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혼자서 잘하는 직업 (1). >
1.
2010년대는 스마트폰의 시대였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꿨다.
하지만 세상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욱더 발전했고, 덕분에 2030년대 인류는 스마트폰의 시대를 넘어 가상현실의 시대를 맞이했다. 특히 피치 사(
이제 일반 가정에서도 2만 달러란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면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상현실의 시대는 스마트폰의 시대보다 놀라웠다. 가상현실은 현실의 콘텐츠를 흡수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상현실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됐다.
개중에서도 가상현실게임은 가상현실의 시대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가장 인기가 좋았다.
애초부터 게임업계들은 가상현실의 시대를 꿈꾸며 많은 투자와 준비를 했고, 그들은 그 어느 콘텐츠 업체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전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많은 투자와 오랜 준비 덕분인지, 비슷한 수준의 게임들이 시장에 등장했고, 그 누구도 쉽사리 치고 나가지 못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시작.
모든 게임이 어떻게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파격적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거대 게임 업체가 무리한 파격 앞에서 도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섬뜩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건, 우습게도 게임 전문 개발사가 아니라,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한
토봇 소프트가 만든 게임, 워로드였다.
워로드.
게임 자체의 특징은 기존 게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중세풍의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주에서 전쟁을 치르는 게임들, 플레이어가 시작부터 끝까지 두 다리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게임들처럼 가상현실게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은 없었다.
대신 게임의 스케일과 안정성의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비결은 다름 아니라 M.I라 불리는 매니지먼트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기술이었다.
쉽게 말해서 게임 제작부터 시작해서 게임 관리 같은 부분을 인력이 아닌 인공지능에 전담시켜버리는 것이다. 초기 비용은 크지만, 대신에 게임 운영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뿐더러, 인력난으로 가상현실게임프로그래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와중에
가장 확실한 대안이었다. 인공지능은 연봉협상을 하지 않으니까.
또한 인공지능의 숫자는 얼마든지 복제, 양산이 가능했다. 1천 명의 전문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이 걸리지만, 1천 명 분의 인공지능을 확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개월 남짓했다.
엄청난 스케일의 서버와 그 서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무수히 많은 인공지능의 존재는 게임을 초월하는 게임을 만들어냈고, 워로드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2035년 3월 11일, 게임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100만 명이 캐릭터 생성을 했고, 서비스 시작 4년 차 무렵에는 캐릭터 등록자 수가 천만 명을 돌파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게임이 됐다. 심지어 그 숫자는 거듭해서, 기세를 줄이지 않은 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천만 명이란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상현실장치가 필요하다. 시장에서 70퍼센트를 점유한 피치 사의 V기어의 경우 가장 저렴한 1레벨 제품의 가격은 2만 달러다.
여기에 워로드 캐릭터 생성 비용은 2,599달러, 여기에 캐릭터를 생성하면 3달 동안은 게임 이용이 무료지만 이후에는 매달 799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2천만 원이 넘는 게임기를 구매한 뒤, 3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 게임 속 캐릭터를 만들고, 매달 8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 게임을 하는 셈이다.
그런 소득과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천만 명이 넘어간다?
이 사실에 대해 어느 경제학자는 말했다.
“워로드를 즐기는 유저들의 평균 소득을 만약 산출한다면, 아마 8만 달러 이상이 나올 것이다. 평균 소득이 8만 불에 천만 명이, 그것도 게임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모인 시장이 가지는 구매력은 한 나라에 버금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사실을 돈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기업들이 모를 리 없었다.
많은 기업들이 워로드에서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스폰서를 자처했다. 유명 랭커들, 특히 공식으로 랭킹이 공개되는 1위부터 100위까지, 그들의 몸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고, 그들의 몸뚱이가 가진 가치는 최소 10억 원이 넘어갔다.
더 나아가 워로드는 보는 재미가 있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유저가 온갖 마법과 스킬을 이용해 거대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과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박진감이 넘쳤고,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세계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긴장감이 가득했다.
어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현실게임 산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다름 아니라 프로스포츠 그리고 영화 산업일 것이다. 아무리 프로스포츠가 스릴이 넘쳐도 목숨 걸고 싸우진 않는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모두가 목숨 걸고 싸운다. 또한 아무리 영화가 멋져도, 영화는 영화일 뿐
이다. 영화는 시나리오 위에 세워지고, 게임은 플레이 속에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게임은 그냥 그 자체가 인생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인생을 이기는 영화는 없다.”
천만 명의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으니, 워로드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즐기는 시청자가 1억 명이 넘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임을 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계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만큼, 메이저리그 스타플레이어만큼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이들이 당연히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게임으로 유명해진다? 그게 가능한 건 천 명 중 한 명꼴이지. 지금 워로드로 1억 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3천 명이 채 되지 못하니까, 천만 명 중 3천 명으로 잡아보라고. 과연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어야 돈을 벌 수 있는 건지. 그뿐만이 아니야. 그 수준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돈을 써야 하지. 1억 원을 버는 유저들 중에서 1억 원 이상의 돈을 게임에 쓰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보다 더 많을걸?”
세간에서 말하는 장밋빛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가상현실게임은 PC로 하던 게임하고는 달라. 죽어라 레벨업을 한다고 광명이 있는 게 아니야. 재능이 없는 놈은 재능 있는 놈을 죽어도 못 따라가지. RPG장르이니까 레벨과 아이템으로 랭커가 된다? 장담컨대 그런 생각으로 워로드를 시작한다면, 아마 한
달도 가지 않아서 게임을 접을 거야. 그냥 순수하게 즐기라고. 워로드는 세계에서 가장 불공평한 게임이니까. 남하고 비교하면, 열등감에 게임을 할 수가 없어.”
일단 가상현실게임 자체는 그 어떤 게임보다 불공평한 게임이었다.
당장 키보드와 마우스로 하는 PC게임도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하물며 가상현실이란 공간에서, 초인적인 육체를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차이가 나지 않을 리 없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시간 방송이다.
하지만 워로드를 소재로 실시간 방송 권한, 채널을 배정 받을 수 있는 곳은 30곳밖에 없었다. 과거 개인방송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 선정성, 도박, 욕설 등 개인방송으로 인한 폐해가 급증했고, 그 폐해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개인방송을 정부허가제로 바
꾸었으며, 워로드의 경우에는 채널을 30개만을 배정받았다. 쉽게 말하면, 개인방송이 가능한 곳은 30곳이 전부였다.
30대 길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실시간 방송 채널을 확보한 길드들은 길드 이상의 존재로 대우를 받았다.
더 나아가 실시간 방송, 라이브 티켓 수입을 통해 막대한 자금력과 인지도를 확보한 그들은 그 자금력과 인지도를 이용해 후발주자들의 도전을 막았다. 처음에는 모두가 30대 길드에 도달하기를 꿈꿨지만, 30대 길드와 그렇지 못한 길드 사이의 격차는 높아지고,
벌어질 뿐, 좁하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리그.
워로드의 서비스가 4년 차에 돌입했을 때, 이 벽은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허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벽을 허물뻔했던 길드가 있었다.
하회탈 길드.
모두가 전투에 돌입하면 하회탈을 쓰는, 정말 우습지도 않은 컨셉을 가진 그들은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게임을 기존 랭커들에 비해 1년여 정도 늦게 시작했음에도, 놀라운 실력과 결과를 만들어내며, 30대 길드의 아성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 돌풍의 중심에는 히르칸이 있었다.
별명은 영웅도살자.
워로드를 대표하는 랭커들을 도살하듯 해치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상정범위 밖의 괴물이었다.
“히르칸? 걔는 진짜 괴물이야. 비유가 아니라, 그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존재야. 150킬로미터짜리 직구를 던지고, 그 직구를 치는 야구에 자기 혼자 250킬로미터짜리 직구를 던진다고. 심지어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게임을 하지. 가상현실게임이란 그런 거야. 아
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재능 있는 놈을 이길 수 없고, 재능이 있는 놈이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도, 그 재능을 뛰어넘는 재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지. 히르칸은 장담컨대 재능과 노력이란 부분에서는 정점이라고 할 수 있어. 그가 1년만 더 일찍 워
로드를 했다면, 아마 워로드의 최강자는 그였겠지.”
생태계 교란.
그 표현이 정확했다.
그리고 그게 히르칸이 배척당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회탈 길드가 왜 히르칸을 배신했냐고? 안 그랬으면 남은 30대 길드에게 배척을 당했을 테니까. 처음에는 히르칸 영입 전쟁이 일어났지만, 히르칸은 누구 밑에 들어가서 고개 숙일 녀석이 아니었거든. 범이 개의 젖을 먹고 자랄 순 있어도, 범은 범이고, 개는 개
잖아?”
30대 길드는 이미 구축된 생태계 속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이 모든 것을 히르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정범위 밖 괴물이 차지하는 걸 원치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히르칸이란 괴물을 처치하려고 하다가 역으로 당했다.
히르칸, 그가 가진 영웅도살자란 별명은 섬뜩했지만 히르칸 본인이 나서서 도살을 자행했던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서너 명의 랭커들이 그에게 덤볐을 뿐이고, 그는 맞서 싸웠을 뿐이다. 히르칸, 스스로 도살자가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다.
때문에 우레사냥꾼이 하회탈 길드를 흡수하고, 히르칸을 처리하겠다고 했을 때 30대 길드가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동시에 그게 배신의 이유였다.
“하회탈 길드도 히르칸이 고맙지만, 반대로 히르칸에 대한 자격지심이 없진 않았지. 무엇보다 히르칸을 배신하고 우레사냥꾼 길드의 일원이 되는 것과 히르칸을 품은 채 30대 길드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 선택은 뻔했지.”
아무리 히르칸이 대단해도, 30대 길드의 암묵적인 협력을 상대로 이길 순 없었다.
“결국 히르칸은 너무 대단했어. 그게 그가 워로드로부터 배신당한 이유야.”
그렇게 히르칸, 안재현은 워로드란 세계에서 배척당한 채, 게임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는군.”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됐다.
“과거 회귀라니…….”
안재현, 그가 2036년으로 돌아왔다.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 2화. 혼자서 잘하는 직업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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