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26화 (26/192)

< 9화. 운칠기삼 (3). >

8.

히르칸의 머리 위로 포레스트 베어의 묵직한 팔이 스쳐 지나갔다.

후웅!

섬뜩한 소리도 함께 스쳐 지나갔다.

‘어휴.’

히르칸은 이 섬뜩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고개를 들어 포레스트 베어와 눈을 마주치는 건 물론 쥐고 있는 검을 들어 놈을 당장에라도 찌를 듯한 기세 역시 숨기지 않았다.

포레스트 베어는 그런 히르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녀석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히르칸만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을 향해 명백하게 적의와 공격성을 나타내는 놈을 두고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어어엉!

숲이 포레스트 베어의 우렁찬 울음에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그래, 이때다! 들어와! 어그로 완벽하게 끌었어!’

히르칸이 속으로 주문을 했다. 그 주문에 응하기 위해 해골 전사가 폴짝! 뛰었다. 포레스트 베어의 드넓은 등짝에 칼을 꽂기 위해 몸을 날린 해골 전사의 모습에는 위엄이 가득했다.

푹!

해골 전사의 칼은 기어코 살점을 뚫고 제법 깊숙하게 박혔다. 해골 전사는 칼이 박히는 순간, 칼을 손에서 놓은 채 포레스트 베어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위해 잽싸게 움직였다.

우어!

포레스트 베어가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등을 돌렸다. 당장 자신에게 칼을 찔러넣은 놈을 잡고자 했다.

우어?

그런 포레스트 베어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을 찌르고 도망간 놈이 아니라, 자신의 측면을 향해 일직선으로, 정말 너무 뻔한 모습으로 달려오는 해골 전사였다.

우어!

포레스트 베어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신에게 뻔하게 접근하는 해골 전사의 머리통을 손으로 후려쳤다.

빠악!

해골 부셔지는 소리와 함께 해골 전사의 머리통이 정말 꽤 멀리까지, 찾기 힘들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본 히르칸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야이 멍청한 놈들아! 호흡을 맞추라고! 동료가 등줄기에 칼을 꽂았으면, 놈이 몸을 돌릴 걸 예상하고 한 박자 쉬고 들어가거나, 다음 기회를 노렸어야지! 거기서 그렇게 뻔하게 들어가는 거랑 골키퍼 앞에 공을 굴려주는 거랑 뭐가 달라?”

그때 남은 한 마리의 해골 전사가 포레스트 베어를 향해 무작정 덤벼들었다.

“야!”

딱!

히르칸이 기겁하며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앞선 동료처럼 뻔한 동선을 그리며 돌진하던 해골 전사가 뼈를 엮어 만든 방패를 앞세운 채 방어모드로 전환했다.

크르르…….

포레스트 베어가 그 광경을 보며 멈칫했다. 포레스트 베어가 슬며시 히르칸을 바라봤고, 히르칸이 칼을 겨눈 채 뒷걸음질치며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본 포레스트 베어가 주변을 경계하는 경계모드에 돌입했다.

일시소강.

그렇게 생긴 휴전 상황을 틈 타 머리를 잃은 해골 전사가 자신의 머리를 찾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따그락따그락!

엄마를 향해 다가가는 아이처럼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든 채 달려가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펴본 히르칸이 이를 꽉 물었다.

‘어휴.’

해골 전사의 전투 인공지능이 공유가 된다는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히르칸이 다시 처음부터 교육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덕분에 회피하는 능력은 모두가 우수했다. 공격을 하고 곧바로 빠지는 전투 스타일과 틈이 보이면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

는 행동력은 분명 히르칸이 가르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뇌가 없어. 아니, 원래 없는 게 당연하지만…….’

서로 호흡을 맞추는 건 조금도 할 줄 몰랐다.

한 명이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반응이 나오고, 그 반응을 예상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게 합동(合同)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움직였다.

결국 전투 때마다 조금 전과 같은 사고가 터지고는 했다.

‘마력 소모가 엄청나군.’

물론 보통 네크로맨서라면 버틸 수 있다. 애초에 마력만 있으면, 어지간한 데미지는 복구가능하다.

문제는 히르칸의 스탯. 올힘 네크로맨서인 그는 마력 여유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해골 전사가 거듭 피해를 입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히르칸이 다시금 힐끔 눈길을 돌렸다. 제 머리를 찾아와 히르칸이 보는 앞에서 끼익끼익, 본래 위치에 해골을 끼우는 해골 전사의 모습에서 히르칸은 짜증이나 분노보단 한숨이 나왔다.

‘그래, 너희들에게 많은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결국 답은 하나다.

‘날로 먹으려고 했던 내가 잘못한 거지. 아무렴.’

히르칸이 다시 처음부터 가르치는 수밖에 없다.

“젠장.”

‘보통 네크로맨서답게 몬스터가 알아서 사냥하고, 뒤에서 꿀물이나 좀 빠나 했는데…….’

당연히 그 가르침을 위해서는 직접 전투를 연출해야 한다. 히르칸이 최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해야 한다.

‘결국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내 운명이란 건 변하지 않는군.’

히르칸이 검을 들고, 포레스트 베어를 향해 돌진했다.

9.

안재현은 영상을 돌렸다. 그가 들고 있는 태블릿PC에는 3개의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 영상의 내용은 똑같았지만 시점이 달랐다.

워로드에서 영상을 촬영할 때 촬영 시점을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다각도에서 찍은 것처럼 말이다. 워로드의 영상이 팔리는 이유다. 그냥 단순히 유저의 시점으로만 찍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말 영화 같은 연출이 가능하다.

동시에 이런 영상은 워로드 유저들에게 아주 훌륭한 분석 자료가 된다.

분석은 워로드의 핵심이다. 워로드의 몬스터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게임이 가지는 설정이란 틀을 벗어나진 못한다. 아니, 벗어날 수가 없다. 그걸 벗어나면 그건 게임이 아니게 되니까. 때문에 모든 몬스터들에게는 무엇을 할 때 징조가 있고, 전투를 할

때 분명한 패턴이 있다.

물론 지금 안재현이 영상을 분석하는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나아지긴 하지만…….’

해골 전사 3마리, 안재현은 그들의 전투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해.’

해골 전사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왜 이렇게 대단한 걸 그동안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하지만 반대로 지금 당장 완벽하다고 보기에는 물렀다. 재능이 뛰어날 뿐, 배워야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런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 커리큘럼을 만드는 게 안재현의 역할이었다. 당연히 이런 걸 해본 적 없는 안재현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인강을 봤으면 내가 대학은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안재현은 이 고민 자체가 행복한 고민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르치고, 전투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나름 훌륭한 전투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더군다나 이게 끝이 아니다.

‘뭐, 40레벨만 되면 내가 일선에서 어그로를 끌 필요는 없겠지. 골렘 소환을 배우니까.’

네크로맨서가 소환할 수 있는 건 해골 전사만이 아니다. 해골 마법사도 있고, 골렘도 있으며, 나중에는 데스나이트도 소환할 수 있다. 나온 적은 없지만, 본 드래곤도 소환할 수 있다더라, 하는 소문도 있었다.

분명한 건 골렘을 소환하는 순간 전투 양상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높은 수준의 HP와 방어력을 가진 골렘이 어그로를 끌어주면 해골 전사들의 운신폭이 매우 넓어질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거다.

‘혼자 다 해먹을 수 있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문제가 많지만, 다른 직업이 이룩할 수 없는 레이드 솔플에 대한 가능성!

물론 앞서 말했듯 난제가 많다.

특히 가장 큰 난제는…….

“자금만 확보되면 더 좋을 텐데…….”

자금력이다.

자금력 확보를 떠나서 언제까지 빚에 쫓길 수는 없다. 조만간 돈을 빌린지 한 달째에 접어든다. 수중에 남은 돈은 없다. 정말 작심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일단 빚을 갚아야 버는 돈을 적극적으로 게임에 다시 투자할 수 있다.

‘어디 보자.’

안재현이 곧장 자신의 유튜브 페이지로 이동했다. 오프닝 영상인 PK영상은 조회수가 4만을 넘어갔다. 그 외의 영상 조회수들도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고, 페이지 구독자도 1만 명을 넘어갔다.

안재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만 보면 배가 부르다니까.’

순조로운 페이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1만 명이 히르칸이란 캐릭터에게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을 만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것도 마땅히 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 히르칸이란 캐릭터가 미래의 영

웅, 미래의 랭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미 재능은 보여줬다.

이제 남은 건.

‘이제부터는 전투 영상보다는 레벨업 속도에 초점을 맞춘 영상을 올려야겠어.’

결과다.

10.

워로드에는 온갖 이슈들이 넘쳐난다. 정확히는 어떻게든 이슈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도가 넘쳐난다. 물론 대부분의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가지만 때로는 정말 이슈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회탈 히르칸.

지금 그가 이슈거리가 되기 직전의 경계에 다다랐다. 한 사내가 그의 영상을 보는 게 그 증거였다.

“대단하네.”

붉은색의 갑옷을 입은 금발 머리칼의 사내가 영상을 홀로그램창을 통해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그의 근처에 있던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사내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뭘 보시는데 그렇게 감탄을 하시는 거죠?”

“직접 봐봐.”

사내의 말에 여인이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유저 영상은 보안상 타인이 볼 수 없거든요?”

“아, 그렇지.”

사내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후에.

“하회탈 히르칸. 지금 그 유저의 전투 영상을 보고 있어.”

자신이 보고 있는 영상의 정체를 말해줬다. 사내의 말을 들은 여인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여인이 사내로부터 하회탈 히르칸이란 이름을 들은 건.

“요즘 그 사람 영상 자주 보시네요?”

“머드 트롤하고 싸우는 영상. 20레벨 달성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 전에 올라왔어. 검색어는……”

“전 관심 없어요.”

여인이 혀를 찼다.

“솔직히 왜 다른 랭커들이 그 유저에게 관심을 가지는지도 모르겠고요. 컨셉 빼면 별 것 없잖아요? 하회탈에 이상한 가죽 패션. 솔직히 좀 징그럽지 않나요? 만약 내 주변 사람이 그런 옷을 입는다면, 나는 그 사람하고 절교를 했을 거예요.”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그 부분에서는 도무지 반론할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전투는 잘하잖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투법을 보여주고 있어.”

말과 함께 사내가 영상을 터치하며, 시간을 돌려 원하는 부분부터 다시 재생했다.

하회탈을 쓴 괴상망측한 패션의 사내가 3미터 신장을 가진 머드 트롤을 앞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내가 머드 트롤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도마뱀 두개골을 가진 해골 전사들이 머드 트롤을 순차적적으로 공격했다. 등, 오른쪽 측면,

왼쪽 측면 순으로.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부드럽게 이루어진 순차적인 공격이었다

사실 이 순차적인 공격이 대단할 건 없었다.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춰본 유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대체 해골 전사를 어떤 식으로 육성해야 이런 전투 인공지능을 가질 수 있는 거지? 원래 해골 전사의 전투 인공지능이 이렇게 우수했나? 하지만 다른 네크로맨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대부분은 방어 후 공격을 통해 이득을 취하지 않았나?’

이걸 유저가 아니라, 해골 전사들이 해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혼자 잘 싸우는 것과 호흡을 맞춰서 잘 싸우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니까.

물론 금발 사내도 워로드 내의 몬스터 및 NPC 등의 인공지능이 우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투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나을 정도다.

‘더군다나 레벨을 보면 오래 한 것도 아닌데, 대체 짧은 시간에 이 정도 결과를 어떻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회탈 히르칸이란 유저가 오랜 시간 플레이한 유저도 아니고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제 플레이 한달 차에 접어들었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쓸 만한 해골 전사를 만들었다.

당연히.

‘앞으로 시간은 길다. 그동안 이 해골 전사들이…….’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나중에 다다르면 해골 전사들의 전투 인공지능은 더 발달할 것이다.

‘이 하회탈 히르칸만큼 움직이게 된다면…….’

종국에 해골 전사들은 주인만큼 싸우게 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소름이 끼치는군.’

금발 사내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런 금발 사내에게 여인이 툭, 말을 던졌다.

“그만 보세요! 이제 슬슬 잡으러 가야죠. 5분 후에 생방송 시작이에요. 일어나세요.”

“아.”

금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인이 그런 금발 사내의 등을, 갑옷을 팡! 쳤다.

“그런 찌끄레기에 괜한 관심주지 마세요. 체브, 당신은 워로드 9위의 랭커, 레드불스의 대표인 마타도르 체브에요. 당신이 바라봐야 하는 건 정상이지 그런 밑바닥이 아니에요.”

그 말에 사내가 옅게 웃었다.

“칭찬 고마워.”

“고마우면 오늘 한 번에 끝내주세요. 이번 라이브 티켓이 20만 장이 팔렸어요. 당신의 멋진 승리 세레모니를 보기 위해 20만 명이 200만 달러를 지불했어요. 그들을 실망시키지 마세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조작했다. 홀로그램창을 끈 뒤 슬롯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사내의 목덜미 뒤에서 등장한 투구가 사내의 머리를 먹어치울 듯이 삼켜버렸다. 황소처럼 두 개의 섬뜩한 뿔이 솟아오른 투구의 가운데에는 성난 붉은 황소의 머리가 음각으로 세겨져 있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본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소리쳤다.

“레드불스, 전투 준비!”

레드불스.

30대 길드 중에서도 레이드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이드의 스페셜리스트들이다.

< 9화. 운칠기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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