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7화 (7/192)

< 3화. 고수의 비결 (1). >

1.

“역시 사채업자 애들이 돈은 빠릿빠릿하게 넣어주는군.”

즈륵, 즈륵!

안재현은 자신의 손에 있는 시계의 다이얼을 조작하며,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대출 받은 천만 원이 추가로 입금됐다. 안재현은 시계의 다이얼을 조작한 후 시계를 입 가까이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피치 스토어.”

돈이 입금됐으니, 이제 그가 가야할 곳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피치 스토어.

가상현실장치 시장에서 70퍼센트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하며, 어떤 의미에서 가상현실시대의 포문을 연 피치 사의 모든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다. 동시에 피치 스토어에서는 워로드 캐릭터 생성도 가능하다. 당연한 제휴였다. 워로드 등장 이후 V기어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이 워로드를 구매하려는 자들이고, 워로드가 잘 나갈수록 V기어 판매량도 높아지니, 피치 사 입장에서 워로드를 배려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피치 스토어에서 워로드 접속을 위해 필요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좋아.’

곧바로 피치 스토어의 위치를 확인한 안재현이 소형 이어폰을 왼쪽 귀에 착용했다.

-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2.

가정용 가상현실장치, V기어 1레벨 모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상은 혁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 정확히는 서민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에게는 혁명이 아니었다.

“2천만 원이 넘어가는 게임기를 어디에 써?”

수억 원이 넘어가던 가상현실장치가 2천만 원, 중소형차 수준으로 저렴해진 건 혁명이었지만, 그래도 분명 부담스러운 가격임은 분명했다. 여기서 피치 사는 가격을 줄이기 위한 경쟁보다는 오히려 고급화 정책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단순한 장난감을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구매하는 것!

그게 피치 사의 세일즈 포인트였고, 그런 피치 사가 가장 공을 들인 게 바로 피치 스토어였다.

단순한 가전매장과는 다르다. 일단 피치 스토어는 딱 봐도 눈에 보인다. 복숭아와 흡사한 건물 형태와 복숭아보다 더 탐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벽은 피치 스토어 외에는 절대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는 디자인이었으니까. 내부는 더 놀라웠다.

피치 스토어에서는 V기어로 즐길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었다.

마음껏 즐기고, 그 후에 구매하라!

심지어 그 무제한이란 24시간을 의미한다. 하루 종일, 피치 스토어는 V기어를 고객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때문에 V기어를 구매하기 전에, 일단 워로드 캐릭터를 생성한 뒤에 피치 스토어에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캐릭터를 육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피치 스토어에 오랜만에 방문한 안재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마 의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오토바이 헬멧보다 더 크고, 두꺼운 헬멧을 쓰고, 용접공이 쓸 법한 두껍고, 큼지막한 장갑을 쓴 채 가상현실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 직원이 안재현에게 다가왔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직원의 친절한 미소에 안재현이 곧장 대답했다.

“V기어 1레벨 모드 구매하고 싶습니다. 계약서 작성하고 싶은데, 자리 좀 마련해주세요.”

이 순간 직원은 안재현이 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안재현에게 직원은 매뉴얼대로 말했다.

“혹시 V기어를 이용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안재현이 잠깐 고민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없는 거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하루 내내 V기어를 달고 살아서, 나중에는 목에 디스크 증상까지 보였을 정도지만, 그건 없던 일이 됐다. 지금 시점에서 안재현은 단 한 번도 V기어를 써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없습니다.”

“그럼 한 번 이용해본 후에 구매를 결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시다시피 V기어는 경우에 따라 멀미나, 현기증 등과 같은 증상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냥 구매하겠습니다.”

가상현실 부작용 같은 게 안재현에게 있었으면, 애초에 과거로 돌아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직원은 곧장 안재현을 구매를 위한 장소로 안내해줬다. 그런 안재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안재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깐.”

“예?”

“저거 6S레벨 아닙니까? 지금 저거 파는 겁니까?”

안재현이 보는 방향에는 하얀색인 V기어와 다르게 청명한 에메랄드 빛을 품은 V기어와 그 V기어에 달라붙어 테스트를 하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저거 6레벨, 그것도 S레벨이 분명해. 저거 공식 판매는 2036년 말에나 할 텐데?’

V기어는 1레벨이 가장 기본 모델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상위모델이다. 상위 모델이 가상현실 속에서 플레이가 좋다. 좋은 장비를 써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과 같다. 물론 그 차이는 아주 크진 않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1레벨이 오를 때마다 2퍼센트 정도 더 게임

이 잘 된다는 게 유저들 사이의 정론이다.

하지만 이 2퍼센트란 게 누적되면 무시할 수 없다. 무식하지만, 능력치가 2퍼센트 차이 난다는 건, 엄청난 차이다. 하물며 1레벨이 2퍼센트 차이라면, 1레벨 제품과 4레벨 제품은 6퍼센트 차이가 나는 셈이다. 게임에서 모든 능력치를 6퍼센트 올려주는 아이템은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아이템이다.

더불어 V기어 4레벨의 가격은 대당 1억 원 안팎이다. 그야말로 워로드가 생계와 직결되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쓰는 용도다. 5레벨의 경우에는 주문 제작만 가능하며, 주문자의 옵션 설정에 따라서 가격이 쑥쑥 올라간다. 그리고 6레벨의 경우에는…… 이 시점

에는 발매된 제품이 아니다. 나온다고 해도 시험 제품.

심지어 에메랄드 색이라면 S시리즈다. 스페셜 시리즈로, 피치 스토어의 고급화 전력의 끝판왕이다. 레벨 구간 당 정확히 77대만 생산한다. 가격은 어마어마하다. 애초에 일반인들이나 전문가 쓰라고 만든 게 아니라, 대부호들…… 정말 돈이 썩어 넘쳐서 취미로 요

트 같은 거 사는 인간들을 위해 만든 제품이다.

‘저거 끝내주는 놈인데?’

안재현은 그런 어마어마한 놈을 써본 적이 있다. 안재현이 워로드를 시작하고 제법 이름을 떨칠 당시 7S레벨 테스터로 선별됐고, 그때 정말 감탄을 했다. 당시 3레벨 모델을 쓰던 안재현 기준에서는 평생 비포장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아우토반에서 최고의

스포츠카를 타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게 마음대로 됐다.

동시에 당시 안재현의 가상현실 데이터를 확보한 관계자들도 놀랐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7S레벨의 성능을 다루는 유저는 안재현이 유일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쨌거나 6S레벨이 눈앞에 있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저 제품은 판매 제품이 아닙니다.”

직원이 곧장 설명을 했다. 안재현은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내가 지금 저거 살 돈이 있으면 주식을 샀지, 저걸 왜 사겠어?’

판다고 해도 살 수 없는 게 지금 안재현의 처지다. 단지 아직 정식 판매도 하지 않을 제품이 이곳, 피치 스토어에 있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보통 저런 건 구매자가 있으면 피치 사가 그냥 다이렉트로 원하는 장소까지 배달해준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할 만한 수준의

제품이 아니다. 동네 자동차 샵에 람보르기니가 디스플레이 되는 경우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저기 있다는 건 문제 생겨서, 지금 급하게 가져와서 테스트 중이라는 의미일 텐데?’

딱 봐도 기계에 문제가 있고, 소유자가 그 사실을 알리는 순간, 피치 스토어 기술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달라붙은 거다.

때문에 안재현이 궁금한 건 저 기계의 주인이었다.

‘우리나라에 아직 정식 판매도 안 되는 제품을 당연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인간은…….’

그리고 그 인간은 어쩌면 안재현이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년 밖에 없는데?’

더불어 그 인간은 안재현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해 마지 않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안재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직원은 그 표정을 오해했다. 자신 때문에 표정이 달라졌다고 생각한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제품은…….”

“예?”

여기서 오히려 안재현이 살짝 놀랐다. 이내 안재현은 대충 직원 낌새를 이해했다.

‘피치 스토어 직원 애들은 너무 친절해서 문제라니까. 어쩔 때는 부담스럽다고.’

안재현이 표정을 풀었다.

“아뇨, 눈이 잘 안 보여서 찌푸린 겁니다. 뭐, 안 파는 걸 제가 어떻게 사겠습니까? 일단 계약서부터 쓰겠습니다. 아, 워로드 캐릭터도 생성할 거니까 같이 처리해주세요.”

그 말에 직원이 안재현을 다시 안내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던 안재현이 고개를 다시 돌렸다.

‘설마, 진짜 그년이 쓰는 모델인가? 그럼 침이라도 한 번 뱉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 3화. 고수의 비결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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