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개미굴을 보수하던 작업이 모두 멈추었다.
곧바로 부족 전체의 큰 잔치가 열렸다.
한 명 한 명, 심지어 개미들까지 모두 빠짐없이 나의 귀환을 반겨 주었다.
그렇게 모두와 일일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도대체 넉 달 동안 어디에 있다고 온 거야? 네가 갑자기 안 보여서 개미핥기한테 잡아먹힌 줄 알고, 놈의 배 속을 모두 갈라서 확인까지 했잖아."
"넉 달요? 제가 사라진 지 넉 달이나 됐어요?"
모두가 눈을 껌뻑껌뻑 뜨며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모습마저 정겹고 따뜻하다.
"괜찮아? 머리를 다친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좀 혼란스럽긴 한데. 하하. 됐어요, 이제. 다들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그냥 좋네요."
"아니야, 너 안색이 안 좋아 보여. 무슨 일 있어? 있으면 말을 해. 우리는 한 가족이야."
가족.
그렇다.
가족이다.
나도.
바위를 부숴라 형님도.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나의 가족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세상에, 귀신들의 신이 있다는 것을.
내가 사는 세상에, 모두가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이라서.
말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하하! 봐요. 이젠 힘이 넘친다니까요. 하하하!"
"그래, 정말 그래 보인다. 하하. 마셔! 다들 잔 들어! 돌아온 우리 비실대다 쓰러져를 위해 건배!"
"건배!"
그날 부족의 모든 사람과 늦은 밤까지 술잔을 부딪쳐야 했다.
* * *
넉 달 전.
그러니까 절대 천적 개미핥기가 부족을 침략했을 때.
내가 무림으로 갑작스레 돌아간 후.
남은 이곳 사람들은 내가 전수해 준 삼재진을 바탕으로 개미핥기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이곳 인류 최초로 절대 천적인 개미핥기를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
그 후에는 돌 숲 개미 부족 등 인근 부족들과 공동 협력체까지 만들었다.
봉화(烽火)를 설치해 부족 간 위험한 상황을 전하여 서로 돕는 체계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어제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이곳에 있었던 것은, 당연히 넉 달 전 개미핥기 때문이 아니라, 청솔모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곧바로 돌 숲 개미 부족 사람들이 최신형 무기들을 가지고 와서 함께 싸웠다고.
청솔모는 어젯밤 내 귀환 잔치의 안주가 되었다.
평화롭다.
행복하고.
이곳에서의 삶은 언제나 그렇다.
얇은 발목과 개미허리가 다시 돌 숲 부족으로 돌아간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기억하는가?
내가 무공을 전수하며 우려했던 일들.
인간의 천적이 인간이 되는 것.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사람이 사람을 약탈하는 일.
기우였다.
이곳은.
그런 거 없다.
원래의 삶 그대로.
모두가 행복하다.
"그만 갈까?"
천마가 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머무르면 안 될까요?"
내 간절함에, 천마는 그냥 미소를 지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어."
"하지만……."
"잘 봐."
천마가 다시 손을 뻗어 허공에 일직선을 내리그었다.
그리고…….
또.
차원 이동의 문이 열렸다.
* * *
메마른 땅.
그 위에 여러 개의 움막이 있고.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아이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뛰놀고 있고.
어른들은 사냥을 나간 모양이다.
마을 아녀자들은 아이들을 챙기랴,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눈물이, 젠장.
또 쏟아졌다.
난 터벅터벅.
부족으로 들어갔다.
위대한 칵뉴의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야야가 보인다.
매일 내 그거를 보며 작다고, 귀엽다고, 한 번만 만지게 해 달라고 희롱 아닌 희롱을 하던 그녀.
"야야."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러더니…….
그러더니……!
"누구……?"
나를 못 알아본다.
왜지?
뭐가 잘못된 거지?
야야가 나를 모를 수가 없는데.
"야야. 왜 그래? 나야, 태한. 나태한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야야.
그러더니,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나태한이라고?"
"어! 이제 좀 알아보겠어? 나야, 나! 나태한."
하지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금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왜 그래? 왜 나를 못 알아보고 그래? 칵뉴의 하얀 사신! 나라고!"
나를 못 알아보는 야야가 원망스럽고,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서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상하네. 알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잘 봐. 나라니까. 왜 못 알아보고 그래?"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게 뭔데?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게."
"그거를 보여 주면 나태한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있는……."
"야!"
이 미친 것이!
아직도 그거 타령이야!
"꺄아아아아! 하하하하! 호호호호! 부족 사람들! 누가 왔는지 봐 봐! 그게 새끼손가락만 한 녀석이 돌아왔어! 호호호호!"
"어머! 태한아!"
"태한이가 왔어?"
"와아아아! 칵뉴의 하얀 사신이 돌아왔다!"
마을 부녀자들, 꼬맹이들 모두가… 족장 릴놀푼탄과 마을의 원로들까지 모두!
대번에 뛰쳐나와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반겨 주었다.
* * *
턱.
사냥에 성공했나 보다.
자신의 몸보다 스무 배는 더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땅에 툭 하고 던져 버린다.
지상 최강의 전사들.
그들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다.
부족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
그들 300명과 마주했고.
대전사 아쿵타가.
대전사 자탄봉이.
위대한 칵뉴족의 전사들 모두가!
눈물을 글썽인다.
저, 저 인간만 빼고.
탈탈루는 이 상황에도 웃는다.
"지상 최강의 전사들! 잘 있었어!"
"칵뉴의 하얀 사신! 돌아왔구나!"
"그래! 내가 돌아왔다, 칵뉴의 대전사들아!"
"보고 싶었……. 태한아!"
우리는 서로를 향해 무지막지한 속도로, 괴물 같은 힘으로 달려가.
콰아아아앙!
바위산을 부술 것처럼 부딪혀 서로를 끌어안고, 끌어안고… 울었다.
* * *
1년 하고 8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신성제국과 흑마제국은 무너졌고.
현 세계는 알렉산더가 왕이 되었고, 연합 왕국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칵뉴족은…….
와아아아!
이곳 세상에서 신족(神族)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단다.
그러니까 그날.
신성제국과 흑마제국이 팔십만 대군을 이끌고 칵뉴족을 공격하려고 할 때.
저 멀리 말을 타고 오던 20만 대군이 바로 알렉산더가 이끄는 연합국의 군대였다고.
내 예상이, 내 바람이 맞았던 것이다.
그들과 칵뉴족은 신성제국과 흑마제국의 연합 군대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대승을 이끌었고.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위대한 칵뉴족, 지상 최강의 전사들이 함께한다는 소식까지.
이는 곧바로 신성제국과 흑마제국의 탄압과 약탈에 수백 년 동안 고통받던 작은 국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고.
알렉산더가 이끌고, 칵뉴의 대전사들이 선봉에 서는 절대 무적의 군대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신성제국과 흑마제국은 무너졌고.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변한 게 없다.
전혀.
옷도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아래만 살짝 가리고.
온종일 맨발로 뜨거운 사막을 뛰어다니고.
아! 바뀐 게 있긴 있다.
"칵… 칵뉴의 하얀 사… 사신님. 저는… 딸꾹, 기스국에서 유학을 온 딸꾹, 알퐁네라고 합니다. 영, 영광입니다. 전설로만 듣던 칵뉴의 하얀 사신 나태한 님을 뵙게 되어서요."
칵뉴 땅으로 유학을 온 여러 국가의 젊은 전사들이 있다는 게 바로 그거다.
열 명 정도 있다.
매달 이곳을 찾는 젊은이가 수백 명이나 되는데.
이틀이 되기도 전에 열에 아홉은 들것에 실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다시 열에 한 명은 수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 도망간다고.
몇 달 동안 2,000명이 넘는 젊은 전사들이 찾아왔는데, 그나마 열 명이 남은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당연히 어른 칵뉴족 전사들을 따라다니지는 못하고.
동네 꼬마들과 놀며 수련하는 데에도, 오전을 버티지 못하고 죄다 게거품을 물고 눈깔이 뒤집혀 쓰러진다고 한다.
그래도 버티고 있는 게 대견해 보여 칭찬을 몇 마디 해 주었다.
그러자 덜덜 떨며, 또 잔뜩 긴장해 딸꾹질까지 하던 녀석들이 감동과 설움에 폭풍 오열을 터뜨렸다.
난 그런 녀석들의 등을 토닥여 주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며칠이 지났다.
행복하다.
칵뉴족 전사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서 바위산도 몇 개 부수고.
괴수들도 몇 마리 잡고.
밤이 되면 부족 전체가 큰 잔치를 벌이고.
그리고 다음 날.
야야가 시집을 갔다.
부족에서 그게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한…….
정말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괴물 전사와 혼인식을 치렀다.
이곳은, 행복하다.
평화롭고.
모두가 즐겁다.
"태한, 뭔 일 있어?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너만 슬픈 얼굴이야."
대전사 아쿵타가 내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냐, 나도 웃고 있잖아."
나를 가만히 보는 아쿵타.
"우리 형제지? 가족이고. 비밀 같은 건 없어야 해. 그게 진정한 전우애라고."
"풉. 없어, 그런 거. 정말 행복하다니까."
난.
나는.
형제라서.
가족이라서.
전우라서.
그래서.
아픔을 숨겨야 했다.
"떠날까?"
"네."
천마가 차원 이동의 문을 열었고.
나는 그의 동작을 모두 눈에 담았다.
* * *
구넬샤찌국, 미인국에 왔다.
"성좌님!"
"성좌님!"
아!
이건…….
눈이 멀 것 같다.
미녀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렇다.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절대 미녀들이.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감격하고.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아버지셔."
"아빠!"
"아빠!"
"와아아아아! 아빠!"
내 아이들.
1,000명이 넘는 내 아이들.
더 놀라운 건.
"이바노바 여왕, 아들들이… 아들들이……."
"네, 성좌님. 628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났어요."
"아빠!"
"아빠!"
딸이 1,261명, 아들이 628명이 태어났단다.
하하!
하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나의 아들들은 나중에 모두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
그들이 모두 이곳 구넬샤찌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구넬샤찌국 하나의 축복이 아닌.
전 세계의 축복이 되었다고 한다.
오로지 나의 헌신(?) 덕분에.
하하하!
미인국 세계는 위대한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고.
구넬샤찌국 최강의 전사, 실버 로마노프.
미인국 세계 최고의 전사, 스톰 나이트 아나스타샤.
그리고 이 세계의 살아 있는 전설 나타샤 표도르바까지.
이제 세 살이 된 딸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고작 세 살이지만, 그들은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전수한 혼원귀일신공(混元歸一神功)의 기본을 다지고 있었다.
난 어미를 닮아 별처럼 빛나고 꽃처럼 향기로운 그 아이들을 꼭 안아 주었다.
"성좌님,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나타샤 표도르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기뻐서 그래요. 감격해서 그렇고. 내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하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여인은 성좌님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아니에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정말 행복해서 그래요."
그녀들에게.
나의 아내들에게.
내 아들과 딸을 키워야 하는 그녀들에게.
나는.
내 비밀을.
내 아픔을.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갈까?"
"네."
보인다.
천마가 어떻게 선을 긋는지.
* * *
서도토리촌에 왔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 말고 인간이.
인간 말고도 엘프가.
또 여러 종족이.
함께하고 있다.
아직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 수많은 드워프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태, 태한이? 나태한?"
"건힐드! 잘 지냈어요, 건힐드?"
"태한아!"
"이봐! 여기 와 봐! 태한이가 돌아왔다고! 전설의 인간 나태한이 귀환했다!"
"태한이가 왔다!"
난쟁이들 모두가.
나에게 달려와 쏙 하고 품에 안겼다.
눈물을 글썽이고.
환하게 웃고.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기도 하며.
모두가 그렇게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들과 엘프 그리고 다른 종족들까지.
마왕과의 싸움으로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나를, 경외의 눈으로 보며 또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 * *
건힐드를 포함한 몇몇 서도토리촌 드워프들과 함께 도토리국의 수도로 왔다.
수도의 대광장 중심에는 나와 함께 싸웠던 전설의 드워프 전사들.
건힐드, 발더 시니어, 바드, 코리, 하콘, 발더 주니어, 레이프, 골디 그리고 나까지.
엄청난 크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수도 역시 마찬가지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도 인간과 엘프 그리고 여러 종족이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는 모습들이다.
조화롭다는 뜻의 단어가 계속 내 머리를 맴돌며 뿌듯한 마음이었다.
난 엄청난 인파의 환영 속, 정말 성대하다 못해 심장이 터질 정도의 무지막지한 환영 행사를 받으며 궁궐로 입궐할 수 있었다.
"드래곤을… 더는 찾지 못한다고요?"
"그래, 마왕대전 이후 드래곤들 모두 자취를 감추었어."
"아! 골디 녀석을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네요."
"골드 드래곤 골디는 1,000년 동안 잠을 자지 못했으니, 아마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거야."
"뭐, 어쩔 수 없죠."
"그런데 태한."
"네, 아르네 폐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 무슨 일 있나?"
"아니에요, 너무 좋아서 그래요."
높은 성벽 위에 올라 도토리국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또, 다시 봐도 신기한 곳이기도 하다.
얼마나 지났다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기한 물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참, 드워프들의 기술만큼은 여전히 내 혀를 두르게… 어!
저 녀석.
저 멀리.
아주 멀리.
금발의 미소년 인간이.
무려 3km나 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그 금발의 미소년 녀석이.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골디 녀석.
이번엔 인간 유희를 즐기고 있나 보다.
나도 녀석을 향해 방긋, 미소와 함께 윙크를 날려 주었다.
"갈까?"
"네."
이젠.
느껴진다.
보이는 걸 넘어.
천마의 움직임이.
차원 이동의 문이.
그리고 저 건너편 세상이.
느껴진다.
* * *
자연과 인간.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랐다.
인간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이 인간에게 역습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헛된 꿈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간은 언제나 탐욕스럽고.
인간은 언제나 파괴적이다.
그래서…….
자연이들을 걱정하였다.
아마 인간들은 모두.
다시 멸종하였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돌아왔구나, 자연아."
"응, 돌아왔어, 자연아.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나무 자연이나 나에게 말해 주었다.
참새 자연이가.
바람 자연이가.
오리 자연이가.
기린 자연이가.
자연이.
내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보여 주었다.
우주선을 땅에 묻고.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칵뉴족보다, 소인국보다 더 원시적으로 돌아간 인간의 모습을.
아니, 원시적인 게 아니다.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들이 내 눈앞에 보였다.
심지어 이곳에 정착한 인간들.
"자연이들이 말하던 자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자연님. 저도 자연입니다."
우주에서 돌아온 인간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갈까?"
"네, 그런데……."
"……?"
"이번엔 제가 해 보겠습니다."
난, 천마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오른손을 뻗어 허공에 일직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