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윙슈트를 타고 날았다.
전력을 다해 날았다.
담초희는 단씨 삼 형제와 적안마녀에게 맡겼다.
뭐, 맡기지 않아도 어디서 해코지당할 여인은 아니고.
거기에 단씨 삼 형제와 적안마녀까지 있으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튼 무지막지한 속도로 하늘을 날며, 또 한편으로는 많은 고심에 빠졌다.
어떻게 가능하지?
성존은 화경의 고수다.
그것도 완연한, 어쩌면 화경의 끝자락에 위치한 고수가 바로 그다.
걸삼번은 어떻게 그를 데몬 언데드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허청, 그러니까 곤륜마선 말이다.
그는 성존보다 더 윗자락이 아닐까 싶다.
화경을 넘어 현경을 바라보던 경지라 하였다.
어쩌면 천하제일인은 낭만개 아저씨도, 구천마제 교주도 아닌 그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그를!
걸삼번은 도대체 어떻게 그를 데몬 언데드로 만든 것이지?
역시 귀혼석인가?
귀혼석은 과연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일까?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테다.
지금 당장 걱정은…….
낭만개 아저씨, 구천마제 교주, 불존, 무존, 무치개 장로, 독선까지.
성존과 곤륜마선을 그리 만들었다면, 나머지 화경의 고수들도 모두 데몬 언데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이 싸움은 필패다.
천하는 걸삼번의 발아래 놓이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냥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또 아니다.
만약 걸삼번이 천마신교를 먹어 버리고, 그 힘을 이용해 중원 무림을 공략할 생각이었다면.
곤륜마선이 아닌 교주를 데몬 언데드로 만들었을 테다.
그 방법이 더 확실하니까.
그런데 걸삼번은 그러지 않았다.
못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왜?
곤륜마선은 되고 교주는 안 될까?
뭐, 교주를 만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지만.
당장 걸삼번의 능력을 봐서는 그 또한 아닐 가능성이 높고.
결국 놈은 교주가 아닌 곤륜마선을 선택한 것인데.
이는 다시 교주를 데몬 언데드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인… 아! X라 복잡하네.
거의 도착했다.
일단 소림사 방장부터 확인하자.
* * *
소림사에서도 불력(佛力, 부처님의 힘)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보리원(菩提院).
그곳에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다.
난 곧바로 보리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불존과 무존 그리고 상취개와 순화자, 속리자를 비롯한 여럿이 소림사의 방장인 원일 대사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지 않고, 곧바로 방장에게 향했다.
모두가 극도의 긴장감 속에 나와 방장 대사를 지켜보고 있고.
가부좌를 튼 상태로 눈을 깊이 감고 있던 방장도 내가 온 것을 알았는지, 지그시 눈을 떠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껌뻑껌뻑.
방장이 나를 보며 눈을 껌뻑인다.
껌뻑껌뻑.
나도 그런 방장 대사를 보며 눈을 껌뻑였고.
껌뻑껌뻑.
나와 방장 대사를 번갈아 보고 있는 불존, 무존, 상취개, 순화자 등등 자리에 있는 모두가 눈을 껌뻑였다.
"아닌데요?"
내가 한마디를 했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시 눈을 껌뻑껌뻑.
"뭐예요? 아닌데요?"
다시 모두가 눈을 껌뻑껌뻑.
"아니에요, 불사괴. 불사괴 근처도 아니고, 전혀 아닌데요?"
그러자 방장 대사가 눈을 껌뻑이며 나에게 물었다.
"아니오?"
"네."
멋쩍은 얼굴을 하는 방장 대사.
그러자 곧바로 무존이 한마디를 했다.
"거, 아니라니까 사람 말을 못 믿어."
불존도 빠지지 않았다.
"어험. 나무아미타불. 방장 사제. 그만 일어나시게. 어험. 어험. 거, 민망하게. 쯧쯧."
- 상취개 장로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중요한 분을 모시고 오다가, 급하게 혼자 왔잖아요.
- 아! 그게 말이지. 신성교에서 성존이 악령 불사괴가 되지 않았나?
- 그랬죠.
- 방장 대사가 요즘 몸이 이상하다며, 스스로 불사괴로 변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네. 성존처럼 자신도 불사괴로 변해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연금을 했고.
- 아!
- 완전히 불사괴로 변했다면 모를까, 변해 가는 과정이라니 또 우리도 확신할 수 없어서 이렇게 지켜보며 너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휴우, 자! 다들 들으세요. 전혀! 아주 전혀! 조금도 아니에요. 방장 대사님, 아닙니다. 나가셔서 볼일 보셔도 됩니다."
"어허. 나무아미타불. 나 대협께 큰 신세를 지었습니다. 허허허."
뭐, 단순한 오해와 걱정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 상취개 장로님, 긴히 물을 말이 있습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 알았다.
* * *
상취개만 불렀는데, 순화자와 속리자도 함께 왔다.
이젠 그냥 한 몸같이 다니는 모양이다.
뭐, 어차피 알아야 할 테니.
"상취개 장로님, 걸삼번에 관해 물을 게 있습니다."
"걸삼번? 또 왜?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 녀석에겐 일절 위험한 임무 같은 건 안 시켜."
"아니, 그거 말고요. 지난번에 걸삼번 이야기할 때, 호남 교룡채 채주 죽어서 조문 보낸 후에 어디로 보냈어요?"
"말해 주지 않았나? 항주 기루연합회에서 어린 배수들이 난리를 친다고, 그거 잡아 달라고 해서 보냈다고 했잖아."
"다시 생각해 봐요. 그거 말고 또 다른 임무가 있었는지."
"그게… 어험……."
뭐지?
왜 내 눈치를 보지?
"쯧. 그래도 걸삼번 녀석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심부름은 그 녀석이 다 도맡아서 하고 있어."
"다른 임무가… 또 있었다는 말이네요?"
상취개가 고개를 끄덕인다.
"중요한 문제예요. 말씀해 주세요.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요."
"그걸 다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해. 서류를 찾아봐야 하는데, 간단한 심부름은 기록하지도 않았… 아! 생각났다."
"뭐요?"
"곤륜파에 보냈어. 상청진인의 고희연, 칠순 잔치 말이야. 그때 아무 거지나 보낼 수 없어서, 그래도 비걸개라고 녀석을 보내서 본 방의 선물을 전달했지."
맞네.
맞아.
"그럼 감숙 돼지 농장, 산서 신창양가, 그다음이 호남 교룡채, 그다음은 청해 곤륜파, 그다음이 절강 항주. 그렇군요?"
"그렇지? 내가 너무 부려 먹었나? 어허, 참."
"절강 항주 다음은 어디예요?"
"그런데 이 시국에 그걸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제발요. 제발, 좀 말해 주세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상취개.
순화자와 속리자도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님을 이미 눈치챈 모양이다.
"너… 설마……?"
"우선 답을 주세요. 걸삼번의 다음 임무지는 어디였죠? 절강 항주 다음이요."
"하남… 낙양. 만세표국에서 표물 운송에 도움을 요청해 그리로 보냈다."
"소림사와 근처네요?"
상취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고.
옆에 있는 순화자와 속리자는 이미 깨달은 바가 있는지,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곳 소림사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거죠? 하나도 빠지지 말고 모두 설명해 주세요."
내 물음에 그나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은 속리자가 설명해 줬다.
소림사에 불사괴의 침공이 있긴 있었다.
다만, 소림사 내부에서 만들어진 불사괴는 아니다.
그러니까, 불사괴들 모두 외인이었고, 불사괴 중 소림사의 승려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 수도 허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 불사괴가 하나, 귀신 불사괴, 그러니까 고스트 언데드가 셋.
100구의 좀비 언데드와 100구의 스켈레톤이 전부였다고 한다.
불존과 무존이 오기도 전,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빠르게 전부 소멸시켰다고.
소림사가 강한 것도 있겠지만, 이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이다.
걸삼번 녀석이, 소림을 그냥 한 번 찔러 본 거다.
힘을 파악하기 위해?
아니면, 다른 곳에서 엄청난 일을 꾸미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고.
한 가지는 확실해졌고.
한 가지는 유추할 수 있다.
확실한 건 걸삼번이 흉수가 맞다는 사실이다.
유추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물어보자.
"혹시 성존에 대해 아시는 거 있어요? 주화입마 증상이 있었다거나, 사술을 익혔다든가. 아니면 마공이나 그 외 기이한 무공을 익혔다든가 하는 것들요."
상취개가 답했다.
"삼존에 관한 조사는 본 방과 무림맹 그리고 삼존이 속한 무문 자체, 또 모든 문파와 세가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맞는 말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상취개가 말을 이었다.
"성존은 여러 무공을 익혔다. 대부분 불가나 도가의 정종 무공을 익혔고, 일부 사파의 무공을 익히긴 했으나 참고하는 수준이었다. 실제 그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그는 모두 불가와 도가의 검법과 신공들을 절기로 사용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지, 마공이나 사이한 무공에 관한 기록은 일절 없다."
"그건 우리 무림맹에서 조사한 것과도 같다네."
속리자에 이어 순화자가 나섰다.
"신성불사대전 이후 신성교의 핵심 인물들을 무림맹에서 심문했지만, 특별히 의심할 만한 것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네."
"무공이나 그런 거 말고 다른 것은요?"
순화자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건 교, 그러니까 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인데."
"네, 그것도 다 말해 주세요."
"그는 실제 스스로 신이 되려고 했었나 보더군.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성존은 신과 동급이 되기 위해 매일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고 했었다고 해. 뭐, 스스로 초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범인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 물론 정상인이라면 그리 생각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순화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속리자가 말을 이었다.
"이건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니 참고만 하게."
"네."
"단 한 명에게서만 진술을 들은 내용이야. 성존의 침실을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었던 애첩이 그러더군. 그가 악마의 힘을 갈구하기 위해 침실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고."
"음… 장로님들, 잠시만요. 생각 좀 정리할게요."
허청, 그러니까 곤륜마선.
그는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성존.
그는 사이한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 신이 되길 갈구했다.
그리고 이곳 소림사.
지금까지 불사괴는 현지, 그러니까 그 속한 문파나 세가의 사람이 불사괴로 변신하였다.
신성교가 그렇고 마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 소림사는 아니었다.
모두 외지에서 만들어진 불사괴가 이곳을 습격한 것이다.
그렇군.
그거였어.
낭만개 아저씨, 구천마제 교주, 불존, 무존, 무치개 장로까지.
걱정할 필요 없겠다.
인간을 불사괴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의 정신에 문제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종합해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이다.
"부동심(不動心)이에요."
내 오랜 고심을 조용히 기다려 준 세 노인네.
그들을 향해 말했고.
그들은 내 말을 또 오래 곱씹었다.
"정신 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구나?"
상취개다운 표현이다.
"네."
"인간 불사괴나 악령 불사괴가 되지 않으려면?"
"네, 맞아요."
"확실하냐?"
"현재로서는 9할 이상이에요."
"알았다. 당장 모두에게 알리마."
세 노인네가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장성한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을 보는 아비의 얼굴들이다.
응, 우리 새아빠는 낭만개.
순화자가 말했다.
"내 눈이 정확했어. 난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자네가 천하를 구할 인재란 걸 한눈에 알아봤지. 하하하!"
속리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그러지 않았나? 범상치 않은 아이라고. 하하하!"
"이보세요들! 저 처음 봤을 때, 마교에서 온 첩자라면서 냅다 두들겨 패고 밧줄로 묶어서 끌고 갔던 거 벌써 잊어버리셨어요?"
"하하! 오해야, 오해."
"그래, 오해라니까. 아무튼 자넨 참 대단해."
이젠 상취개까지 대화에 끼어, 셋이 주거니 받거니.
"태한이만 대단한가? 태한이의 두 아내는 또 어떻고?"
"맞아, 요즘 절애선녀검(切愛仙女劍)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하지 않은가?"
"일화선녀검(一花仙女劍)은 더 대단하지 않은가?"
"아이고, 우리 태한이는 복도 많아요. 천하 3대 미녀 중 둘을 아내로 들였으니 말이야."
"예끼, 이 사람아.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하지 않았나. 말이 천하 3대 미녀지, 이선녀(二仙女)인 절애선녀검하고 일화선녀검을 뺀 나머지 1인이 누군가? 황제의 여동생 아닌가? 옥향 공주. 황궁의 기세가 아니라면, 솔직히 천하 100대 미녀에도 들기 힘든 게 사실 아니겠는가?"
"맞아, 맞아. 진짜 천하 2대 미녀는 이선녀지. 일화선녀검과 절애선녀검. 하하."
"아이고, 우리 태한이는 좋겠네. 아내가 둘이나 있는데, 두 명이 모두 천하 2대 미녀라서. 하하하!"
이 양반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셋이 단체로 치매라도 왔나?
이선녀는 뭐고, 일화선녀검과 절애선녀검은 또 누구야?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런 여자들이 왜 내 아내가 되어… 어라?
절애선녀검?
이거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 그녀가 설마……?
* * *
"됐어. 깨끗이 너 잊고, 말한 대로 난 진정한 무림의 여고수가 될 거야. 나 유명해진 다음에 내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녀도 바빠서 못 만나 준다."
"그래,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별호도 미리 정했어."
다시 말하지만, 별호는 자기가 짓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어 주는 거다.
뭐, 됐다.
오늘은 좀 맞춰 주자.
"별호? 뭘로 정했는데?"
"절애선녀검. 사랑을 끊는 선녀의 검. 어때? 멋지지?"
확실하다.
얘가 머리가 많이 아프다.
내 마음도 덩달아 아프다.
* * *
절애선녀검은… 젠장!
그녀다.
연주언이다.
그럼 일화선녀검은?
한 명밖에 더 있겠는가?
천하 2대 미녀 소리를 들을 만한 미모의 여인.
내가 직접 이곳으로 보내기까지 했으니, 그녀가 맞다.
단문령이다.
아! 큰일이다.
다급히, 정말 다급히 세 노인에게 물었다.
"걔들 지금 어딨어요?"
"어딨긴? 여기 소림사에 와 있지."
"설마… 설마 둘이 같이 있어요?"
"응, 같이 있는데, 왜?"
큰일이다.
불과 불이 만났다.
화재가 일 것이다.
물과 물이 만났다.
수재가 범람할 것이다.
둘이 만났으니.
피를 볼 것이다.
"거기가 어디예요!"
"소림사 내원에 있는 만금전……."
난 곧바로 만금전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