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비마 산의 동굴 (1). >
1.
워로드를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은 튜토리얼을 거치면서 살짝 회의감을 가진다.
과연 이 게임을 해도 좋은 걸까? 지금이라도 그냥 환불신청할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훈련 던전에서 전투를 치르는 동안 빠르게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훈련 던전에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를 상대하고, 10레벨을 달성하면 그때는 전혀 달라진다.
“나 게임에 재능 좀 있는 듯?”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보통 사람은 맨몸으로는 덩친 큰 개와 싸워도 이기지 못한다. 일반 성인 남성에게 식칼 하나를 쥐여주면서, 험악한 투견을 잡으라면 보통은 못 잡는다.
그런데 훈련 던전에서 유저들은 현실에서 마주치면 오줌을 지릴 법한 늑대, 호랑이 심지어 아나콘다 같이 동물원 가서도 보기 힘든 괴물들을 잡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광경을 언제든 원할 때 고화질 영상으로 남겨둘 수 있다.
그 영상을 살짝 편집하면 영화 속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러니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게 훈련 던전의 목적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훈련!
유저들이 전투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마련된 시스템이다.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유저들은 10레벨이 되는 순간 새로운 스킬도 배우고, 돈이 넘치면 현질을 통해 남들과는 다르게 비싼 아이템도 갖춘 채 필드로 나온다.
더불어 필드의 광경은 훌륭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산이 펼쳐져 있다. 광활하기 그지없는 그 세상 속에서 유저들은 당장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드워프와 엘프 전사가 된다. 자신들의 모험담이 영웅담이 되리란 사실에 조금의 의구심도 없다.
하지만 필드 전투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호빗이 된다. 용감무쌍한 호빗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호빗 말이다.
숲 그리고 산에서 몬스터와 조우하는 순간부터 훈련 던전과의 차이점을 알게 되니까.
“으악!”
3인 파티였다.
검사, 마법사, 사제로 구성된 3인 파티. 입고 있는 옷으로는 직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 직업의 특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초보 파티였다.
“병신 새끼, 왜 거기서 넘어져?”
“야! 마법부터 날려! 저 새끼 구해야지!”
“기다려 봐. 아직 캐스팅 도중이니까. 그런데 이대로 마법 날리면 쟤도 당하는데?”
“일단 날려!”
그런 그들이 필드에 등장하는 순간 처음으로 조우한 몬스터는 고목 늑대라는 몬스터였다.
15레벨의 몬스터로, 말라 비틀어진 고목을 깎아 만든 듯한 외형을 가진 늑대였다. 일반 늑대보다는 몸길이 자체는 길지만, 반대로 몸집 자체는 크지 않은 녀석이었다.
강한 놈은 아니었다. 15레벨 몬스터 중에서는 아주 약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일단 말라 비틀어진 외형처럼 방어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유저들이 게임 시작하자마자 토벌협회를 통해 받는 무기만으로도 잡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화염계
마법에 아주 약했다. 10레벨의 화염계 마법사가 흔히 쓰는 파이어볼 마법 2방이면 확실하게 끝장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우드백이다. 샌드백 수준인데, 외형이 나무라서 우드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무리 10레벨이라도, 3인 파티라면 가뿐하게 잡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실제로 검사는 기세등등하게 앞장섰다. 마법사가 파이어볼을 준비하고, 사용하기 전까지 고목 늑대의 이목을 끌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일어났다.
검사를 향해 고목 늑대가 몸을 날렸고, 검사가 투박하기 그지없는 나무 방패로 그 공격을 막는 것까지는 좋았다. 이후 검사가 밀리지 않은 채 다시 자세를 잡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검사가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면서 지금의 문제가 생겼다. 검사가 자빠지는 순간 고목 늑대는 곧바로 자빠진 검사의 가슴팍에 올라탔다.
마운트 자세였다.
깔린 상태에서 자신을 올라탄 상대를 뿌리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힘도 힘이지만,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인들 중에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허둥지둥.
“살려줘! 도와달라고!”
크헝, 크헝! 코앞에서 고목 늑대가 거친 울음을 토해내고, 이빨과 발톱으로 검사의 살갗에 상처를 하나둘씩, 가랑비에 옷이 젖듯 쌓는 사이 남은 두 명 역시 당황한 듯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젠장, 어떻게 해?”
“몰라!”
당연한 말이지만, 이 파티에서 검사가 빠진 채로 사냥을 계속해봤자 해피 엔딩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초보 유저들 중 많은 유저들이 48시간 게임 이용 불가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필드 전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조금도, 눈곱만큼도 없는 이들도 있었다.
히르칸.
비마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블루 웨어울프와 조우한 그는 능력치만 보면 누구보다 뼈저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인간이었다.
네크로맨서인 주제에 모든 스탯을 근력에 투자했고, 심지어 특별한 아이템을 갖춘 것도 아니다. 10레벨이 되면서 그가 새로 배운 마법은 저주 마법이 전부였다. 새로운 아이템 세팅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금 여유가 없었으니까. 누가 보더라도 워로드의 쓴맛을 봐야
하는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조우한 블루 웨어울프는 15레벨의 몬스터 중에서도 매우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딱 눈으로만 봐도 보통 놈이 아니다. 180센티미터의 신장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 그 팔에 달린 네 개의 손톱은 손톱이 아니라 칼날을 잘라 붙인 듯한 느낌이 드러났다. 여기에 푸른 털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와 툭 튀어나온 주둥이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이빨들은 레벨이 되는 유저도 살짝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실제로도 보이는 것만큼 강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초보자 킬러!
3인 파티가 조우해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다.
그런 놈을 본 히르칸이 지은 표정은.
‘초장부터 괜찮은 놈을 만났어. 블루 웨어울프 가죽은 돈이 되고, 뼈는…… 해골 조각 재료로 써먹어 봐야지.’
히죽히죽, 미소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블루 웨어울프는 무시무시한 이름값만큼이나, 필드에서는 보기 드문 녀석이었다.
동시에 초보자 킬러라는 악명 때문에, 블루 웨어울프는 워로드 초보 유저들이 두어 번은 검색해보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블루 웨어울프를 잡는 영상은 어느 정도 조회수가 보장되는 셈.
초장부터 돈이 되는 놈을 만났으니, 기분이 나쁠 리가 없다.
히르칸이 시계에 입을 대고 말했다.
“영상 촬영.”
이 순간 히르칸의 머릿속에 진다는 이미지 같은 건 없었다.
모든 스탯을 마력과 지력에 투자했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당장은 근력에 전부 투자를 했다.
워로드에서 근력은 신체 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로 따지면, 마력(馬力)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힘에서, 스피드에서 밀릴 이유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체력에 대한 투자를 안 했으니, 블루 웨어울프의 공격에 맞으면 꽤 아플 것이다.
하지만 히르칸에게는 그게 일상이었다.
원래 기본적으로 검사 유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체력에 투자를 했다. 탱커 계열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능력치를 체력에 투자했고, 일선에서 전투를 치르는 스트라이커 계열도 어느 정도 체력에 투자를 했다.
그러나 그건 게임을 정상적으로 즐기고자 하는 유저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히르칸과 같이, 이미 1년 먼저 게임을 한 이들을 따라잡아야 하는 후발주자들에게, 그들처럼 챙길 거 다 챙기면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들 전부를 따라잡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한 가지를 따라잡는 게 우선이었다.
또한 후발주자들에게는 먼저 게임을 시작한 유저들이 남긴 유산이 있었다. 몬스터 공략 영상 등을 보면서 전투 리스크를 줄이고, 이미 검증된 아이템들을 이용하면 부족한 부분은 커버할 수 있었다.
히르칸은 그런 극단적인 전투법으로 나름 명성을 떨쳤던 인간이다. 체력 부족에 따른 우려, 두려움, 긴장감은 없었다.
무엇보다 히르칸에게는 도우미가 있다.
히르칸이 손에 쥐고 있던 해골 조각을 던졌다. 해골 조각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부풀어 오르며 단숨에 해골 전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뾰족한 뼈로 된 칼을 든 해골 전사는 등장하자마자 블루 웨어울프를 향해 자신의 흉폭한 성정을 드러냈다.
크게 입을 벌리며 소리 없는 함성을 토해냈고, 눈두덩이 사이의 푸른 불꽃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타오르는 녀석의 눈빛에 블루 웨어울프는 밀릴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오히려 호기에 호기로 답했다. 자신의 붉은 눈동자에 힘껏 힘을 주었다. 호기가 부딪쳤는데, 몸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크헝!
블루 웨어울프가 울음을 토해내며 해골 전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익, 쉬익!
녀석은 두 팔을 거칠게, 무작위로 휘둘렀다. 해골 전사는 그런 블루 웨어울프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어중간한 거리를 유지하지도 않았다. 앞서 드러낸 호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확실한 거리를 둔 채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히르칸의 가르침이다.
마치 복싱을 하듯, 근접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피할 때마다 반격을 날리는 게 최고다. 그런 능력을 보여주면, 그건 예술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도 합을 맞춰야만 연출이 가능한 장면이기도 하다.
당연히 어렵다.
그렇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반격이 가능한 근접거리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크게!
멀찌감치!
반격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피하면 된다.
무엇보다 해골 전사는 반격을 할 필요가 없다. 반격은 그 둘의 호기가 충돌하는 순간, 존재감을 지운 히르칸의 몫이다.
‘오케이.’
낌새를 감추고 있던 히르칸의 시선에 블루 웨어울프의 뒤통수가 보였다. 보이는 순간, 히르칸은 달렸다.
돌부리, 나무뿌리, 나무기둥 같은 것들은 히르칸의 질주에 조금의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먹잇감을 향해 달리는 야수, 히르칸의 모습이 그랬다.
블루 웨어울프가 그런 히르칸의 낌새를 느꼈을 때.
푹!
히르칸이 토벌협회로부터 받은 끝이 뾰족한 칼이 블루 웨어울프의 등줄기, 늑골 사이를 파고들어 와 있었다.
찔리는 순간.
크헝!
블루 웨어울프가 고통 가득 찬 울음과 함께 몸을 크게 돌렸다. 몸을 돌리며 자신의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등 뒤에 접근한 적을 물리치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행동을 이미 예측하고 있던 히르칸은 이미 칼을 찌르는 순간 칼에서 손을 놓고, 블루 웨어울프의 허리 아래까지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자세를 낮추면서, 블루 웨어울프의 왼쪽 다리 오금을, 무릎 부근을 포옹하듯 껴안았다. 그 상태로 블루 웨어울프를 자빠뜨
렸다.
쿵!
균형을 잃은 블루 웨어울프가 뒤로 넘어졌다. 녀석의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혔고,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동시에 녀석의 등줄기에 꽂힌 칼이 넘어지는 충격과 바닥의 존재를 빌어, 블루 웨어울프의 가슴팍을 뚫고 나왔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해골 전사가 블루 웨어울프의 가슴팍을 향해 폴짝! 도약했다.
해골 전사는 양손으로 쥔 뼈칼을 블루 웨어울프의 가슴팍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푹!
의외로 꽂히는 깊이가 깊지 않았다. 기세등등했던 해골 전사의 공격에 어울리지 않는 깊이였다.
그래서일까?
해골 전사는 만족하지 못한 듯, 양손으로 자신의 뼈칼을 뽑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푹, 푹!
이 거듭된 해골 전사의 공격에 블루 웨어울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울음을 토해냈다.
크허허헝!
그 울음과 함께 블루 웨어울프가 자신의 오른팔로, 자신의 가슴팍 위에 올라탄 해골 전사를 쳐냈다.
빠악!
해골 전사의 몸뚱이가 힘없이 날아갔다. 중량이 많지 않은 해골 전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블루 웨어울프를 쓰러뜨리자마자 거리를 벌리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던 히르칸은 날아가는 해골 전사와 자신의 시야 오른쪽 상단 구석에 보이는 마력량이 줄어드는 걸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 찌르고 빠져야지…… 아무래도 마운트 포지션도 제대로 가르쳐야겠어.’
가슴 위의 방해물을 치운 블루 웨어울프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녀석은.
휘청!
한 번 비틀거렸지만,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런 녀석의 몸 상태는 꽤 처참했다.
등 뒤에서 가슴팍까지 튀어나온 단검 한 자루와 가슴팍에 해골 전사가 만든 세 개의 상처 사이로 뿜어지는 핏물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현실에서면 이 정도 상처는 즉사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다르다. 유저도 마찬가지다.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것 정도로 죽는 몬스터는 없다. 머리 한쪽이 뭉개져도, 그것만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만약 즉사하는 꼴을 보고 싶으면 머리를 자르는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안 통하는 몬스터도 있다.
저 정도 상처는 그저 큰 데미지일 뿐이다.
‘자, 출혈 시작됐고.’
그러니까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제부터 시간만 끌어도 블루 웨어울프는 죽는다.
단!
회복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 몬스터들에게는 회복 모드가 있다. 이 모드에 들어서면 놀라운 속도로 상처와 HP가 회복된다. 그 모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더불어 회복 모드는 데미지를 일정 시간 이상 입지 않았을 경우에 돌입한다.
계속 공격을 해야 한다는 의미.
하지만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달라붙어서, 심지어 녀석의 등에 꽂힌 무기를 회수하려고 달려들 필요는 없다. 레벨이 낮은 이 시점에서는 그보다 더 유용한 방법이 있으니까.
히르칸, 그가 어느새 쥐고 있던 돌멩이를 블루 웨어울프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뻐억!
굉장한 소리와 함께 블루 웨어울프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다. 히르칸이 그걸 보며 히죽, 웃었다.
‘돌팔매도 간만이네. 예전에 이걸로 재미 많이 봤는데.’
팁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상대로는 돌멩이 투척 공격도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거라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실제로 레이드에 돌입했을 때, 대치 국면 상황에서 몬스터가 회복 모드에 돌입하지 못하도록 투척 무기를 이용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 히르칸의 공격에 블루 웨어울프가 히르칸을 직시하며, 입을 벌렸다.
크와앙!
[블루 웨어울프가 분노합니다.]
분노 가득한 울음이었다.
블루 웨어울프, 녀석이 워로드의 세계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시간은 길어봐야 며칠 남짓하겠지만, 그 짧은 일생에서 돌멩이로 머리를 맞는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물론 그래서 분노를 한 건 아니다. 안내음이 말해주듯, 그냥 분노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데미지가 짭짤하게 들어간 모양이군.’
분노 모드에 걸린 몬스터의 행동은 대개 단순화된다.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적을 향한 공격성만을 드러내게 된다. 주변 경계 따윈 하지 않는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할 각오를 품는다. 게임 용어로 말하면, 어그로를 완벽하게 끌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블루 웨어울프가 히르칸을 향해 달렸다.
눈이 돌아간 채, 분노를 표출한 채, 피를 흘린 채 덤벼드는 괴물 늑대 인간의 모습은 섬뜩했다.
하지만 히르칸의 입가에 히죽, 걸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나를 보면.’
딱!
‘안 될 텐데?’
딱!
히르칸이 달려오는 블루 웨어울프를 바라보며 잽싸게 손가락을 두 번 튕기는 순간, 블루 웨어울프 측면에 있던 해골 전사가 총탄처럼 날아와 블루 웨어울프의 옆구리에 뾰족한 뼈칼을.
푹!
깊숙하게 박았다.
그런 와중에도 블루 웨어울프는 해골 전사가 아닌 히르칸을 향해 덤벼들었다. 녀석은 자신의 마지막 불꽃으로 히르칸에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휘익!
블루 웨어울프가 히르칸의 머리통을 부술 기세로 팔을 휘둘렀고, 히르칸은 허리만 뒤로 젖혀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히르칸의 이런 회피는 정말 여유가 넘칠 때만 나온다.
‘그림 좀 나오겠어.’
그 순간 허리를 뒤로 젖힌 히르칸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굳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졌다.
“젠장!”
입에서 쓴소리도 나왔다.
히르칸은 깨달은 것이다.
‘하회탈? 젠장, 하회탈을 안 쓰고 영상 촬영했잖아?’
자신이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6화. 비마 산의 동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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