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무공 선생님, 글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어허,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 하는데. 은자도 이렇게 많이 주시고. 아이들은 아무런 염려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나 대협."
글 선생과 무공 선생에게 은자를 넉넉히 주고 아이들을 맡겼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들이 공주 양꼬치집 운영하는 데에 도움을 부탁했다.
글자를 모르고 게으르며 술만 보면 환장하는 어른 거지들에게 맡길 수 없어서 결정한 일이다.
음, 무공 선생과 글 선생도 거지긴 마찬가지인데.
뭐, 그래도 우리 분타 어른 거지들보다는 낫다.
글 선생은 사리 분별이 명확하고, 무공 선생은 동네 왈패 댓 명 정도는 우습게 해치울 수 있다.
사실 두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기지 않아도 걱정할 일은 없다.
본디부터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자란 아이들이기에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이 누군지, 또 동정하는 사람이 누군지, 거의 본능에 가깝게 눈치채는 능력들이 있다.
길거리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번듯하고 유명한 양꼬치집까지 운영하며 무슨 일이 있겠냔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정말 성실히 또 열심히, 다시 매우 밝은 얼굴로 일한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아니, 사실 이게 결정적이다.
우리 황천 그리고 인근 마을까지.
멸존 낭만개 대협과 멸마협 나태한 대협이 아이들과 같은 분타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신의 오라버니들을 망나니라고 말했지만,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또 가게 홍보하려고 일부러 자신이 삼부협의 여동생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단문령은 덤이고.
뭐, 그랬다.
여긴, 정사대전이 터져도 안전할 것 같다.
"주마야, 응? 잘 좀 부탁해."
푸르릅. 풉풉.(벌써 몇 번째 똑같은 얘기야? 꺼져! 귀찮아!)
"주마야, 주마야, 나의 애마 천주마야. 응?"
푸우우웁. 푸르르르르.(알았다고! 알았어! 내가 실수하는 거 봤어? 걱정 말라고!)
"비밀 얘기하나 해 줄까?"
풉! 풉풉!(이 새끼가 낮술을 처먹었나? 오늘 정말 왜 이래?)
"나, 어쩌면 문령이랑 혼인할지 몰라.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현재로서는 제일 높은 가능성이기도 해.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사정하는 거야. 잘 좀 봐 달라고."
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릅.(됐다, 새끼야. 뭔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너랑 쟤랑 교배한다는 말이지? 큭큭. 새끼, 처음부터 솔직히 말하지. 야!)
"응, 비슷한 거 맞아. 왜? 뭐? 뭐 더 해 줄까?"
풉풉.(당근 한 수레.)
"이미 준비했지. 짜잔!"
푸르르릅. 푸우웁. 푸르르르르릅.(녀석, 진심이구나. 알았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내 등에 타 있는 순간만큼은 호랑이가 떼로 덤벼도 네 암컷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
"고맙다, 천주마. 역시 넌 최고야!"
하남 숭산 소림사로 가야 하는 단문령에게 천주마를 내주었다.
무림맹에서 받은 무룡단(武龍丹)과 소자연단도 줘서 복용하게 했다.
기운을 아직 다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았음에도 벌써 내공만 1갑자가 넘는다.
거기에 완연한 절정의 고수고.
어렸을 때부터 혈교에서 첩보 활동을 했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 능력이 나 못지않게 뛰어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네.
그런 나를 보며 단씨 삼 형제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세상이 무너져 사람들이 다 죽어도 자기 동생은 살아남을 년… 아니, 아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불안 불안.
사실 더 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받아 둔 약속이 있다.
우리 방주가 항룡십팔대의 최고수 몇을 그녀의 호위로 붙여 준다고 약속했다.
거기에 혹시 몰라 걸십칠번을 포함한 가장 뛰어난 비걸개 네 명을 더 붙여 주고.
또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가 돌아가며 그녀와 함께 움직이며 인간 불사괴의 구별을 돕는다고도 했다.
매일 나와 함께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연출해서 그렇지, 세 사람 모두 완연한 초절정의 엄청난 고수들이다.
무엇보다 낭만개 아저씨가 상황을 봐서 최대한 빨리 소림사로 합류하겠다고도 했고.
아!
그런데도 마음이 안 놓이네.
"낭군! 나, 간다."
"응, 그래."
"와! 이 말은 정말 멋지게 생겼다. 천주마? 이름도 멋지네."
푸르릅.
"나, 진짜 간다."
"응, 잘 갔다 와."
"쳇. 그게 전부야?"
"다치지… 마."
그녀가 씩 웃는다.
"약속할게."
그녀는 그렇게 소림사로 떠났다.
* * *
이웃 마을로 가 말을 한 필 샀다.
만리상단에서 내준 천주마 녀석과는 비할 바가 안 되지만, 제법 괜찮은 녀석이다.
새로 산 녀석을 타고 단씨 삼 형제들과 함께 우리도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중경으로 가야 한다.
만리상단의 도움을 받아야 십만대산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단씨 삼 형제를 함께 데리고 가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 삼 형제가 원해서.
이미 금자 100냥 넘게 줬다.
항주에서 맹활약을 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빚은 다 청산했는데, 그게 전부다.
빚을 다 갚고 나니, 다시 빈털터리.
그들이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데리고 가는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익힌 무공이 마공이기 때문이다.
혈교의 무공도 마공이고, 그 원류는 역시나 천마신공이다.
그나저나 천마란 인간은 정말 대단한 인간인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일의 목표는 십만대산으로 가 걸일번을 만나는 것.
세 명의 마인과 함께한다면 마교의 의심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데리고 가는 중이다.
하남에서 만리상단의 본단이 있는 중경까지는 꽤 먼 거리다.
우리는 최대한 쉬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며칠을 달려, 호북과 호남 그리고 중경의 경계 지역 즈음에 도달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어느 객잔에 들어섰다.
"혈관마(血觀魔) 때문에 밤만 되면 불안해 죽을 것 같았는데, 하아! 이젠 좀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겠어.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휴우, 혈관마가 우리 지역에 나타났다는 소리에 얼마나 걱정이 됐다고. 이웃 마을에서는 세 명이나 죽었다잖아."
"내 말이! 산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무시무시한 마두가 그저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더니, 어이쿠! 지금 생각해도 살이 다 떨리네."
"이젠 다 끝났으니 걱정들 접고 한잔들 하자고! 묘안개 여협과 저육개 대협을 위하여!"
"위하여!"
엥?
묘안개?
저육개?
걔들 이름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궁금했다.
그래서 슬쩍, 대낮부터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치는 장년의 사내들에게 물었다.
"저기… 어르신들, 묘안개와 저육개는 누굽니까?"
내가 슬쩍 그렇게 묻자, 뭔 이런 촌뜨기가 다 있나 하는 얼굴로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사내들이었다.
"외지에서 오셨나?"
"네."
"어허! 그래도 어찌 묘안개 여협과 저육개 대협을 모를 수 있지?"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무림에서 가장 큰 화두가 뭔가?"
"그야 불사괴 아닙니까? 불사괴 때문에 무림맹이고 구파일방이고 다 난리라던데요."
"그렇지! 맞아, 그거야. 그런데 그놈의 불사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누군지 아나?"
"당연히 불사괴가 공격한 지역 사람들 아닙니까? 그곳의 문파나 세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요."
"쯧쯧.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무슨 말씀이신지……?"
"어험. 거, 돼지고기볶음 한 젓가락 먹으면 내 입에 기름칠이 되어 술술 말이 나올 것 같은데."
이 노인네들, 아주 그냥 콱!
"점소이!"
"예이!"
"여기 돼지고기볶음 하나, 소채 하나 그리고 화주 댓 병 더 드리시오. 계산은 내가 하겠소."
"예이!"
내가 추가 주문을 하자, 댓 명의 사내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말투까지 바뀐 그들이었다.
"공자님, 그러니까 말입죠. 불사괴인지 뭔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무림의 모든 힘이 그쪽으로 쏠리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래서 무림맹과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피해 숨어 있던 마두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말입죠."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당연히 그 피해는 무고한 백성들이 모두 감당해야 했겠네요."
"제 말이 그겁니다! 수백 년 동안 살인 사건 하나 없던 이 지역에서 보름 동안 열댓 명이나 죽었습니다."
"아까 말했던 그 혈관마인지 하는 마두 때문에요?"
"네. 어린아이, 시집도 못 간 처녀, 자식만 여섯인 아이 아빠 등등. 보름 새 열댓 명이 피가 빨려 그 뭐더라, 아! 맞다. 목내이(木乃伊, 미라)처럼 변해 죽었다지 뭡니까?"
곧바로 옆에 있던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 사악한 혈관마를 처치한 게 바로 묘안개 여협과 저육개 대협이십니다. 하하하!"
다시 옆의 사내가 질세라 말했다.
"공자님, 묘안개 여협과 저육개 대협의 사부님이 누군지 아십니까?"
알지만 그냥 모른 척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사내는 마치 자신의 자랑인 것처럼 가슴까지 쾅쾅 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삼존이성 중 걸성이신 무치개 대협의 제자 분들이십죠! 하하하하."
다른 사내가 쉴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혈관마뿐만이 아닙니다. 호남에서는 동정십팔채에서도 잡지 못했던 우환마(憂患魔)라는 마두를 물리쳤고, 복건에서는 처녀 70명을 납치해 간살한 혼색마(混色魔)라는 색마의 목을 벴습니다."
오! 이 녀석들.
정말 열심히 하는 모양이다.
"요즘 개방이 아주 대단합니다. 개방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요?"
"허허! 공자님은 정말 귀를 아예 닫고 사셨나?"
"비슷합니다. 좀 더 얘기해 주시죠."
"삼존이성 중 성존이 사라진 자리에 멸존 낭만개 대협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불사괴가 된 성존을 아예 소멸시켜 버렸다고 하더군요. 화르르르르르! 무슨 태양이 천하를 뒤집어 삼키는 것처럼 그랬답니다."
"대단하군요."
"멸존도 멸존이지만, 멸마협도 엄청납니다."
"오! 궁금합니다. 멸마협은 어떤 분인지."
"그러니까… 음, 뭐였지?"
옆 사람에게 묻는다.
"왜! 그 옥면공자. 엄청 잘생겼다고 하잖아."
"맞다! 멸마협은 엄청 잘생겼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예요?"
"네?"
"아, 아닙니다."
"맞다! 또 있어요. 그 양반이 의술에도 능통해서, 소림사의 대환단에 버금가는 영약도 만들고. 어이쿠! 정말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을 뻔했네."
"그게 뭔데요?"
"아! 그거 있잖습니까. 아무리 세상에 귀를 닫고 살았어도, 탈혼독은 들어 봤겠지요?"
"네, 그건 들어 봤습니다."
"그 해독약을 만든 게 바로 멸마협 나태한 대협입니다."
옆의 사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대협이 아니라 의원 아니야? 젊고 잘생긴 의원."
"그런가?"
"에이, 멸존 낭만개 대협의 제자란 소리가 있던데? 그 정도면 무공도 엄청날 거야."
"아니야, 걸성 무치개 대협의 제자라고 했어."
"어라? 나는 낭만개 대협의 숨겨 둔 자식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다른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던 덩치가 조금 큰 사내가 말했다.
"거, 여기 전세 냈소? 조용히 좀 합시다. 그리고 나태한 대협이 멸마협이라 불리게 된 이유가 바로 인간 불사괴 세 구를 물리쳐서 그리 불리게 된 거요. 뭘 좀 알고 얘기를 하던가."
"아! 맞다, 맞아. 깜빡 잊고 있었네."
다시 건너편 사내가 말을 덧붙였다.
조용히 하라면서 자기 목소리가 더 컸다.
"신성불사대전에서도 엄청난 무위를 떨치셨다고 하더이다."
그때 또 다른 식탁에서도 말이 튀어나왔다.
"무위도 무위고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건데, 무엇보다 약선의 의술을 잇는 새로운 의선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독선, 약선과 더불어 천하 3대 의선이라 하오. 대자연단과 만치자연단을 만들어 자선이라 합디다."
자선(自仙)?
이건 처음 듣는 얘긴데?
나만 그런 게 아닌 듯하다.
조금 전까지 침을 튀겨 가며 내게 이야기를 해 주던 댓 명의 사내가 새로 가세한 다른 탁자의 사내에게 물었다.
"그건 처음 듣는 얘기요. 의술에 능통하다고 하더니 그 정도였소?"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분을 만날 일이 있겠는가 싶지만, 혹시라도 그분을 만나면 극진히 모시고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지 보여 주시오. 저승에 한 발을 담근 팔순의 노인네마저 장가가기 직전의 혈기 왕성한 청년으로 만들어 준답디다."
에이, 저건 좀 심했다.
"허어! 멸존도, 걸성도 대한하고, 멸마협까지 그렇다니. 정말 당금 무림은 개방 천하라 하지 않을 수 없겠네."
"그러게 말이야. 앞으로 거지들이 구걸하러 오면, 그냥 내쫓지 말고 남은 밥이라도 한 덩이 곱게 줘야겠어."
"당연한 말이지. 우리 마을을 살려 주신 분이 바로 개방의 영웅분들이신데. 남은 밥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철전도 좀 주고 그러라고. 다들 알았지?"
"그래! 나도 그렇게 하겠네."
"자!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마을을 살린 건 묘안개 여협과 저육개 대협이시니, 우리 모두 두 영웅의 무운을 빌며 건배 한 번 합시다! 공자님도 한 잔 드세요. 건배!"
"건배!"
난 식사를 마친 후, 객잔의 모든 음식값을 조용히 지불한 다음 다시 중경으로 떠났다.
내 이야기보다, 나에게는 동생 같은 녀석들인 묘안개와 저육개의 멋진 소식에, 기분 좋은 밥값 계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