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해골과 함께 춤을 (3). >
5.
워로드를 하는 유저들 중 50퍼센트 가까운 유저들이 마법사를 고르고는 한다.
일단 마법사는 의외로 입문자가 하기 쉬운 직업이다.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지척에서 상대하는 검사와 다르게 후방에서 만들어낸 마법을 표적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도망칠 줄 아는 재주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동시에 인기가 많다. 마법사를 하는 유저는 많지만, 동시에 마법사에 대한 수요도 많다.
여기에 가상현실게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직업이다.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나름의 로망이란 의미다.
이런 이유로 많은 마법사 유저들이 첫 마법을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고…… 나름 사전에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도, 막상 다양한 스킬북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그러나 히르칸은 아니었다.
그는 3번방에 들어가자마자 원하는 스킬을 찾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고민은 없었다.
고민을 할 여지 자체가 없었으니까. 네크로맨서 소환 스킬의 시작점은 무조건 해골 조각 스킬이었다. 상위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이었고, 상위 스킬을 습득한 이후에도 계속 써야 하는 스킬이었다.
‘고민할 거리가 없으니, 이건 좋네.’
이후 히르칸은 방을 나오자마자 스킬북의 스킬을 습득했다. 스킬북으로부터 스킬을 습득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스킬북의 앞뒤에는 손바닥 모양의 그림이 있다. 거기에 시계를 차고 있는 왼손 손바닥을 맞추면, 곧바로 시계에서 홀로그램 창이 출력된다.
[해골 조각 스킬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이후 예, 라고 쓰인 아이콘을 누르면.
[해골 조각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어수룩한 네크로맨서’를 획득하셨습니다.]
곧바로 스킬을 얻게 된다.
동시에 타이틀도 얻었다. 히르칸은 곧바로 손에 쥐고 있는 스킬북을 휙! 바닥에 던졌다. 워로드에서 좋은 점은 어디든 쓰레기를 투척해도 고민할 게 없다는 점이다.
이후 히르칸은 해골 조각 스킬을 확인했다.
[해골 조각]
- 숙련도 : F랭크
- 현재 소환 가능한 해골 : 전사(1)
- 스킬 사용 방법 : 해골 조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든 해골 조각에 마력을 주입하면, 해골 부하를 부릴 수 있게 됩니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다.
“해골 조각.”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제물을 바치지 않은 채 스킬을 사용할 경우, 베이직 타입 조각만 생성됩니다.]
짧은 안내음과 함께 히르칸이 펼치고 있는 손바닥 위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해골 조각이 생성됐다. 생성된 해골 조각은 정말 딱 봐도 스마트폰에 달고 다닐 만한 장식품 수준이었다.
히르칸이 그 해골 조각을 꽉 쥐었다.
‘중요한 건, 이 녀석의 전투 인공지능인데.’
해골 부하의 능력치는 코어가 되는 제물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 부분은 얼마든지 투자로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투자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전투 인공지능이다.
히르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저가 소환하는 몬스터들의 전투 인공지능은 그렇게 우수한 편이 아니다. 대신에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전투를 통해 학습을 하고, 전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다. 1레벨에 소환한 해골 전사가 300
레벨에 다다른 랭커급의 전투 센스를 보여준다면, 죄다 네크로맨서를 할 테니까.
우려되는 건 우수하지 않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 그 부분이었다.
‘기본만 해라. 나머진 내가 커버해줄 테니까.’
정말 쓸모없는 수준이라면, 생각보다 네크로맨서란 직업은 골치 아픈 직업이 될 테니까.
6.
워로드의 거의 모든 콘텐츠는 전투로 시작한다. 동시에 워로드가 제공하는 콘텐츠 중에 가장 어려운 게 전투다. 이런 워로드에서 전투를 준비하는 과장까지 복잡하고, 까다롭다면 그 누구도 워로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워로드는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편의가 꽤 많은 게임이었다.
그 중심에는 토벌협회라는 게 존재했다.
토벌협회는 몬스터 사냥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집단으로 거의 모든 유저가 당연하게 가입을 하는 곳이었다. 특히 초보 유저들은 무조건 토벌협회에 가입을 하는 게 유리했다.
일단 토벌협회에 가입하면, 당장 무기와 방어구가 주어진다. 여기서 주어지는 아이템은 10레벨까지는 사용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시작부터 아이템을 맞추기 위해 돈을 벌거나, 노가다를 하거나, 맨몸으로 몬스터와 싸울 필요는 없다.
동시에 토벌협회가 운영하는 훈련 던전을 이용할 수 있다.
10레벨 미만 유저들을 위해 마련된 이 훈련 던전은 무조건 거쳐야 하는 장소다. 튜토리얼이 워로드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를 맛보는 과정이었다면, 훈련 던전은 워로드에서 진짜 전투를 위해 기본기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더불어 훈련 던전은 인스턴트 던전으로 경
쟁이 없으니, 오로지 전투에 집중할 수 있다.
지금 히르칸은 그 훈련 던전에 있었다.
축구장 크기의 원형 공간,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횃불빛 아래로 두 개의 입구가 있었다.
히르칸이 그중 한 쪽에서 나왔고, 히르칸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반대편에 있는 입구에서 몬스터가 등장했다.
늑대였다.
횃불의 불빛 아래로 보이는 녀석의 금빛 눈동자와 시커먼 몸뚱이를 히르칸이 확인했다.
‘석탄 늑대군.’
석탄 늑대.
몸이 석탄으로 이루어진 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석탄으로 이루어진 만큼, 쉽게 부숴진다. 1레벨 유저라도 맨주먹으로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놈이다. 하물며 토벌협회를 통해 훌륭하진 않지만, 나름 날이 선 무기와 가죽 방어구를 얻어낸 유저에게는 결
코 버거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 쉬운 몬스터와의 첫 전투에서 살아남는 유저는 의외로 90퍼센트에 미치지 못한다. 10명 중 1명은 이 몬스터조차 이기지 못한 채 오히려 당한다.
그게 전투라는 놈이다.
아무리 대단한 아이템과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물론 히르칸이라면, 석탄 늑대 정도는 전투 시작 30초 안에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히르칸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해골 조각이 손에 잡혔다. 해골 조각을 꺼낸 히르칸이 곧바로 마력을 주입했다. 마력을 머금은 해골 조각의 두개골 사이로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해골 전사, 너로 정했다!”
히르칸은 곧바로 해골 조각을 석탄 늑대를 향해 던졌다.
마치 포켓몬스터에서 포켓몬이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던지는 것처럼, 아주 멋진 포즈로 던졌다.
[해골 전사가 마력을 머금고 형태를 갖춥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진 해골 조각이 물을 머금은 미역처럼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 좀 괜찮네.’
해골 전사가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1초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형태를 갖춘 해골 전사의 신장은 160센티미터로, 일반 성인 남성보다는 작은 편이었다. 체격도 그리 크진 않았다. 뼈의 구조는 인간과 거의 흡사했다. 그래서 굉장히 느낌이 섬뜩했다. 차라리 어수룩한 형태면 모르겠는데, 사람하고 똑같은 뼈구조를 가진 놈이 해
골인 채로 서 있고, 심지어 두개골에 있는 눈두덩이 사이로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담이 약한 사람이라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심지어 녀석은 등장하자마자, 석탄 늑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주인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지만, 그 광경이 꽤 괴기스러웠다.
히르칸은 그 해골 전사를 바라보며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잡아.”
이윽고 히르칸이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해골 전사가 손에 쥔 길쭉한 뼈를 몽둥이처럼 머리 위로 높게 들며 석탄 늑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커엉!
석탄 늑대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해골 전사를 피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거친 울음과 함께 석탄 늑대가 네 개의 다리를 힘차게 놀리기 시작했다.
따닥따닥, 해골 전사가 달리는 소리와 파밧파밧, 석탄 늑대가 질주하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 소리와 함께 그 둘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히르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저대로 그냥 부딪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전투 인공지능이 안 좋더라도, 설마 저대로…….’
히르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쾅!
둔한 소리가 터졌다.
석탄 늑대와 해골 전사가 부딪쳤다. 부딪치기 전 해골 전사가 나름 석탄 늑대를 향해 손에 쥔 뼈를 휘둘렀지만, 석탄 늑대는 그 뼈가 제 몸에 닿기 전에 해골 전사의 몸 사이를 파고들며,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몸통 박치기에 맞은 해골 전사의 몸이 활처럼 휘어지
며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해골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해골이라서 그런지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그 광경을 보던 히르칸의 표정은 더 안쓰러웠다.
‘아니, 이 정도야? 내가 봤던 리치리치 영상에서는 나름 머리 굴리면서 잘 싸우던데?’
처음부터 잘 싸우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습 능력이 있으니, 가르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의 기대치는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워로드는 몬스터들의 전투 인공지능이 꽤 높다. 애초에 워로드를 제작한 토봇 소프트가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는 이미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었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수준이 낮을 줄이야?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나?’
히르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주물렀다.
그러는 사이, 기분 좋게 해골 전사를 날려버린 석탄 늑대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크르르!
놈은 이 기세를 이어가, 히르칸마저 해치울 속셈이었다. 녀석이 곧바로 히르칸으로 표적을 바꾸었다. 낮게 깔린 울음을 토해내며, 히르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파밧파밧, 경쾌한 발소리가 들렸다. 히르칸은 그 발소리 앞에서 여전히 미간을 주무르고 있었다. 히르칸이 탄식을 멈추고, 석탄 늑대를 상대하기 위한 대응에 나선 건, 석탄 늑대가 20미터까이 거리를 좁혔을 때였다. 말이 20미터지, 거의 지척의 거리였다. 숨을 크
게 한 번 들이마시고, 내뱉으면 좁혀질 거리.
그 순간 히르칸은 오른쪽 허벅다리 부근에 차고 있던 송곳 모양의 단검을 오른손으로 꺼낸 후, 오른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왼손으로 가볍게 던졌다. 왼손이 단검을 잡는 순간, 석탄 늑대는 5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펄쩍! 도약을 시도했다.
도약한 녀석은 히르칸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도록, 입을 크게 벌린 채 네 개의 송곳니를 과시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거나,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나 히르칸이 누구인가?
영웅도살자.
전투 센스와 전투 능력 자체로는 이미 워로드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자다. 히르칸은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상체만 가볍게 비틀었다. 석탄 늑대가 자신의 왼편으로 그냥 지나가도록, 아슬아슬한 차이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석탄 늑대가 유도한대로 히르칸의 왼
편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순간.
푹!
히르칸이 왼손에 쥐고 있던 검을 그대로 석탄 늑대의 왼쪽 눈에 찔러 넣었다.
캐앵!
석탄 늑대가 제대로 착지하지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굳이 과하게 움직이지 않은 채 공격을 피하고,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보다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기술. 그냥 보통의 유저가 문외한이 본다면 와! 소리가 나올 법한 몸놀림, 나름 숙련된 유저가 본다면, 등골이 오싹해질 법한 예술적인 몸놀림이다.
‘흥.’
물론 히르칸, 본인에게는 감흥 없는 작업일 뿐이다. 이런 건 그의 기준에서 전투도 아니고, 사냥도 아니다. 사람이 개미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는 걸 가지고 전투, 사냥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해골 전사가 바닥을 구르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석탄 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응?”
살짝 당황한 히르칸. 하지만 주인이 당황하든 말든 해골 전사는 거침없이 달려갔고, 자세를 잡은 석탄 늑대는 왼쪽 눈알에 단검이 꽂힌 채로 해골 전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쾅!
둘이 다시금 충돌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날아간 쪽은 해골 전사였다. 해골 전사가 날아간 모습을 보는 순간 히르칸은 다시금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주물렀다. 그러는 사이 석탄 늑대는 다시 히르칸을 바라봤다. 앞서서 거침없이 덤비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석탄 늑대가 히르칸을
경계하며, 그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학습 능력의 결과물이다. 히르칸의 압도적인 전투 능력에 석탄 늑대가 섣불리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별수 없지.’
여기서 히르칸은 손가락 한 번을 튕겼다.
기본 행동 명령어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면 방어 모드로 전환하고, 그 상태에서 두 번 튕기면 다시 전투 모드로 돌입한다.
‘그러고 보니, 손가락을 세 번 튕기면 특수 행동을 보인다고 했지?’
그리고 세 번 손가락을 튕기면, 특수 행동 패턴이 발동한다.
히르칸이 석탄 늑대를 바라봤다. 석탄 늑대는 여전히 히르칸을 경계한 채 빙빙 돌고 있었다. 틈을 찾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모양. 히르칸이 해골 전사를 바라봤다. 방어 모드로 전환한 녀석은 자세를 낮춘 채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 석탄 늑대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볼꼴, 못 볼꼴은 다 봐야겠지.’
어차피 지금은 해골 전사의 능력을 가늠하는 자리다. 특수행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다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딱딱딱!
히르칸이 손가락 세 번을 튕겼다.
그러자 경계하고 있던 해골 전사가 꼿꼿하게 섰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해골 전사가 춤을 춥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 한때 세계를 매혹시켰던 그 춤이, 무수히 많은 팬들을 감격에 울게 만들었던 그 세기의 춤이 워로드, 지하 던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광경의 유일한 관객이 된 히르칸이 감격한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냥 다시 캐릭터 삭제하고 검사 키울까?’
히르칸은 간만에 게임을 하면서 울고 싶어졌다.
< 4화. 해골과 함께 춤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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