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65화 (164/174)

165화

불존과 무존 그리고 소림사 방장을 비롯해 지금 이곳 소림에 와 있는 수천 명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소신녀 담초희 한 명과 단문령, 연주언 두 명이 대치하고 있다.

이미 칼까지 뽑아 든 상태로, 여차하면 곧장 피를 볼 기세다.

셋만 그렇다면 그나마 좀 낫겠다.

적안마녀의 눈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고.

짙은 마기를 소림사 한가운데서 아무렇지도 않게 뿜어 대고 있다.

소신녀 뒤에 적안마녀가 있다면, 당연히 연주언 뒤에는 흑풍절명사 마노가 무지막지한 기운을 대놓고 뿜어 대고 있고.

거기에 단씨 삼 형제까지… 어라?

쟤들은 왜 저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대?

아!

내가 지키라고 한 건 소신녀고.

돈이 가장 많은 건 연주언이고.

그리고 자기들 친동생은 단문령이고.

아니다.

단씨 삼 형제는 지금 단문령은 신경 쓰고 있지 않다.

그나마 내 명령이 우선이라 생각했는지 소신녀를 지키는 위치에 서 있긴 한데.

뭐, 단씨 삼 형제는 이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제외하고.

아무튼 상황이 많이 좀 그렇다.

하아!

정말 뭐 하자는 짓들인지.

창피해서 내가 고개를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멈춰! 뭐 하는 짓들이야!"

내가 성큼성큼 걸어가며 세 여인을 향해 호통을 쳤고.

그렇지 않아도 말리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하며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게 들렸다.

일부가 그랬고.

대부분의 남자 무인들, 특히 젊은 무인들은 변용을 하지 않은 세 여인의 미모에 넋이 나가 있다.

뭐, 그건 그렇고.

"칼 거둬! 어서!"

그녀들에게 다가가 재차 호통을 쳤다.

"죄송해요, 오빠."

곧바로 나에게 사과를 하며 칼을 거두는 담초희.

그런데 그게 또 화단이 됐다.

단문령과 연주언이 동시에 눈을 부릅떠 나를 죽일 듯 쳐다보며.

이젠 칼을 나에게 겨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 오빠? 오빠?"

"낭군,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쟤가 지금 낭군님한테 오빠라고 했지?"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며 분노하는 단문령과 연주언.

실제!

정말로!

나에게 칼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다.

아! 돌겠다.

어쩔 수 없지.

- 천마신교 교주 딸. 연주언만큼 돈 많아. 중원 무림과 사이가 나빠 현재 팔 수 없어서 그렇지, 천마신교에 쌓인 비급이며 영약, 서역에서 들여온 보물까지 하면, 그거 팔면 재산이 얼마인지도 몰라. 천마비고라고 들어 봤지? 무공 비급만 수만 권인데, 가장 쓰레기 같은 비급 한 권 팔아도 금자 1,000냥은 받고도 남을 거야. 그런 게 산처럼 쌓였어.

스르륵.

단문령에게서 분노의 기운이 갑작스레 사라짐과 동시에 나를 향했던 칼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갔다.

- 너, 평생 단문령 뒤치다꺼리하면서 살 거야? 내 둘째 아내 되면, 넌 평생 둘째. 단문령은 평생 첫째. 천하의 연주언이 평생 심부름하고 궂은일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네 뒤로 동생 하나 두면 그런 일은 다 동생 시키면 되잖아.

- 나 정말로……. 아잉! 낭군님도 나를 둘째로 이미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야? 아잉! 몰라잉.

- 아직 완전히 결정한 거 아니야. 쟤랑 사이좋게 지내면, 어험. 그러니까 네가 둘째 언니 자격이 있는 거 봐서 결정할 거야. 단문령은 확정, 넌 고심 중. 그리고 담초희는 9할 이상 합격. 넌 빠질 수도 있고, 언니 자격 없으면 그냥 셋째로 넣을 수도 있고. 하는 거 봐서 결정할 거야.

- 아잉! 낭군님, 앙! 내가 동생은 또 잘 다룬다니까. 몰라잉.

연주언이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서슬 퍼렇게 칼을 겨눌 때는 언제고.

이젠 칼을 내리다 못해, 머리에 꽃이라도 꽂은 여자처럼 몸을 배배 꼬고 있다.

단문령도 마찬가지다.

얘는 돈 얘기가 나오자마자,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담초희를 보고 있는데.

그냥 눈에서 별이 쏟아진다.

조금 전까지 칼을 겨눴던 담초희에게 언니 소리라도 할 기세다.

뭐, 어쨌거나 상황 종료.

"다들 따라와!"

짐짓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이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무림인과 소림사 승려들이 똑똑히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엄청난 무게를 잡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며 그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오빠."

"네, 낭군님."

"따르겠습니다, 낭군님."

큭큭큭.

수천의 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그렇게 천하 3대 미녀를 데리고 유유히 만금전으로 사라졌다.

* * *

뚝딱뚝딱.

쿵, 쿵, 쿵.

내가 묵고 있는 만금전의 현판을 새로 교체하는 중이다.

현재 소림사에는 방이 모자라는 걸 넘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나름 밖에서는 고수며 대협 소리를 들어야 할 제법 명성 있는 무인들까지 하급 무사 취급을 받으며 전각이 아닌 임시 막사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불사괴 때문에 와 있던 사람들만 해도 이미 소림사에 머물 수 있는 사람들의 정원을 초과했는데, 계속해서 중원 전역에서 고수들이 몰려들고 있다.

무엇보다 이틀이 지나면 무림맹에서 맹주, 낭만개 아저씨, 무치개 장로 등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한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알려진 소림사이나, 사실 그 규모 면에서는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 가장 작지 않을까 싶다.

오죽하면 나름 무림맹에서 맹주 다음으로 잘나간다는 순화자와 속리자 그리고 상취개가 손바닥만 한 방을 함께 쓰고 있겠는가 말이다.

순화자와 속리자가 상취개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소림사 방장 스님도 장로 스님들하고 한방을 쓰고 있고.

무황성의 장로들도 여럿이 한방을 쓰고 있다.

대부분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다만 우리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원래 만금전 자체가 만리상단을 위해 지어진 것이므로, 연주언만이 묵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 연주언이 동의하여.

나, 단문령, 담초희, 단씨 삼 형제, 흑풍절명사 마노, 적안마녀가 현재 머물고 있다.

낭만개 아저씨가 소림에 도착하면, 낭만개 아저씨도 이곳에서 묵게 할 생각이다.

내 뜻이 곧 연주언의 뜻이기에 아무런 문제 없다.

그리고 현재, 분위기는 더없이 좋다.

"막내는 피부가 정말 좋다."

"감사합니다, 큰언니. 하지만 저는 거짓말을 원래 못해요. 큰언니와 둘째 언니의 피부가 저보다 열 배는 더 좋습니다. 가끔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예요."

"호호호! 아잉. 우리 막내는 어쩌면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할까?"

"저는 예쁘게 말하지만, 둘째 언니는 사랑받는 말만 골라 하시잖아요. 세상 그 누구라도 둘째 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응, 셋이 분위기 좋다.

그리고 오늘.

소림은 그녀 셋에게 삼선녀(三仙女)라는 별호를 주었다.

그래서 지금 만금전의 현판을 ‘만금전’에서 ‘선녀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 * *

이틀이 지나 무림맹에서 사람들이 도착했다.

맹주와 무림맹의 장로들, 우리 개방의 방주와 장로들 등 무림맹을 비롯한 천하 주요 세력의 핵심 인사들까지 거의 모두가 이곳에 모였다.

거리가 먼 사천당가에서도 독선이 당가의 핵심 고수들과 함께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미리 보내 왔다.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낭만개 아저씨와 무치개 장로는 인간 불사괴 출현이 의심되는 곳을 다녀와야 하기에 언제 소림사에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낭만개 아저씨와 무치개 장로가 없지만, 난 곧바로 개방 수뇌부와 함께 맹주 그리고 순화자 속리자를 포함한 비밀 회동을 소집했다.

까마득한 무림의 후기지수인 내가 회동을 소집했지만, 당연히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둘러 오기 바쁜 모습들이었다.

난 자리에 모인 그들에게 걸사번 남궁무검의 죽음과 전언.

다시 걸일번 홍설아의 죽음까지.

또 걸삼번의 집안 내력과 그의 행보를 모두 설명해 주었다.

밀실은 커다란 충격과 놀람으로 한참이나 정적만이 흘렀다.

"이 일은 당분간 비밀에 부쳐야겠군. 불존과 무존, 독선 그리고… 음, 몇몇에게는 알려야겠지만……."

"정보 공유를 누구와 할지는 맹주님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그래, 귀행개 방주와 상의해 결정하겠네."

맹주에게 그리 말한 후, 나는 시선을 파완개 일 장로에게로 옮겼다.

"일 장로님, 현재 걸삼번은 어디에 있습니까?"

"광동 불산에서 임무를 마치고 복건으로 이동 중일 걸세."

"다들 명심하셔야 합니다. 귀혼석의 비밀을 파헤칠 때까지, 절대 걸삼번이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나에게 집중한 상태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일 장로님께서도 녀석이 허튼 생각하지 못하게, 또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임무를 보내 주셔야 합니다. 감시자를 붙여서는 안 됩니다. 놈이 곧바로 눈치챌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겠다."

그때 우리 개방의 삼 장로가 나섰다.

"태한아, 그냥 당장 놈을 치는 게 낫지 않을까?"

난 장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도 방법이지만, 현재로서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일전 속리자에게 해 주었던 말과 같은 답변을 해 주었고.

자리에 있는 모두는 내 말에 공감하였다.

우리 방주가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귀혼석의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게 관건이겠군.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겠어. 장로들은 들으시게. 본 방의 전력을 다 쏟아 귀혼석의 비밀을 파헤쳐야 하네. 단! 태한이가 말했듯, 은밀히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일세. 알아들었나?"

"네!"

맹주가 방주의 말을 이었다.

"무림맹도 최대한 인력을 동원하도록 하겠소."

이후에도 몇 가지 말들이 더 오갔고, 그렇게 회의는 빠르게 종결되었다.

곧바로 맹주를 위시한 무림 전체 회의가 열렸다.

소림사가 정식으로 무림맹 임시 본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이한 불사괴들의 기운을 막는 데에는 무림맹보다 소림사가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거의 만장일치로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독선이 도착하였고.

맹주는 낭만개 아저씨와 무치개 장로를 뺀 삼존이성, 그러니까 불존, 무존, 독선을 따로 불러 그들과 만남을 가졌다.

* * *

소림사에 매일 수백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들고, 수백 명의 사람이 숭산을 오르내렸다.

거지들도 시도 때도 없이 소림사를 드나들었는데.

비걸개 훈련생 당시 총교두와 교두들도 다른 거지들 틈에 섞여 은밀히 소림사를 방문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귀혼석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결국 귀혼석을 준비해 훈련장으로 보낸 게 바로 상취개 육 장로인데.

그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

당시 자리에 있던 사결 비걸개들도, 다른 모든 선물은 기억하였지만, 하나 같이 귀혼석만큼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답하기만 한 시간이 열흘이나 흘러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고기 먹으니까 너무 좋다. 헤헤. 우리 낭군님도 많이 먹어."

삼선녀, 그러니까 내 예비 아내들을 데리고 숭산을 내려왔다.

특별 외출이라, 담초희를 포함 셋 모두 변용을 했다.

소림사에 계속 있어 봐야 내가 할 일은 없었고.

계속 답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상취개 장로가 고기라도 좀 사 먹으라고 용돈까지 줘서 바람도 좀 쐴 겸 해서 나왔다.

응, 고기 사 먹으라고 상취개 장로가 철전 50닢 줬다.

만리상단의 연주언까지 있는데 철전 50닢으로 고기 사 먹으라고… 됐다.

그 양반한테는 큰돈이니 감사하게 생각하자.

그렇게 나와 삼선녀가 한자리에서 맛있게 고기를 먹고.

옆 식탁에서는 단씨 삼 형제.

건너편에는 적안마녀와 흑풍절명사 마노… 아! 둘은 또 언제 저렇게 친해졌대?

아무튼 그렇게 맛있게 절간 음식이 아닌, 기름진 고기 요리를 먹고 있을 때였다.

"멸마협? 훗! 웃기지 말라고 그래. 감숙에서 하급 불사괴 세 구를 처리한 게 전부인 녀석인데, 소문이 너무 과하게 퍼졌어. 두고 보라고! 내가 하급 불사괴가 아닌, 인간 불사괴나 악령 불사괴를 처치해 천하에 명성을 떨칠 테니까! 하하하!"

"역시 태연방의 소방주님이십니다. 하하. 그럼 삼선녀도 이젠 우리 하후역 소방주님의 부인이 되는 겁니까?"

"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나? 거기에 더해 멸마협 녀석을 내 쫄따구로 부리도록 하지. 곧 멸마협이라는 막내가 들어올 테니까, 다들 잘해 주도록 해. 알았나?"

"넵! 크하하하하!"

"역시 하후역 소방주님이십니다!"

"멋지십니다, 소방주님! 하하하."

아놔, 저 새끼들을 그냥 콱!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식사를 하는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식당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시끄럽게 밥과 술을 처먹던 녀석들이다.

어디 시골에서 방귀 좀 뀌다 온 녀석들 같은데.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했는지, 녀석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내가 나서서 따끔하게 가르침을 주려고 했지만, 단문령과 연주언 그리고 담초희가 동시에 내 손을 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난 한 번 참고, 또 저런 소리를 하면 그때 나서려고 했는데.

"야! 너희 일곱. 방금 했던 말 다시 해 봐."

누군가 그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랏?

저 녀석들이 여긴 어떻게?

"넌, 뭐야! 이 거지새끼들이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시비야?"

"그런 너희는 나와 내 사저가 거지인 건 보이면서, 누군지 궁금하지는 않냐?"

300근에 달하는 엄청난 덩치의 거지.

그 옆에 고양이를 닮은 예쁘장한 여인 거지.

칼을 찬 일곱 명의 무인을 상대로 여유롭다.

술에 잔뜩 취한 태연방의 일곱 쓰레기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다.

"뉘신데……?"

눈알을 마구 굴리며 조심스레 덩치 거지에게 묻는데.

"너희들이 방금 욕한 멸마협의 동생. 저육개와 묘안개 대협들이시다, 새끼들아!"

퍽!

쿠당탕탕탕.

마두와 대마두들을 연이어 소탕하여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그렇게 최근 칠룡사봉에까지 이름을 올린 저육개와 묘안개 등장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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