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퍽!
쿠당탕탕!
"으악!"
"대협, 살려 주십시오! 으악!"
퍽퍽!
퍼퍼퍽!
저육개와 묘안개가 정신 나간 녀석들의 정신을 되돌려 놓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 중이다.
이미 객잔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고.
"멈추시오!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멈추십시오!"
아마 순찰을 돌던 무림맹 무인들인 듯했다.
열댓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고.
그제야 저육개와 묘안개의 세심한 노력은 멈추었다.
"무슨… 무슨 일입니까?"
무림맹 무사는 저육개의 엄청난 덩치에 흠칫했지만, 용기를 내었다.
쓰러진 태연방 녀석들과 저육개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물은 것이다.
저육개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 묻은 손을 툭툭 턴 후 답했다.
"저 녀석들이 내 형을 모욕해 손 좀 봐 줬습니다."
"형… 형이요?"
"그렇소."
"어험. 그게… 여긴 소림사의 영역이고, 그러니까 제 말은……. 아! 대협, 그런데 대협께서는 뉘신지……?"
"보시다시피."
"개방의 걸개님이십니까?"
"저육개라 하오. 이분은 제 사저인 묘안개 여협이라 하고요."
"저, 저, 저육… 묘안개 여협. 허걱! 죄, 죄송합니다."
"무림맹 무사님께서 제게 죄송할 건 없고."
무림맹 무사가 놀란 얼굴을 한 상태에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게 보였다.
"혹, 저놈들이 모욕했다는 저육개 대협의 형님분이……?"
"천하에 내 형은 한 사람뿐이오. 멸마협 나태한."
"아! 아… 아… 네. 네."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다.
무림맹 무인은 놀란 와중에도 눈알을 마구 굴렸다.
그러더니…….
"대협!"
"아이쿠, 깜짝 놀라라. 왜 그러시오?"
"그러니까… 저 새끼들이 멸마협 나태한 대협을 모욕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그래서 좀 손을 봐 줬던 것이오.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당히 벌을 받겠소."
"천부당!"
"어이쿠, 깜짝이야. 자꾸 소리는 왜 지르시오?"
"만부당!"
"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천하의 멸마협을 모욕한 놈들을 잠깐 손본 걸로 어찌 끝내시렵니까?"
"그럼……?"
"제가! 형산파의 3대 제자이자 현재는 무림맹의 무사인 저 오로검 곡리성이, 반드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겠습니다."
"대충 다 했긴 했는데……."
"맡겨 주십시오, 대협."
"뭐, 그렇다면야……."
"얘들아!"
"넵!"
"저 새끼들 끌고 가."
"넵!"
무림맹 무인들이 쓰러진 태연방 놈들을 끌고 나갔고.
오로검인가 뭔가 하는 녀석은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지으며…….
"헤헤. 저육개 대협, 묘안개 여협.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멸마협을 만나시면, 저희 형산파 얘기도 좀……. 헤헤. 헤헤. 그렇습니다. 헤헤."
"알겠소. 그리고……."
"넵! 하명하십시오, 저육개 대협!"
"저놈들 음식값 지불하지 않았소. 식탁도 망가졌고, 의자도… 음, 의자는 두 개가 부서졌군요. 객잔 주인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데."
"앗!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오로검 곡리성이라는 자가 헐레벌떡 바깥으로 뛰어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손에 두둑한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저놈들 주머니를 탈탈 털……. 앗! 죄송합니다. 저놈들이 지불하지 않은 음식값과 부서진 물품에 대한 보상금입니다."
"고맙소, 그럼 나머지 교육은 형산파의 오로검께 부탁하겠소."
저육개 녀석이 별호까지 친히 불러 주자, 곡리성이라는 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개무량해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주인장."
저육개가 큰 목소리로 부르자, 소란이 일자마자 몸을 숨겼던 객잔 주인이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나왔다.
"부서진 식탁과 의자 그리고 음식값이오."
전낭을 통째로 건네는 저육개.
객잔 주인은 두려워 덜덜 떨면서도 전낭을 조심스레 받았다.
"허걱! 이건 금액이 너무 많습니다, 대협. 은자 댓 냥이면 충분한데, 이건 그 열 배가 넘습니다."
"나머진 좋은 일에 쓰시오. 거지들이 구걸하면, 따신 밥이라도 한 그릇 주고 말이오."
"아! 네. 꼭! 꼭 그리하겠습니다, 대협."
"어험."
일이 끝났으면 가야 하는데, 안 간다.
저육개는 뒷짐을 지고 있고.
그 옆의 묘안개도 객잔을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주인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 필요하신 거라도."
"먼 길을 왔더니, 배가 고프군요. 남는 찬밥 한 덩이 있으면 구걸을 할까 하는데……. 어험."
"모시겠습니다, 대협. 안쪽으로 앉으시지요."
"우린 구걸을 하는 거지입니다, 주인장."
"저는 거지들에게 베풀 줄 아는 주인장입니다, 대협."
"후훗.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하하하."
누가 무치개 장로 제자 아니랄까 봐.
구걸하는 방법도 참 신선하다.
- 야!
내 전음에 저육개와 묘안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이리 와. 여기에 앉아서 같이 먹자."
거지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걸음으로 객잔 안쪽으로 가던 두 녀석이, 곧바로 얼음이 됐다.
동공에는 진즉 지진이 났고.
그러더니, 이제는 울먹이기까지 한다.
"혀어엉?"
"오빠? 오빠!"
"혀어어엉!"
"오빠아아아!"
두 거지 녀석들이 눈물을 뿌리며 내게 달려와 안겼다.
* * *
저육개와 묘안개가 그랬듯, 지금 소림은 천하의 고수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있다.
맹주가 주요 무문과 세가에 무림 배첩을 돌렸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천하를 위해, 무림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숭산을 오르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꿈을 안고 숭산을 올랐고, 그래서 앞날이 어찌 될지 몰라도 당장은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단 한 사람.
모두가 들뜬 얼굴들을 하고 있건만, 단 한 사람만큼은 수일째 홀로 깊은 괴로움에 빠져 있다.
바로 상취개 장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양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술까지 거의 보름 가까이 입에 대지도 않고 있다.
이건 정말 놀랄 노 자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보다, 이 양반이 술 안 마시는 게 나는 더 신기하다.
소림사에서야 당연히 금주라지만, 상취개 정도 되는 고수라면 슬쩍 숭산 아래에 가서 술 한잔 먹고 오든지, 몰래 숨겨 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 않겠나.
하지만 그는 실제 보름이나 입에 술을 대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홀로, 인파로 북적대는 소림사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청승을 떨고 있다.
"뭐 하세요?"
내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왔냐?"
"네."
"그래."
"매일 여기서 혼자 뭐 하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귀혼석이요?"
"그래, 분명 비걸개 훈련생들에게 줄 선물은 내가 다 준비한 것들인데, 그것만 생각이 안 나. 어쩌냐, 태한아?"
"장로님이 아니라도, 다들 열심히 정보를 찾고 있으니 곧 단서를 찾을 수 있겠죠.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어찌 심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내가 그걸 생각해 내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또 많은 이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놈의 술이! 아! 내가 술을 너무 마셔서 기억력이……. 네게도 미안하고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미안하다, 태한아."
"참나, 거지가 술을 안 마시면 그게 거지예요? 하하! 살다 살다 별소리를 다 듣겠네. 자요."
난 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
하지만 상취개는 정말 단단히 각오라도 한 모양이다.
술을 슬쩍 보는가 싶더니, 이내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려 버린다.
"됐어요. 그냥 한잔하세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머리에 없는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애만 쓰는 그였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분명 그때, 방주에게 허락받아 제왕검에 타구봉법도 준비하고, 석흑침과 같은 암기에 영약이며 이것저것 다 준비했었어. 그런데도 부족했었다."
"우리 비걸개 훈련생들에게 줄 선물이요?"
"그래, 창고를 뒤지고 뒤지고 또 뒤져도……. 에휴, 그때는 내가 거지라는 게 원망스럽더라. 너희가 얼마나 고생해서 비걸개가 됐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기에, 조금이라도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단다."
"……."
"그런데 없었어. 마땅한 게 없어서, 우리 개방의 비밀창고 열 군데를 더 오가며 찾고 또 찾았는데. 에휴."
"그래도 다 주시긴 했잖아요."
"행운석? 너를 비롯한 말석의 비걸개들이 얻은 선물은…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전 행운석이 마음에 들어요. 정말이에요. 달걀을 깨면 노른자가 두 개가 나오잖아요."
"풉. 녀석, 고맙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줘서."
"진짠데."
"아무튼 그때 정말 방주에게 알랑방귀도 뀌고, 일 장로랑 이 장로 멱살까지 잡아 가며 우리 개방의 비밀 창고 몇 군데를 더 돌아서 그나마 비걸개 훈련생들이 좋아할 선물을 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얻은 게 네 행운석이었고. 그런데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아. 귀혼석을 어떻게 얻었는지. 하아! 나란 놈은 정말 몹쓸 거진가 보다."
"2년 전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해요? 됐어요. 그렇게 혼자 괴로워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잖아요. 지금 거지들이며 무림맹 고수들이며 죄다 발에 부리나케 뛰어다니고 있으니 곧 소식이 들릴 거예요. 그러니, 자! 이거 한 잔 마시고. 오늘은 다 잊고 푹 주무세요."
"아니다. 나 이참에 술 끊으련다. 불사괴 일만 해결되면, 장로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서 구걸이나 하며 남은 생을 살련다."
"정말 안 마셔요?"
대꾸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병의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캬! 맛있다. 최고네. 하하."
역시나.
거들떠도 안 본다.
하지만…….
"어험, 죽엽청이냐?"
개코다, 이 양반.
"네."
"그냥 죽엽청이 아닌데?"
"최상급으로 달라고 했어요. 저, 돈 많거든요."
"그래, 많이 마셔라. 소림사 스님들한테 걸리지 말고."
"정말 안 마셔요?"
대꾸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벌컥벌컥.
"캬아! 좋다. 이제 한 모금 남았네. 나머지도 그냥……."
"잠깐!"
"왜요?"
"너무 괴롭구나."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고."
"네."
난 상취개를 무시하고 다시 남은 술을 입에 들이부으려고 하는데.
"잠깐!"
"왜요?"
"넌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야박할 수 있냐?"
"뭘요?"
"세 번은 권하는 게 예의 아니야?"
"술 끊겠다면서요?"
"괴롭구나. 인생이 참 괴로워."
그러더니 슬쩍.
이 양반, 금나수까지 써 가며 내 술병을 빼앗는다.
"딱 한 잔만. 그래도 네 성의를 생각해서 딱 한 잔만 하겠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상취개 주량을 아는데, 한 병만 가지고 왔겠는가.
커다란 봇짐에 술이며 오리 구이에 돼지고기까지.
아! 이거 소림사에 걸리면 내 명성에 큰 타격이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이 양반 힘내라고 가지고 온 거다.
그렇게 낮에 시작한 술자리는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상취개가 원래의 상취개로 완전히 돌아왔다.
"한 잔만 더 하자. 정말 마지막."
"에이, 취했어요. 그만하세요."
"진짜 마지막. 괴로워서 그래, 내 인생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더 마시면 소림사 스님들한테 들킨다고요."
"걱정하지 마. 어디 이런 짓 한두 번 한 줄 아냐? 안주는 더 없어?"
"오리고기 두 마리에, 돼지고기 다섯 근을 드셨어요. 무슨 배 속에 거지가 들어 있나."
"내 자체가 거진데, 뭔 말이 그래?"
"하긴, 그렇긴 하죠. 자, 여기요. 정말 마지막 한 병이에요."
"알았다니까. 어서 주기나 해."
상취개는 내가 건넨 술을 단번에 비울 듯, 벌컥벌컥 그냥 입으로 쏟아 넣었다.
됐다.
그래도 참 고마운 양반이다.
이렇게라도 상취개 장로가 잠시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결국 상취개 장로는 내가 건넨 술병을 단번에 비워 버렸고.
나는 다시 새 술병을 꺼내 그에게 건네……. 어라?
갑자기 이 양반 왜 이래?
멍한 얼굴로, 술을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그냥 딱 그 상태로 얼음이 됐다.
그러더니…….
"태한아……."
"왜요? 한 병 더 줄 테니까, 연기하지 말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
"생각났다. 귀혼석을 어떻게 얻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