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46화 (145/174)

146화

빠르게 대책 회의가 열렸다.

대책이고 뭐고가 사실 없었다.

누가 가서 소림을 도울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걸일번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일단, 걸일번은 남궁무검이 그러했듯 확실해질 때까지 우리만 알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림을 도우러 누가 갈지 빠르게 결정됐다.

불존은 당연히 가는 것이고.

의외로 무존이 돕겠다고 하였다.

신성불사대전에서 무림이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자신들은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도 모르고 도움을 못 줬다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지원을 자청한 것이다.

무존이 그 명성에 비해 이기적이라고 뒤에서 비난하던 사람들도 그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지원자들이 결정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불존과 무존이 각기 소림과 무황성의 최고수 몇 명만을 이끌고 빠르게 소림으로 출발하였다.

무황성의 3,000 고수와 또 현재 신성교에 와 있는 고수들 수천이 다시 조직을 꾸려 소림사로 출발하였다.

불사괴가 언제 다른 지역에서도 출현할지 모르기 때문에, 전력을 소림사에 투입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새벽에 시작된 일이었지만, 낮이 되기도 전에 무려 8,500여 명의 고수들이 소림사로 출발할 수 있었다.

무림인들의 적극적인 의지도 중요했지만, 맹주와 이를 곁에서 보좌하는 순화자, 속리자, 상취개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난, 그렇게 소림사로 떠나는 엄청난 수의 고수들을 보며,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 * *

공주 양꼬치.

천주마를 타고, 또 이제는 삼부협이라는 엄청난 별호를 얻은 단씨 삼 형제들과 고향으로 돌아왔다.

분타에 가 보니 어린 거지들이 없어서, 이 녀석들이 또 공부는 안 하고 어디 내뺐나 싶었는데.

모두 공주 양꼬치집에 와 있었다.

"여기! 화주 한 병 더."

"예이!"

"녀석, 싹싹하기는. 옜다. 이걸로 만두나 하나 사 먹어라."

"고맙습니다. 대인."

몇몇 녀석들은 양꼬치를 굽고, 또 몇몇 녀석은 숙련된 점소이처럼 음식과 술을 나르고.

몇몇은 장작도 패고.

좀 큰 녀석들은 양고기를 손질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변용한 상태의 단문령이, 그런 꼬마 거지 녀석들을 흐뭇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 뭐야? 애들이 왜 여기 있어?"

"어멋! 우리 낭군님 오셨네! 기별도 없이. 내가 보고 싶어서 서둘러 온 거야? 호호호."

나를 보자마자 또 입꼬리가 귀에 걸려 좋아하는 단문령.

자신의 세 오빠가 함께 있음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오빠들도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어떻게 된 거냐고? 왜 애들이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공부와 무공 수련은 매일 반 시진씩 하는 거고.

그 일을 제외하면, 어린 거지 녀석들이 할 일이라곤 거리로 나가 구걸하는 일밖에 없다.

어른 거지들이 구걸해 온 밥을 나눠 준다지만, 거지니까 구걸하는 게 당연하다.

또 어린 거지들의 구걸 실력이 좀 대단하지 않겠나.

내가 매번 알면서도 녀석들에게 당하는 것처럼.

그래서 녀석들은 구걸을 해야 하는데… 음.

"아이들이 매일 길거리로 나가서 구걸하는데, 도저히 못 봐 주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오라고 했어. 잘했지?"

잘한 건가?

잘한 거다.

그런데 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공짜로 부려 먹는 거 아니야. 한 달에 은자 두 냥씩 정확히 계산해서 품삯도 주고. 글 선생님이 내준 숙제 안 하는 아이는 일할 수 없다는 약속도 확실히 했고. 아이들 지금 천자문 중에 100글자 넘게 쓸 수 있어."

"그, 그래?"

"응, 타구봉법도 제법이고."

"음… 그렇구나."

"나, 잘했지?"

얼굴을 쓱 나에게 들이밀며 말하는 단문령.

확실히 잘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고마워."

내 말에, 아! 괜히 했다.

단문령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려.

"쳇. 고맙기는. 우리 사이에."

몸을 마구 배배 꼰다.

무시하고.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환히 웃으며 열심히 일한다.

어쩌면 이게 낫겠다 싶다.

매일 칼과 피가 난무하는 무림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평화롭고 열정이 넘치는 일상이 어울릴 것 같다.

최소한 구걸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아이들도 저렇게 재밌다는 얼굴로 일하고 있고.

"문령아."

"응, 낭군님."

"우리 애들, 계속 여기서 일하게 해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지금도 봐 봐.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는데, 애들이 척척 다 알아서 해. 저기 왕구하고 석삼이는 머리가 조금 컸다고, 제법 산수도 잘해서 계산도 정확히 하고. 너만 괜찮다면, 애들과 함께 공주 양꼬치 2호점도 내고 싶어."

"그럼 그렇게 하자."

"정말? 너무 좋다."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단문령.

내가 좋은 건지, 공주 양꼬치 2호점이 좋은 건지.

안다.

내가 좋아 이런다는 거.

"잠깐 따로 이야기 좀 할까?"

"왜? 날 으슥한 데로 데려가 뭐를 하려고?"

"오빠들 다 듣고 있잖아."

그렇다.

단씨 삼 형제는 지금 정확히 나의 한 발자국 뒤에서 나와 단문령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다.

하지만 단문령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오빠들이 더하다.

"어험, 우리는 아이들 일하는 거나 도울까?"

"그러죠, 큰형."

"그런데… 매제 형님."

"네?"

"저기, 저기 뒤에 숲 보이죠?"

"네."

"거기… 아무도 안 와요. 야생화가 만발해 분위기도 좋고, 우리도 절대 거긴 안 가요."

"네?"

"그냥 그렇다고요. 풉. 잘해 봐요."

"매제 형님, 힘내요!"

"아! 나도 조카 보고 싶다."

한마디씩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 곁으로 가는 삼 형제.

그리고 단문령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몸을 마구 꼬아 대고 있다.

* * *

툭!

셋째 단발령이 말해 준 숲속으로 왔다.

정말 사방에 야생화가 만개하여 멋진 광경을 연출하였고, 사람도 오가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렇게 그곳으로 왔더니, 단문령이 두 눈을 감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들이미는 게 아닌가.

그래서 어깨로 툭 쳤다.

"왜?"

도끼눈을 뜨고 버럭 화를 내는 단문령.

"할 얘기 있어."

"먼저 하고서 얘기는 좀 이따가 하면 되잖아."

"뭔 소리야!"

"알았어,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얘기 먼저하고 그건 나중에 해."

아놔!

"중요한 얘기야. 장난치지 말고 잘 들어."

"난 이미 결정했어. 너만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식 올리자."

아!

내가 말이다.

비밀 얘기 하나 해야겠다.

얘를 조금 좋게 보려고 했다.

아니, 아주 쪼금, 정말 쪼금 마음이 갔다.

오빠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 아니겠는가.

또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고.

거기에 속물이라고 나를 욕할지는 모르겠지만, 당금 천하의 제일 미녀는 바로 단문령이다.

천하 2대 미녀인 만리상단의 연주언보다 단문령이 확실히 한두 수 위의 미녀다.

미녀국에서조차 천하제일을 다툴 미녀가 바로 그녀다.

오죽했으면 화경의 고수인 낭만개 아저씨가 부동세를 취했을 정도겠는가.

거기에 알뜰하고 검소하기까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마음이 기울었다.

항주에서 힘든 일들을 겪으며, 몇 번이나 단문령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만리상단과 거리를 더 두려고 한 거고.

그런데 단문령을 다시 보니.

아!

내가 미친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거나, 얘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는 진실이다.

얘가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휴우, 진정하고.

일단 일부터 마무리 짓자.

갈 길이 멀다.

"네 도움이 필요해."

"도움? 뭐? 이상한 거 시키려고 하는 건 아니지? 나… 아직… 경험이 없……."

"뭔 개소리야!"

"왜 화를 내고 그래? 알았어. 뭘 해 주면 되는데? 눈 딱 감고 해 줄게."

"하아! 불사괴! 불사괴가 나타났는데, 네가 좀 도와달라고."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던 단문령이, 곧장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불사괴? 다른 도움… 그러니까 네가 혼자 해결하기 힘든 그런 걸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뭘 혼자 해결 못 해?"

"아잉."

"제발… 제발 좀 진지해지자. 많은 사람이 죽었어."

"뭐야? 진짜야?"

"응, 불사괴 소문 들었을 거 아니야?"

"들었지. 네 소문도 듣고, 망나니 삼 형제의 어이없는 얘기도 듣고."

참고로 여기서 단문령이 말하는 망나니 삼 형제는 그녀의 오빠들이다.

뭐, 그건 그렇고.

"소림에 불사괴가 나타났어. 불존하고 무존이 갔는데, 손이 부족해."

"불존? 무존? 그런 엄청난 사람들하고 내가 뭘 하라고?"

"넌 성녀검이 있잖아. 그걸로 인간들 틈에 섞여 있을지 모를 인간 불사괴를 구분만 하면 돼."

"성녀검이 그런 능력도 있어?"

"응, 엄청나. 불사괴를 감지하면 검명을 울릴 거야. 너만 들을 수 있는 검명."

"음… 그래. 그럼 가야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그럴 수 있다는데. 그래, 가자."

"허락…하는 거야?"

"당연하지."

좀 의외였다.

안 간다고 할 줄 알아서 만리전장에서 금자 열 냥이나 찾아서 왔는데.

돈 굳었다.

"그래서 언제 갈 거야? 난 지금이라도 출발할 수 있어."

음, 그런데 말이다.

뭔가 말이 좀 이상하다.

"난 안 가.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

"너…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응."

"……."

"……."

서로 쳐다보며 눈만 껌뻑껌뻑.

그러더니 얘가 또.

툭!

얼굴을 들이밀어 다시 어깨로 툭 쳤다.

"앗! 미안. 이번엔 나도 모르게."

그녀가 곧바로 나에게 사과했다.

어지간히도 내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또 마음이 헷갈리려고 했는데.

"뭐야? 나만 간다고?"

갑자기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응."

"나만?"

"응."

"진짜 나만?"

"그렇다니까."

"사내들이 우글거리는 그 절간으로 나만 보내겠다고? 너 지금 제정신이야?"

"휴우, 스님들이잖아. 그리고 너 말고도 여자들 많아. 무림에 여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맞다! 아미파의 서혜도 거기로 갔어."

"나만 간다고? 너 없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

"안 가! 절대 안 가! 너 없이는 그 어디도 안 가!"

홱 하니 몸까지 돌리고 팔짱을 끼는 그녀.

어쩔 수 없다.

비장의 수를 꺼내는 수밖에.

"금자… 한 냥."

스으윽.

나에게 완전히 등을 보이고 있던 그녀가, 정확히 3촌(9cm)을 돌아앉았다.

"금자… 두 냥."

스으윽.

다시 3촌을 움직여 몸을 돌리는 그녀.

"그래! 기분이다! 금자 다섯 냥!"

쉬이이이이이익!

처어어억!

몸을 완전히 돌려 양손으로 내 어깨까지 잡는 그녀.

"허락…하는 거야? 금자 다섯 냥!"

"낭군!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여?"

아! 돌겠네.

잘나가다 또 왜 이래?

금자 다섯 냥으로 퉁치는 줄 알았더니.

그래서 열 냥 중 다섯 냥은 굳힌다고 생각해 속으로 환호를 질렀는데.

역시 단문령은 만만한 애가 아니다.

"뭐? 얼마나 더? 금자… 두 냥 더? 총 일곱 냥?"

그녀가 여전히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은 상태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얼마? 너무하는 거 아니야? 열 냥? 그래! 금자 열 냥! 더는 나도 안 돼."

그런데 그녀가…….

"공짜."

미쳤다.

얘가 드디어 미쳤어.

"너… 무슨 약을 잘못 먹은 거 아니야? 너 단문령이야, 단문령. 단문령이 금자를 거절해? 사람이 바뀌었나?"

다시 빤히 날 쳐다보며 고개만 가로젓는다.

그러더니…….

"뽀뽀."

"무, 무슨 말도 안 되… 헙!"

난, 나는 말이다.

금자 열 냥을 굳혔다.

그래서 기뻤다.

너무 기뻐 심장이 마구 뛰었다.

가만히 있는데,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금자 열 냥이 이렇게 위대한 거다.

정신은 몽롱하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뽀뽀 때문이 아니다.

이깟 뽀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이 해 봤는데.

분명 지금 내가 이렇게 황홀한 건 금자 열 냥 때문이다.

정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그녀와 떨어지기 싫은 걸까?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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