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남이 보면 망캐 (2). >
2.
[히르칸]
- 레벨 : 10
- 직업 : 마법사
- 타이틀 : 2개
- 능력치 : 근력(48)/체력(3)/지력(14)/마력(14)
히르칸은 손목에 찬 시계가 출력하는 홀로그램 창의 숫자를 바라보며 입을 꽉 다물었다.
‘진짜 이거 잘하는 짓일까?’
레벨업으로 얻은 모든 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했다. 45포인트나 되는 포인트를 근력에만 투자한 셈이다.
지력과 마력의 스탯이 오른 건, 마법사 직업이 가지는 레벨업 보너스 때문이었다. 마법사 직업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지력과 마력이 1포인트씩 오른다. 검사 직업은 반대로 체력과 근력이 1포인트씩 오른다. 여기에 2개의 타이틀 덕분에 지력과 마력이 1포인트씩
올랐다.
그 덕분에 현재 히르칸은 해골 전사 소환을 3번 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량을 보유할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소환을 할 경우만 그렇고, 해골 전사가 전투 도중 얻는 상처를 복구하는 등 유지 및 보수에 소모되는 마력을 고려하면, 현재 히르칸이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해골 전사의 개체수는 2마리가 한계다.
‘마력에 투자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힘들어지겠지.’
그나마 지금은 해골 조각 스킬의 랭크가 낮아서 견적이 나오는 거지, 해골 조각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 해골 전사 소환에 소모되는 마력량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유지 및 보수를 위한 마력 소모도 늘어난다.
더군다나 진짜 네크로맨서라면, 나중에 기본적으로 9마리의 해골 전사와 3마리의 해골 마법사, 골렘 한 마리 정도는 다루게 된다. 리치리치 같은 경우에는 백 단위에 가까운 병력을 다뤘다. 여기에 네크로맨서는 대개 공격 마법이나, 저주 마법도 어느 정도 습득한
다. 조건이 필요하면 상위 마법은 배우기 힘들어도, 하위 마법은 습득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으니까.
그래서 네크로맨서들은 마력에 거의 대부분의 스탯을 투자한다. 마력 스탯에 대한 투자는 마력량을 늘려주고 동시에 마력 회복량도 늘려주니까.
‘이대로 근력에만 투자하면, 50레벨 전후로 무조건 한계에 봉착할 게 분명해.’
분명하다.
이대로 그냥 무난한 성장만 하면, 50레벨이 됐을 때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아이템과 타이틀을 이용해 커버를 해야 한다. 마력 소모량을 줄여주거나, 마력 회복량을 늘려주는 아이템 세팅을 하고, 마력 스탯을 올려줄 수 있는 타이틀을 다수 확보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아누가스의 목걸이 같은 게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고민은 지금 하는 게 우스운 거고.’
아누가스의 목걸이.
200레벨의 보스 몬스터, 아누가스의 눈을 갈아 만든 에픽 아이템이다. 착용 시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마력 소모를 35퍼센트나 감소해주는 아이템으로, 처음 옵션이 공개됐을 때 꿈의 아이템 소리를 들었다. 더군다나 아누가스의 목걸이는 리미트가 없었다. 300레
벨, 400레벨이 넘어가는 유저도 아무런 페널티 없이 평생 쓸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누가스의 목걸이는 거래값 자체가 없었지?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게…… 메테오 워커였었나?’
너무 비싸서, 가격 자체가 공개된 바가 없다. 공식적인 거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누가누가 가져갔다더라, 그런 소문만 있을 뿐. 소유주도 명확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으면 모든 이들의 타깃이 될 테니까. 있어도 없는 척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이런 아이템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육성하는 건, 미친 짓이다. 당장 50레벨에 한계를 맞이한 히르칸이 200레벨짜리,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 아이템 세팅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키울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히르칸의 계획 자체에도 없었다.
히르칸의 계획에서 핵심은 아이템보다는 타이틀이다.
‘뭐, 어차피 이런 부분은 타이틀로 커버해야지.’
타이틀!
히르칸이 가지는 성공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감의 원천이다.
타이틀은 워로드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벨업이 힘들어지는 건 모든 RPG장르의 게임이 가지는 특징이다. 워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신 워로드는 후반부로 갈수록 타이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치가 늘어난다.
굵직한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20포인트가 넘는 스탯 상승 효과를 꾀할 수 있다. 4레벨을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스탯을 타이틀 하나로 커버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굵직한 타이틀은 거의 대부분 보스 레이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나중에 모든 길드가 보스 레
이드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타이틀 사냥을 통해 얻는 능력치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육성하는 경우도 없다. 만약 그런 짓을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막말로 아이템은 돈이 있으면 구할 수 있지만, 타이틀은 그게 아니다. 무조건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
‘미친놈 맞지. 제정신인 놈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히르칸이 홀로그램 창을 껐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미친놈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게 두려울 리 없다.
더군다나 이제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질렀으면 앞만 보는 거다.’
안 되면 되게 만드는 것!
그게 지금 히르칸이 할 일이다.
3.
워로드 세계관의 큰 틀은 단순하다.
평화로운 대륙에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괴물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의 시대, 그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자, 전쟁의 왕이 되는 것!
그게 게임의 목적이고, 그래서 게임 타이틀이 워로드다.
물론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각 국가 간의 대립 관계, 소수 부족들의 영웅담, 고대 유적 등…… 유저들의 호기심과 웅심(
이런 워로드의 세계관 속에서 유저들이 가장 먼저 상대하게 되는 토벌협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보통 유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일단 몬스터 토벌은 워로드 세계관에서는 지상과제다. 게임의 모든 것이 몬스터 토벌, 사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몬스터 토벌을 주도하는 토벌협회의 영향력이 워로드 세계관 내에서 작을 리 없다. 모든 왕국 그리고 소수 부족들까지, 토벌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토벌협회를 그저 몬스터 잡는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장소쯤으로 치부하는 유저는 절대 남들보다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없다.
이런 토벌협회는 실적에 따라 별을 지급한다. 별이 많으면, 보다 중요한 정보 및 퀘스트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획득하는 별은 어떤 의미에서 레벨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별만 획득하기 위해 토벌협회 관련 퀘스트만 파고드는 유저들도 있다.
스타 헌터라 불리는 부류들이다.
별이 많은 이들은 보다 토벌협회를 통해 고급 정보, 퀘스트를 얻을 수 있고, 그 퀘스트만으로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일명 기차다. 정말 굵직한 퀘스트라면, 돈을 내고라도 그 퀘스트를 같이 하고 싶어하는 유저는 부지기수다. 제법 괜찮은 타이틀이 걸린 퀘스트
는…… 진짜 그런 돈을 내고 게임을 하는 게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가 오고 간다.
30대 길드 같은 경우에는 아예 내부적으로 일반 레이드가 아니라, 별 사냥에만 주력하는 스타 헌터팀이 따로 있다.
물론 이런 굵직한 퀘스트는 대부분 NPC를 통해 습득한다. 보통 토벌협회 관련 퀘스트 습득 방법은 각 성에 위치한 토벌협회 지부에 들어가면, 시계를 통해 퀘스트 목록을 살필 수 있게 된다. 마치 커피숍에 들어가면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토벌협회에 가면, 자리를 차지한 채, 손목에 찬 시계를 만지작거리는 무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다 쉬운 퀘스트, 보다 보상이 나은 퀘스트, 보다 빨리 끝낼 수 있는 퀘스트를 찾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결국 고생하는 법이지.’
하지만 히르칸은 그 무리에 포함될 생각이 없었다.
퀘스트를 고른다?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고를 필요가 없다. 뭐든 해도 된다.
더군다나 히르칸은 이 토벌협회 퀘스트 시스템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토벌협회 관련 내용을 공부했다. 고3때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명문대도 갔으리란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지어 귀중한 정보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구했다. 지식을 위해 돈을 그렇게
아낌없이 써본 건, 히르칸의 일생에서 그때가 유일했다.
‘어차피 이 레벨대에서 얻는 퀘스트는 그 나물에 그 밥. 오히려 묵은 게 더 좋지.’
퀘스트 목록에 갱신된 수행 가능 퀘스트 목록을 히르칸은 퀘스트 생성 날짜순으로, 가장 오래된 날짜순으로 배치했다. 가장 날짜가 오래됐다는 건, 그동안 하는 사람이 없거나, 이미 몇몇 이들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버려진 퀘스트란 의미다.
토벌협회 퀘스트는 실패 횟수가 누적될수록 퀘스트 보상이 올라간다. 이런 사실은 잘 공개되어 있지 않다. 아는 사람들이 자신들만 누리기 위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거다. 실제로 워로드에 대한 정보 공개는 생각 이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워로드를 통해
움직이는 돈의 액수가 커지면서, 이런 정보는 일종의 기업 비밀처럼 치부되기 시작했다. 정보의 가치가 수백 혹은 수천만 원일지도 모르는데, 그걸 온라인상에서 좋아요, 개수 좀 받겠다고 올리는 사람이 많을 리 없다.
오히려 그렇게 관심만을 얻기 위해 퍼지는 정보는 출처가 불분명한 헛소문들인 경우가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뒤로 밀린 퀘스트는 경쟁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 유저들은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중에 좋은 퀘스트를 받으려고 한다. 이미 남들이 다 본 것 중에 좋은 게 있을 가능성보다는 새 것 중에 좋은 게 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그리고 새롭게 퀘스트가 갱신되면, 그 퀘스트들은 한 구역 내의 퀘스트들에 집중된다. 워로드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유저를 분산하기 위해 퀘스트 시스템을 이용하는데, 그동안 유저들이 많이 가지 않은 지역에 유저를 집중시키기 위해 퀘스트를 몰아주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필드에서 다른 유저, 파티, 길드와 경쟁을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보통 유저들, 그것도 이제 막 훈련 던전에서 10레벨을 찍고, 들뜬 기분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가진 초보 유저들이 알 리 없다.
그들은 그저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되는 시간이 오는 순간…….
“레어 등급 퀘스트 뽑았습니다. 같이 퀘스트 하실 검사 두 분 모십니다.”
“화염계 마법사 15레벨입니다. 레어 등급 퀘스트 뽑으신 분 찾습니다. 실력은 확실합니다.”
지금처럼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시장판, 그것도 난장판에 가까운 시장판을 벌일 뿐이다.
히르칸은 이 난장판을 바라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그들 입장에서도 나름 필사적인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애들이 진지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주 귀엽게들 노는구나.’
그러는 사이 히르칸이 퀘스트 하나를 발견했다.
‘응? 비마 산?’
단어 하나가 히르칸의 이목을 잡았다.
‘비마 산……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지?’
비마 산이란 단어.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언제 어디선가 스쳐 들은 듯한 느낌. 어쨌거나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었다.
히르칸이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러자 놀랍게도 히르칸의 머리가 기억을 해냈다.
‘유망주 타이틀 확보 가능한 퀘스트 목록! 그래, 분명 그 목록에 비마 산이란 단어가 있었어.’
히르칸이 곧바로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비마 산의 동굴]
- 퀘스트 등급 : 레어
-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10∽25
- 퀘스트 내용 : 비마 산은 피거스 성의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최근 비마 산의 몬스터들이 흉포해졌습니다. 그 근원지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 퀘스트 보상 : 10골드 및 추가 보상.
추가 보상.
애매한 표현이지만, 히르칸은 이 추가 보상이 유망주 타이틀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맙소사, 유망주 타이틀을 얻을 기회가 이렇게 오다니?’
유망주 타이틀.
워로드에서는 유명한 타이틀이다. 15레벨 이하의 유저들만 습득할 수 있는 타이틀로, 타이틀 효과는 직업 관련 능력치를 3퍼센트 올려준다. 마법사라면 지력과 마력 스탯이 오른다.
심지어 이 옵션은 아이템을 통해 올라간 모든 능력치에 적용이 된다.
문제는 15레벨 이하만 습득할 수 있는 타이틀이고, 습득 가능한 퀘스트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
그래서 누군가 유망주 타이틀을 정리할 때, 유망주 타이틀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 목록을 정리해두었다. 혹시 그와 비슷한 퀘스트가 나올 경우, 지체 말고 퀘스트를 수행하라는 일종의 노하우 공개였다.
당연히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 퀘스트 목록을 달달 외우고는 했다. 물론 퀘스트 타이틀 전부를 외우는 건 보통 머리로는 불가능하기에, 보통은 핵심 단어만을 외우고는 한다. 비마 산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절주절 외웠던 게 설마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수능을 앞두고도 영어 단어 하나도 외우지 않았던 히르칸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작심하고 외웠던 것이 이렇게 빛을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르는 법이다.
어쨌거나 이 기회를 히르칸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비마 산의 동굴’ 퀘스트를 수행합니다.]
히르칸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유망주 타이틀…….’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그어졌다. 능력치를 퍼센티지로 올려주는 타이틀은 워로드에서도 가장 좋은 타이틀이다.
‘유망주 타이틀에, 초신성, 드래곤 슬레이어, 대격전의 영웅 타이틀만 얻으면…….’
그리고 이렇게 퍼센티지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타이틀을 다수 확보한 캐릭터를 워로드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망캐가 아니라 사기캐가 되는 거지.’
사기캐.
모든 게이머의 꿈이다.
< 5화. 남이 보면 망캐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