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55화 (154/174)

155화

"나오지 말고 기다려."

난 다급히 소신녀에게 말한 후 곧바로 마차를 빠져나왔다.

"황 대협! 단 형님들!"

마차에서 나오자마자 선두로 치고 나가며 외쳤고.

곧바로 상황 파악을 한 황초와 단씨 형제들 그리고 모두가 이동을 급히 멈추고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한 명이 아니다.

200명? 아니, 300명이 넘는군.

곧…….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콰아아아아앙.

온몸이 붉은색이고, 심지어 사자 갈기 같은 머리마저 붉은색인 괴인이 먼저 우리 선두를 막아섰다.

어깨에 멘 거대한 도까지 핏빛이 감돌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더 괴물이다.

마교가 무섭다 무섭다 하더니, 아까 불마라는 인간 불사괴는 장난이었다.

진짜 괴물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탓.

곧바로 몰려드는 300명의 고수들.

죄다 어마어마하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살기 위해서는 모두를 버리고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앞을 막아선 이들은 정녕, 내가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무지막지한 괴물들이다.

그때였다.

"일 장로님!"

일 장로?

황초가 급히 그를 불렀고.

아!

마교의 일 장로 혈우도마(血雨刀魔)?

"황 대주! 소신녀님을 보지 못했나?"

소신녀를 찾기 위해 나선 자들인가 보다.

휴우.

살았다.

다행이다.

그때, 마차에 있던 소신녀가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일 장로님! 저……. 흑흑흑."

"소신녀님! 괜찮으십니까?"

소신녀를 발견하자마자 조금 전의 무지막지했던 신위는 까맣게 잊은 듯, 황망하게 달려가는 혈우도마.

"소신녀님! 다치신 곳은요?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습니다. 어떤 놈들입니까! 내가 당장 그놈들을……. 소신녀님……."

당장에라도 신교의 본단으로 쳐들어가 생사 대결을 펼칠 것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혈우도마가 입을 꾹 하고 닫았다.

"흑흑흑. 죄송해요. 흑흑. 저 때문에……. 흑흑."

소신녀가 또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다 괜찮아질 겁니다."

소신녀의 울음에, 지옥에서 온 악귀와 같았던 혈우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 * *

마교의 일 장로 혈우도마와 그가 이끄는 300명의 고수들과 함께 우리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말을 몰아 움직여야 했다.

치료가 끝났으니, 마교의 소신녀와 함께 마차 안에 계속 있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내 옆으로 혈우도마란 괴물 같은 노인네가 함께 말을 몰아 가고 있는데,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정도 무림의 초절정 극상과 마교의 초절정 극상이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이 붉은 노인네는 이미 극마의 경지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다.

뭐, 말이 좀 그런데, 그냥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괴물이다.

"스무 살이라고 하셨나?"

"네."

이 붉은 노인네 말이다.

그래도 내가 교주를 치료하러 왔다고 하니, 생긴 것과 다르게 또 예의를 잔뜩 차린다.

슬쩍슬쩍 내 눈치도 본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려서부터 무공이 아니라 계속 의술이나 배울 걸 그랬다.

매일 칼질이나 해 대는 무림인보다 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산적인지 악귀인지 생긴 것만으로는 도저히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저 붉은 괴수 노인네마저 나에게 극진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신교의 젊은이들이 천하제일의 기재인 줄 알았더니, 중원 무림에도 하늘의 별과 같은 신성이 있었구려. 허허허."

어울리지 않는 웃음까지 짓고.

"감사합니다, 대협."

"중원에서 천하 3대 의선이라 불린다고 하셨나?"

"허명입니다. 하지만 교주님 치료는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 주시게. 이 노부가 간절히 부탁함세."

"네."

"불사괴에 대해서도 잘 아신다고?"

"중원 무림에 불사괴가 출현한 지는 꽤 됐습니다.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불사괴의 약점과 소멸시키는 방법 등을 알고 있고, 인간과 구분하는 방법도 많이 모색 중입니다."

"허허! 어쩌다 그런 놈이 우리 십만대산에까지 들어오게 된 건지."

"……."

"안가에 가면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있을 걸세. 그곳에 가서 사람들에게 불사괴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하겠네."

"네, 그리하겠습니다."

"물론 교주님의 치료가 모든 것에 우선되어야 함을 명심해 주시게."

"네, 대협."

"아! 다 왔군. 바로 여기일세."

모두가 말을 멈추어 세웠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그냥 황량한 산이다.

드문드문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지만, 건조한 땅과 공허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전부인 산속… 아!

감지했다.

내 기감이, 내 자연이,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곧.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허공이 열렸다.

허공이 마치 거대한 문처럼 열리는가 싶더니.

새로운 세상이 그곳에 펼쳐졌다.

환영진(幻影陣)이다.

교주의 안가라고 하더니,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나는 그 환영진과 규모에 놀랄 틈이 없었다.

환영진이 개진하자마자 나타난 엄청난 사람들 때문이다.

"혈우! 어찌 되었나? 소신녀님을 찾았나?"

선두에 선 선풍도골의 노인이 다급히 달려오며 혈우도마 장로에게 물었다.

혈우도마는 씩 웃으며 초조한 얼굴의 노인에게 답했다.

"마차에 계시네. 무탈하니 걱정하지 말게나."

"천운이로다. 천운이야. 하늘이 교주님과 소신녀님을 보우하셨어."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글썽이는 선풍도골의 노인.

아마 그가 교주를 따라 교를 탈출한 장로 중 한 명인, 삼 장로 환영비마(幻影飛魔)인 듯했다.

그리고 환영비마와 함께 극도로 긴장하고 있던 수천의 사람들이 일제히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하늘이 도왔지. 하늘이 의선을 보내 주셨으니, 도와도 크게 도우신 거지. 하하하하!"

혈우도마의 말에 환영비마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 혈우도마가 나를 소개하려고 할 때, 마차에서 소신녀가 나왔고.

몇몇을 제외한 수천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감격에 겨워했다.

다시 눈물의 상봉이 이어졌고.

우리는 안가로 들어설 수 있었다.

* * *

현재 임시 마교를 이끄는 이는 셋이었다.

일 장로 혈우도마, 삼 장로 환영비마 그리고 무림맹의 군사부와 비슷한 마천주(魔天主)의 마뇌(魔腦)가 바로 그러했다.

나는 누구를 소개받고 뭐고 할 틈도 없이 곧바로 세 사람에 의해 안가의 깊숙한 곳, 귀신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철통 경계가 펼쳐진 곳으로 향했다.

환영진 안의 안가는 작은 도읍이나 몇 개의 마을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거대한 땅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또 높은 산으로 향했다.

산의 중턱.

커다란 동굴이 다시 거대한 바위로 막혀 있었다.

"이곳에 계시오."

마뇌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환영비마가 바위를 움직여 동굴의 입구를 개방했다.

동굴인데 집과 같이 아늑한 장소였다.

마교에서도 최고라 불리는 의원들 몇과 의녀들, 시비들이 그곳에 있었다.

다시 세 노인의 안내를 받아 동굴의 안쪽으로 향하니, 거대하고 화려한 방이 꾸며져 있었고, 그곳에 천마신교의 당대 교주 구천마제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불사괴에게 제대로 당한 모양이다.

거리가 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천마제의 몸에서 불사괴 특유의 사악한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난 곧바로 다가가 그의 몸 상태를 더 자세히 살폈다.

한참이 지나…….

"저 혼자 치료하겠습니다."

내 말에 세 노인네가 서로 눈을 마주친 후.

처처척!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척!

그들 뒤에 있던 마교의 의원과 의녀, 시비들 다시 경계를 서던 수십의 고수들까지.

일제히 나를 향해 한쪽 무릎이 아닌 오체투지를 했다.

"교주님을 치료해 주십시오, 자선 의원님. 신교는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일 장로 혈우도마가 떨리는 음성으로, 또 간절함에 어깨까지 부들거리며 그리 외쳤다.

그들의 진심이, 그들의 간절함이.

내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이 나가고, 거대한 바위가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동굴 내부에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모두 존재했다.

심지어 영초가 곳곳에 자라고 있기까지 했다.

약재도 충분하고, 약수라 할 정도의 샘물도 솟아나고 있고.

됐다.

난 이 아저씨를 치료만 하면 된다.

하자!

우선 살리고 보자.

* * *

교주 구천마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다.

그런데 불사괴로부터 입은 상처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기필코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치료하며 확신했다.

예상했던 것과도 같았다.

인간 불사괴가 아닌, 악령 불사괴.

그러니까 휴먼 언데드가 아닌, 데몬 언데드의 짓이다.

데몬 언데드가 아니라면, 교주를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주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이, 정확히 내가 항주에서 봤던 성존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과 비슷했다.

이는 다시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뭐, 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성존이 최종 악당이 아니라는 게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데몬 언데드가 둘이나 출현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데몬 언데드를 만든?

소환한?

전염시킨?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하는 게 옳은지, 지금으로서는 그 또한 확실치 않다.

중요한 건, 성존과 곤륜마선, 두 구의 데몬 언데드를 출현시킨 진짜 원흉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나는, 또 우리는, 그 진짜 원흉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끝을 볼 수 있다.

원흉을 찾지 못한다면, 이러한 일은 계속 반복될 거고.

결국 무림과 천하는 놈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걸일번… 제발 아니길 바란다, 제발.

그렇게 닷새란 시간이 흘렀다.

닷새 동안 만치자연단과 소자연단을 정확히 매일 한 알씩 복용시켰다.

난 한숨도 자지 않고 자연의 기를 끌어다 교주를 치료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나.

"휴우, 이쯤 하면 되겠어. 이젠 충분히 스스로 치유하겠네. 아니, 이제부터는 내 치료보다 스스로 치유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야."

난 잠시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교주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오감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테다.

내 말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난 그에게 혜광심어(慧光心語)를… 응, 아직 그런 거 할 줄 모른다.

혜광심어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고도의 상승 전음인 심어(心語)를 보냈다.

- 밖의 상황이 교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십시오. 지금껏 교주님의 몸을 치료하며 본 결과, 보름이면 이전의 힘을 모두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또 천천히, 최대한 몸을 회복한 후에 나오십시오.

난 그렇게 닷새 만에 동굴을 빠져나왔다.

* * *

동굴을 나와 마교의 의원과 의녀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남긴 후 산에서 내려왔다.

산 아래에 수천에 달하는 마교 교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두에는 소신녀와 세 노인네가 있었고.

네 사람뿐만 아니라 수천의 모두가 조마조마하고 극도의 초조함 속에 내 입을 주시했다.

"치료는 잘 끝났습니다. 보름 정도만 지나면 스스로 걸어 동굴을 나오실 겁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세 천세 천천세!"

"신교 만세!"

"교주님 만세!"

"자선 의원님 만세!"

순식간에 장내는 열화와 같은 환호로 가득하게 되었다.

감동, 박수, 환호, 눈물까지 하나가 된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 * *

동굴에서 나온 나는 수많은 마교도들의 치하와 감사의 인사를 한참이나 받아야 했다.

그런 후에도 쉴 새는 없었다.

곧바로 혈우도마, 환영비마, 마천주 마뇌와 회의에 돌입했다.

이들은 내가 교주를 치료하는 사이, 만리상단에서 보낸 불사괴에 관한 정보를 모두 읽은 상태였다.

그렇게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마교의 본교를 장악하고 있는 곤륜마선을 어찌 처치해야 할지 한참 논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마천주 마뇌가 나에게 물었다.

"결국 교주님께서 나오셔야 무슨 일을 하긴 할 텐데. 아까 며칠 정도 걸린다고 하셨지 않나? 나 대협께선 교주님께서 얼마나 있어야 동굴에서 나오신다고 보시는가?"

"교주님께 보름은 치유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이전의 힘을 모두 되찾을… 왜들 그러십니까?"

내가 말을 하는 중, 세 노인이 갑자기 뜨악하는 얼굴을 했다.

"왜요? 갑자기 왜들 그러세요?"

혈우도마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다.

"교, 교주님께서… 나 대협 말을 알아들으시는 건…가?"

"아직 몸이 온전치 않아 말은 듣지 못하시고, 그래서 심어로 전음을 보냈는데요."

더더욱 당황하고 황망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 사람.

왜일까 싶었다.

회의 잘 진행하다가, 세 노인네가 단체로 치매에 걸렸나 싶었는데.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하늘과 땅을 모두 터뜨려 버릴 것 같은 벼락이 치는가 싶더니.

이내 십만대산 전체를 무너뜨릴 것 같은 지진이 진동하였다.

그리고 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 노인네가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무지막지한 사자후가 모든 공간을 뒤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본좌가 나왔다! 본좌가 돌아왔다! 가자! 가서 곤륜마선과 본좌를 배신한 개잡종들을 모두 찢어발기자!"

"천세 천세 천천세!"

"와아아아아아아아! 진격! 놈들을 모두 죽이자!"

"교주님을 따라 본교로 진격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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