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52화 (151/174)

152화

"불… 불사괴……."

봉오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황초는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미친!

마교에도 불사괴가 출현하다니!

아니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걸일번이 이곳에 있으니, 마교에 불사괴가 출현하는 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 젠장!

걸일번!

진짜였어?

진짜 너였냐고!

마음이, 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걸일번이다.

혹시나 했던 마교는 배후가 아니었다.

만약 마안창 황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마교는 배후가 아니라 피해자다.

걸일번!

도대체 왜?

왜 이 먼 십만대산까지?

마교마저 먹어 버린 후 무림을 도모할 생각이었나?

아!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냔 말인가?

정말 돌아 버릴 것 같고, 눈물이 마구 쏟아질 것 같다.

도저히 걸일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저희도 교주님께서 놈에게 당한 후에야 놈이 불사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후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죠."

"어떻게 아무도 몰랐나?"

"아시지 않습니까? 십만대산과 중원은 수천 리 길이나 되고, 중원 무림의 일이 이곳에 전달되려면 빨라도 반년이고 길면 1년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요. 그나마 불사괴에 관한 정보는 운이 좋아서 빠르게 접할 수 있었던 경우입니다. 그래도 이미 일은 터져 버린 후였지만요."

"휴우. 그래서 상단주님께서 이번 물품에 불사괴에 관한 서류를 잔뜩 포함해 보내셨던 거군."

"전서응을 있는 대로 다 보냈거든요. 젠장! 한 달만 더 일찍 알았더라도 어떻게든 대응을 했을 텐데."

"교주님은 어떠신가?"

"곤륜마선이 죽었다고 확신한 교주님께서 그에게 등을 보이셨고, 곤륜마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현재 치료 중이십니다."

"다른 교도들은? 정당한 대결이라 볼 수 없지 않은가? 다른 교도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그게… 휴우, 복잡합니다. 곤륜마선을 따르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당시로서는 불사괴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상황이었던 게 두 번째 이유며, 마지막으로 불사괴의 정보가 이미 신교 전체에 퍼진 상황에서도 논란이 되는 건, 강자존의 법칙을 꼭 인간에게만 적용해야 하냐는 논란입니다."

"미친! 말도 안 돼."

"그러게요.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지요."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디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아!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불사괴에게 강자존의 법칙을 적용하다니.

단체로 미치지 않고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겠나.

"그래서 교주님은? 많이 회복하셨는가? 교주님만 회복한다면 불사괴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황초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직 좋지 않습니다."

"휴우, 큰일이군. 전황은 좀 어떤가? 교주님께서 회복하지 못하고 부교주님까지 당했다면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교주님께서는 곤륜마선과 싸울 때 이미 그가 인간이 아님을 아셨던 모양입니다. 소멸시키는 방법을 모르셨던 것뿐이죠. 교주님께서 곤륜마선에게 역습을 당한 후 그를 따르는 두 명의 장로가 교주 위를 곤륜마선에게 양도하라 했으나, 교주님께서는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부교주님과 교주님의 친위대 등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에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신교는 어떤 상황인가?"

"여덟 명의 장로 중 둘이 곤륜마선을 따르고 있고, 둘은 교주님을 모시고 탈출했습니다. 곤륜마선과 맞서려던 네 명의 장로는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곤륜마선이 뽑은 세 명이 새로운 장로가 되어 현재 다섯 장로 체제로 교는 운영 중이고, 본교는 곤륜마선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입니다."

"이런… 첩첩산중이군."

"그나마 희망을 걸 것은, 불사괴의 존재가 알려진 후 본교에서 많은 고수가 탈출했고, 또 교 밖의 민심은 절대적으로 교주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안가에 잠시 몸을 피해 계시고, 일 장로 혈우도마(血雨刀魔)와 삼 장로 환영비마(幻影飛魔)께서 교주님을 보필하며 반격을 모의하고 있는 상황이죠."

"결국… 교주님께서 몸을 회복하셔야 대업을 이룰 수 있겠군."

"네, 고수들도 계속 모이고 있고, 민간의 고수들도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을 계속 보내오고 있습니다. 교주님만 회복하신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네, 그러면 됩니다. 그렇게 될 거고요."

"휴우, 상황이 심각하군. 미안하네. 이렇게 심각한 줄도 모르고 고집을 피워서."

"아닙니다, 봉 행주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교주님께서 회복하실 수 있을 걸세. 신교도 빠른 시일 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걸세."

"감사합니다, 행주님."

전음을 보냈다.

봉오자 행주에게.

- 중원에서 의선을 모시고 왔다고 하세요.

흠칫하는 봉오자.

- 천하 3대 의선이요.

방금 흠칫 놀랐던 봉오자는 온데간데없고, 그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지!"

"네? 무슨… 일이십니까?"

"하아! 천운이네, 천운!"

"네? 천운이라뇨?"

영문을 모르겠다는 황초.

이젠 만면에 짙은 미소까지 짓는 봉오자.

황초의 양어깨를 손으로 잡기까지 하며.

"하늘이 신교를 돕는 모양일세."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

"하하! 하하하하! 자네, 황 대협. 나중에 나한테 크게 한턱 쏴야 할 걸세."

황초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자 봉오자가 즉시 말했다.

"이곳에 천하 3대 의선이 와 계시네. 어찌 천운이 아니라 할 수 있겠나? 하하하하!"

봉오자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처음엔 영문을 몰라 하던 황초도 점점 흥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독선, 약선, 태선 중 어느 분께서 오셨습니까? 아니죠. 사천 당가의 독선이 십만대산에 올 리는 없고. 태선은 황궁에 있어야 할 테니, 약선께서 오셨습니까?"

황초는 이미 시선을 우리 쪽으로 향해 간절하게 물었다.

그러자 봉오자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독선은 자네 말대로 올 리가 없고. 태선은 죽었네. 약선께서는 태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황궁의 새로운 태의가 되셨고."

"그럼… 그럼 누가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 자선이라 하세요.

내 전음에 봉오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혹시 탈혼독에 대해 들어 보았나?"

"듣다마다요. 그건 우리 신교에서도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그 해독약을 만드신 분이네. 또한 소림사의 대환단에 버금가는 대자연단이란 영약도 만드셨고. 또 만치자연단이라는 희대의 치유단도 만드신 분이시라네."

"아! 어서, 어서 그분을 저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봉오자가 황초를 향해 씩 웃어 보인 후, 몸을 돌려 우리 쪽을 향했다.

손까지 크게 흔들며.

"나 대협! 잠시 이리로 좀 와 주시겠소?"

난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늑장을 부리지도 않는 당당한 걸음으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놀란 얼굴을 하는 황초.

거리가 멀었기에 그는 혼잣말을 했지만, 내 귀에는 당연히 다 들렸다.

"젊은… 많이 젊은 자로군."

그렇게 내가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 후.

"이분일세. 자네 말대로 매우 젊은 분이시지만, 무공과 의술 모두 무림에 그 명성을 떨치고 계신 분이 바로 나태한 대협일세. 멸마협이라는 별호와 함께 자선(自仙)이라 불리시지."

아마 상황이 다급해 그런 모양이다.

아니면 봉오자가 황초를 신뢰하는 만큼, 황초 역시 봉오자를 절대 신뢰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나에게 포권과 함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신교의 황초라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의선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누가 편찮으십니까?"

봉오자가 능글맞게 내 연기에 맞춰 말했다.

"신교에 많이 편찮으신 분이 있으시다네. 귀한 분이라 신교의 교도들 모두 간절히 그분이 쾌차하시길 기도하고 있다네. 자선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실까?"

"신분이 귀하고 천하고를 떠나, 아픈 사람이 있다면 응당 치료를 해 드려야죠.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내 말에 황초는 울먹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선 의선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 *

봉오자 행주와 헤어진 후 나와 단씨 삼 형제는 황초를 따라 움직였다.

나를 무인이라기보다는 의선으로 여긴 황초는 단씨 삼 형제가 함께한다고 하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아마도 그들을 나의 호위무사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십만대산에 접어들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험준하고 복잡한 십만대산이었다.

봉오자의 말대로, 길을 모르는 이가 왔다면 십중팔구 길을 잃고 딱 굶어 죽거나 말라 죽을 곳이었다.

천연의 요새며 천연의 함정이 바로 십만대산이었다.

넓기도 또 더럽게 넓었다.

가고, 또 가고, 계속 이동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틀을 이동한 후에야 처음으로 민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곧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도 진입하였고.

봉오자의 말처럼 똑같다.

중원의 마을과 이곳의 마을 그리고 사람들까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단지, 내전 중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황초가 나에게 말했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교 밖의 대부분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교주님 편입니다. 절대적 충성과 지지를 보내고 있지요. 만에 하나 곤륜마선 측 사람이 보인다면, 우리가 발견하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알려 줄 겁니다."

"아! 그렇군요."

몇 개의 마을을 통과해 이동하였고, 마교의 본교가 가까워졌을 때부터는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했다.

마을 사람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곤륜마선의 힘이 그곳에 이미 미쳤을 수도 있기에 최대한 조심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이틀을 이동하며 나는 황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현재의 정황과 민심, 분위기, 명분과 세력 등등.

그리고 이 땅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이곳 십만대산은 땅이 너무 험준하고 척박해 이곳 회홀(위구르) 사람들도 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수백 년 전 중원에서 쫓겨난 자신의 조상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마르고 돌만 가득했던 땅을 개간해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그렇게 지금에까지 이르렀다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제 두 시진만 더 가면 교주님께서 계시는 안가에 도착합……."

내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황초가 다시 손을 들어 무리의 이동을 멈추었고.

누가 마교의 정예 고수들 아니랄까 봐, 100명에 달하는 마인들이 일제히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무슨 일입니까, 의원님?"

"싸움이… 음… 젠장."

"싸움이요?"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인간 불사괴가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황초.

나는 기감을 유지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가 봐야겠습니다. 여차하면 싸움에 끼어들어 불사괴를 제거하겠습니다."

"의원님, 수레 때문에 움직이기 힘듭니다."

"저와 제 형제들이 가겠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인간 불사괴가 끼어 있다면서요?"

"그래서 더욱 가야 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저와 몇몇 수하가 함께 의원님을 호위해 드리겠습… 엇?"

황초가 말을 하는 사이, 내 기감은 위급함을 감지했다.

그래서 곧바로 몸을 날렸다.

저 멀리, 황초의 혼잣말이 들렸다.

"사라졌다. 분명 내 앞에 있었는데. 아! 자선께서… 고수셨구나. 감히 내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계신 고수……. 그런 것도 모르고 멍청하긴. 한 명만 남아 수레를 지키고, 모두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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