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쾅!
"으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내가 신법을 최대로 하여 몸을 날렸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마지막 다섯 명 중 넷이 죽은 후였다.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이제 산 사람은 하나다.
300이 넘는 마인들, 엄청난 고수들이 그녀를 포위하고 있다.
당장에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몸을 숨겼다.
혹시나 했지만, 300의 마인들을 이끄는 것은 역시나 인간 불사괴였다.
그리고 300의 고수들에게 포위된 여인, 어리다.
열일곱 전후의 여인이었다.
마인들이 무시무시한 마기를 뿌리며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데에도, 눈을 부릅뜨며 굴복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음… 이런 상황에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미인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미인의 기준은 천하제일을 다툴 정도로 아름다운 미를 일컫는 것이다.
수백의 적들에 포위된 상태로, 또 자신과 함께했던 동료가 모두 죽었음에도.
그녀는 떨지 않았다.
꼿꼿이 선 상태로, 또 눈을 부라리며, 인간 불사괴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움을 넘어 비장하고 또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클클클. 쥐새끼 같은 년. 어디 더 반항해 보아라."
인간 불사괴 놈이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그러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는가 싶더니, 숨겨 두었던 비수를 꺼내 곧바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쉬이이이익.
챙!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인간 불사괴 곁에 있던 고수가 비도를 던졌고, 그것이 그녀의 비수에 정확히 맞아 날아갔기 때문이다.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 결국 눈물을 흘리는 그녀.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었다.
"클클. 교주님께서 너를 원하신다. 걱정하지 마. 교주님께서는 네년의 미모 따위는 관심 없으시니까. 네가 필요한 건, 쓸 데가 많아서야. 그러니 좋게 가자고. 등신 같은 짓 하지 말고. 팔다리 죄다 부러뜨린 후 질질 끌려가기 싫으면 말이야."
인간 불사괴는 다시 그녀를 조롱했고.
곧 몇몇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접근, 마혈부터 점혈한 후 포박을 하였다.
- 단 형님들.
- 넵, 매제 형님.
- 남은 성수, 다 마시세요.
- 넵!
이곳으로 오며 삼 형제는 성수를 조금씩 매일 복용했다.
그리고 내 도움과 스스로 운기조식하여 성수의 성스러운 기운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웃긴 게 뭐냐면, 그들은 마공을 익힌 마인이다.
그래서 성수와 그들의 기운이 충돌하면 어쩔까 고민하고 걱정했다.
성수를 조금씩 나눠 마시게 한 것도, 성수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함도 있었지만,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우였다.
역천의 무공인 마공이, 성수와 조금도 충돌하지 않았다.
이는 다른 의미로, 마공 자체가 사악한 무공이 아니라는 뜻이다.
뭐, 그건 됐고.
"움직이면서 조금씩 기운을 흡수하세요."
"넵, 매제 형님."
마인 무리가 여인을 포박한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몸을 최대한 숨긴 채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곧장 덮쳐도 승리는 우리 것이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최악의 경우 우리 네 사람 중 한둘이 죽을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 하여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상대는 마교의 정예다.
고수다.
어중이떠중이가 대부분이고, 일부만 진짜 고수가 몰려다니는 중원 무림과는 확연히 다르다.
300명 모두, 강하다.
빈틈을 노려야 한다.
지금도 방심하고 있지만, 더 확실한 상황을 찾아야 한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인도 분명 구출해야 한다.
인간 불사괴가 직접 저 엄청난 고수들을 이끌고 생포해 가는 여인이라면, 분명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그들을 따라갔을 때.
- 협소한 길이네요. 수레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예요. 제가 선두에서 저놈을 칠 테니, 단 형님들은 곧장 뒤의 퇴로를 막으세요. 하지만 명심해야 해요. 제가 말하기 전에는 절대 공격하지 마세요.
- 네, 매제 형님.
- 다치지 마시고요.
씩 웃는다.
자신감이다.
- 명에 따르겠습니다, 매제 형님.
난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몸을 날려 선두가 이동하고 있는 절벽 위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몇 장을 더 이동한 후.
순천검을 뽑아 몸을 날렸다.
샤이닝 라이트(Shining Light).
번쩍!
보법도 신법도 아니다.
이형환위와 같다.
내가 몸을 날림과 동시에 나는 사라졌고.
내가 나타났을 때, 내 눈앞에는 말을 몰아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던 인간 불사괴가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마자 놀란 눈을 뜨는 놈.
하지만 늦었다.
쉬이이이익.
툭!
말에 탄 상태로, 놈은 목이 깨끗이 잘려 죽었다.
놈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적이다!"
"죽여라!"
"포위해 공격하라!"
수장인 인간 불사괴가 죽었기에 충분히 당황할 만도 한데, 놈들은 일사불란했다.
내가 눈을 몇 번 깜빡하기도 전에 완전히 나를 포위한 놈들이다.
하지만 내가 기도를 완전히 개방하고, 엄청난 기운을 마구 뿜어 대자, 놈들도 흠칫하며 쉬이 공격해 오지는 못했다.
동시에…….
"여기에도 있다, 이놈들아!"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단씨 삼 형제가 일부러 무지막지한 마기를 뿜어 대며 그들의 후미를 점했다.
나를 포위하고 있음에도, 내 엄청난 내공과 또 나를 구하기는커녕 자신들의 후미를 차단해 퇴로를 막는 단씨 삼 형제를 보며 이제야 당황해하는 마인들.
하지만 이도 잠시.
"미친놈들이군. 모두 죽여라!"
제법 신분이 높은 고수의 외침에 적들이 둘로 나뉘어 나와 단씨 삼 형제를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클클클. 클클클. 쥐새끼가 또 있었군. 클클클."
조금 전 내가 죽였던 인간 불사괴.
놈이 머리 없는 몸뚱이로 비틀거리며 걷더니,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들어 목에다 붙였다.
뚜두둑.
뚜두둑.
이리저리 목을 꺾어 가며 머리가 잘 붙었는지 확인까지 하는 인간 불사괴.
제대로 붙었는지, 동작을 멈춘 후 나를 쳐다본다.
웃는다.
"클클클. 넌 뭐 하는 쥐새끼냐?"
터벅터벅.
조금 전 목이 잘렸던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불마 장로님! 이놈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한 마인이 놈을 향해… 음, 새로 뽑힌 장로가 셋이 있다더니, 그중 한 명인가 보다.
놈이 손을 들어 자신에게 말한 마인을 제지했다.
그러자 나를 포위했던 마인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고.
놈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로 또 미소까지 지으며 나와 다섯 장의 거리를 둔 후에야 걸음을 멈추었다.
"누구냐, 넌? 좋게 말하면 고통 없이 죽여 주겠……."
"샤이닝 라이트."
번쩍!
쉬이이이이익.
놈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냥 자른 게 아니라, 자름과 동시에 그걸 잡았다.
순식간에 팔이 잘린 불마.
놈이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팔이 잘린 부위를 보고, 또 나를 보고, 다시 내 손에 들린 자신의 팔을 보고.
부들부들 떤다.
"너… 너 이 새끼, 감히 내 팔을……."
쉬이이이익!
놈의 팔을 놈에게 던졌다.
척!
그걸 받아 드는 불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보면서.
하지만 이도 잠시.
그걸 다시 자신의 어깨에 붙인다.
"곱게 죽이려고 했더니, 넌… 안 되겠다. 좀 혼나야겠……."
"샤이닝 라이트."
번쩍!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이번엔 놈도 방심하지 않았다.
수법(手法)이 놈의 절기인 듯하다.
내가 움직임과 동시에 놈이 양손을 마구 휘저으며 이를 막았고, 나와 놈 사이에는 엄청난 폭발이 순식간에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
하지만…….
또다시, 이번엔 놈의 왼쪽 다리 무릎 아래가 깨끗하게 잘려 내 손에 들려 있다.
"너… 너 이 새끼…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
깡충깡충 한 발로 뛰며 자기 성을 못 이겨 나를 덮치려는 놈.
하지만 아무리 고수라 한들, 잘린 다리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신법이고 보법이고,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감정까지 격해져 있기에 더더욱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결국 놈은 깡총 걸음을 멈추고 대로하여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을 죽이고 내 다리를 되찾아라!"
놈의 명령에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움직이려 할 때.
"멈추어라!"
내가 한 손을 들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멍청한 놈들, 내가 멈추란다고 진짜 멈춘다.
난 곧바로 놈의 잘린 왼쪽 다리를 번쩍 들어 300의 마인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이것이 너희가 장로라 따르는 자의 실체다! 목이 잘리고,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다시 살아난다. 이는 불사가 아니다! 놈은… 산 시체다! 이래도 저놈을 따를 것인가? 인간이 되어 어찌 죽은 자의 명령을 따른다는 말이냐! 그러고도 너희가 자랑스러운 천마의 후예며 신교의 교도란 말이냐!"
움찔하는 300의 마인들.
서로 눈치만 보고, 또 누군가는 부들부들 떨고, 다시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자 불마란 인간 불사괴 녀석이 지랄발광을 하며 외쳤다.
"죽여! 죽이란 말이야! 이 X새끼들아! 지금 명령 불복종이냐! 강자존의 율법을 어길 셈이냐! 죽여! 저 새끼를 죽이고 내 다리를 되찾으란 말이다! 이 X새끼들아! 내 다리 내놔!"
놈이 윽박지르자 몇몇 마인들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난 곧바로 손에 들린 놈의 왼쪽 다리를 녀석에게 던졌다.
쉬이이이익.
척!
자신의 왼쪽 다리를 잡은 불마.
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가 싶더니.
그걸 자기 다리에 붙인다.
"클클. 별 미친 새끼를 다 보겠네. 그런데 아가야, 너… 오늘 죽는다."
놈이 제대로 화가 났다.
방심도 하지 않고, 본신의 힘을 모조리 쏟을 생각이다.
천마신교의 장로다.
제대로 붙으면 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아니, 위험하다.
놈이 자신의 마기를 완전히 폭발시켰다.
놈의 주위로 무지막지한 마기와 살기 그리고 시기(屍氣, 죽은 자의 기운)가 마구 섞여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고 기운이다.
놈은 그런 상태로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한 발 한 발씩 움직인다.
제대로, 절대 방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날 죽이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와라! 지옥에서 온 잡귀야!"
"네 이노오오오옴!"
결국, 놈이 모든 힘을 터뜨리며 나를 향해 몸을 날렸고.
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순천검이 아닌.
우룡검이다.
쉬이이이이이이익.
레드 드래곤과 실버 드래곤의 기운, 대자연의 힘 그리고 나의 의지가 우룡검에 담겨 놈의 마기와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폭발이 순식간에 수십 번이나 일어났고.
주위는 그 찰나의 폭발로 인해 초토화가 되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러 폭발의 여운이 가신 후.
놈의 영원할 것 같던 육체는 이미 모두 소멸해 버렸고.
오로지 목 위의 머리만이 남아 땅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끄으으으윽."
결국 놈의 머리마저 화르르 타 소멸해 버렸다.
"자선 의원님을 보호하라!"
"와아아아아아아!"
"적들을 포위하고, 자선 의원님을 지켜라!"
때마침 수하들을 이끌고 온 황초가 등장했다.
등장과 동시에 나를 지키고 또 적들의 좌우를 포위했다.
하지만 적들은.
이미 싸울 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툭.
툭.
툭.
한 명이 자신의 병기를 바닥에 던지는가 싶더니.
투투투투투투투툭.
300여 고수 전체가 무기를 버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난 그런 그들에게 목소리에 내공까지 실어 외쳤다.
"가라! 지옥의 잡귀 따위에게 충성을 맹세한 너희는 내 칼에 죽을 자격조차 없다! 그 더러운 입으로 신교를 담지 말고, 그 더러운 가슴에 천마신을 품지 마라! 떠나라! 더러운 잡귀의 졸자들아!"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걸어 자리를 떠났다.
마교의 본교로 향하는 게 아니라,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의 눈이, 슬픈 표정이, 참담한 분위기가.
앞으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또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았다고 이야기할지.
조금은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신, 신녀님. 소신녀님께서 어찌 이곳에!"
피투성이가 되어 포박된 상태로 혼절한 여인을 발견한 황초가 극렬하게 떨며 그리 말했고.
곧바로.
"소신녀니이이임!"
"신녀님!"
"소신녀님!"
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처척!
황초를 비롯한 100의 고수들이 일제히 그녀를 목놓아 부르며 오체투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