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혼자서 잘하는 직업 (2). >
2.
보통의 남자들은 샤워를 한 후에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나르시시즘에 빠지고는 한다. 수컷이라면 마땅히 가지게 되는 참으로 묘하고도, 기구하면서도, 애달픈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재현은 거울을 보는 게 싫었다. 딱히 잘생긴 외모도 아니었을뿐더러, 자기 눈에 자신이 가장 멋있어 보인다는 샤워 후의 모습도, 안경이 없으면 지척의 거울에 비친 자신 모습조차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눈이 나쁜 안재현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안재현은 처음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냥 미소가 아니라.
방긋!
싱그러운 미소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괴상한 미소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재현 본인은 지금 자신의 미소에 싱그러움을 최대한 쑤셔 넣었다. 그런 자신의 미소를 바라보던 안재현이 거울 속 본인을 향해 말했다.
“재수 없는 새끼.”
자아 비난.
그러나 그 비난을 날리는 안재현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참 재수 없는 인생이었지.’
거울을 바라보던 안재현은 자신의 마지막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로또를 사고, 버스 정류소에서 새로운 마음을 다짐하는 순간 트럭 한 대가 버스 정류소를 덮쳤고, 안재현을 아주 제대로 뭉개버렸다. 너무 깔끔하게 즉사한 덕분에 고통을 느낄 순간도 없었다. 차에 맞는 순간 아! 하는 순간, 눈을 다시 뜨는 순
간 2036년 1월 1일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재수 없을 줄 알았지만 교통사고로 죽을 줄이야. 진짜 얼마나 재수가 없었던 거지?’
자율주행 혹은 자율주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사고방지시스템의 탑재가 의무화된 시대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죽음마저 재수가 없다는 안재현의 푸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재수 없는 일생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래, 그렇게 재수 없이 살았으니까.’
“이번에는 어디 한 번 제대로 재수 있는 삶을 살아봐야지.”
과거로 돌아왔다.
페널티는 없었다. 온전한 기억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 몸뚱이도 멀쩡하다. 초능력이 생기지 않은 건 아쉽지만, 불만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일이 안재현에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부로 안재현은 세상의 주인
공 중 한 명이 됐다. 원래 영화나 소설을 보더라도 주연급이 과거로 돌아오지, 엑스트라를 과거로 돌리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당연한 말이지만, 안재현은 이런 자신의 상황에 조금의 의문이나 고민을 품지 않았다.
흔한 클리셰들, 과연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게 꿈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제까지 오랜 꿈을 꾼 것인지,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나비효과처럼 세상에 미칠 영향력을 고민하는 것 역시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런 돈도 안 되는 일에 그다지 좋
지도 않을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안재현에게 당장 중요한 건 한 가지였다.
‘워로드로 이번에는 대박을 친다.’
다른 건 없다.
안재현이 비루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세상천지에 워로드뿐이다. 현실의 안재현은 언제든 쓰다 질리거나 짜증이 나면 버릴 수 있는 월 2백만 원짜리 노예에 불과하지만, 워로드 속 히르칸은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며, 그의 명성을 시기해 야비하게 덤벼
드는 자들을 가차 없이 도살하던 영웅도살자다.
즉, 안재현에게 중요한 건 대박을 치기 위해 필요한 거다.
‘날짜는 1월 1일.’
일단 주제 파악이 중요하다.
현재 시각은 2036년 1월 1일 오후 1시 22분이다.
‘기왕 보내줄 거 1년 더 힘써주지.’
일단 아쉽게도 이미 워로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만약 안재현의 바람대로 1년 더 돌아갔다면, 안재현은 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 자체도 고마운 상황이다. 이 이상 무언가를 바라는 건, 사람 뱃속에 기생하는 촌충도 하지 않는 짓이다.
‘차이는 커.’
일단 10개월의 차이는 적지 않다. 적은 정도가 아니다.
워로드가 1주일 단위로 공개하는 공식랭킹은 1위부터 100위까지 표시된다. 이들만이 랭커라는 표현을 쓰는 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공개된 랭커들의 레벨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레벨 이상이면 랭커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랭커
들은 이 순위 안에 포함된 유저들을 의미한다.
이 랭커들 내부에서는 순위 다툼이 치열하다. 100위까지만 보여주기 때문에, 여기에 이름을 올리면 스폰서랑 계약할 때 계약금의 액수가 자체가 달라진다. 랭킹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계약금의 앞자리가 바뀐다, 그게 워로드 랭커 사이의 정론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랭커들 대부분이 워로드 서비스를 시작하고 1개월 이내에 게임을 시작한 스타터라는 점이었다.
‘5개월이었나? 슈퍼루키 묘죠, 걔가 랭커들 중에 가장 늦게 게임을 시작했었지?’
이 부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건, 묘죠라는 폴란드 국적의 유저였다.
그는 워로드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정확히 144일이 지난 시점부터 워로드를 시작했고, 게임 서비스가 4년 차에 돌입했던 2038년에 100위에 이름을 올렸다.
스타터들과의 144일이란 격차를 줄이기 위해,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마저도 묘죠의 경우에는 플레이타임은 기형적으로 많았다. 보통 랭커급 유저들은 일주일에 평균 100시간을 게임에 투자한다. 100의 법칙이다. 일주일에 100시간을 투자하는 게 기준이다. 110시간을 투자하면 남들의 110퍼센트의 결과를 내는 거고, 90시간을 투
자하면 남들의 90퍼센트에 불과한 결과를 낸다, 그게 워로드의 진리인 100의 법칙이었다.
묘죠의 경우에는 일주일 플레이타임이 평균 130시간이었다. 보통은 그렇게 하면 게임을 못한다. 워로드 플레이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며, 집중력이 떨어지면 죽는다. 죽으면 강제로 48시간 동안 게임을 이용할 수 없다. 8시간 꿀잠 잘 시간을 괜히 게임 더 하겠다
고 6시간 잤다가는 48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배나 긁는 일이 생긴다. 어쨌거나 묘죠는 그걸 해냈고, 그래서 그의 별명이 슈퍼루키였다.
그런데 10개월 차이라면?
‘지금까지 나온 타이틀은 몰라도, 앞으로 나올 타이틀은 전부 알고 있어. 그거 독점하면, 커버 가능해.’
그냥 하라면 못한다.
그러나 과거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채 돌아온 안재현이라면 가능하다.
워로드에는 타이틀 시스템이 있다. 남들이 하지 못한 무언가를 해내거나, 최초로 무언가를 해내거나,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해내면 타이틀을 주는데, 이 타이틀은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준다.
선두주자를 위한 시스템이다.
사실 게임이란 게 단순히 투자한 시간 대비 효율을 보면, 후발주자가 유리하다. 선발대가 자기 몸을 던져 다수의 시행착오 끝에 만든 결과물을 후발주자는 원하는 것만 골라 먹으면 된다. 당연히 선발대에게도 어느 정도 메리트를 줄 필요가 있었고, 그게 바로 타
이틀이었다.
이런 타이틀에 대한 정보는 게임 내에서 직접 몸을 부딪쳐 얻는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지식이 지금 안재현에게 넘친다.
여기에 사냥터에 대한 정보, 몬스터 공략방법 등 워로드 속의 성장에 도움이 될 무기는 매우 많다.
10개월 차를 줄이는 게 쉽진 않겠지만, 안재현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문제는 하나 더 있다.
‘더군다나 지금 중요한 건 돈이잖아?’
안재현은 2036년의 신년을 잘 기억한다. 그때 그는 4개월 동안 다니던 공장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일방적인 통보로 해고당한 후에 백수로 지내면서 얼마 모으지도 못한 돈을 까먹고 있다.
‘통장 잔고에 많아 봐야 2,3백만 정도 있겠지.’
워로드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백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대충 5백만 정도는 빌려야 하는데…….’
일단 워로드는 즐기기 위해서는 피치 사가 만든 가정용 가상현실장치인 V기어가 필요하며, V기어 모델 중 가장 저렴한 1레벨 모델은 한국 가격으로 정확히 2,099만 원이다.
비싸다.
하지만 2030년을 기점의 대한민국 소득 수준과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소형차 수준의 가격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상현실 시대를 누리는 데에 드는 비용치고 아주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이 거액을 일시불로 납부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처럼 할부로 구매할 수 있다. 할부는 최대 12개월. 대신 할부로 구매하기 위해서는 3개월 치 할부금을 선납해야 한다. 이 금액이 5백만 원 정도다.
여기에 워로드의 캐릭터 생성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워로드는 캐릭터를 생성할 경우 3개월 이용료가 무료이니, 월 이용요금은 무시하더라도, 이것저것 비용을 고려하면 200만 원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이 비용은 할부가 불가능하다.
최소 7백만 원이다.
그동안 모은 예금을 깬다고 해도, 5백만 이상은 구해야 한다.
‘내 신용이면 카드 결제는 어림도 없는 소리이고, 제1금융권에서의 대출도 불가능할 테고, 유일한 재산인 원룸 보증금을 빼서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V기어 뒤집어쓰고 게임을 하는 건, 장기 팔리기 딱 좋은 시나리오고.’
이 부분에 대한 답.
‘별수 없지. 사채로 빌리는 수밖에.’
사채.
정말 싫다.
하지만 당장 안재현이 돈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은 사채밖에 없었다. 제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격이지만, 그 정도 각오도 없이 5백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서너 달 동안 직장을 알아보고, 월급을 받는 건, 족쇄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냥 발목을 자르는 일이다.
‘돈 문제는 다음으로 넘어가면, 남은 건 앞으로의 계획인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다음 고민은 계획이다.
워로드의 메인 콘텐츠는 역시 몬스터 레이드다. 가장 돈이 되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몬스터 레이드는 시스템 자체가 유저의 협동을 기반으로 기획되어 있다.
일단 분명한 건, 히르칸은 레이드를 혼자서 해내는 일명 솔킬이 불가능하다. 히르칸은 아주 강한 유저였지만, 혼자 힘으로 레이드를 솔킬할 수 없다. 히르칸의 베이직 클래식은 검사였으니까. 검사는 돌격대장이다. 돌격대장은 돌격을 해서 길을 뚫는 게 역할이다.
또한 레이드 과정에서는 다양한 직업의 화학 작용이 필요하다. 몬스터가 특정 마법에 반응할 경우, 그 반응을 유도하고, 그 반응에 따른 변화 속에서 허점을 찾는 식이다. 그냥 힘 대 힘으로 잡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젠장.’
사실 이런 고민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안재현에게는 놀라운 재능과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다. 그걸 이용하면, 30대 길드의 백업멤버이자, 유망주라고 할 수 있는 에스콰이어 그룹에 들어가서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른 성장을 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두각을 나타내면, 백업 멤버가 아니라 레귤러 멤버가 되어 전면에서 활동을 할 테고, 자연스럽게 부와 명예가 뒤따라올 것이다. 그들 앞에서 착한 모습으로, 협조적인 자세만 보여주면 된다.
‘지랄.’
그러나 안재현은 그 합리적인 사고를 부정했다
합리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새끼들 밑에는 절대 못 들어가.’
자기들 밥그릇이 위험하단 이유로, 이미 충분히 배가 터질 만큼 먹은 돼지 새끼들이 안재현이란 인간을 아주 제대로 죽였다. 악과 깡만 남은 안재현이 오죽하면 더러워서 자신의 전부였던 게임을 접었을까? 하회탈 길드의 배신 이후 안재현이 게임상에서 받은 핍
박과 모욕과 고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들 앞에서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말 극단적인 생각도 해봤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는 있지도 않은 일이지만, 안재현에게는 명백히 존재했던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 밑에 들어가서 얼굴색 바꾸고 충실한 개가 된다?
그래, 개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재현은 개가 아니다. 인간이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혼자 레이드 솔킬이 가능한 직업…… 혼자 다 해먹을 수 있는 직업.’
때문에 안재현은 머리를 굴렸다.
과연 워로드의 다양한 직업 중에 혼자서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해먹을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그 고뇌로 가득 찬 안재현의 머릿속에.
‘아!’
전구 하나가 켜졌다.
“리치 리치.”
있다.
모두가 길드 단위로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 혼자 힘만으로 자신의 레벨에 어울리는 레이드에 성공한 자가 있다.
그의 별명은 리치 리치(Rich Lich).
“그놈이 있었지!”
직업은 사령술사, 네크로맨서였던 자다.
< 2화. 혼자서 잘하는 직업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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