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곤륜파.
우리가 들어서자 곤륜파의 도사들이 흔들렸다.
나 때문이 아니다.
담초희 때문이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긴 했다지만, 어디 천하제일을 다투는 그 아름다움이 쉬이 다 가려질 수 있겠는가.
무당, 화산 등과 비교해도 진짜 산골 벽지 중에서도 외딴 이곳 곤륜산에 틀어박혀 도만 닦았을 도사들이다.
젊은 도사, 나이 든 도사, 어린 도사 할 것 없이.
그냥 죄다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보였다.
그나마 곤륜파 도사들의 수양이 깊었기에 거기까지였다.
더 추한 모습을 보이는 도사는 아무도 없었다.
"개방의 나태한입니다. 불사괴 문제로 왔습니다."
불사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곤륜산 초입을 지키는 도사들의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혹시 멸마협 나태한 대협이십니까?"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우리는 곧장 곤륜산 본산으로 향했다.
* * *
내가 왔다는 소식에 곤륜파의 상도전(上道殿)에는 장문인은 물론 장로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불사괴 때문이라고 해서였을까?
분위기가 제법 심각하고 무거웠다.
아니, 아무리 불사괴 때문이라고 해도 그 분위기는 내가 예상하는 것을 한참이나 넘어 무거워 보였다.
곤륜마선 때문일까?
그것도 알아봐야 한다.
"무량수불. 어서 오십시오, 나 대협."
나는 담초희만을 대동하여 상도전으로 들어갔다.
장문인 태청진인 그리고 장로들과도 예를 갖춰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데 옆에 계신 소저는……?"
장로 중 한 명이 물었고.
"천마신교 구천마제 교주님의 딸입니다."
내 소개에 담초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신교의 담초희라고 합니다."
"소, 소신녀?"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장로도 있었고.
누군가는 헛기침만 해 댔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장문인 태청진인이 나섰다.
"혹 신교에도 불사괴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장문인이 소신녀에게 물었지만, 답은 내가 했다.
"곤륜마선이 신교의 부교주와 장로 여럿을 죽였고. 그 일로 내전이 발발해 수천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런! 이런! 무량수불. 무량수불."
"어허! 그자가 정녕… 어험."
"무량수불……."
조금 전에 소신녀에게 보였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장문인이며 장로들이며, 담초희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건네지 않지만, 죄인의 얼굴로 한없이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교주께서도 불사괴 일에 적극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불사괴 앞에서는 정사마를 구분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아! 불행 중 다행이군요. 무량수불. 신교에서 그리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무량수불."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신교에서 있었던 일과 또 교주와의 계약에 대해 설명했다.
곤륜의 장문인과 장로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얼굴로 그런 내 이야기에 몇 번이고 안타까워하고 또 미안해하며, 다시 감사해했다.
"물을 것이 있어서 중원으로 급히 가는 길에 곤륜산을 올랐습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나 대협."
"혹시 이곳에, 그러니까 몇 달 전쯤에 본 방의 걸삼번이라는 자가 다녀갔습니까?"
대답은 즉각 나왔다.
장로도 아닌 장문인이 직접 답해 주었다.
"맞아요, 빈도의 대사형인 상청진인의 고희연(古稀宴, 70세 생일)에 개방을 대표해 선물을 전하러 와 주었습니다. 그때 온 개방의 비걸개 소협이 걸삼번이었어요. 개방에서 온 소협이기도 했고, 또 워낙 서글서글 인상도 좋고 하여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이 새끼.
걸삼번 이 새끼… 맞다.
이 새끼가 흉수다.
X새끼.
지금까지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거였어?
매일 헤헤거리던 그 웃음.
모두 거짓이었어?
찢어 죽일 새끼.
"혹, 걸삼번이 이곳에서 지내며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이번엔 칠 장로가 답했다.
"호기심이 꽤 많았습니다. 개방의 방도인데다가 비걸개라 그러려니 했지요. 10여 일을 묵으며 본 파의 이곳저곳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빈도의 제자가 직접 걸삼번 소협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 * *
내가 천마신교에 가기 전.
정확히는 십만대산에 들어서기 전.
만리상단의 봉오자 행주와 천마신교의 마안창 황초가 대화를 나눌 때.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어허!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 가만! 몇 달 전 곤륜파의 상청진인께서 칠순 생신을 치르고 며칠 뒤 곤륜에 변고가 생겨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그때 상청진인 말고도 수십의 도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네. 설마 그 일과 연관되었나?’
‘알고 계셨네요. 맞습니다. 주화입마에 빠져 참회동에 갇혔던 어느 도사가 탈출해 상청진인과 도사 수십 명을 죽이고 도주하였습니다. 곤륜파를 벗어난 그는 스스로 곤륜마선이라 칭하며, 우리 신교에 투항했습니다.’
* * *
"혹시 걸삼번이 참회동에도 갔었나요?"
"그렇습니다."
"곤륜마선… 그도 만났나요?"
곤륜마선이라는 말에, 칠 장로는 물론 장문인과 다른 장로들까지 다시금 씁쓸한 얼굴을 했다.
장문인이 답했다.
"곤륜마선의 도명은 허청이라고 합니다. 11년 전 40대의 나이로 화경의 벽을 깨고, 그 수양이 깊어져 현경의 경지를 보고 있던 중이었죠."
"현경이요?"
내가 놀라 물었고, 이번엔 일 장로가 나서서 답했다.
"우리 사형제의 막내 사제인데, 곤륜에서는 100년 만에 나온 기재 중의 기재였지요. 무량수불."
현경이다.
화경도 아닌 현경.
아! 낭만개 아저씨가 했던 말이 허튼 말이 아니었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이 먼 곤륜산에 현경을 바라보던 고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같은 데몬 언데드임에도, 곤륜마선이 성존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다 있었던 거야.
잠깐!
그런 곤륜마선을 그냥 무지막지하게 주먹으로 패 버린 교주는 또 뭐야?
돌겠네.
일단 이 일부터 확실히 하고 다시 생각하자.
"그래서 걸삼번이 곤륜마선… 아니, 허청 도사님을 만났나요?"
칠 장로가 답했다.
"허청은 현경의 벽을 무리하게 깨려다 주화입마에 빠졌습니다. 그 상태가 심상치 않아 스스로 참회동으로 가겠다고 하였지요.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이며, 아무나 드나들 수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만 당시 제 제자가 한눈을 판 사이 걸삼번 소협이 길을 잃었고, 어쩌다 간 곳이 허청 사제가 있던 참회동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만났…군요. 걸삼번이 허청 도사님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깊은 고심에 빠졌고, 다들 그런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잠시가 흘러.
"걸삼번이 이곳에 왔던… 그러니까 상청진인의 고희연이 언제였습니까?"
"넉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붉은 코뿔소의 뿔을 구하러 내가 남만에 갔을 때다.
불사괴 출현을 정리하자면.
첫 번째가 감숙.
두 번째가 산서.
세 번째가 호남.
네 번째가 절강.
이런 줄 알았다.
아니다.
틀렸어.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
그 사이에 하나가 더 있었어.
바로 이곳 청해, 곤륜파다.
시간상으로 보아, 걸삼번이 네 번째 임무는 이곳 곤륜파였고 다섯 번째가 절강 항주다.
소림사는 여섯 번째가 되겠군.
"변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허청 도사께서 참회동을 벗어나 벌인 일이라고요."
장문인이 답했다.
"무량수불. 참회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참회동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고. 허청 사제가 광인의 모습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고희연을 치른 지 보름이 되지도 않은 상청 대사형께서 그만 허청을 막으려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저와 장로 사제들도 크게 다쳤고, 수십 명의 제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걸삼번은 그때 곤륜파에 머물고 있었나요?"
칠 장로가 손가락을 세며 날짜를 계산한 후 답했다.
"이미 곤륜산을 내려간 지 열흘은 더 지난 후의 일입니다."
교활한 놈.
매일 바보같이 헤헤 웃었지만, 놈은 교활한 놈이다.
언제나 음모의 씨를 뿌려 놓고, 일이 터지기 전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서 무림맹과 남궁세가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던 거였어.
빌어먹을 새끼.
"한데 어찌 걸삼번 소협에 관해 물으시는지요?"
이 장로가 물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들 궁금해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걸삼번이 이번 불사괴 일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여쭌 것입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곧 무림맹에서 정식으로 관련 내용을 전달해 드릴 것입니다."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도사이기도 했지만, 그들도 현재 곤륜마선의 일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그럴 터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내 조용하던 오 장로가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멸마협께서는 불사괴를 구분하고 감지하는 데 큰 활약을 하신다 들었습니다."
"……."
그가 장문인과 다른 장로의 눈을 한 번 마주친 후 다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허청 사제가… 불사괴였습니까?"
아마 이들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내심 이를 마음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자신들의 사제며, 곤륜에서 100년 만에 나온 기재 아니겠는가.
얼마나 그를 아끼고 사랑했겠는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신교에서 만난 그는… 허청 도사가 아닌 곤륜마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곤륜마선은, 신성교에서 나타난 성존과 같은 악령 불사괴였습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두 눈을 감고.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누군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도경을 읊었다.
* * *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곤륜파의 상도전에서 장문인과 장로들.
그들과 빠르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상당한 정보를 교환했다.
감숙에 있는 공동파에서 이미 불사괴가 출현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보았기에, 이들도 이미 그런 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곤륜마선으로 인해, 그 대비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었다.
또한 무림맹과도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다.
그런 일을 모두 처리한 후, 나는 빠르게 곤륜산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 대협! 나 대협! 걸음을 멈추십시오."
막 곤륜파를 벗어나 산을 내려가려고 할 때.
곤륜파의 2대 제자가 나를 급히 불러 세웠고.
나는 다시 상도전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무림맹에서 긴급으로 전서응이 곤륜산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나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 * *
상도전의 분위기는 매우 심각했다.
아까보다 더 심각했다.
수양이 깊은 도사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더니.
"나 대협께서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문인이 떨리는 손으로 직접 전서응을 통해 날아온 서신을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내용인즉슨.
"소림사 방장께서… 불사괴일지 모른다고요?"
"무량수불. 빈도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소림사 방장께서 그러하시다니……. 어허. 무량수불. 무량수불."
장문인에 이어 일 장로도 초조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서신에 적힌 대로, 나 대협께서는 급히 소림사로 가 보셔야 할 것입니다. 저희 곤륜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말도 이미 여러 필 준비하라 제자들에게 명하였습니다."
맹주가 직접 곤륜파 장문인에게 보낸 서신이다.
이는 그 전에, 불존과 무존이 직접 무림맹주에게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었고.
소림사의 방장이 불사괴일지 몰라 현재 연금 중이며.
불존과 무존 역시 그가 불사괴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혹시라도 곤륜파에 오게 되면 급히 소림사로 보내 달라는 서신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말을 타고 갈 수는 없다.
윙슈트를 타고 날아가야겠다.
그전에…….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주와 우리 방주 그리고 우리 개방 장로들과 낭만개 아저씨까지 부르려고 했다.
걸삼번의 일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무림맹에서 날아온 전서응, 그러니까 매 녀석을 덥석 잡아 상도전 구석으로 갔다.
좀 기이한 행동이었으나, 장문인이나 장로들 모두 나에게 연유를 묻지 않았다.
나에게 꽉 잡힌 전서응.
눈만 동그랗게 뜨고 본다.
- 야.
- 왜?
- 부탁 좀 하자.
- 배고파.
- 심각한 얘기야. 잘 들어.
- 오다가 쥐새끼 잡아먹었다. 맛있다.
- 잘 들으라고!
- 무림맹. 곤륜파. 나는 무림맹과 곤륜파를 날아다닌다.
- 중요한 얘기라니까! 확 불에 구워 통구이를 해 버린다!
- 무림맹과 곤륜파를 날아다니면 인간이 닭고기를 준다. 닭고기 맛있다. 하지만 나는 산 닭이 먹고 싶다. 죽은 닭은 맛없다.
- 그래! 산 닭고기. 산 닭고기로 30마리.
- 많이. 나는 닭고기 많이 먹고 싶다. 산 닭이 좋다. 죽은 닭은 싫다.
- 산 닭. 산 닭을 매일 줄게. 많이! 많이 준다고.
- 좋다. 좋다. 나는 산 닭고기가 좋다.
- 빠르게 전달해 줘. 최대한 빨리! 네가 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무림맹으로 날아가. 산 닭. 죽은 닭 말고 산 닭. 산 닭 줄게.
- 좋다! 나는 난다. 빠르게 난다. 산 닭을 먹으러 날아간다.
서신을 빠르게 작성했다.
맹주와 방주 등 모두 소림사로 오라는 말을 적었다.
물론…….
[추신. 이 전서응에게 닭 한 마리 주세요. 죽은 닭 말고, 산 닭으로 한 달간 매일이요.]
나는 곤륜산을 내려가는 대신, 정상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곧.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