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56화 (155/174)

156화

교주가 출동(出洞, 동굴을 나오다)하기 한 시진 전.

그러니까 이 미친 교주가, 내가 분명 보름 정도 스스로 치유하며 몸을 회복한 후 동굴을 나오라고 신신당부한 지 두 시진 만에 동굴을 뛰쳐나오기 한 시진 전.

안가 곳곳에서는 오랜만에 커다란 잔치가 열렸다.

교도들에게 본교를 빠져나온 후 처음으로 음주가 허락되었다.

안가에 있는 마교의 교도들은, 교주의 건강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말에 모두가 감동하고 기뻐하며 오랜만의 축배를 드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들어와 있다.

안가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전각.

일 장로, 삼 장로, 마천주 마뇌 세 사람과 본교를 장악하고 있는 곤륜마선을 어떻게 처치할지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이들 세 사람 모두 만리상단에서 보낸 정보를 모두 읽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신성불사대전과 성존 그리고 지금껏 중원 무림에 출현했던 불사괴에 관한 정보를 직접 듣고자 했다.

난 이들에게 불사괴에 관한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좀 웃긴 게, 이곳 마교가 중원과 같다고 해도 다른 점 역시 분명하게 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보통 중원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또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들은 아니다.

강자존에 의거한 절대 상명하복.

많은 이들이 들을 필요 없고, 현재로서는 세 사람이 정보를 취합하고 모든 결정을 내린다.

밖의 교도들과 고수들은 이들이 내린 결정을 그저 철저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어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위급 상황에는 반대로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체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곤륜마선 그놈이 악령 불사괴라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그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9할 9푼입니다."

다들 심각한 얼굴들이다.

화경의 반열에 오른 검제와 검선이 거의 동시에 악령 불사괴였던 성존에게 당한 걸 알고 있다.

거기에 자신들의 부교주마저 곤륜마선에게 죽는 걸 똑똑히 목격한 이들이다.

악령 불사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그때, 일 장로 혈우도마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놈을 처치하겠다. 안 되면 동귀어진이라도 하지, 뭐!"

곧바로 옆에 있던 환영비마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못 들었나? 용 뼈로 만든 검이어야만 놈을 처치할 수 있다고 했잖아! 아니면 멸존 낭만개 정도의 고수가, 천하10대 보검에 준하는 검으로 처치할 수 있고."

"왜? 뭐? 내 광혈도가 머금은 피가 얼마인지 알아? 나의 사조님부터 사부님까지, 광혈도로 벤 사람의 숫자만 1만 명이 넘어. 이 정도면 천하 10대 보검이고 지랄이고, 놈을 벨 수 있다고!"

난 환영비마가 그런 혈우도마를 향해 또 핀잔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내게 묻는다.

"나 대협, 가능하겠는가? 이놈의 광혈도가 천하 10대 보검에 비하면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본교에서는 5대 병기 안에 드는 보도(寶刀)인 건 사실이네."

나도 진지하게 혈우도마의 광혈도를 살폈다.

확실히 대단한 보도다.

내가 혈우도마에게서 느꼈던 괴물 같은 그 느낌이,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광혈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광혈도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할 정도였다.

내 반응에 혈우도마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만약 낭만개 아저씨가 광혈도를 들고 상대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그 낭만개라는 자보다 약해 보이나?"

혈우도마가 곧바로 내게 물었고.

난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쩌면 천하제일인입니다. 우리 낭만개 아저씨는요."

"교주님의 목숨을 살려 준 건 고마우나, 함부로 천하제일을 입에 담지 말게. 누가 뭐래도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은 교주님이시니까."

"붙어 봐야 알겠죠. 그래서 저도 ‘어쩌면’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음……."

"제 말의 의도는 낭만개 아저씨와 교주님 중 누가 진짜 천하제일인인가가 아니라, 혈우도마 장로님께서 그 두 분과 함께 천하제일을 논할 경지에 오르셨는가 하는 겁니다."

"갑자기 나는 왜?"

"악령 불사괴를 상대하시려고 하잖아요. 교주님이나 낭만개 아저씨의 경지가 되어야 상대할 수 있다고요."

"어… 그게……. 어험, 어험, 쿨럭."

내 말에 혈우도마가 갑자기 딴청을 피웠고, 환영비마와 마뇌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깊은 고심에 빠졌다.

잠시 후 마뇌가 말했다.

"천하 10대 보검이 아니라, 능히 천하제일 보검이라 불릴 수 있는 검이 본교에 두 자루나 있네."

"천마신검이요?"

"그렇네."

"다른 하나는요?"

"아수라신검이지."

"아!"

환영비마가 마뇌와 눈을 한 차례 마주친 후 대화에 끼었다.

"문제는 천마신검은 곤륜마선이 본교를 장악하며 놈의 수중에 들어갔고. 아수라신검은 전대의 교주님께서 소지하고 계시네. 우리 수중에 두 자루 검 중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

"전대의 교주님이요? 살아 계세요? 곤륜마선한테 붙으신 거예요?"

내 말에 환영비마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럴 분이 아니시지. 그냥 나서지 않고 잠자코 지켜만 보고 계시다네."

"왜요? 신교가 송두리째 불사괴의 손에 들어갔는데, 어찌 가만히 계시는 거예요?"

"본교의 율법이 그러하네."

마뇌의 대답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전대의 교주님만 계신 게 아니라네. 원로원에는 감히 우리나 자네가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고수분들이 계시다네. 그 수가 200, 300명에 불과하다지만, 그 적은 숫자로도 본교 전력의 최소 3할에서 최대 4할이 된다네."

"어마어마한 거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율법은 그들이 본교의 행사에 관여할 수 없게 정해 놓았네. 오로지 본교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만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놨지."

"지금이 그런 상황이잖아요."

다시 환영비마가 나섰다.

"사실 정확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상황이라네. 교주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교도 수백 명이 죽었으나, 그 정도로 본교가 망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않겠나."

"하지만 곤륜마선이 본교를 장악했고, 어쩌면 신교 전체를 장악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아직 그렇게 된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원로원에서 계속 지켜만 보고 있는 거라네."

환영비마에 이어 다시 마뇌가 나섰다.

"실은 환영비마 장로님께서 심복을 보내, 전대 교주님과 원로원 원로님들을 이미 여러 번 접촉했었네. 장로님이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답변을 받았다네."

"그럼 진짜로 망하기 직전이 아니면 안 움직인다는 거네요? 불사괴가 교주가 되는 걸 두고 보겠다는 거예요?"

"그건 강자존에 불사괴를 적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결부되지 않겠나. 그리고 그 문제의 결정권 역시 우리에게 있다며, 우리 스스로 결정하라 하셨네."

"결정은 어떻게 하는데요?"

"교주님께서 교주 위를 되찾으시고, 불사괴는 강자존의 법칙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포하면 끝이지."

"결국 곤륜마선을 죽이고 본교를 되찾아야 하네요?"

"그렇지."

미친 노인네들.

아니다.

그 노인네들을 탓할 게 아니다.

율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이곳에서 평생을 산 것도 아니고, 함부로 이들의 율법을 평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우리끼리 곤륜마선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걸일번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실망과 또 심각한 얼굴을 하자, 마뇌가 조금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네. 우리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본교를 되찾고, 곤륜마선을 소멸할 수십 가지의 계책을 이미 수립해 놓았다네."

와! 역시 마교의 두뇌라는 마뇌다.

"환영비마 장로님의 수하들 수십 명이 희생한 덕분에 이런 계책을 수립할 수 있었지. 이미 본교 내에 우리의 고수들이 투입된 상태고, 본교를 매일같이 드나드는 민간의 교도들과도 일을 깊이 진행 중에 있다네."

한참을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던 혈우도마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우리 신교의 자랑 마뇌가 세운 수십 가지의 계책 중 가장 확실한 일곱 가지 계책을 일컬어 필승칠책(必勝七策)이라 명명했지. 난 일곱 가지 계책 모두에서 언제나 선봉에 서서 적들을 쓸어 버리는 임무를 맡았네. 하하하하!"

필승칠책이라, 뭔가 그럴듯하다.

환영비마가 말을 이었다.

"자네만 알고 있으시게. 이미 우리가 보낸 살수 열여덟이 곤륜마선의 최측근에까지 자리를 하고 있다네. 거기에 더해 밥만 축내는 원로원을 움직일 방법까지 가지고 있고. 마뇌가 세운 일곱 가지 계책 모두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계책들이라네."

마뇌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장로님들. 하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계책들이라는 뜻이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일곱 가지 계책 중 무얼 선택할지는 오롯이 교주님의 뜻에 달렸네. 결국 곤륜마선은 교주님께서 처치하셔야 하고, 그래서 교주님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궁금하네요. 어떤 계책들인지. 저에게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본교의 은인이며, 이제 나 대협께서는 남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이지."

"맞아, 맞아."

옆에서 혈우도마와 환영비마까지 거들고 나섰고.

"들려 주세요. 필승칠책이 어떤 계책들인지요."

"우선 첫 번째 계책은……."

필승칠책에 관한 마뇌의 설명이 이어졌다.

첫 번째 계책부터 어마어마하다.

중원 무림에도 그 총명함이 하늘에 닿았다는 지략가들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실제 모두가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천재 중의 천재라는 사람을 내가 한번 직접 만나 보지 않았나.

만리상단의 연주언 말이다.

연주언이 천재?

글쎄다.

하지만 마뇌는 진짜 마뇌다.

천재다.

아마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면, 제갈공명과 천하를 놓고 지략 대결을 펼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그의 필승칠책을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반드시!

일곱 가지 계책 중 교주가 무엇을 선택하건, 반드시!

이 전쟁은 승리한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앞서 말한 그때, 그 장면이다.

* * *

"결국 교주님께서 나오셔야 무슨 일을 하긴 할 텐데. 아까 며칠 정도 걸린다고 하셨지 않나? 나 대협께선 교주님께서 얼마나 있어야 동굴에서 나오신다고 보시는가?"

"교주님께 보름은 치유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이전의 힘을 모두 되찾을……. 왜들 그러십니까?"

내가 말을 하는 중, 세 노인이 갑자기 뜨악하는 얼굴을 했다.

"왜요? 갑자기 왜들 그러세요?"

혈우도마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다.

"교, 교주님께서… 나 대협 말을 알아들으시는 건…가?"

"아직 몸이 온전치 않아 말은 듣지 못하시고, 그래서 심어로 전음을 보냈는데요."

더더욱 당황하고 황망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 사람.

왜일까 싶었다.

회의 잘 진행하다가, 세 노인네가 단체로 치매에 걸렸나 싶었는데.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하늘과 땅을 모두 터뜨려 버릴 것 같은 벼락이 치는가 싶더니.

이내 십만대산 전체를 무너뜨릴 것 같은 지진이 진동하였다.

그리고 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 노인네가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무지막지한 사자후가 모든 공간을 뒤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본좌가 나왔다! 본좌가 돌아왔다! 가자! 가서 곤륜마선과 본좌를 배신한 개잡종들을 모두 찢어발기자!"

"천세 천세 천천세!"

"와아아아아아아아! 진격! 놈들을 모두 죽이자!"

"교주님을 따라 본교로 진격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친 교주 놈이, 의원인 나의 당부를 개무시하고 두 시진 만에 동굴의 바위를 부수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교주가 나오자, 안가에 있던 수천 명의 고수와 교도들이 일제히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오체투지를 하며 함성을 질러 댔다.

내가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혈우도마와 환영비마 그리고 마뇌까지 엄청난 신법을 펼쳐 그 무리의 선두로 향했고.

곧바로 교주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며 천세를 외쳤다.

"오! 혈우도마 장로, 환영비마 장로 그리고 나의 마뇌! 크하하하하! 잘들 있었느냐? 본좌가 돌아왔다! 크하하하하!"

"감축드립니다, 교주님. 천세 천세 천천세!"

"가자! 본교로 가 곤륜마선을 찢어발기고, 본좌를 배신한 개잡종들을 모두 산 채로 불에 태울 것이다!"

교주의 명령에 세 노인네는…….

"조오오오온 며어어어어엉!"

"존명!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당장에 놈들을 죄다 쓸어 버리겠습니다! 존명!"

이 미친 노인네들!

조금 전에 얘기했던 필승칠책은 어쩌고, 그냥 막무가내로 쳐들어간단다.

그것도 자기들이 서로 선봉에 서겠다며 다투고 있다.

아놔!

돌아 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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