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64화 (163/174)

164화

소림사 만금전(萬金殿).

신법을 펼쳐, 정말 바람보다 빠르게 그곳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지만,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사이도 없이, 나는 곧장 만금전 안으로 들어갔다.

콰앙!

굉음이 울리며 문이 열렸고.

혹시나 했지만, 젠장!

역시나다.

조금만 늦었어도, 둘 중 한 명은 죽었을 것이다.

내가 들이닥치자마자 동작을 멈춘 두 여인.

단문령과 연주언이다.

그런데 그녀들.

단문령이 연주언의 목을 조르고 있고.

연주언은 비수로 연주언의 머리를 찌르려 하고 있다.

그런 상태로 내가 들이닥치자 놀라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뭣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너무 화가 나고 슬프고,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눈만 껌뻑껌뻑.

다시 계속 눈만 껌뻑껌뻑.

"낭군님?"

"왔어, 우리 낭군님?"

해맑게 웃는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는데 말이다.

"뭐 하는 거냐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그러게. 언니, 우리 낭군님 상태가 좀 이상한데?"

"어라? 십만대산 갔다가 머리를 다쳤나? 야! 낭군님, 이리로 좀 와 봐. 우리가 얼마나 다쳤나 봐 줄게."

"그래, 낭군님아. 언니하고 내가 봐 줄게 이리로 와서 누워. 호호호."

어?

뭐지?

분위기가… 이상하네?

좋은데?

다시 안력을 높여 보니.

목을 조르는 게 아니고… 목걸이를 걸어 주려고?

머리를 찌르려던 비수는… 아! 머리를 묶은 후 꽂는 비녀였군.

쪽팔린데?

이 상황 어쩔……?

"낭군님!"

"낭군님아!"

내 뻘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인이 내게 조르르 달려와 한쪽씩 팔짱을 낀다.

"우리가 보고 싶어서 빨리 온 거야?"

"그러게, 언니. 낭군님이 우리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호호호."

뭔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건데?

난 그녀들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의자에 앉았고.

단문령과 연주언이 그런 내 옆에 거의 붙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싹 다가와 앉았다.

"어험. 그,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야?"

찰싹!

단문령이 내 등짝을 때렸다.

"이렇게 예쁜 동생이 있었으면 진즉 말을 하지 그랬어, 낭군님아."

찰싹!

이번엔 연주언이 내 등을 때리며.

"낭군님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이 나보다 예쁘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는데. 오호호호! 와! 낭군님아, 나 언니 보고 예뻐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아이, 야! 그러지 마. 네가 더 예뻐."

"아잉. 언니! 언니가 정확히 나보다 두 배 더 예쁘다니까. 진짜로."

"호호호호."

"하하하하."

뭘까?

질문은 나한테 해 놓고, 자기들끼리 답하고 하하하며 호호하고 있다.

난 그녀들 사이에 앉아, 한 시진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앗! 잠깐."

"낭군님, 왜?"

"우리 낭군님 똥 마려워?"

"아니. 아! 상취개 장로님께 보고할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걸 빠뜨렸네."

"그럼 어떻게 해? 어서 가 봐."

"그래, 낭군님아. 빨리 갔다가 와. 언니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너무 늦지는 말고."

"그래, 우리가 요리도 해 놓고 있을게. 빨리 와."

"응, 그래. 금방… 금방 올게."

한 시진이 되어서야 나는 그녀들의 수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금전을 벗어나는 나의 두 다리.

힘이 쫙 풀렸다.

아! 어이가 없네.

싸울 줄 알았는데.

언니와 동생이 됐다.

둘도 없는 자매며 친구다.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외롭고 쓸쓸하고 그렇지?

아무튼 한 시진 동안 난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녀들의 수다를 들었고.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불과 불이 만난 줄 알았고.

물과 물이 만난 줄 알았는데.

하아!

이게 또 이렇게 돌아가네.

그러니까 말이다.

단문령이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물론 첫 번째는 나고.

두 번째가 바로 돈이다.

내가 항상 그러지 않았겠나?

무림에서는 주먹 센 놈이 형이고, 문령이네 집에서는 돈 많은 놈이 어른이라고.

무림 여고수 놀이하다가 어찌어찌하여 소림사까지 오게 된 연주언.

때마침 불사괴 구별을 위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던 단문령이 소림사에서 머물고 있던 곳이 바로 만금전이었다.

그리고 만금전이 뭐냐 하면.

만리상단에서 매년 소림사에 엄청난 돈과 곡식을 시주한다.

그 돈과 곡식의 양이, 소림사 전체의 시주 금액의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만리상단주와 그 부인, 그러니까 연주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년 직접 찾아와 참배를 하며 그 돈과 곡식을 시주한다고.

1년에 딱 한 번 찾아오지만, 명색이 만리상단주와 그 부인이 오는데, 묵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림사에서 아예 전각을 하나 새로 지었다고.

그게 바로 만금전이다.

그래도 절간이라 화려하고 그렇지는 않지만, 소림사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조용하며 은은한 불가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아무튼 단문령이 특별 대우를 받아 그곳에 홀로 묵고 있었는데, 무림 여고수 놀이하던 단문령이 소림사를 방문했다.

당연히 만금전은 만리상단을 위해 지은 것이기에 단문령이 나가고 연주언이 묵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만리상단의 정보력이 어마어마하다고.

연주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만금전에 묵고 있던 단문령이 누구의 추천으로 이곳에 왔고, 그녀가 지니고 있는 검이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지도.

아마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을 테다.

결국 연주언은 단문령과 함께 만금전에 묵을 것이라 소림사에 통보했고.

그렇게 둘이 만났다.

여기서 단문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겠는가?

만리상단의 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최소한 단문령의 집에서는 황제보다 더 귀한 게 바로 만리상단의 핏줄이었을 테다.

그렇게 만남.

단문령은 당연히 연주언을 극진히 대했고.

다시 연주언은, 내 두 번째 아내라도 되기 위해서는 단문령에게 잘 보여야 했을 테다.

심지어, 조금 전 연주언의 말에 따르면.

변용을 하지 않은 단문령을 보는 순간, 마음으로 패배를 승복하고 말았단다.

실제로 자기보다 더 예쁜, 압도적인 단문령의 미모에 마음속으로는 무릎을 백번 꿇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단문령을 제치고 내 아내가 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얘가 지금은 좀 정신이 이상해도, 원래는 천재 소리 듣던 애 아니겠는가.

그래서 빠르게 현실 파악을 하고, 단문령에게 연신 "언니, 언니." 하며 살갑게 굴었다고.

단문령도 자신에게만큼은 황제보다 귀한 신분인 연주언에게 동생이라 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둘이 친해졌고.

이틀이 지나 술까지 마시며.

연주언이 속마음, 그러니까 나의 두 번째 아내가 되고 싶다고.

언니만 허락해 준다면 그러고 싶다고 했을 때.

단문령은 지붕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했다고 한다.

어찌 아니겠는가?

만리상단의 금지옥엽과 한 식구가 되는 일인데 말이다.

어쨌든 단문령이 나와 동갑, 연주언이 한 살 아래.

거기에 내가 먼저 단문령을 선택했으니 언니가 됐고, 연주언이 동생이 됐다.

서열 정리까지 이미 오래전에 끝마친 거다.

내가 천마신교에서 곤륜마선에게 죽을 뻔했던 그 순간 말이다.

아놔! 생각해 보니 열받네.

아니, 왜 내 혼인을 자기들끼리 정하냐고?

뭐, 그렇게 됐다.

모른 척하련다.

왜?

큭큭큭.

열받는 건 열받는 거고.

그보다 좋은 건, 뭐 그렇다.

열받는 감정과 좋은 감정을 합치니, 좋은 감정이 조금 더 남는……. 하하.

천하 2대 미녀가 모두 내 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 * *

내가 돌아갔을 때.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는 여전히 밀실에서 심각한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어. 아내들은 잘 만나고 왔나?"

"네. 그리고 아직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래, 그건 천천히 얘기하고. 아까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 줬으면 하네. 걸삼번… 휴우, 걸삼번 이야기도 좀 확실하게 해 주고."

"그러려고 왔어요."

"그래, 일단 앉게."

자리에 앉은 후 내가 먼저 물었다.

"걸삼번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상취개가 답했다.

"현재 비걸개는 일 장로님이 관리하시네. 나도 알지 못해.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으로 전서구를 보낼 생각이야."

"보내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이미 보냈어요. 무림맹주님하고 우리 방주님, 장로님들 모두 오시라고 했어요."

세 노인네가 잠시 입을 굳게 닫고 무거운 얼굴로 나를 보기만 했다.

그러다 상취개가 결심한 듯 말했다.

"확실한가? 흉수가… 걸삼번인 게?"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확실해요. 이번엔 진짜예요. 천마신교에서……."

나는 걸일번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걸사번 남궁무검이 죽을 때 남긴 글귀까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세 노인은, 놀라고 또 참담한 얼굴이 되어야 했다.

"맹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함구하셔야 할 겁니다."

"암, 그래야지. 맹주님과 방주님 모두 오신 후 이 일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지."

"상취개 장로님, 혹시 귀혼석에 관해 아시는 게 있을까요?"

"귀혼석? 그게 뭔데?"

눈빛으로 순화자와 속리자에게 물었으나, 그들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다시 상취개에게 설명했다.

"우리 비걸개 수료할 때 방에서 선물을 줬잖아요. 그때 제가 얻은 게 행운석이고."

"그렇지, 자넨 행운석을 얻었지. 달걀을 깨면 노른자가 두 개 나오는 행운석."

"당시 걸삼번이 얻은 게 귀혼석이었어요."

"그게 무슨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해요. 녀석이 그런 힘을 얻은 원천이 바로 귀혼석이라고 생각해요."

"귀혼석이라……."

상취개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사실 자네들이 수고한 것에 비해 마땅히 줄 게 없었어. 그건 확실히 기억하지. 그나마 성적이 좋았던 아이들은 제법 괜찮은 물건들을 줄 수 있었지만, 성적이 하위권에 있던 아이들은… 그래!"

"뭔가 생각났어요?"

"하도 줄 게 없어서, 창고를 죄다 뒤졌던 게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네 것, 행운석은 또렷이 기억나. 9대 방주셨던 행운개 방주께서 목에 차고 다녔다는 기록이 딱 한 줄 적혀 있었지. 그 설화는 다들 알았던지라, 나나 사결 비걸개들이나 그때 한바탕 크게 웃었었지."

"귀혼석은요?"

"그게……. 아! 그건 왜 생각이 나지 않지? 잠깐만……."

상취개는 기억을 계속 꺼내 보려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장로님, 사안이 중대함은 장로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개방의 모든 거지를 동원해서라도 귀혼석에 대해 알아내야 해요."

상취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속리자는 아니었다.

"걸삼번이 불사괴의 흉수가 확실하다면, 삼존이성이 모두 모였을 때 힘을 합쳐서 치면 되지 않겠나? 때로는 단순한 게 가장 확실할 수 있다네."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알지 않은가.

행운석을 직접 겪어 본 나는 그 위력을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귀혼석이 그보다 더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추론 중이다.

9대 방주였던 행운개의 전설이 사실이라면.

그는 단신으로 천마신교를 막았다.

삼존이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다섯이 힘을 합친다 하여도 확실하게 행운개 방주를 능가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상대는 귀혼석이다.

걸삼번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놈의 곁에는 몇 구의 데몬 언데드가 있을지 모른다.

다른 언데드와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까지.

최악의 경우, 천하가 지옥이 될 수 있다.

확실하게 놈을 알고, 귀혼석의 힘을 알고, 그런 후 쳐야 한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천하는 그 순간 곧바로 지옥이 될 테다.

"저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당장 놈의 곁에 악령 불사괴와 인간 불사괴 또 그 외의 불사괴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놈을 치는 건, 놈의 힘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해야 해요."

순화자가 내 말에 동조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렇게 치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어."

속리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그건 맹주님께서 오신 후 다시 논의해 보지."

* * *

우리의 네 사람의 비밀회의는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다.

맹주와 방주 등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상취개도 비밀리에 귀혼석에 관해 정보를 수집 중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소림사 전체에 난리가 났다.

소림사의 스님들이고, 또 이곳에 머물고 있는 무림인들까지 모두 소림사의 입구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들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며 한 명의 스님에게 상황을 물었다.

"스님, 무슨 일인가요?"

"아! 모르셨습니까? 지금 본사의 입구에서 천하 3대… 엇! 멸마협……."

"네. 제가 개방의 나태한입니다."

"그, 그게……. 아! 나무아미타불. 나 대협께서 직접 보셔야……."

난감한 얼굴로 대답을 피하는 소림사의 스님.

뭔가 싶었다.

뭐, 곧 도착이라 더 묻지 않고 그냥 속도를 좀 더 높여… 젠장!

빌어먹을!

쟤들 왜 저러고 있어?

단문령과 연주언.

그리고 소신녀 담초희.

셋이 칼까지 뽑아 들고,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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