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영웅도살자 (2). >
2.
“로또 자동으로 만 원어치.”
안재현이 말과 함께 지갑에서 5천 원짜리 지폐 2장을 꺼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그런 안재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안재현이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로또 자동으로 만 원.”
“아, 죄송합니다.”
그제야 안재현이 내민 돈을 받은 직원이 능숙한 솜씨로 로또 영수증을 뽑아 안재현에게 건네줬다. 그걸 건네주면서도 직원은 안재현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폈다.
“저기 혹시 어디서 뵌 적 없나요?”
그런 직원의 물음에 안재현은 로또 영수증을 지갑 속에 넣으며 휙, 대답 없이 편의점을 나갔다. 편의점 직원이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아,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편의점 직원이 곧바로 계산대 옆에 놓아둔 얄팍한 태블릿 페이퍼를 터치했다. 정지된 영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소리도 나왔다.
- 김동수 씨,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 알비노 드래곤의 오른쪽 날개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1차 목적은 완수했습니다.
- 현재 사망자는 어떻게 되나요?
- 다섯 명입니다.
- 이번 알비노 드래곤 사냥에 성공하실 것 같습니까?
- 우레사냥꾼 길드는 워로드 최고의 길드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회탈 팀은 우레사냥꾼 최고의 돌격대입니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 성공하느냐, 그걸 고민할 뿐입니다.
- 멋진 말씀이시군요.
- 이런 낭만이 없으면 이 고생을 누가 즐기겠습니까?
영상을 보던 편의점 직원이 훗훗,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레사냥꾼 길드가 최고라니까. 하회탈 길드랑 합친 이후에는 적수가 없네.”
미소 뒤에 따라오는 아쉬움.
“아깝다. 여기에 영웅도살자만 추가됐으면…… 그게 정말 아쉽다니까. 그보다 요즘 영웅도살자는 뭐하려나? 아예 게임 접었나?”
그 아쉬움 뒤에 이어진 의문에 편의점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뿐이었다.
편의점 직원은 혼잣말 없이 영상에만 집중했다.
그런 편의점 직원의 머릿속에 안재현의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3.
‘빌어먹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로또 복권도 집에서 사면 안 되나? 왜 꼭 사람 얼굴 보고 사야 하는 거지? 설마 다섯 살짜리 꼬마가 로또를 온라인에서 살까봐?’
안재현은 조금 전 자신의 얼굴을 알아본 편의점 직원의 모습을 떠올리며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 분노는 금방 잦아들었다. 안재현은 곧바로 편의점 직원이 태블릿 페이퍼를 통해 보던 영상의 장면을 떠올렸다.
‘알비노 드래곤. 몬스터 레벨은 439레벨.’
편의점 알바생이 보던 방송은 안재현도 봤던 방송이었다. 안 봤을 리가 없었다. 무려 3만 원이나 되는 라이브 티켓을 구매해서 실시간으로 레이드를 지켜봤다. 우레사냥꾼 길드가 네 번이나 실패하고, 다섯 번째 도전에서 간신히 레이드에 성공하는 과정을 봤다.
‘예전 우리 팀이었으면, 네 번 실패도 없이, 퍼스트 킬을 할 수 있었을 거야.’
보면서 아쉬웠다.
우레사냥꾼 길드가 실패하지 않은 것도 아쉬웠고, 그 자리에 자신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젠장, 그걸 잡았으면 이런 로또 같은 건…….’
알비노 드래곤의 가치였다.
녀석은 어마어마한 돈덩어리였다. 현재 기준으로 워로드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몬스터였고, 때문에 녀석의 레이드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라이브 티켓이 못해도 50만 장은 팔릴 정도였다. 만약 레이드에 성공한다면, 그 과정을 편집한 유료 동영상 조회수는 못해
도 천만을 찍을 수 있는 놈이었다.
‘라이브 티켓이 350만 장이 팔렸다지? 그것도 3만 원짜리가.’
실시간으로 레이드 과정을 볼 수 있는 라이브 티켓이 350만 장이 팔렸다.
또한 레이드 성공 이후 판매를 시작한 유료 동영상은 공개 1주일만에 300만 명이 넘어갔다. 수수료와 세금 등으로 손에 쥐는 건 전체 판매액의 40퍼센트 정도지만, 그걸 고려해도 엄청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430레벨 대 보스 몬스터를 잡았으니, 아이템 값은…….’
대형 몬스터, 그것도 보스 몬스터는 몸뚱이 자체가 돈이다.
특히 드래곤은 여러 타입 몬스터 중에서도 머리부터 말끝까지, 혓바닥부터 항문주름까지 돈이 되는 놈이었다.
가죽은 방어구로, 뼈는 무기로, 드래곤 하트는 최고의 마법 무기 재료로, 고기와 내장은 도핑 포션 재료로, 눈알은 어느 돈 많은 거부 게이머의 수집품으로…….
‘만약 제작 과정에서 400레벨 대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뜬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지.’
일단 못해도 350레벨 대의 아이템이 제작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가격이 백만 단위로 거래가 된다. 400레벨을 넘는 아이템이라면, 레어 등급이라고 해도 천만 단위다. 만약 제작 과정에서 운이 좋아 유니크 등급이 뜨면, 값비싼 스포츠카와 비슷한 가격에 거
래가 될 거다. 워로드에는 그 정도 아이템을 거리낌 없이 구매하는 진짜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넘쳐나니까.
이런저런 걸 고려한다면, 이번 알비노 드래곤 레이드로 우레사냥꾼 길드가 번 돈은 천억 안팎이 될 것이다.
그런 시대다.
게임 속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잡고, 대기업의 계열사도 쉽게 낼 수 없는 1년 순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
“젠장.”
안재현은 그런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거기서 만약 개처럼 기었다면, 자존심 따윈 가차 없이 팔아치우고 미녀 상사를 향해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그 이후 그 보잘것없는 자존심 때문에, 배신감에 치가 떨려서, 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미친개처럼 그들과 홀몸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그때 그냥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에 가서 새롭게 시작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도시
락 대신 라면을 먹으며 아낀 돈으로 로또나 사는 삶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후회막심.
“젠장.”
‘그 날을 평생 후회하게 되는 건 내 처지가 됐군.’
덕분에 그날, 배신당하던 그날,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모든 이들을 향해 지껄였던 한 마디는 잠들기 전마다 안재현의 이불을 고통스럽게 하는 악몽으로 남았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불을 걷어찼으니까.
안재현이 고개를 숙였다.
“젠장…….”
조금이었다.
그 배신만 당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같이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의 동료였던 자들은, 배신자들은 부와 명예를 쥐고 있다. 그들의 SNS에는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연예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온갖 명품을 자랑하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시궁창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건 안재현뿐이다.
‘5년이…….’
이제 20대 중반이던 안재현의 나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30대를 마주보고 있다. 부와 명예는 거리가 먼 채, 게임 잘하는 재주 하나로 간신히 밥벌이만 하고 있다.
우웅!
그때 안재현의 시계가 가볍게 떨렸다. 안재현이 손목시계의 액정을 확인한 후에 시계가 달린 왼손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태훈 형.”
- 아, 재현아.
“무슨 일입니까?”
- 너 요즘 뭐하냐? 아직도 워로드 해? 캐릭터 삭제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캐릭터는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안 합니다.”
- 레벨이 몇이냐?
“250레벨입니다.”
- 템은?
“형, 지금 내 처지 알면서 나 놀리려고 하는 겁니까, 아니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까?”
안재현이 이를 콱 물었다.
우레사냥꾼 길드 그리고 배신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혼자서 세상과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나름 해볼 만했다. 안재현은 강했다. 동레벨 때 유저들 중에서는 상대가 없었고,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유저들도 4대1까지는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만나는 족족 잡아 죽였다. 소득도 쏠쏠했다. 30대 길드답게 우레사냥꾼 길드원
들이 가진 아이템이 어마어마했으니까. 한 놈 잡으면 어지간한 대기업 신입사원 직장 월급은 나왔다.
문제는 지구력이었다. 안재현은 한 번 죽으면 48시간 동안 집에서 손가락만 빨아야 했지만, 상대는 수백 명이 넘는 최고 레벨 유저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결국 지구력 차이는 시간이 흐르자, 레벨과 아이템 격차로 변했다. 그런 와중에 어떤 레이드 팀이나, 길드도 안재현을 받아주지 않았고, 심지어 아이템 거래에서도 물을 먹었다. 채설연은 무시무시한 년이었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으로 안재현을 말려 죽였
다.
결국 안재현은 포기했다. 게임오버를 당하고, 주력무기가 랜덤 드롭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워로드를 접었다. 그때 이후로는 워로드를 직접 플레이한 적이 없었다. 그냥 워로드 관련 영상이나, 방송을 볼 뿐.
게임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다른 가상현실게임을 알아봤다. 하지만 워로드 만큼 돈이 되는 게임은 없었다. 그나마 수입이 됐던 건 AOS 장르의 게임인 더 레전드였다.
정태훈을 만난 건, 더 레전드 덕분이었다. 그는 브로커였다. AOS게임에서 실력은 보잘것없는데 계급을 올리고 싶어 하는 발컨들과 함께 게임을 해주면서, 그런 그들의 계급을 올려주는 속칭 대리 기사. 정태훈은 실력 좋은 플레이어와 고객 사이를 연결해주고 수
수료를 받는 브로커였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인연이 없었다. 안재현이 대리 기사를 하면서 워낙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까, 더 레전드 쪽에서 안재현의 계정에 1년짜리 정지를 먹였다. 정지를 먹는 순간 정태훈이 먼저 연락을 끊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안재현의 쓰린 속을 콕콕 찌르고 있으니, 안재현의 기분이 좋을 리 만무.
- 미안.
“본론만 말해요. 손들기도 힘드니까.”
- 너 혹시 중국 작업장에 취직 안 할래? 월 5백만, 보너스 별도. 전부 현금으로 지급.
그 말을 듣는 순간.
‘빌어먹을.’
안재현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
중국 작업장, 말 그대로 사람을 기계처럼 돌리는 공장이다. 인권은 없다. 그냥 기계부품처럼, 모든 개성과 인격이 무시당한 채, 그저 돈을 위해 굴러가는 곳이다.
막장 중의 막장이다.
진짜 아르바이트조차 변변찮은 애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안재현 같이 한가닥했던 이들이 그런 곳에 가는 건, 은퇴하고 그냥 장기를 팔러 가는 격이었다. 그나마 남은 명예마저 시궁창에 버리는 일이니까.
안재현은 자신이 그런 처지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런 사실에 혹하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형, 나 영웅도살자입니다. 우레사냥꾼 새끼들을 칠백하고도 서른세 번을 죽인 놈이에요. 그런데 지금 나보고 중국 작업장 애들 밑에서 개처럼 일하라고요?”
이렇게 팔 자존심이었다면, 예전에 팔았어야 했다.
- 야, 너무 그러지 말고. 조건 좋아. 이 정도 조건이면 나름 파격이다. 그리고 솔직히 30대 길드 전부한테 찍힌 네가 워로드에서 그나마 돈벌이 가능한 곳이 얼마나 되겠냐? 너 레벨링도 멈췄잖아? 예전에는 너도 최상위 레벨이었지만, 지금 250레벨이면, 상위 1퍼
센트에도 간신히 턱걸이야. 상위 1퍼센트라는 건, 등록된 1000만 명 중에 너보다 레벨 높은 애들이10만 명이 넘어간다는 의미야.
“진짜…….”
- 눈 딱 감고 1년만 일해. 네 실력이면 더럽긴 해도 1년이면 1억은 모을 수 있어. 너도 이제 조만간 서른이다. 서른 되면 인생이 달라져. 그 전에 1억 정도는 있어야 뭘 해도 하지
“됐습니다. 됐어요! 끊어요!”
- 생각 있으면 연락해! 네 티오는 언제든 있을 테니까.
안재현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시계 다이얼을 가볍게 돌렸다. 통화가 종료됐다. 성질 같아서는 폰을 던지고 싶었지만, 시계타입의 폰은 던질 수도 없었다. 혹여 던질 수 있다고 해도 아까워서 던지지 못했을 것이다.
‘빌어먹을.’
여러모로 최악. 과연 이보다 더 시궁창이 있을까? 안재현은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꿈이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기본급 오백.’
이대로 그냥 시궁창에서 무릎 꿇고 스러지기에는 모든 게 아쉬웠다.
무엇보다 자신은 있었다.
‘당장 워로드는 힘들어도, 워로드만 게임인 건 아니니까. 일단 1억 원 정도 목돈을 만든 후에, 괜찮은 게임 나오면 서비스 개시 때부터 달려서 랭킹 잡고, 길드 만들어서 2,3년 정도 고생하면…….’
안재현에게는 재능이 있다. 현실에서는 안경 없이는 코앞의 사람 얼굴도 구분 못하고, 음치, 박치에 운동 신경 제로에 학벌조차 없는 인간이지만, 게임 속에서 그는 어떤 유저든 맞짱을 붙으면 지지 않는 최강의 플레이어다.
안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해보자.’
말과 함께 안재현이 버스 정류소에 섰다. 따뜻한 버스 정류소에 들어오자 따스한 온기가 안재현의 온몸을 휘감았다.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며, 굳었던 정신이 확 들었다.
기분도 업됐다.
‘그래, 이보다 더 최악도 없잖아? 자존심은 개나 주자고. 그때 미리 개한테 줬으면 이런 고생도 안 했을 텐데, 이제와서 그 빌어먹을 자존심 지킨다고 누가 알아주겠어?’
안재현이 손목을 들었다.
“정태훈.”
조금 전 거절했던 제안을 다시 수락하는 게 빠지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태훈 연결합니다.]
안재현이 곧바로 손목 시계를 귓가 근처러 가져다댔다. 착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착신음은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이었다. 반백 년 전 노래라서 그런지 그 노래가 꽤 신선하게 들렸다.
그 순간.
쾅!
거대한 트럭이 안재현이 있는 버스 정류소를 덮쳤다.
- 그렇지, 재현아! 우리 한 번 해보자! 너도 이 정도 조건이면 혹할 만하잖아?재현아! 응? 재현아? 야, 왜 말을 안 해?
안재현.
향년 29세였다.
< 1화. 영웅도살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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