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낭중지추 (1). >
1.
유저 한 명이 혼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사냥감은 10레벨 몬스터, 슬라임 도그였고, 유저는 그 보잘것없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무려 10분 동안 낑낑거렸다.
그렇게 유저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검을 높게 들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 유저를 어깨로 밀쳤다. 밀린 유저는 바닥에 자빠졌고, 그 유저를 밀친 유저는 슬라임 도그의 머리통을 자신의 검으로 내리쳤다.
유저는 바닥에 앉은 채 이 광경을 바라봤다.
그런 유저를 향해, 몬스터를 빼앗은 유저, 헤이볼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건 당연히 사과가 아니었다. 교통사고로 따지면 실수로 부딪친 게 아니라, 작정하고 와서 박은 상황.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헤이볼라의 밀치기에 넘어진 유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이라면 보험사를 부르는 게 아니라, 경찰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긴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게임 속이다. 법은 없다. 경찰도 없다. 대신 주먹만 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냐?”
언성을 높이는 상대를 향해, 헤이볼라가 곧장 표정을 바꿨다. 있는 힘껏 험악한 표정을 짓고, 상대를 노려봤다.
그 사이.
“무슨 일이야?”
“뭔데?”
그의 친구이자, 랄프 패밀리의 일원 둘이 우연을 가장한 채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3대1.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도 단숨에 분노조절을 가능케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숫자 차이.
헤이볼라는 곧바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내가 실수를 해서 지금 사과했는데 갑자기 이 새끼가 나보고 욕을 지껄이면서 화를 내잖아?”
“뭐? 어느 새끼가 랄프 패밀리의 리더를 욕해?”
“게임 좀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화를 내? 아주 빌어먹을 새끼네.”
그때 헤이볼라가 굳어있는 상대의 어깨를 툭! 쳤다. 상대가 그 힘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아까 했던 말 다시 해봐. 응? 해보라고.”
헤이볼라가 두어 번 더 어깨를 쳤고, 상대는 어깨를 맞을 때마다 계속 뒷걸음질을 쳤다. 헤이볼라가 따라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을 보는 나머지 둘은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모든 상황은 랄프 패밀리가 의도한 상황이었고, 그들은 이 상황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헤이볼라 연기력이 날이갈수록 좋아지네.’
‘이것도 영상 찍으면 조회수 좀 나오겠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약이 오를 수밖에 없다.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하는지,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현실이라면 당연히 여기서 많은 이들이 참는다. 하지만 게임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게임에서까지 참을성을 발휘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자꾸 이러면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이번 랄프 패밀리의 표적이 된 상대는 참을성이 부족한 부류였다. 그는 계속 뒷걸음질 치면서도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이상한 가면 너머로 헤이볼라를 노려보며 결국 발끈했다.
“푸하하!”
그런 유저의 발끈하는 모습에 랄프 패밀리는 있는 힘껏 웃었다. 진심 어린 폭소였다.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빵! 터진 느낌이랄까? 뒤에 있던 둘은 웃음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고, 헤이볼라는 간신히 웃음을 찾으며, 발끈한 상대의
뺨을 툭툭 쳤다.
“가만히 안 있을 거면 어떻게 할 건데? 응? 어떻게 할 건데?”
거듭된 도발에 상대가 재차 발끈했다.
“계속 이러시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싸워? 싸운다고?”
헤이볼라가 뒤에 있는 동료에게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재차 반문하자, 두 동료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자지러기기 직전이었다.
‘진짜 미치겠네.’
‘간만에 진짜 재미난 놈 낚았네.’
그들에게 상대의 이 발끈하는 반응은 낚시로 따지면 손맛이다. 그냥 물고기를 잡는 것도 재미있지만, 파닥파닥! 거리면서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놈이 진정한 대어다.
헤이볼라 역시 이 손맛 넘치는 유저를 엿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뱃속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말싸움을 하기엔 몸 전체가 간지러웠다.
“그래, 싸워보자. 싸워보자고!”
그래서 싸움을 받아줬다.
아니, 싸움을 받아주는 게 아니다. 상대가 하는 건 발악이고, 헤이볼라, 자신이 하는 건 개미를 죽이는 일방적인 폭력일 테니까.
그렇게 헤이볼라가 선전포고를 받는 순간.
푹!
헤이볼라의 오른쪽 눈에 칼이 박혔다.
‘어?’
헤이볼라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눈 시야 안에 검 끝이 날아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당연히 바로 헤이볼라의 오른쪽 눈 시야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푹!
헤이볼라의 오른쪽 눈을 찌른 검이 왼쪽 눈마저 찔렀다. 헤이볼라가 바라보던 밝은 세상이 시커먼 세상으로 바뀌었다.
‘뭐지?’
이 순간에도 헤이볼라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는 블라인드 페널티가 처음이었다. 유저가 두 눈을 공격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이런 블라인드 페널티는 워로드에서 PVP나 PK를 업으로 삼는 이라면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일단 눈을 공격당하는 걸 최대한 피해야 한다. 심장이나 머리보다 눈이 더 중요하다. 애초에 목이 잘리지 않는 이상 즉사는 없으니까. 눈을 당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침
착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만약 당황한다면?
“뭐야?”
그때부터 레벨이란 개념은 사라진다.
헤이볼라가 당황하는 사이, 그들의 먹잇감이 된 유저, 히르칸은 자신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헤이볼라의 머리를 왼손을 밀었다. 고개가 기울어지자, 목덜미가 드러났다.
푹!
히르칸이 그 목덜미에 검을 꽂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푹푹!
쉴 새 없이 찔렀다. 마치 재봉틀이 움직이듯, 히르칸의 손놀림은 섬뜩할 정도로 빨랐다.
그냥 찌르는 것도 아니었다. 점선 모양으로 찔렀다. 우표를 쉽게 뜯을 수 있는 것처럼 목을 쉽게 뜯어버릴 속셈이었다. 목젖 부근부터 시작된 히르칸의 칼질은 순식간에 헤이볼라의 목덜미까지 이동했다. 찰나의 순간 여섯 번이 넘는 칼질이 이루어졌다.
“으아아!”
헤이볼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 때문은 아니었다. 통증이라고 해봐야 누군가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세게 찌르는 수준, 그 정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상황 자체다. 갑자기 시야가 캄캄하게 변하더니, 뾰족한 게 목을 찌르고 있다.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런 경험을 자주 겪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패닉 상태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다.
헤이볼라가 나름 팔을 휘두르며 발버둥을 쳤지만, 히르칸은 그런 발버둥을 예상했다는 듯, 헤이볼라의 뒤로 이동한 후에 왼팔로 헤이볼라의 목을 휘감고, 거듭 목에만 칼질을 계속했다.
푹푹, 그 섬뜩한 소리가 시계초침 소리처럼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흘러나왔다.
여기까지가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실 시간 동안 일어난 상황이다.
‘뭐야?’
‘응?’
이 상황에 헤이볼라의 두 동료가 제대로 된 반응과 판단 그리고 대응을 할 리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웃다가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그들은 이 상황을 앞에 두고, 그저 멍한 표정만 지었다. 얼빠진 얼굴을 품었다.
그중 한 명이, 그래도 나름 검사 직업으로 일선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전투 경험이 있는 쪽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헤이볼라!”
그가 동료의 이름을 부르짖자, 사제 동료도 정신을 차렸다. 검사 유저는 곧장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츠릉!
토벌협회에서 주는 보급품이 아니라, 그동안 유저를 털어 모은 돈으로 구매한 검이 제법 섬뜩한 예기를 뿜어댔다. 하지만 그 예기 넘치는 검을 뽑기만 할 뿐, 당장 어떤 행동을 보이진 못했다.
동료를 구한다? 어떻게? 이미 히르칸이 뒤에서 잡고 있는 동료를 어떻게 구하지?
이런 생각들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사이 히르칸은 등 뒤에서 츠릉, 소리가 들리는 순간, 헤이볼라의 목에 검을 꽂아 넣은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잽싸게 자신의 뒤편으로, 헤이볼라의 동료가 있는 방향으로 해골 전사 조각을 던졌다.
해골 전사가 금방 자신의 위용을 드러냈다.
“헉!”
“해골?”
가뜩이나 과부하가 걸린 머릿속에 갑작스러운 해골 전사의 등장에 결국 폭발했다.
‘검사 아니었어?’
‘네크로맨서?’
검사인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들고 슬라임 도그를 상대로 10분 동안 티격태격하는 유저가 검사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직업이란 말인가?
그런데 해골 전사가 등장했다. 그냥 해골 전사도 아니고, 블루 웨어울프를 재료로 삼은 해골 전사였다. 머리는 늑대의 것이었고, 피부가 없는 해골이니, 길쭉한 주둥이와 그 주둥이에 달린 섬뜩한 송곳니가 그대로 드러나 있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섬뜩할 수밖에 없
다.
더군다나 워로드에서 유저들이 언데드 타입의 몬스터를 마주하는 건 30레벨 근처에 도달했을 때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20레벨대까지 유저들은 슬라임 타입처럼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를 경험한다. 워로드의 넘치는 배려심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을 리 없는 남은 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동료의 도움이 없다는 사실에 헤이볼라도 당황했다. 도움은커녕, 시야는 여전히 컴컴한 상황에서 동료들의 숨넘어가는 소리만 귓가를 맴도니, 그냥 미칠 노릇이다.
푹푹!
그러는 사이 히르칸이 거듭 헤이볼라의 목덜미에 칼질을 했다. 푹푹, 이제는 그 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히르칸은 그 작업을 하면서, 몸을 돌렸다. 헤이볼라의 몸뚱이가 히르칸을 따라 움직였다. 다시 대치 국면이 펼쳐졌다.
그 대치 국면 상황 속에서, 히르칸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이건 정당방위입니다. 전 절대 이렇게 싸우고 싶진 않았습니다. 난 잘못이 없습니다.”
이 섬뜩한 짓을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가 아니었다. 사이코패스나 지껄일 수 있는 소리.
이때 히르칸이 헤이볼라의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난 잘못이 없습니다. 동의하시죠?”
헤이볼라는 소름이 돋았다. 소름이 돋았고, 화도 났다. 화가 나서, 꽉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너……!”
그 순간 히르칸의 검이 헤이볼라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무작정 들어왔다. 이 순간 헤이볼라는 그저 수건 따위를 입에 물고 있는 느낌만 들었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그는 그런 느낌만 받을 뿐이지, 대치 중인 해골 너머로 자신의 동료가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보던 둘은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하지?’
그 둘은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냥 걱정만 머릿속으로 할 뿐이었다.
히르칸이 그런 그 둘의 낌새를 하회탈 너머로 예의주시했다.
‘레벨은 20레벨 초반대 혹은 10레벨대 후반대.’
히르칸은 이들이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비마 산은 지리산과 같이 많은 등산객이 몰리는 산이 아니다. 등산로도 없다. 그냥 사람이 지나가면, 그게 길이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온다. 자신이 가다 멈추면 그들도 멈춘다. 그렇다고 말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을 히르칸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심지어 이런 추격전은 질리도록 해봤다.
그래서 일찌감치 놈들을 역으로 털어먹을 계획을 세웠다. 네크로맨서라는 걸 감추고, 슬라임 도그를 힘겹게 잡는 척 연기를 했다. 여기에 헤이볼라가 어깨를 칠 때 뒷걸음질을 쳐서 그와 동료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한 것도, 그들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줘서 방심을
유도한 것도, 전부 연출한 바다.
그리고 이런 연출이 필요했다.
상대는 3명이었고, 레벨도 전부 히르칸보다 높았다. 당장 헤이볼라만 하더라도 근력 스탯이 히르칸의 곱절일 것이다. 그런 그를 힘으로 제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헤이볼라가 이 상태에서 냉정함을 되찾고, 힘으로 히르칸을 뿌리치고자 했다면 진작에 히르
칸의 품을 떠났을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 잔혹하게 대했다. 두 눈을 먼저 찌른 것도, 그 이후 목덜미만 집요하게 노리는 것도, 대화를 유도한 후 입에 검을 쑤셔 박는 것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한 노림수다.
고수라면 이런 노림수에 응수를 했을 터.
‘하수 중의 하수.’
달리 말하면 히르칸의 기준으로 랄프 패밀리는 하수 중의 하수였다.
동시에 이건 증거이기도 했다. 이들이 길드 같은 세력으로부터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은 놈들이 아니라는 증거!
그건 곧!
‘뒤탈 걱정 없고.’
여기 있는 놈들을 히르칸이 아주 가차 없이 탈탈 털어도 문제될 건 없다는 의미다.
히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 7화. 낭중지추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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