸은 그들이 모이자마자 바닥에 쭈구려 앉았다. 그리고는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점 다섯 개를 찍었다.
“이건 아까 잡은 머드 트롤. 이건 너, 이건 너, 이건 너. 그리고 이건 나.”
그리고는 곧자로 점을 기준으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봐봐, 여기서 이렇게 뒤로 접근했으면 놈이 당연히 반응을 하고 몸을 돌린다고. 그럼 좌우 측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해? 응? 적이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왼쪽에 있던 놈이 뒤를 공격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오른쪽에 있던 놈이 뒤를 칠 기
회를 얻잖아? 그럼 그걸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지!”
마치 작전 타임을 외친 후 열심히 작전을 설명하는 감독처럼 히르칸은 연신 설명을 했다.
설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히르칸이 해골 한 마리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휙!
해골 전사는 잽싸게 피했다. 히르칸의 교육 덕분에 그들은 히르칸의 어떤 공격도 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종류의 교육 시간이 아니었다.
“어쭈 피해? 그래, 피하는 건 좋아. 그런데 아까 왜 점프를 해서 피했어? 너 날개 있어? 공중에서 방향 틀 수 있어? 없는데 왜 아까 거기서 폴짝 점프를 해?”
히르칸의 그 말에 해골 전사들은 여전히 말 없이 멀뚱히 히르칸을 바라만 봤다.
사실 지금 히르칸의 행동은 속된 말로 뻘짓이었다. 해골 전사들은 이런 작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가진 전투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통해서 학습을 하지, 말을 통한 학습 방법은 없다. 히르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하는 건, 일종의 자기 반성이었다. 스스로에게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필요했는지. 그런 자기 반성의 시간은 제법 길었다. 히르칸은 이리저리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전투를 채점했다.
‘아주 그냥 부족한 것투성이라니까. 60점짜리도 못 되는 전투였어.’
100점 만점에 60점.
그게 히르칸이 조금 전 전투에 대해 줄 수 있는 점수의 전부였다.
물론 히르칸은 이런 과정을 자책으로 연결하진 않았다. 자기반성은 자기반성에서 끝내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래도 20레벨을 예상보다 12시간이나 더 일찍 찍은 건 칭찬해줄 만하지.’
당장 최우선 목표였던 20레벨을 달성했다. 그곳도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일찍!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걸로 광고는 확실히 되겠지.’
결과를 만들었는데 능력이 의심 받는 경우는 없다. 적어도 당분간 히르칸의 능력은 검증 상태로 남을 것이다. 검증 상태로 남는 동안이 페이스 조절을 위한 기회였다.
레벨업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워로드에서는 레벨업보다 더 가치 있는 수확물이 곳곳에 있다.
‘자, 그럼 방츠성으로 가자고.’
이번에는 그 수확물들을 거둘 때다.
2.
히르칸은 방츠 성의 높은 성벽이 보이는 순간.
“슬롯온.”
착용한 아이템을 바꾸었다.
가죽옷에 어울리지 않는 마법사 모자를 쓰고 있던 괴팍한 히르칸의 패션이 토벌협회에서 보급해주는 보급품을 입은 평범한 패션으로 바뀌었다.
‘나도 별 지랄을 다하는구나…….’
사실 게임 속에서 고작 패션을 위해 일일이 아이템 슬롯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 길드 유니폼 정도만 그럴 가치가 있다. 애초에 슬롯 체인지에는 쿨타임도 있고, 슬롯은 3개가 한계다. 이런 중요한 슬롯 중 하나를 고작 패션만을 위해 채우는 건 그리 효율적인 선택
이라 할 수 없을 터.
더불어 히르칸은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패션의 알파벳이 P로 시작한다고 해도 믿을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히르칸도 차마 사람 넘치는 곳에서 가죽 패션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 가죽 바지까지는 참겠는데 가죽 상의에 마법사 모자는 히르칸이 보기에도 혐오스러웠다.
‘하회탈로 얼굴을 가려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어휴.’
사실 그 덕분에 영상 조회수는 잘 올랐다. 리플도 다수 달렸다. 대부분 폭소를 터뜨리는 내용이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리플이 달리는 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그렇게 복장을 바꾼 히르칸이 방츠 성의 활짝 열린 성문을 넘어갔다.
그리고 히르칸이 성문을 넘는 순간 성문에 진을 치고 있던 길드 관계자들이 앞 다투어 히르칸에게 달라붙었다.
“혼자 다니지 말고 우리 길드 가입하는 게 어때? 아이템 지원 및 사냥 지원해줄게.”
“용케 그 복장으로 혼자 여기까지 왔네. 그런데 다음에도 그렇게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지. 우리 길드에 들어오라고. 괜히 어설프게 혼자 다니다가 죽어서 손해 보지 말고.”
“우리 길드는 유료 길드다. 대신에 돈을 내는 만큼 아이템 스폰서는 확실하지! 들어와라!”
“너 우리 길드의 길드원이 돼라!”
정말 귀찮을 정도였다. 한 명의 손을 뿌리치면, 다른 놈이 그 손목을 잡고 길드 가입 제안을 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비슷한 꼴을 당했지만, 히르칸은 확실히 그 빈도가 높았다.
‘젠장, 내 마빡에 호구라고 박혀 있나? 왜 난 만날 이러지?’
히르칸 입장에서는 자주 겪는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못했다.
보통 가상현실게임에서 외모나,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만한 취급을 받는 건……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어쨌거나 기분 좋게 방츠 성으로 들어왔던 히르칸이 첫 번째 목적지인 마법사 클래스 타워에 도착했을 때, 그의 표정은 구겨질 수 있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전부 쓸어버렸을 텐데.’
투덜투덜.
껌을 씹듯, 입안으로 계속 불만을 씹는 히르칸. 그런 그가 클래스 타워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공짜 스킬!
워로드에서는 10레벨 구간마다 노멀 등급의 스킬 하나를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히르칸의 경우에는 1레벨 때 해골 조각을, 10레벨 때 마귀 저주를 습득했다. 네크로맨서들의 정석 스킬트리다. 당연히 20레벨에 습득할 마법 스킬도 정해져 있었다.
본 아머.
20레벨 소환 스킬이다. 해골 조각 스킬 랭크가 E랭크 이상이어야만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며, 네크로맨서 본인의 방어력 강화 및 해골 전사에게도 적용되는 아주 유용한 스킬이었다.
무엇보다 소환 스킬트리의 뼈대 같은 스킬이기도 했다. 1레벨에 해골 조각을 배우고, 20레벨에 본 아머, 30레벨에 해골 마법사를 습득하고 일정 스킬 랭크를 갖춰야 40레벨 때 배우는 골렘 소환 마법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다.
‘저주 마법은 스킬북을 구매해야 해서 얻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주 마법은 스킬북을 통해 구매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저주 마법은 저주 법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스킬북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쳇. 돈이 최고라니까.’
최근 거듭된 투자로 식비조차 백 원단위로 계산하기 시작한 히르칸에게 스킬북 구매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히르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
[본 아머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본 아머를 습득한 히르칸은 곧장 토벌협회 방츠 성 지부로 이동했다.
토벌협회에 도착하는 순간, 길드 유저들이 히르칸의 성깔을 당연하다는 듯이 긁기 시작했다.
하지만 히르칸은 앞선 클래스 타워 때와는 다르게 표정을 구기지 않았다. 토벌협회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천금 같은 기회가 왔다.’
그 정도로 이번 일은 공짜 스킬보다 중요했다.
‘아힘브리와의 접점을 만들어놓는 게 중요해.’
아힘브리로부터 스킬북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히르칸은 여기서 스킬북만 얻고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힘브리를 통해 추가 퀘스트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워로드의 NPC는 수동적이다. 유저 본인이 요구를 하기 전에 NPC가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히르칸이 아힘브리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싶으면 그쪽이 원하는 걸 파악하고 찔러야 한다. 대화를 하면서 나누는 단어 하나하나를 파악
할 줄 알아야 한다.
히르칸이 가장 자신 없어 하는 부분이다. 솔직히 히르칸은 싸우는 것 하나는 기똥차지만, 화술(話術) 쪽은 평균 이하이니까. 만약 정말 워로드가 현실 같은 게임이었다면, NPC들이 사람처럼 영악했다면 히르칸은 정말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좋아.’
각오를 마친 히르칸이 토벌협회에 마련된 창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25레벨 레어 퀘스트 얻었습니다! 같이 사냥하실 분?”
“퀘스트 같이 하실 마법사 분!”
토벌협회는 언제나 그렇듯 시장 분위기였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히르칸은 창구의 NPC에게 말했다.
“호탄 님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이 추천장을 보여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NPC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줬다.
“7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상황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히르칸은 안내를 받는 순간 곧장 7층으로 가기 위한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가는 통로 입구 앞에는 NPC들이 서 있었다. 히르칸은 그들에게 호탄의 추천장을 보여줬고, 그들은 곧바로 길을 열어줬다
그렇게 히르칸이 계단을 막 오르려고 할 무렵.
“어? 왜 막아?”
“증명.”
“증명이라니? 저 사람도 그냥 지나갔는데 무슨 증명이야?”
“저기 지나간 사람이 내 동료입니다. 같이 들어가는 겁니다.”
히르칸이 지나온 길목이 소란스러워졌다. 히르칸을 따라 가려던 몇몇 유저들이 곧바로 NPC의 제지를 받았다.
히르칸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이에나 새끼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썩 기분 좋은 종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른 유저가 뭔가 특별한 걸 한다 싶으면 뒤를 밟아서 다른 유저의 노력을 날름 먹어치우려는 하이에나 같은 부류들의 울음이니까. 그런 울음이 좋게 들릴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저런 부류들은 나중에 수틀리면 PK도 서슴지 않고 거는 족속들이다. 이익에 민감한 자들이고, 이익이 된다 싶으면 얼마든 폭력과 비매너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자들이니까.
‘저런 놈들이 제일 위험하지.’
히르칸이 그런 하이에나들의 울음을 뒤로 한 채 7층으로 올라갔다. 복도가 등장했다. 여러 개의 문들이 복도의 옆을 채우고 있었다. 히르칸이 복도를 지나가며 문에 써있는 글자들을 읽었다.
‘아힘브리!’
이윽고 원하는 글자를 찾는, 노크를 했다.
똑똑, 끼익!
노크를 하기 무섭게 문이 저절로 열리며 10평 남짓한 사무실이 히르칸 시선을 채웠다.
‘개판이네?’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사무실 안을 무수히 많은 책과 문서 따위가 무질서하게 채우고 있었다. 때문에 비좁은 수준을 넘어서 히르칸의 감상 그대로 개판이었다.
좀 더 과장하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공간만 있어고, 그 공간의 끝에는 책상과 40대 중년으로 보이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콧잔등 위에 살짝 걸친 안경 너머로 히르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르칸이 곧장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히르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힘브리를 보게 될 줄이야.’
아힘브리.
히르칸은 그저 동영상을 통해서만 봤던 인물이다. 그 정도로 굉장히 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이런 NPC의 사적인 공간에서는 영상 촬영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공개된 장소에서 아힘브리가 등장했을 때가 그의 얼굴을 볼 기회인데, 그는 어지간한 유저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실력자다.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가 나오면 어지간한 경
우는 그가 혼자서 다 해결해버릴 테니까. 유저들이 할 게 사라지는 거다.
“호탄의 소개장을 받고 왔다고.”
히르칸이 인사를 마치고 허리를 피는 순간 대화가 시작됐다.
“예.”
히르칸이 곧장 그에게 다가가 소개장을 보여줬다. 소개장을 읽던 아힘브리는 소개장을 자신의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실력이 괜찮은 모양이군. 호탄이 사람 보는 눈이 높은 편인데.”
“좋게 봐주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호탄이 잘 봤다고, 내가 자네를 좋게 볼 이유는 없지. 안 그런가?”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물론입니다.”
히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롭게 말을 이어갔다.
“만약 기회를 주신다면, 아힘브리 님께 제 실력과 가능성을 증명하겠습니다.”
너무 직설적인 말이었다.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어지간한 호인이 아닌 이상 눈총부터 보낼 것이다.
그러나 워로드에서는 NPC를 상대로 이렇게 본격적이고 직설적인 게 통한다.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NPC가 가진 데이터 베이스에 몇 시간 정도 기록으로 저장된 후 삭제된다. 그 정도로 그들의 자극점은 유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워로
드를 오래한 히르칸은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히르칸의 태도는 통했다.
아힘브리는 히르칸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진한 미소였다.
“내 평가 기준은 호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게 제 수준인 거지요.”
“흑마법사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군.”
아힘브리가 말과 함께 자신의 책상을 똑똑, 두 번 노크하자 어질러진 책더미 사이에서 책 한 권이 나비처럼 펄럭이며 히르칸의 근처까지 날아왔다. 히르칸이 책을 잡았다. 책의 표지를 살폈다.
[매드니스 헬름]
히르칸이 속으로 고개를 갸웃해다.
‘뭐지?’
처음 듣는 스킬 네임이다. 헬겐이 알려준 스킬 목록 어디에도 없던 녀석이다.
하지만 히르칸이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게 호탄이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네. 이걸로 호탄과의 이야기는 끝.”
[퀘스트 ‘아힘브리의 가르침’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와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지금 내가 찾는 사람은 오직 한 부류의 사람일세. 타락한 자의 힘에 맞서 싸울 실력자.”
[퀘스트 ‘둥지의 알’이 시작됩니다.]
연달아 들리는 알림에 히르칸이 마음 속 주먹을 움켜쥐었다.
‘난 워로드가 이래서 좋아. 괜히 머릿속으로 사람처럼 야비하게 주판알을 튕기지 않잖아?’
하지만 히르칸의 기쁜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험 기회는 한 번 뿐.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자네가 다시 나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걸세. 참고로 자네처럼 호탄을 통해 내게 온 자들 중에서 내 시험을 통과한 자는 지금까지 정확히 열아홉 명 밖에 없다네.”
‘어?’
아힘브리의 그 말은 히르칸을 말고도 이미 앞서서 열아홉 명이나 더 통과했다는 의미. 더불어 통과자가 열아홉이라면, 응시자는 그의 곱절 이상이라는 의미일 터.
‘젠장.’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히르칸이 모를 리 없었다.
‘꼬리가 한 번 밟히겠군.’
< 10화. 아힘브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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