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피투성이가 되어 포박까지 당해 혼절한 그녀를 가운데 두고.
100명의 마인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엉엉 울었다.
"소신녀님! 엉엉엉."
작금의 마교, 그들의 처지, 현재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통해 반영되었고, 그들은 그 서러움을 참지 못해 오열하는 것이다.
"황 대협, 일단 자리부터 옮기시지요."
적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
조금 전에는 운이 좋았다.
물론, 나의 용맹함과 총명함 거기에 잘생김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다시 놈들이 공격해 온다면 큰 피해를 입는 건 불가피하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황초도 내 뜻을 알았는지, 서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빠르게 훔치고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목숨을 걸고 소신녀님을 지킨다!"
"존명!"
황초의 명령에 100명의 마인 모두가 비장한 얼굴로 존명을 외쳤다.
그런데… 음…….
좀 애매하다.
혼절한 소신녀라는 여인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아무도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누가 업든 말에 태우든 하셔야 합니다."
내가 재차 황초를 재촉했지만, 눈만 껌뻑껌뻑.
조금 전 그 비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얘가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왜요? 급하다고요, 황 대협."
"저… 그게… 의원님."
"네."
"소신녀님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젠장! 따라오세요."
난 곧바로 신법을 펼쳤고, 달리면서 그녀를 어깨에 둘러멨다.
뒤에서 황초를 비롯한 100명의 마인들이 흠칫하는 게 느껴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달려 만리상단에서 받은 수레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마차는 아니지만, 마차와 같이 벽이 있고 지붕이 있는 수레가 있다.
일반 물품을 싣는 수레가 아닌, 중요한 서류를 옮기는 수레다.
그 안의 종이 서류들을 모두 빼고, 나와 소신녀가 그 수레에 탔다.
다시 천으로 수레의 빈 부분을 꼼꼼히 가렸다.
"자선 의원님, 부디… 부디 소신녀님을 치료해 주십시오. 목숨으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황초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내게 부탁하였다.
그만 그런 게 아니라, 100명의 마인들이 일제히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호소하였다.
"이동하며 치료하겠습니다. 상태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만, 매우 세심한 기의 운용이 필요한 치료니 절대로 마차의 문을 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목숨을 걸고 마차를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교주가 있는 안가로 출발하였고, 나도 소신녀를 치료하기 시작했… 음, 옷부터 벗겨야겠다.
옷을 다 벗겼다.
이곳저곳 도검에 찔린 자상과 열상이 열 군데가 넘었다.
지혈도 해야 하고, 아직 어린 여인이기 때문에 나중에 시집가려면 상처의 흔적도 남지 않게 해 줘야 했다.
만치자연단도 복용시키고, 지혈도 한 다음 금창약까지 골고루 발라 줬다.
여인을 공격한 놈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냐 하면, 일부러 여인이 수치스럽게 생각할 부분만 집요하게 공격했다.
빌어먹을 놈들.
‘아까 그냥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어쩔 수 있겠나.
난 그 은밀한 부위까지 골고루 지혈하고 금창약도 발라 주고.
그렇게 대충 외상 치료가 모두 끝날 즈음 만치자연단의 기운이 효과를 발하기 시작했다.
난 곧바로 누워 있는 그녀의 위에 올라타, 그녀의 가슴에 내 장심을 가져다 댔다.
혼절한 그녀가 스스로 운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만치자연단의 기운을 임의로 운기해 입은 내상을 치료해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대단히 어려운 치료도 아니었다.
다만, 말했듯 아직 어린 여인이다.
시집도 가야 하고, 나중에 아이도 잘 낳게 하려면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원래의 필요한 시간보다 더 투자해 세심하게 그녀를 치료했다.
그렇게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그녀가 눈을 떴다.
이제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의 치료다.
"어멋!"
난 깨어난 그녀가 기특하기도 하고, 내 치료가 스스로 만족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씩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 깨어나셨소?"
그러자……!
"비켜!"
날 밀치며 마차의 구석으로 급히 가는 그녀.
차마 옷을 입을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으로 자신의 몸을 간신히 가릴 듯 말 듯.
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다.
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의원입니… 안 돼!"
갑자기 그녀가 옆에 놔두었던 순천검을 들더니 자신의 목을 베려는 게 아닌가.
쉬이이이이익!
척!
곧바로 몸을 날려 그녀의 양 손목을 잡아 벽으로 밀쳤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렸던 옷과 휘두르던 순천검을 떨구었고, 내 완력에 벽에 기댄 상태가 됐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몸을 바싹 들이밀어야… 젠장!
"의원이라니까!"
그녀가 눈을 부라리며, 정말 죽일 듯 나를 노려보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거… 놔. 비켜."
"하아, 씨! 기껏 살려 놨더니. 몰라! 알아서 해!"
그녀를 놔주었고, 마차의 반대편 벽으로 가 몸을 기댔다.
슬며시 다시 옷을 주워 자신의 몸을 또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그녀.
그냥 입든가.
뭐 하는 건데?
화가 났다.
옷 말고, 살려 놨더니 죽으려고 해서.
"왜? 왜인지나 말해. 기껏 살려 놨더니, 왜 바로 죽으려는 거야? 비싼 약까지 먹였는데."
"더러운 놈에게… 내가… 내가 너 따위 색마에게……."
"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꿈쩍도 하지 않고 눈빛으로 나를 죽이려는 그녀.
하아! 어이가 없네.
"나, 의원이라고 말했다."
"더러운 변태. 색마."
"미친! 하아! 짜증 나. 내가 어딜 봐서 색마라는 거냐? 응?"
"얼굴 보고 대번에 알았어. 아니, 얼굴 때문에 네가 색마라는 걸 알았다, 색마야."
한 대, 때릴까?
왜 요즘 애들은 다들 알아서 주먹을 부르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야! 바깥 쳐다봐. 마안창 황초 대협하고 사람들이, 너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장난 아니었어. 그래서 내가 널 살린 거고."
순간 움찔하는 그녀.
여전히 옷은 입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이다.
그러더니 나를 여전히 경계하면서도 슬쩍, 마차의 빈틈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살피는 게 아닌가.
"어멋! 정말… 정말 황 대협하고 사람들이… 난 분명 불마, 그놈한테 끌려가는 중이었는데?"
"내가 불마인지 불사마인지 그놈 죽이고, 너 구하고, 그리고 치료까지 하고. 응! 이제 분위기 파악 좀 돼?"
"진, 진짜… 예요?"
"하아! 옷부터 좀 입어라. 응?"
난 몸을 돌려 앉았고.
곧 부스럭부스럭, 그녀가 옷 입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후.
"다… 입었어요."
이제야 좀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다.
말끝에 ‘요’ 자도 붙이고.
"어험."
난 짐짓 무게를 잡으며 다시 몸을 돌려 그녀를 향했다.
고개를 숙인 채 수줍어하는 그녀.
"몸은 좀 어때? 내가…….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충 치료하는 건데. 내가 지극정성으로 치료했거든? 뭐, 당연히 몸 상태가 최상이겠지만, 그래도 좀 살펴봐. 어떤지."
"좋, 좋아요. 거짓말처럼 아픈 곳이 하나도 없어요."
"당연하지. 누가 치료한 건데. 그리고 만치자연단이라고, 아까 말한 그 약은 중원에서 돈 주고도 못 사는… 에휴, 말을 말자. 어린애 데리고 내가 뭔 소리를 하겠냐."
"고, 고맙습니다."
"됐다. 대충 다 나았으면 조용히 가자."
마차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창문을 만든 것이다.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며.
- 소신녀는 치료가 끝났습니다. 치료가 잘됐으니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올려서 가셔도 될 듯합니다.
- 감사합니다, 의원님. 이 은혜, 신교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곧 이동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마차 안은 어색한 기운이 감돌……. 뭐지?
"흑흑. 흑흑흑."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아니면 내가 치료하면서 진짜 무슨 변태 짓이라도 한 거라 생각하는 거야?
돌겠네.
그래서 어째야 하나 싶어 고민하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는데.
털썩.
내게 무릎을 꿇는다.
"아버지를… 의원님, 저희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혹시나 했는데, 진짜 교주님 딸?"
"네, 엉엉, 저희 아버지께서 위독하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엉엉엉."
"휴우, 일어나. 지금 그러려고 가는 거니까."
"정, 정말요?"
"그럼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겠어. 그러니 어서 제대로 앉아. 명색이 신녀라는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남들이 오해해."
"감사합니다, 의원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다소곳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하문하세요."
"황 대협에게 들으니, 지금 이곳 상황이 위중하기 그지없는데, 너는 왜 안가에 있지 않고 바깥을 나돌아 다니고 있었던 거냐?"
"그, 그게……."
말하기를 주저한다.
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불사괴를 상대할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요."
"휴우, 참나. 네가 제법 대단한 고수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좀 아니지 않나? 달걀로 바위 치기. 아까 그 300명의 고수 중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해?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확실히 그녀는 고수다.
열일곱? 열여덟?
분명한 건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단문령보다 한 수 위의 고수다.
절정의 끝자락이라는 뜻이다.
중원 무림에 내놓아도, 당연히 나를 제외하고, 칠룡사봉 중에서도 단숨에 으뜸이란 소리를 들을 엄청난 고수며 기재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게 한계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더 허무맹랑한 짓을 했다.
내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녀는 멈추었던 눈물을 또다시 주르르 흘리며 말했다.
"방법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위중해 깨어나실 줄 모르고, 불사괴에 관해 아는 건 없고. 그래서 꼭, 꼭 그녀를 만나 불사괴에 관해 물어봐야 했어요."
"그녀? 방금 그녀라고 했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소신녀.
내가 재차 물었다.
"그녀가 누군데?"
내 반응이 좀 격했나 보다.
오히려 소신녀가 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말해 줘. 네가 만나려고 했던 그녀에 대해서."
소신녀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두 달 전 즈음에 한 여인이 본교의 고수들에게 잡혔어요. 중원 무림에서 보낸 첩자라고 하더라고요. 뇌옥에 가두고 심문했는데, 나이가 너무 어렸고, 또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 댔어요."
"불사괴에 관해 말했구나?"
소신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라고 말했는데?"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요. 불사괴를 조심해야 한다고. 많은 말을 했는데, 저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정신이 이상한 여자라 생각해서, 결국 따끔하게 혼을 낸 후 중원 무림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었어요. 그러다… 그러다……."
"곤륜마선 일이 터진 거였군?"
"네."
걸일번이다.
홍설아가 분명하다.
"이번에 나선 건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라고 했지?"
"네."
"그녀… 그녀를 만났어? 살아 있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본교 교단의 성벽을 넘기도 전에 발각되어 도주하다가… 저와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죽고, 저만… 저만……. 흑흑흑."
소신녀가 또 폭포수 같은 눈물을 터뜨렸다.
"잊어. 지난 일은 잊어야 해. 그들도 명예롭게 싸우다가 죽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도 힘내."
영혼 없는 위로를 해 주었다.
사실 지금 내 머릿속은 소신녀를 위로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다.
걸일번 홍설아.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왜 마교에 불사괴의 존재를 미리 알려 주려고 했지?
소신녀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아!
걸일번이 아닌데.
그럼 걸사번 남궁무검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거지?
그것도 죽기 직전의 전언이다.
걸사번이 착각한 건가?
아니다.
남궁무검이 재수 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철두철미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럼 걸일번은?
진짜 돌아 버리겠네.
곤륜마선은?
지금 시점에서 확실한 건, 곤륜마선이 마교를 장악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걸일번은 그 위험을 마교에 알리려 했다.
왜지?
내가 모르는 다른 사실이 있나?
곤륜마선과 걸일번이 한패?
아니면 걸일번마저 곤륜마선에게 먹혔나?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닌데.
일단, 걸일번을 만나야 한다.
걸일번을 만날 때까지 그녀를 용의자 선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
아니, 소신녀의 말로 조금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그녀다.
이 모든 게 그녀로부터 시작됐고… 잠깐!
걸일번이 무림 정복, 군림 천하를 왜 꿈꿀까?
원론적인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불사괴의 출현은 모두 무림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세력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누가 봐도 그 끝은 하나로 결부된다.
무림 정복.
군림 천하.
그런데 걸일번이 왜?
그녀가… 음…….
그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거지라고 군림 천하를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자라고 무림 정복을 꿈꾸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정리해 봤을 때, 가장 유력한 흉수는 여전히 걸일번 홍설아가 맞다.
마교를 장악하고, 그 힘을 이용해 중원 무림을 정복한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더럽다.
걸일번 홍설아.
제발 살아 있어라.
물어볼 게 너무 많… 아! 엿됐다.
홍설아가 살아 있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살 수 있을까를 먼저 걱정해야 했다.
저 멀리서… 내 기감으로… 무지막지한 괴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나와 단씨 삼 형제가 모두 덤벼도 칼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 괴물이… 지금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