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0화 (10/192)

< 4화. 해골과 함께 춤을 (2). >

3.

클래스 타워.

베이직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며, 주기적으로 스킬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다. 동시에 자기와 같은 직종 사람들끼리 필연적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어느 성을 가든, 클래스 타워 주변에는 사람이 참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는 욕심이란 놈이 똬리를 틀기 마련.

클래스 타워 주변에는 여러 목적을 가진 사람이 모여 있다. 개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스카우트들이다.

“불 속성, 얼음 속성 마법자 지망생 모집 중입니다!”

“아란 길드에서 저주 마법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50레벨까지 완벽하게 지원해드립니다.”

클래스 타워 근처에 머무는 스카우트들의 목적은 대부분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신규 유저를 영입하는 것이다.

워로드는 정말 인기가 넘치는 게임이다. 2035년 출시 이후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백만 명 가까운 유저가 워로드를 즐기고 있고, 이 숫자는 매일 수천 명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워로드에서는 인력난이 자주 일어난다.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 이유는 일단 라이트 유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보통 게임은 라이트 유저와 하드 유저가 구분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게임 자체는 무료로 풀고, 과금제도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로드는 무료로 즐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값이 10만 원 안

팎으로, 한 번 해볼까? 하고 지를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때문에 워로드를 하는 유저는 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한다. 그 명확한 의도란,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을 영입하려고 해도, 이미 다들 소속이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워로드의 메인 콘텐츠인 레이드를 위해서는 본 전력 이상의 예비 전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직종이 마법사다. 마법 속성에 따라서 최대 200퍼센트의 데미지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속성이 안 맞으면

그만큼의 페널티를 얻는다. 그런 만큼 뛰어난 마법사를, 속성별로 확보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실력 있고 명성도 떨치고, 레벨도 높은 마법사를 영입하는 건 매우 힘들다.

결국 없으면, 아쉬운 놈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신규 유저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타입으로 키우는 게 작금의 대안책이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호객 행위 하듯 영입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성과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보단 그래도 현장에서, 신규 유저

들을 상대로 이렇게 목청 높이는 게 그나마 성과가 있다.

물론 말이 목청을 높이는 거지, 사람이란 게 하다가 안 되면 과격해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이미 레벨도 어느 정도 되고, 게임 짬밥도 먹을 만큼 먹은 유저들이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파릇파릇한 애송이들을 상대로 손바닥을 열심히 비비는 비굴한 짓을 좋아할 리 없다.

때때로는 과격한 짓이 나오고는 했다.

“거기! 잠깐!”

지금도 그랬다.

열심히 길드원 모집 행위를 하던 유저 한 명이, 막 마법사의 탑 입구로 들어가려는 유저의 왼손 손목을 잡았다. 아주 꽉 잡았다. 혹여 상대가 자신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여지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신규 유저지? 잠깐 이야기 좀 들어봐.”

수두리란 캐릭터네임을 가진 유저는 말과 함께 눈앞의 초보를 바라봤다.

특별할 것 없는 외모. 그런데 딱 보는 순간 느낌이란 게 있지 않은가? 이 녀석 호구다! 하는 느낌.

‘딱 봐도 호구 새끼네. 이 녀석이라도 데려가지 않으면, 길드장 새끼가 또 지랄을 할 거야.’

수두리, 그가 속한 길드의 길드장은 그의 고등학교 선배로, 소위 말해서 그를 부하처럼 끌고 다니는 양반이었다. 최근 워로드가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V기어를 구매한 다음에 자기가 부하처럼 다루는 애들을 데려다가 길드를 만들고 게임을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해서 모인 숫자가 많을 리 없다. 길드원은 채 열 명도 안 됐고, 길드장은 수두리에게 당장 신규 길드원을 데려오지 않으면 뒈질 줄 알아! 호통을 쳤다. 그냥 호통만 치면 모르겠는데,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술자리에서 주먹까지 날아오니, 죽

을 맛이다.

어쨌거나 누구든 좋았다. 특히 호구처럼 보이는 놈이 있으니, 일단 강제로라도 길드에 가입시킬 속셈이었다.

한편 그런 수두리의 표적이 된 신규 유저, 히르칸은 눈앞의 쥐새끼 비슷한 얼굴을 가진 놈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내가 호구로 보이는 모양이지?’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었기에, 히르칸은 눈앞의 놈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더불어 히르칸은 현실에서 호구 취급받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당해봤다.

물론 워로드에서는 달랐다.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할 만한 여건이 확보된 이후, 히르칸은 자신을 호구 취급하는 놈들의 목을 잘라, 근처에 있는 호랑이 타입의 몬스터의 입 안에 넣어주는 걸로, 호구가 진짜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줬다.

1레벨에 불과한 지금의 히르칸에게 불가능한 이야기다.

히르칸이 상대를 바라봤다.

“뭐하는 거야?”

“마법사 될 거지? 지원 제대로 해줄 테니까, 우리 길드 들어오는 게 어때?”

말을 하면서도 상대는 히르칸의 손목을 놔주지 않았다. 히르칸이 이 수작과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내가 아주 제대로 된 병신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여기서 히르칸은 불쾌한 표정보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수두리가 곧장 말을 이어갔다.

“어느 속성이든 좋아. 뭘 하든 제대로 지원해줄 테니까. 특별히 너만 허락해주는 거야. 우리 길드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길드가 아니야. 소수정예 길드라고.”

얼굴이 선하시네요, 조상님의 은덕이 보이시네요, 급의 헛소리를 내뱉는 수두리를 향해 히르칸이 반문했다.

“어느 속성이든 괜찮다고?”

“물론!”

“흑마법도?”

“응?”

여기서 수두리가 처음으로 의문을 표했다. 마법사들 중에 9할 이상은 백마법을 택한다. 습득 가능한 마법의 속성이 다양하니까. 반면 흑마법 계열의 스킬 트리는 모두 한 가지 속성으로 분류된다.

“혹시 저주법사 지망하는 건가?”

그 중에도 굳이 흑마법사를 하는 부류들은 십중팔구 흑마법사를 대표하는 저주 스킬 트리를 파고드는 부류다.

디버프 마법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 개중에서도 흑마법사의 디버프는 속성이 하나뿐이라는 게 장점이다. 속성에 따른 어드밴티지가 없는 만큼 페널티도 없기에, 어떤 몬스터를 상대로도 평균 수준의 디버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소 길드는 다양한 속성의 디

버프 마법사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그냥 저주법사 하나로 커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주법사는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인기가 없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후방에서 버프만 주고, 자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직업은 정말 독특한 취향이 아니면 재미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잘됐네. 저주법사라면 무조건 길드 지원받아야지.”

나쁠 건 없다.

수두리는 오히려 호구가 봉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수두리를 향해 히르칸이 말했다.

“저주법사 할 생각은 없는데? 네크로맨서 할 건데?”

“뭐?”

여기서 수두리는 히르칸의 손목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서 힘을 슬쩍 풀었다.

‘호구가 아니라 변태 새끼였네…….’

네크로맨서 지망생이라니? 하필 호구라고 잡은 새끼가, 백 명 중 한 명 보기도 힘든 변태 새끼일 줄이야?

한편 히르칸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상대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 탁! 하고 손목을 회수했다. 수두리는 다시 히르칸의 손목을 잡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히르칸을 그냥 바라만 봤다.

“이래도 지원해줄 건가?”

수두리는 퉷! 고개를 돌려 침을 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꺼져! 그런 의미를 품은 무언의 제스처다.

그런 그에게 히르칸이 나지막이 말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 나지막한 말.

“뭐?”

수두리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지막한 말이었다. 수두리가 반응을 했지만 제 할 말을 마친 히르칸은 곧장 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히르칸이 한 말의 끝 부분.

‘……다시 내 왼손 손목을 잡으면 죽여 버리겠어.’

그건 마지막 경고였다.

4.

워로드에서 유저와 NPC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왼손 손목을 확인하면 된다. 유저는 왼손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있다. 이 스마트 워치의 기능은 다양하다. 능력치 확인, 퀘스트 확인, 지도 확인, 본체의 신체 데이터, 가상현실 밖과의 연락,

사진 및 영상 촬영을 비롯해 퀵슬롯 시스템까지 있다.

이 손목시계는 벗을 수 없다. 이 손목시계를 벗을 수 있는 방법은 손목을 자르거나, 아니면 죽었을 때뿐이다. 즉, 유저는 게임상에서 죽으면 시계를 남긴다. 이렇게 남긴 시계를 다른 사람이 주웠을 경우, 각 성 혹은 마을마다 존재하는 장물아비에게 건네주면, 그

시계의 주인이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 중 하나를 랜덤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PK를 자주 하는 유저들은 일단 상대방의 손목부터 노린다. 손목만 자르면, 퀵슬롯을 이용한 아이템 스위칭이 불가능해지고, 그 시계만 가지고 튀어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때때로는 목숨은 살려줄 테니, 손모가지를 놓고 가라고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가장 더러운 경우로, 회복 아이템이나 회복 마법 등을 통해 잘린 손목을 복구하기 전까지는 시계가 가지는 모든 편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다. 현실에서 연락이 와도 통화가

불가능하다. 이때는 그냥 게임을 나가서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시간대를 담배타임, 현자타임이라고 한다. 진짜 그냥 기분이 아주 지랄 같다. 왜 비싼 돈 내서 이 게임을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무조건 든다.

때문에 PK를 좀 많이 당했던 유저들은 자신의 왼손 손목을 누가 건드리는 것에 아주 민감하다.

‘별것도 아닌 새끼 때문에 안 좋은 기억만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히르칸의 경우에는 이 부분에 있어서 히스테리가 있을 정도로, 민감하다. 그런데 왼손 손목을 잡혔으니,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얼굴 기억해뒀어.’

그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히르칸은 아주 괴팍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한 번은 봐준다. 그러나 두 번째는 없다.

‘다음에도 이 지랄을 하면 레벨 무시하고 작살을 내주마.’

후우!

크게 숨을 돌리며 기분을 안정시킨 히르칸은 곧장 1층에 위치한 NPC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치 은행창구처럼, 2명의 NPC가 책상을 앞에 둔 채 유저와 마주 보고 있었다. 재미난 건 한쪽은 사람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은 딱 한 명의 유저만이 NPC

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쪽은 백마법을 배우려는 유저들이고, 사람이 없는 쪽은 당연히 흑마법을 배우는 쪽이다.

이게 현재 백마법과 흑마법의 차이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히르칸이 네크로맨서를 지망한다는 소리에, 호구 잡았다고 좋아하던 인간이 학을 떼며 침을 뱉을까?

심지어 백마법을 배우려는 유저들은 흑마법 쪽으로 가는 히르칸을 보며 실소 혹은 안쓰러운 표정 따위를 지었다. 마치 낭떠러지로 향하는 인간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시선 속에서 히르칸이 NPC와 마주 봤다. NPC는 아주 시커먼 얼굴을 가진 늙은 노인이었다. 피부가 당장에라도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그 NPC가 히르칸을 보며 말했다.

“나는 흑마법사 골코라고 하네. 흑마법에 관심이 있는가?”

[전직 관련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직업을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흑마법과 백마법, 둘 중 하나를 택한 이후 선택을 바꾸기 위해선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곧바로 경고 알림이 귓가를 맴돌았다.

히르칸은 그 알림을 무시했다.

“예.”

“말만으로는 흑마법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법. 자네의 각오를 이곳에 새겨 넣게.”

골코는 말과 함께 본인 피부처럼 당장에라도 썩어 문드러질 듯한 종이를 꺼냈다.

계약서였고, 히르칸이 사인을 해야 할 곳은 뒷장까지 포함해서 무려 다섯 곳이었다.

유저가 나중에 가서 개발사를 상대로 바꿔달라고 지껄이는 걸 막기 위한, 확인서이기도 했다.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다. 게임에서 본인의 선택으로 나온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달라고 지랄을 하는 인간은 꼭 있다. 때때로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적으로 나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한 계약서다. 히르칸은 망설임 없이 다섯 곳 전부에 사인을 했다.

사인을 확인한 골코가 히르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바닥을 내밀게.”

히르칸이 손바닥을 내밀었고, 골코가 그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가락으로 숫자 3을 썼다.

[손바닥에 열쇠가 깃듭니다.]

골코가 숫자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저기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개의 방이 있네. 이 숫자가 쓰인 방으로 들어가면 서재가 나올 걸세. 그곳에서 오직 한 권의 책만을 가지고 나올 수 있네. 책을 가지고 나오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다시 들어갈 수 있지만, 책을 가지고 나오는 순간, 다음에

는 새로운 열쇠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네.”

이런 방법으로 열쇠를 주고받다니? 그야말로 마법사다운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NPC와의 대화 내용은 시계에 설치된 퀘스트 앱을 통해 언제든 다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알림을 들은 히르칸이 주먹을 쥐었다.

< 4화. 해골과 함께 춤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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