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비마 산의 동굴 (2). >
2.
유료 영상 판매를 직업으로 삼는 건,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게이머들에게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과거에는 게임 내에서 얻는 아이템을 파는 게 그들을 대표하는 수익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게임을 하는 영상이 훨씬 더 많은 돈이 됐
다. 게임 방송만으로 수억 원이 넘는 연봉을 버는 게임VJ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워로드도 마찬가지였다.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채널이 없더라도, 워로드 관련 영상은 유료 영상 판매량 중에서도 꽤 높은 편이었다. 오죽하면 할리우드가 워로드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말이 나올까?
당연한 말이지만, 영상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영상을 올렸다. 개나 소나 올렸다. 매일 워로드란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상은 수천 개를 훌쩍 넘어갔다. 그런 영상의 홍수 속에서 인지도 없는 유저가 두각을 나
타내는 방법은 많지 않다. 아주 작심하고 거금을 들여 광고를 하거나 혹은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컨셉을 잡거나.
이러한 배경이 하회탈 길드가 탄생의 배경이었다.
안재현 그리고 김동수, 그 둘이 손을 잡았을 때 그 둘은 당연히 길드를 세우기로 결심을 했고, 길드를 세울 경우 인지도를 얻기 위해 어떤 컨셉을 잡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의외로 괜찮은 컨셉은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냥 팬티만 입고 알몸으로 다
니면, 파급 효과가 좀 있지 않을까? 하는 정말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컨셉마저 고려해봤다. 우스운 건, 이미 그걸 컨셉으로 삼은 인간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이었다. 몬스터 레이드를 마치면 모두가 팬티만 입고 춤을 추는 컨셉을 잡은 길드가 있었다. 심지어 30대 길드
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인지도가 높은 유명 길드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고민 속에서 안재현이 의견을 냈다.
“하회탈 쓰죠?”
하회탈.
“딱 봐도 한국적인 이미지이잖아요?”
나쁘진 않았다. 다행히도 그걸 컨셉으로 잡은 유명 길드가 없었다.
또한 다른 명분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다 같은 동료인데, 입은 옷으로 계급 나누는 짓 같은 건 하지 말죠?”
대부분의 유명 길드는 상징이 있었고, 그 상징이 표시된 유니폼을 맞추고는 했다. 그리고 거대 길드일수록, 길드원 숫자가 많을수록 유니폼을 통해 계급을 나누었다. 1군, 2군, 3군……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안재현은 모든 길드원들이 똑같은 가면을 쓰자는 제안을 했다. 그때 안재현은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날을 꿈꿨으니까. 결국 안재현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그때부터 하회탈 길드가 등장했다. 전투 영상 속에서 언제나 하회탈을 쓰는 컨셉은 제법 잘 먹혔
고,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런 하회탈을 히르칸은 버릴 수 없었다. 하회탈은 히르칸에게 자부심이자, 자식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이미 검증된 컨셉을 버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쓰기 전에 먼저 써야 하는 팔자였다.
그런데 그 가면을 잊고 있었다.
블루 웨어울프의 시체를 앞에 둔 채, 조금 전 자신이 찍은 영상을 홀로그램 모니터를 통해 살펴보던 히르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상은 잘 나왔는데…….’
전투 영상은 훌륭했다. 워로드에서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전투 스타일 영상이었다. 입소문을 타면, 생각보다 조회수가 잘 나올 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히르칸의 인지도도 올라갈 터.
하지만 반대로 정말 하회탈을 컨셉으로 잡고 싶다면, 맨얼굴이 드러난 영상을 올릴 수는 없었다.
얼굴이 알려지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 히르칸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우레사냥꾼 길드와 전쟁을 치르던 건, 지금 이 시점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이야기다.
‘컨셉은 한 번 잡으면 밀고 나가야 먹히는데.’
중요한 건 컨셉이다.
처음에 얼굴을 보여준 후 하회탈을 쓴다? 무게감이 팍 준다. 특히 가면 같은 걸 컨셉으로 잡으면, 신비감을 위해서라도 끝날 때까지 가면을 쓰는 게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히르칸이 얼굴을 드러내면 메리트를 얻을 정도로 잘생긴 게 아니다. 오히려 페널티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이 부분은 얼굴 인식 방해 모드를 이용하면, 영상에서 얼굴 부분만 모자이크로 만들 수 있다. 기본이다. 워로드에서 얼굴 인식 방해 모
드를 설정해두면, 타인이 그 유저의 얼굴을 영상으로 찍을 수 없다. 그런 시스템이 아니면, 워로드는 도촬의 왕국이 되어버릴 것이다.
물론 굳이 올려야겠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CG작업으로 하회탈을 씌우면 된다.
하지만 그 작업을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는 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이다.
“어휴.”
결국 히르칸은 영상을 포기했다. 아깝지만, 전투 영상 같은 건 언제든 새로 만들 수 있다. 블루 웨어울프가 검색빈도가 높은 몬스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블루 웨어울프가 나오는 영상이 무조건 높은 조회수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멍청한 놈이지.’
무엇보다 히르칸 본인 잘못이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게 히르칸이란 인간이다. 완벽이란 단어와 거리가 가장 먼 인간. 게임 잘하는 것 빼면, 나머지는 전부 평균 이하의 인간. 그러니까 게임에 일생을 바치는 거다. 다른 걸 잘하는 인간이었다면, 게임에 목숨을 거는 일도,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복수심에 부들
부들 떠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히르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많지 않다.
그리고 블루 웨어울프를 잡은 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기회가 왔다.
‘해골 조각 스킬을 제대로 쓸 수 있겠군.’
3.
워로드에서는 몬스터를 잡을 경우 완제품 아이템이 덜컥! 드롭되는 경우는 없다.
워로드에서 아이템은 퀘스트 보상 등으로 받는 아이템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제작 아이템이다. 제작 과정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재료 습득이다. 재료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해체해야 한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몬스터를 HP가 0이 되는 순간, 죽는 순간 곧바로 해체 가능 상태가 된다. 가죽이나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굳이 예를 들면, 잘 포장된 택
배를 벗기는 느낌이다. 그냥 무작정하면 테이프 때문에 미쳐버리지만, 칼이 있고, 적당한 수고를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렇게 가죽과 껍질, 비늘 등을 전부 벗겨내면 그때부터는 몬스터가 녹기 시작한다. 일명 아이스크림 모드다. 이 과정에서 유저는 녹는 몬스터의 살점을 맛볼 수도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맛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시원하
다. 사냥을 마친 유저들을 위한 디저트인 셈이다.
그렇게 다 녹은 몬스터는 뼈와 보석을 남긴다.
여기서 핵심은 가죽과 뼈는 어떤 몬스터든 확보할 수 있지만, 보석은 아니라는 점이다. 보석은 드롭률이 적용된다. 어떤 몬스터는 나오고, 어떤 몬스터는 안 나온다. 그리고 이런 보석은 보통 높은 등급, 레어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 때 사용된다.
더불어 가죽과 뼈는 언제든 유저가 원할 때 코인 형태로 바꿀 수 있다. 덩치가 아파트 크기의 몬스터로부터 얻은 뼈와 가죽을 코인 형태로 바꾸면, 대략 2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에 들어갈 만큼의 양이 나온다. 적지 않은 무게지만, 뼈와 가죽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것보단 낫다. 그리고 솔직히 많이 나오는 걸 마다하는 유저는 없다. 막상 코인으로 바꾼 후에는 왜 이것 밖에 안 나와? 같은 소리가 먼저 나온다. 물론 정말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유저라면, 코인이고 나발이고 그냥 아이템 인벤토리 같은 곳에 넣어주면 편하잖아! 같
은 말을 하겠지만.
이렇게 모은 재료는 몇몇 성에 위치한 아이템 제작소에 마련된 큐브를 통해 제작할 수 있다. 말이 큐브고, 유저들은 슬롯머신이라고 부른다.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기본 재료, 코인을 넣으면 노멀 등급의 아이템이 나온다. 레어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고 싶으
면 보석을 추가로 넣으면 된다. 그렇게 재료를 넣고, 큐브를 닫은 후에 신나게 큐브를 흔들면, 그 안에 축소된 아이템이 등장한다.
때때로 노멀 등급이나, 레어 등급 아이템을 제작하고자 했는데, 운 좋게 유니크 아이템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 대박을 위해서, 매일매일 재료만 사다가 큐브를 흔드는 큐브 중독자들이 있다. 이걸 사행성으로 규제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할 정도로 나중에 가서는
꽤 문제가 심각해질 정도로, 이것만 하는 유저들이 있다. 심지어 큐브를 흔드는 것도 꽤 지겹고, 번거로운 작업이라서, 이것만 작업하는 작업장도 있다. 게임에 접속해서 계속 큐브만 신명나게 흔드는 거다. 한 달 정도 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워로드는 공짜로 시켜줘
도 안 할 정도로 후유증이 막심하다.
어쨌거나 유니크 등급은 기본적으로 같은 레벨의 노멀 등급 아이템보다 25레벨 이상 높은 레벨의 옵션을 가지니까. 70레벨대의 유저가 최고 레벨인 워로드의 현시점에서 25레벨 이상의 아이템 옵션이 가지는 가치는 절대적이다.
해골 조각 스킬의 경우에는 이 큐브에 들어가는 재료를 재료로 삼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재료가 되는 코인을 손에 꼬옥 쥔 상태에서 해골 조각 스킬을 사용하면 된다.
그러면.
[블루 웨어울프의 뼈를 이용해 해골을 조각했습니다.]
[해골 조각 스킬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새로운 해골 조각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히르칸이 손바닥을 펼쳤다. 평범하게 인간 머리를 가지고 있던 해골 대신에 늑대 머리를 가진 해골 조각이 보였다. 히르칸은 곧바로 새로운 해골 조각을 던졌다.
새로운 몸을 가진 해골 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의 두개골을 가진 해골 전사는 밋밋했던 예전과는 확실히 사나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두개골에 달린 이빨의 송곳니는 꽤 살벌했다. 또한 두개골의 눈두덩이 사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빛도 마
음에 들었다.
후욱!
히르칸이 그 해골 전사를 향해 기습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해골 전사는 가뿐하게 피했다. 피하면서 히르칸과의 거리를 훌쩍 벌렸다. 연속해서 발차기를 하려던 히르칸이 옅게 웃었다.
‘그때보다는 확실히 더 빠릿빠릿해진 것 같군.’
아무것도 없이 해골 조각을 만들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몸놀림이 달랐다.
한편으로는 부담도 느꼈다.
‘해골 조각 하나 하는데 몬스터 한 마리. 잔챙이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보스 몬스터를 베이스로 해골 조각을 만들려면……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겠군.’
해골 전사의 능력은 베이스가 되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보스 몬스터를 베이스로 삼으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몬스터로부터 얻는 뼈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아이템 제작 재료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의미다.
물론 이미 쓴 돈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돈이 많이 들면, 그만큼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
히르칸이 하회탈을 꺼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그리고 곧바로 히르칸이 해골 전사에게도 씌어줄 하회탈을 꺼냈다. 컨셉을 잡았으니, 제대로 밀어붙이는 건 당연지사.
“응?”
그 순간 히르칸은 다시금 깨달았다.
‘주둥이가 튀어나와서 안 맞잖아?’
자신이 정말 게임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멍청한 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젠장,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여러모로 히르칸이 게임에 일생을 바쳐야 하는 이유가 늘어났다.
< 6화. 비마 산의 동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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