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운칠기삼 (1). >
9화. 운칠기삼.
1.
워로드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수록 워로드에서 실시간 방송 가능한 채널을 쥐고 있는 30대 길드의 인기와 수익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동시에 30대 길드 간의 경쟁 역시 보다 치열해졌다. 치열한 수준을 넘어 처절하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30대 길드 간의 충돌도 잦아지는 건 물론, 심지어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30대 길드들 중 몇 곳이 서로 짜고 길드전을 연출한
다는 소문마저 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런 경쟁 속에서 워로드의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인 타락 백작 편은 성배나 마찬가지였다.
“타락 백작 관련해서 뭐 나온 거 있어?”
타락 백작과 관련된 퀘스트를 확보하는 순간 특집 방송이 편성될 정도로 타락 백작은 최고의 이슈 아이템이었다. 타락 백작 편의 마지막이 될 타락 백작과의 최후의 전투는 방송 광고 단가가 슈퍼볼 광고 단가에 버금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30대 길드는 타락 백작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시로 수집했다. 타락 백작 관련 정보만 수집하는 모니터링팀마저 만든 길드도 있었다.
“영상 하나 올라왔습니다.”
“영상?”
물론 타락 백작이 핫이슈인 만큼, 타락 백작과 관련된 영상 및 정보는 홍수가 난 것처럼 온라인 세상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 쓰레기나 다름없는 정보들이었다.
“쓸 만한 거야?”
하지만 쓰레기 더미 속에도 보물은 있는 법.
“15레벨 유저가 타락한 웨어울프를 잡는 영상이었습니다.”
“15레벨? 그럼 타락 백작 퀘스트라고 해도 시작점이잖아? 이제 와서 그런 걸 어디에 써먹어?”
“얘 엄청 잘 싸웁니다.”
더불어 모니터링팀은 오직 타락 백작과 관련된 정보만 다루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타락한 웨어울프를 잡으면서, 유망주 타이틀을 확보했습니다.”
“그래?”
쓸 만한 유저는 때때로 보물보다 더 가치 있는 빛을 발휘한다. 유망주 확보 역시 모니터링팀의 역할 중 하나였다.
“그리고 타락한 웨어울프를 혼자 잡았습니다.”
“혼자 잡았다? 가만, 웨어울프는 기본적으로 15레벨 이상이고 타락 타이틀이 달리면…… 대충 20레벨에서 25레벨 근처일 텐데? 그런 몬스터를 15레벨이 혼자 잡았다고?”
“참고로 직업이 네크로맨서입니다. 그런데 최전선에서 본인이 직접 전투를 치릅니다.”
“영상 주소 줘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보물 하나가 등장했다.
2.
안재현은 멍한 눈으로 태블릿PC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보는 영상 속에는 안재현의 캐릭터인 히르칸이 웨어울프를 상대로 긴박하게 싸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멋진 전투영상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타락한 웨어울프의 공격을 피하면서 반격을 하고, 그러는 사이 해골 전사가 벌처럼 날아와 벌처럼 칼침을 날리는 광경은 워로드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전투 영상 중에서 유일무이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안재현의 눈에는 그런 영상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올린 건데 조회수가 왜 이래?’
그 아래.
영상 아래에 위치한 굵은 글씨의 숫자들.
‘벌써 6천을 넘기다니.’
6,211.
안재현이 영상을 올린 지 고작 하루 만에 6천이란 조회수를 기록했다.
‘뭐지? 어느 사이트에 올라갔나? 왜 이렇게 조회수가 갑자기 폭발하는 거지?’
워로드 관련 영상이 다른 콘텐츠들에 비해 시청자 수가 꽤 많은 편인 건 맞지만, 하루 만에 6천이란 조회수를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렇게 조회수가 높으면, 조회수 순으로 정렬을 했을 때 상위권에 노출되기 때문에 조회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
처럼 붙는다.
‘떡밥이 끝내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나름 조회수가 나올 건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조회수는 확실히 기대 이상이었다.
안재현은 잠시 멍하니 조회수를 바라봤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얼이 빠진 모양.
빠진 얼이 돌아온 건, 포도당 사탕을 잔뜩 넣은 커피를 세 모금 정도 마신 뒤였다.
‘흐름을 탔다.’
안재현의 솔직한 심정은 기뻐 죽을 지경이다. 당장 속옷만 입은 채로 신나게 엉덩이를 흔드는 트월킹 댄스도 추라면 출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기쁜 마음에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계획을 바꿔야 하나?’
본래 계획대로라면 본격적인 영상 제작은 20레벨 후반대에 시작하고자 했다. 그때가 그럴싸한 영상이 많이 나오는 시기다. 정확히는 유저 간의 실력 차이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 부분이다. 지금 찍는 영상은 굳이 말하자면 어린 아이의 성장 앨범 같은 개념이다.
히르칸이란 유저가 이런 식으로 게임을 했다는 역사를 만드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을 줄이야?
‘좀 더 과감하게 지를까?’
이럴 때일수록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 번 기세를 타면, 무섭게 타는 게 이 바닥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그랬다. 하회탈 길드를 창설한 이후 반년 가까이는 영상을 올려도 주목도가 극히 떨어졌지만, 한 번 이슈가 된 이후에는 무섭도록 팬이 붙었다.
더불어 그때 하회탈 길드는 정말 대출까지 받아서 올인을 했다. 보다 좋은 아이템을 구매했다.
그게 핵심이다.
보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당장 스펙업이 가능한 방법은 아이템을 보다 상위의 아이템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중의 돈이다.
안재현은 지금 돈을 제대로 벌지도 못하지만, 그나마 버는 돈도 어느 정도 모아두고 있다. 석 달 안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퀘스트가 있으니까.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차라리 빌릴 때 2천만을 빌릴 걸 그랬어. 돈이 아쉬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안재현이 허튼 생각을 할 정도로, 지금 그가 내려야 하는 선택은 명백했다.
써야 한다.
여기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투자할 기회조차 없다. 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안재현이 마시던 커피잔을 바라봤다.
‘당분간 고기는 맛도 못 보겠군.’
커피잔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이 오늘따라 앙상하게 느껴졌다. 안재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해골이 되어가는군.’
여러모로 네크로맨서에 어울리는 사내가 되어가는 안재현이다.
3.
피거스 성에 돌아온 히르칸은 곧장 토벌협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NPC와 대화를 나누었다.
“자네가 비마산의 동굴을 다녀온 히르칸이란 모험가인가?”
호탄이란 이름을 가진 NPC는 딱 봐도 레벨이 꽤 있어 보였다. 히르칸은 그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다음 퀘스트 주려는 모양이구나.’
시나리오 퀘스트의 특징이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다음 퀘스트로 넘어가게 해준다.
이런 시나리오 퀘스트의 장점은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거고, 단점은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는 죽어도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자네가 만난 건 타락한 자의 힘에 노출된 괴물일 가능성이 높네.”
“그렇습니까?”
여기서 히르칸은 굳이 퉁명스러운 모습 따윈 보이지 않았다. 워로드에서 NPC를 대할 때는 상전 대하듯 대하는 게 기본이다. 게임 내에서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워로드에서 표지판이나 다름없는 NPC에게 안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어서 좋을 건 없다. 연애 시뮬레
이션 게임처럼 세밀한 호감도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호감도 시스템은 있다.
동시에 워로드의 NPC들은 대부분 방어적이고, 보수적이다. 그렇기에 유저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여야 한다.
“타락한 자란 누구입니까?”
“알 수 없네. 하지만 그자의 힘 때문에 몬스터들이 더 날뛰면서, 많은 피해가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지. 때문에 토벌협회는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네.”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 놈이겠군요. 미약하나마 제가 그 사악하고 빌어먹을 놈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히르칸이 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야, NPC들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가면 평생 기회를 잃는 것이다. 표지판이 여행객에게 다가와 안내를 해주는 경우는 없듯이, 워로드에서 NPC가 유저를 찾아와 퀘스트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직접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안타깝지만, 아직 자네는 타락한 자와 맞서 싸우기에는 많이 부족하네.”
“그럼 그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면.
“자네라면…… 그래, 이미 비마 산에서 보여준 자네의 활약이라면 기회를 줄 가치가 있지.”
문이 열리고.
“피거스 성의 동쪽에 방츠 성이 있네. 현재 그곳에 아힘브리라는 분이 계시네. 그분이 자네에게 가르침을 줄 걸세. 내가 추천장을 써주도록 하지.”
[퀘스트 ‘아힘브리의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어?’
그 문 너머에 감춰진 보물이 눈앞에 보인다.
‘아힘브리? 잠깐, 설마 대마도사의 일곱 제자 중 한 명인 아힘브리를 말하는 건가?’
엄청난 보물이!
4.
[아힘브리의 가르침]
- 퀘스트 등급 : 유니크
-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없음
- 퀘스트 내용 : 아힘브리를 찾아 호탄의 추천장을 보여주십시오.
- 퀘스트 보상 : 스킬북.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히르칸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 울상은 기분이 나빠서 짓는 울상이 아니었다. 터져 나오려는 기쁨을 억지로 참기 위한 고통, 그 고통이 만들어낸 울상이었다.
그 정도로 지금 히르칸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울상을 짓지 않는다면 너무 웃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을 정도였다.
‘아힘브리라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아힘브리의 제자 퀘스트를 받았다니!’
“푸흡……!”
기어코 웃음이 울상 어린 표정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히르칸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깨가 들썩였다. 그런 히르칸을 발견한 몇몇 유저들은 혀를 찼다.
“미친놈인가? 저기서 왜 저러는 거야?”
“놔둬, 슬픈 영화라도 본 모양이지.”
퀘스트 수행을 위해 토벌협회를 방문한 유저들 입장에서는 히르칸의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입고 있는 바지를 보니까 정상은 아닌 모양이야.”
“맞아. 제정신에 저런 바지를 입고 다니진 않겠지.”
히르칸이 입고 있는 꽉 조이는 가죽 바지는 여러모로 히르칸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줬다. 그런 주변의 관심에 히르칸은 아무런 신경도 주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 유망주 타이틀 때문에 조건부 퀘스트가 발동한 거구나.’
아힘브리.
워로드의 세계관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는 보칸의 일곱 제자 중 한 명이다. 대단한 마법사다.
그런 그를 히르칸이 기억하는 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스킬북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니크 등급의 스킬북 상당수가 대마법사의 일곱 제자를 통해 워로드에 공급되고는 했다. 때문에 마법사 직업의 유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마법사의 일곱 제자와
연관된 퀘스트 습득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
그런데 지금 그런 아힘브리와의 접점이 히르칸에게 생겼다.
‘유망주 타이틀에 타락 백작 메인 시나리오가 겹치면서, 이런 기회가 생긴 걸 꺼야.’
유망주 타이틀 덕분이다.
유망주 타이틀은 말 그대로 워로드의 세계관이 히르칸의 재능과 가능성을 인정해줬다는 보증수표다. 그런 상황에서 히르칸이 타락 백작과 싸우고 싶다고 말하니까, 호탄이 히르칸에게 강해질 기회를 준 것이다.
‘잘 됐어.’
이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직 내 레벨이 낮은 만큼 퀘스트 보상으로 높은 레벨의 스킬북을 얻을 순 없겠지만…… 뭐 어때?’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힘브리 만나러 가기 전에 큐브나 돌려서 템이나 맞추자. 재료 아이템은 마저 털고 가야지.’
그의 다음 목적지는 아이템 제작용 큐브가 위치한 아이템 제작소였다.
< 9화. 운칠기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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