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남이 보면 망캐 (1). >
1.
[레벨이 올랐습니다.]
[축복이 내려왔습니다. 모든 페널티가 사라지고, 체력과 마력이 가득 찹니다.]
[10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훈련 던전에서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레벨이 오르는 순간, 히르칸은 고개를 돌렸다. 해골 전사가 석탄 호랑이의 옆구리에 꽂힌 길쭉한 뼈를 뽑았다. 뽑은 뼈의 끝은 칼끝처럼 뾰족하고 섬뜩했다. 그렇게 뽑은 뼈를 들고 있는 해골 전사의 모습에서는 섬뜩함이 풍기기 시작했다.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해골 전사의 모습이었다.
히르칸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일단 10레벨은 찍었는데…….’
게임 시작 5일 차, 드디어 10레벨을 달성했다. 훈련 던전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레벨을 달성했다.
느린 페이스는 아니다. 보통 유저들 기준으로는 빠른 편이고, 정말 작심하고 게임을 하는 유저들 기준으로는 평균이다. 그리고 작심을 하면서, 재능도 넘치는 유저들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느리다. 재능 있는 유저가 하루 대부분을 워로드에 투자할 경우, 4일 차에
10레벨을 찍는다. 그리고 정말 그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랭커급 재능을 소유한 자는, 3일 만에 10레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그 기준으로 보면, 히르칸의 레벨업은 정말 늦은 편이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어.’
과거로 돌아오기 전 히르칸은 3일 차에 결과를 보여줬다. 그때 그런 결과를 봤기에, 히르칸은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워로드란 게임에 바칠 수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인생을 바친 게 아니다.
어쨌거나 예상보다 시간을 더 썼다.
하지만 히르칸은 이 상황에 크게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만족감이 살짝 어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뭐,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지만.’
소득은 컸다.
일단 해골 전사의 전투 인공지능은 확실히 우수했다. 처음에 그 어리바리한 모습을 거듭된 훈련을 통해 고치니, 이후에는 정말 쓸 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중간한 유저들보다 나았다.
여기에 하나 더.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아.’
해골 전사에게는 유저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메리트가 있다.
죽음에 따른 페널티!
그 부분이 유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일단 데미지를 입으면, 주인인 히르칸이 주입하는 마력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완전 파괴가 될 경우에는 다시 재소환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 쿨타임이 30분이다. 이 30분의 쿨타임은 해골 조각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적용된다. 해골 전사가 30분 동안 싸우다 죽으면, 곧바로 재소환이 가능하다.
즉, 해골 전사는 언제든 과감한 전투 진행이 가능하다.
엄청난 메리트다.
워로드의 가장 큰 리스크는 결국 죽음이다. 때문에 모든 전투 계획은 죽음 횟수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게임이니까. 던지고자 하면 얼마든지 던질 수 있는 게 목숨이란 놈이다. 그런데 해골 전사는 그 죽음
에 대한 리스크가 유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건.
‘그래도 배신 걱정이 없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
해골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히르칸은 해골 전사를 교육이란 명분하에 학대하듯 두들겨 팼다. 그러나 해골 전사는 조금의 반격도 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은 충성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전투에 돌입했을 때, 주인이 위협을 받으면 자신이 드러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다. 인공지능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체험을 하니, 해골 전사가 기특하다 못해 숭고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 같으면 그렇게 처맞으면 무조건 칼침 넣었지.’
히르칸이 해골 전사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면, 아마 하루도 버티지 않고, 곧바로 보복에 나섰을 것이다.
어쨌거나 해골 전사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런 해골 전사가 수십 마리가 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될 지경이다. 정말 기분이 찢어질 정도로 좋다.
그러나 그 기분을 누릴 여유가 당장 히르칸에게는 없었다.
이제 진지하게 자신의 앞에 놓인 중요한 문제를 풀어야 할 때가 왔으니까.
‘그럼 이제 문제는 능력치 투자인가?’
10레벨이 됐다.
이제 훈련 던전에서 꿀을 빠는 것도 불가능하다. 경쟁과 폭력과 위험이 넘치는 필드로 나가야 한다.
물론 나가서 싸우는 게 두려운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히르칸이 남의 뒤통수를 치면 쳤지, 맞을 인간은 아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아주 큰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그건 배신 때문에 맞은 뒤통수다. 어떤 직업을 해도 히르칸은 당하는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성이었다.
히르칸은 나름대로 열심히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헬겐에게도 이메일로 질문을 했다.
그렇게 히르칸이 모은 정보에 따르면 워로드에는 두 가지 타입의 네크로맨서가 있다.
‘스탠다드로 갈까?’
일단 가장 대표적인 건 소환 네크로맨서다. 소환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1레벨을 올릴 경우 주어지는 5포인트의 스탯 포인트 중 4포인트 이상을 마력에 투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환 마법은 마력이 많이 든다. 소환할 때도 가장 마력이 많이 드는 마법이다. 여기에 유지비로 꾸준히 마력이 소모된다. 마력이 없으면 못하는 직업이다.
일단 이게 워로드를 대표하는 네크로맨서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트렌드 하나가 나왔다. 헬겐, 그가 고급 정보라며 알려준 타입이 있다.
‘아니면 폭발?’
최근 반짝 주목을 받고 있는 폭발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가 가진 폭발 마법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네크로맨서다. 시체 폭발, 해골 폭발, 골렘 폭발 등…… 갑자기 이 폭발 네크로맨서가 주목을 받게 된 건, 모아서 터뜨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해야 하지만, 시체나 해골, 골렘을 한 번에
모아 터뜨릴 경우 그 위력은 동레벨 때 그 어떤 마법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대신 폭발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모든 능력치를 지력에 투자한다. 폭발 마법의 위력은 지력에 영향을 받으니까.
사실 히르칸 입장에서는 고려해봐야 한다. 레이드 솔플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잽만으로 잡을 수 있는 건, 체격 차가 있을 때다. 하물며 자신보다 체격이 더 큰 상대를 잡으려고 하는데, 잽만으로 잡는다? 못잡을 건 없지만, 역으로 잡히
는 경우가 더 많다.
‘불사 네크로맨서도 있지.’
여기에 지금 시점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불사 네크로맨서라는 것도 있다. 네크로맨서 스킬 트리 중 하나인 육체 개조 스킬 트리를 파고들고, 체력에 모든 능력치를 투자하는 네크로맨서다.
이 불사 네크로맨서가 등장한 배경에는 140레벨 스킬인 라이프 베슬 스킬이 있다. 라이프 베슬 스킬이란, 리치가 될 수 있는 스킬이다. 자신의 몸에 타격을 입어도, 라이프 베슬이 무사하면 죽지 않는다는 리치의 설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물론 진짜 불사는 아니다. 단지 라이프 베슬 스킬을 이용할 경우, 라이프 베슬에 직접적인 타격만 피할 수 있다면, 최대 10배 이상의 체력 증가 효과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라이프 베슬 하위 스킬로는 다양한 육체 개조 및 재생 관련 스킬이 있다.
우수한 탱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길드들이 보다 효율적인 부품을 찾기 위해 고민한 끝에 나온 타입이다.
히르칸이 지금 시점에서 알고 있는 네크로맨서는 이렇게 세 가지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히르칸은 셋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없었다.
비등비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이것들로는 부족해.’
세 가지 중 그 무엇도 히르칸이 원하는 바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히르칸이 원하는 그림에 맞는 조각이 없다.
물론 결국 골라야 한다면, 리치리치가 추구했던 것처럼 스탠다드를 추구하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 생각이 해골 전사의 전투 능력을 보면서, 바뀌었다.
선방어 후공격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소환물이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피만 잘 하면, 데미지는 없다. 즉, 마력 포인트가 적어도 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그 이론을 가능케 하려면, 해골 전사를 가르쳐주고, 그들의 롤모델이 될 선생이 필요하다. 해골 전사의 스펀지 같은 전투 인공지능을 듬뿍 채워줄 엑기스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엑기스 역할을 할까?
당연히 히르칸이다.
히르칸은 자신할 수 있다. 자신보다 잘 싸우는 인간은 없다. 똑같은 레벨, 스탯, 아이템을 가진 놈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히르칸보다 나은 스승은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능력치가 고만고만하니까 내 공격을 해골 전사가 피하지 못하는 거지, 나중에는 내 주먹 따위는 슬로우모션으로 보이겠지.’
히르칸이 가르치는 것도 지금까지다. 이 이상 해골 전사의 스펙이 올라가면, 육탄전으로 해골 전사를 가르치는 건 불가능해진다. 해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결국 근력에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
히르칸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모든 능력치를 근력에 투자했었다. 그러나 그게 유효했던 건 검사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스탯을 가지고 있어도, 검사의 경우에는 버프를 받고, 가진 스킬을 중첩하면, 기댓값이 10배를 가뿐하게 넘어간다.
물론 마법사에게도 그런 스킬이 있다. 마법검사라고, 마력을 이용해 전투 능력을 극대화하는 직업이 있다. 마법사 중에서도 근력과 체력에 대부분의 스탯을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흑마법사도 마찬가지다. 마력으로 근접 전투를 도와주는 스킬이 있다. 그러나 검사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무엇보다 그런식으로 투자를 하면, 결국 근력과 마력에 능력치를 투자하는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동시에 그렇게 되면 다양한 스킬 트리를 추구하게 되는데, 막말로 그런 식이면 약한 직업은 없다.
‘다 배워서 나쁜 직업은 없지.’
그런 식이면, 백마법사를 골라서, 모든 속성 마법을 최고 수준까지 배우면 된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게 대박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길은,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이다. 길이 도중에 끊길 수도 있고, 절벽으로 향하는 길일 수도 있다. 만약 가다 길이 끊기면, 끝장이다. 그때 가서 이 길이 아니네, 하고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다시 한 번 인생을 리셋할 수는 없
을 것이다.
‘고민을 더 이상 미룰 순 없지.’
이 순간 히르칸은 두 눈을 감았다.
무슨 선택을 하든, 후회는 남는다. 단지 후회가 더 남거나, 덜 남거나, 그 차이가 있을 뿐.
그렇다면 후회가 덜 남는 선택을 하는 게 나을 터.
‘리치리치는 혼자 레이드 솔플을 했지만, 그렇게 돈지랄을 해도 결국 최고는 되지 못했어.’
어차피 절벽에서 떨어질 운명이라면, 꿈을 향해서 몸이라도 던져보는 게 낫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게임 밖에 없는데, 게임에서마저 구차하게 살면, 내 인생 자체가 너무 추잡해져.’
히르칸, 그가 시계를 조작해 능력치 창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띄었다. 그 영상을 보며 히죽, 웃었다.
“올힘 네크로맨서, 컨셉 하나는 제대로 잡았군. 조회수가 짭짤하겠어.”
< 5화. 남이 보면 망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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