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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157화 (156/174)

157화

정마대전, 그러니까 정파 무림과 마교가 싸운 전쟁에 관한 기록은 그 양이 엄청나다.

기록을 모두 읽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친 정마대전의 기록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같이 마교의 고수들을 무지막지한 고수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적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엄청난 고수들이 많은 마교가, 왜 단 한 번도 정마대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매번 정파 무림에 패배해 십만대산으로 돌아갔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 알 것 같다.

아놔!

이 인간들 말이다.

뇌가 없다.

마뇌가 있으면 뭐 해?

그걸 쓰질 못하는데.

하아! 진짜 돌겠네.

그리고 이게 장난이 아니다.

"뭣들 하느냐! 모두 병장기를 챙겨라! 지금 당장 쳐들어간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필승칠책?

퉤!

개나 줘 버려.

지금 간단다.

시쳇말로 닥공, 닥치고 공격이다.

모두 자신의 도검을 높게 치켜들고 환호를 지른다.

그리고 교주가 움직이자, 수천에 달하는 고수들이 일제히 그를 따른다.

진짜 가는 거다.

하하하하!

이게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 마뇌 마천주님! 교주님을 말리셔야죠!

버럭 성까지 내며 마뇌에게 전음을 보냈다.

"신이 선봉에 서 적들을 섬멸하겠습니다!"

내 전음은 깔끔히 무시하고, 내가 감동해 마지않던 천재가 천하제일 막무가내 무식쟁이가 되어 칼을 마구 휘두르며 선두로 뛰쳐나간다.

- 혈우도마 일 장로님! 교주님을 말리셔야죠! 말려야 합니다!

"크하하하하! 교주님의 오른팔! 제가 앞장서 배신자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겠습니다!"

- 환영비마 장로님! 제발 장로님이라도 정신을 차리시고, 교주님을 말리세요!

"교주님! 오늘 저를 말리지 마십시오! 배신자의 시체가 산이 되고, 놈들의 피가 바다가 될 때까지 제 검을 휘두를 겁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교주님!"

미친!

이러니 백날을 싸워도 정파한테 못 이겼던 거야.

휴우.

어쩌겠나.

내가 나서야지.

환영비마는 실제 안가의 환영진까지 개진하였다.

교주를 필두로 세 노인네가 바로 뒤로 그리고 수천의 고수들이 다시 그 뒤를 따라 안가를 벗어나 본교로 향하려 했다.

쉬이이이이이이익.

척!

내가 교주의 앞을 막았다.

곧바로…….

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챙!

수천의 고수들이 나에게 도검을 겨누었다.

그중에는 혈우도마와 환영비마, 뇌마까지 있었다.

세 노인네 모두 나에게 미안한 표정과 빨리 비켜서라는 눈짓을 사정없이 보내면서도 칼은 거두지 않았다.

거칠 것 없이 전진하던 교주가 걸음을 뚝 멈추더니,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더니…….

"죽여라."

그게 전부였다.

왜 길을 막아섰는지, 내가 누군지, 묻고 그런 게 없다.

그냥 죽이란다.

실제 선두 무리에 있던 최고수 수십이 움찔하긴 했다.

그래도 차마, 두 시진 전까지 눈물까지 흘리며 고맙다고 절을 했던 인간들이라, 아무리 교주의 명령이라 하여도 날 실제 죽이려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러자 더욱 의아해하는 교주.

그가 자신의 곁에 있는 세 노인을 보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죽이라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이미 얼굴에는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시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의 세 노인네.

결국…….

타타탓!

세 노인이 교주 앞으로 달려와, 그러니까 나와 교주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달려 나오더니 곧바로 오체투지를 했다.

"교오오오오주우우우니이이이임!"

목을 놓아 통곡 비스무리하게 외치는 세 노인네.

교주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냐, 너희들? 항명이냐?"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구천마제 교주에게서 무지막지한 마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안가를 넘어 주위의 모든 것들, 대자연마저 교주의 무지막지한 마기에 두려워 떠는 듯했다.

"교오오오오주우우우우니이이이임! 저자는 교주님을 살린 의원입니다!"

환영비마에 이어 마뇌가 다급히, 간절히 외쳤다.

"적들에게 생포 당한 소신녀님을 살리고, 또 심각한 부상까지 치료한 의원입니다!"

"본좌의 딸이 적들에게 잡혔었어?"

"그러하옵니다, 교주님!"

"다쳐서 죽을 뻔했고?"

"네에에!"

"저 녀석이 살린 거야?"

"그렇습니다, 교주님."

"너희는 그때 뭐 했고?"

"그, 그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그래, 곤륜마선을 죽이기 전에, 너희 목부터 베야겠다."

"조오오오오오온며어어어어어엉!"

교주의 말에 자라처럼 목을 쑥 빼는 노인네들이었다.

진짜 충성심만큼은 이들 노인네가 천하제일인 것 같다.

"교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말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교주.

"너였구나. 본좌에게 심어를 보낸 게."

"그렇습니다, 교주님."

다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찌 본좌를 보고도 오체투지를 하지 않느냐?"

"저는 중원 무림에서 왔습니다. 신교의 교도가 아닙니다."

"음… 다리를 자르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겠지?"

"……."

하! 그냥 가게 본교로 쳐들어가게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어쩔 수 없다.

힘들게 살려 놨는데, 개죽음당하면 그것도 좀 찝찝하지 않겠나.

"농이다, 농. 본좌도 농이란 걸 할 줄 안다. 재밌지 않느냐? 하하하하!"

"재밌습니다, 교주님! 하하하하하!"

"배꼽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교주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와! 단체로 미쳤네.

돌겠다.

실제 수십 명은 배꼽을 잡고 바닥을 구르며 웃고 있다.

"교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교주님이시라면, 곤륜마선의 목 따위는 언제든 벨 수 있으실 테니, 저에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놈 목부터 베고 얘기하면 안 될까?"

"부탁드립니다, 교주님."

"쩝. 빨리 베고 싶은데. 알았다. 본좌의 생명을 구하고 소신녀의 목숨까지 구했다니, 너에게 잠시 시간을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모두 들어라!"

"존명!"

교주의 외침에 다시 수천의 고수들이 오체투지를 했다.

"놈들에 대한 복수는 잠시 미룬다! 언제 출발할지 모르니, 다들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여라!"

"존명!"

그렇게 나는 간신히 교주를 말리고 다시 안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와 교주의 뒤를 따른 세 노인네는 나에게 연신 눈짓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다.

* * *

조금 전 우리가 회의를 했던 중심 전각으로 향했다.

수천의 마교 고수들이 그런 우리를 뒤따랐다.

"아버지."

전각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소신녀가 나타났다.

"오! 우리 딸. 멀쩡한데? 하하! 본좌의 딸이 쉽게 죽을 리 없지. 크하하하하!"

"아버지, 저하고 잠시 얘기 좀……."

"그래, 그러자꾸나."

나와 세 노인네 그리고 수천의 고수는 전각 밖에서 부녀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소신녀가 전각 밖으로 나온 건 반 시진 정도가 지난 후였다.

"들어오시랍니다."

그녀는 세 노인에게 말했고, 말을 마친 후에는 나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에야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나와 세 노인네가 전각으로 들어갔고.

음, 다르다.

아까 나를 보던 눈과 지금 나를 보는 교주의 눈이 바뀌어 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던 교주가 혼잣말인 듯 아닌 듯한 말을 흘렸다.

"감히 본좌 딸의 속살을 보다니."

"그, 그건… 그건 치료 때문 아닙니까! 저는 의원입니다."

교주가 씩 웃는다.

"안다."

뭘?

어쩌라고?

그러면서 고개를 홱 돌린다.

더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모르겠다.

그러더니 교주는 세 노인에게 말했다.

"딸에게 상황은 다 들었다. 불사괴가 그 정도 존재인 줄은 몰랐군. 그래 봐야 바뀌는 건 없다. 아니, 불사괴를 죽일 수 있는 방법까지 알았으니, 일은 더 쉬워졌지. 내일 아침 해가 뜨면 곧장 본교로 향한다."

"존명!"

하아!

저 노인네들은 할 줄 아는 말이 ‘존명’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다시 내가 나서야 했다.

"교주님, 현재 몸 상태가 어떻습니까?"

"의원으로서 묻는 건가?"

"그렇습니다."

"곤륜마선을 맨손으로 때려죽일 만큼 건재하다."

"2할. 아무리 잘 쳐줘야 3할의 공력을 되찾으셨을 뿐입니다. 아닙니까?"

교주가 또 씩 웃는다.

왜 자꾸 웃는데?

"중원에서 천하 3대 의선이라 불린다고?"

"허명입니다."

"본좌의 몸이 증명한다. 결코 허명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그가 손을 들어서 내 말을 제지했다.

"충분하다고 했다. 2할이고 3할이고, 지금으로도 곤륜마선 따위는 충분히 없앨 수 있다."

"교도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셨듯 모두가 교주님께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신하며 자식이며 교도들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시려면 교주님께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신 후 출정하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음… 본좌의 말에 토를 다는 놈은 또 처음이군. 그런데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나와 교주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세 노인네는 뭐가 그리도 불안한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중이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라 하여, 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고작 며칠, 길어야 보름만 더 참는다 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본좌는 군자(君子,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가 아니다. 무인이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절대 무적의 무인."

"소신녀에게 들으셨겠지만, 불사괴는 죽지 않습니다. 악령 불사괴는 더더욱 그 생명력이 질기고 무위 또한 강해, 신성불사대전 당시 화경의 고수 둘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후훗. 본좌를 그따위 것들과 비교하는 것이냐?"

"최상의 상태로 싸우셔서 모두가 교주님의 압도적인 신위를 볼 수 있게 해 달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또 씩 웃는다.

내 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니, 이미 출정을 늦추기로 결심한 눈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이나 그렇게 날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불마를 네가 죽였다고?"

"네, 교주님."

"불마가 인간 불사괴였다며?"

"제가 겪어 본 바 그러했습니다."

"넌 그를 어찌 죽였느냐? 죽지 않는 불사괴를?"

"제 우룡검에 불사괴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론 제 무위가 제법 대단한 것도 있었지만요."

"풉. 그래, 하하하! 인정하마. 하하하하! 뻔뻔하기까지 한 녀석이었군. 하하."

그러더니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네 우룡검으로 곤륜마선을 소멸할 수 있나?"

"네? 아… 네."

"그럼 됐네. 본교로 돌아가는 건 며칠 후로 하겠다. 그때 네 검을 잠시 본좌에게 빌려주도록 하여라."

아놔!

교주라는 인간이 지금 삥 뜯는 거야?

"그건 곤란합니다."

"어째서?"

"천하의 어떤 검객이 자신의 목숨과 같은 검을 다른 이에게 빌려준다는 말입니까? 어째서가 아니라,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건 상식이다.

불문율이다.

무인에게는 부모 자식 간에도, 또 사부와 제자 사이에도 검을 빌려달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교주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 하여도, 교주는 지금 일부러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나를 놀리려고?

아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그럴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다.

그럼 왜?

곤륜마선이 두려워서?

그건 더더욱 아니고.

그럼 다시 왜?

모르겠다.

교주가 지금 나에게 억지를 부리는 이유를.

"정말 빌려주지 않겠다는 말이냐?"

"죄송합니다, 교주님."

"본좌가 널 죽이고 우룡검을 빼앗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느냐?"

진심은 아닐 거다.

분위기가 그렇고, 교주의 느낌이 그렇다.

그냥 해 보는 말일 테다.

그런데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럼 신교도 멸망합니다."

"풉. 본좌가 널 죽이면 본교가 망한다고? 풉. 푸하하. 듣던 중 가장 재미난 얘기구나. 푸하하하! 자네들은 안 웃긴가? 푸하하하!"

"하하하하! 배꼽이 빠질 것 같습니다, 교주님. 하하!"

"전 웃겨서 숨도 못 쉬겠습니다. 하하하하하!"

세 노인네가 또 배꼽을 잡으며 바닥을 굴렀고.

아놔! 저 노인네들.

아무리 그래도 체통 좀 생각하지.

"그래, 묻겠다. 본좌가 널 죽이면, 감히 천하에 누가 있어 본좌를 죽일 수 있고, 또 본교를 멸망시킬 수 있단 말이냐?"

"새아빠."

"새…아빠?"

"항주에서 악령 불사괴를 죽인, 당대의 천하제일인. 바로 저의 새아빠입니다."

"너… 진심이구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풉.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대소를 터뜨렸다.

세 노인네는 이 상황에 따라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극심한 고심에 빠졌고.

그러다 갑자기 뚝.

웃음을 멈추고 나를 직시하며 나직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하제일인은… 본좌다."

대꾸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낭만개 아저씨가 천하제일인이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뀌는 건 없다.

"고얀 놈. 농을 좀 해 봤다. 설마 본좌의 목숨을 살리고, 또 딸아이의 목숨까지 살린 너를 진짜 죽이기야 하겠느냐? 하하. 그나저나 낭만개라는 자는 정말 한번 만나 보고 싶구나."

"……."

잠시 어색한 공기가 실내에 흘렀고.

다시 교주가 입을 열었다.

웃음기가 전혀 없는 진지한 말투였다.

아마도 내가 궁금해하던, 그러니까 교주가 왜 우룡검을 핑계로 억지를 부리는지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검을 한 시진만 본좌에게 빌려주면, 네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보답을 하겠다."

음, 뭐지?

진심인가?

장난도, 억지도 아닌 진심이었어?

진짜로 우룡검을 원하는 거였어?

그나저나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답이라니, 뭘 주려는 걸까?

괜히 혹하네.

내가 그렇게 대꾸도 하지 못하고 주춤하자, 교주가 말을 이었다.

"네 우룡검을 본좌에게 한 시진만 빌려준다면, 본좌는 너에게……."

너에게 뭐?

빨리 말해.

궁금해 미칠 것 같다고.

뜸 들이지 말고 말하라고!

"본좌는 너에게 신교 제일 미녀를 주도록 하겠다. 참고로 신교 제일 미녀는 본좌의 딸아이다. 하하하!"

아이씨!

때릴까?

아니면 침이라도 뱉어?

와나!

이 아저씨가 지금 장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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