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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이번 여행기-145화 (144/174)

145화

"태한아, 괜찮으냐? 네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어째 표정이 그렇냐?"

"방주님, 왜죠? 왜 하필 만리상단이죠?"

"무슨 말이 그렇냐?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을 돕는데, 그걸 내가 정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아! 죄송해요. 방주님께 뭐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제가, 제가 좀 심란해서."

"음……."

방주가 수염을 어루만지며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마교가 왜 십만대산으로 갔는지 아느냐?"

"네? 갑자기 그건 왜……?"

"비걸개 훈련생 때 배웠지?"

"네, 그런데 그게 몇 줄 안 나와 있어요."

"그렇지,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 정파의 치부이니 최대한 줄여서 기재했겠지."

"그게 무슨……?"

"마교는 원래 일월신교(日月神敎)라 불리던 종파였으며 동시에 무림의 문파였다. 기행을 일삼아 정파는 당연히 아니고 사파로 분류됐으나, 엄밀히 따지면 사리사욕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니 사파로 분류한 것은 틀렸다."

갑자기 뭔 소리지?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데, 방주는 왜 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까?

"대단했다고 하더구나. 화경의 고수가 교주를 포함해 일곱 명이었고, 일월신교라는 기치 아래 모인 고수들이 수천, 수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

"그들은 그런 압도적인 세력을 지녔음에도 무림 정복이니, 군림천하니 하는 야욕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지."

"정파 무림이요?"

"그렇다."

"그래서요?"

"뻔하지 않겠느냐? 몰래몰래, 우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힘을 뭉쳤고, 그들이 그들만의 생활에 잠겨 있을 때 기습을 했다더구나. 온 무림이 뭉쳐 일월신교를 공격한 것이지. 그때 그들이 중원을 떠나 머나먼 십만대산까지 도주한 것이다."

"아… 그건, 몰랐네요.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시는 거예요?"

"그들도 중원인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다."

"그렇죠, 그들도 중원인이라 들었어요. 방주님, 기왕 말 꺼내신 거 그 뒷이야기도 해 주시죠. 왜 일월신교가 마교가 됐는지, 또 천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요. 궁금해요."

"당시만 해도 마공은 딱히 나쁜 무공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모두를 놀라게 할 새로운 개념의 무공이었지."

"발상의 전환, 뭐 그런 거요?"

"그렇다. 그러다 마공이 너무 강력해지자, 사람들이 험담하고 나쁜 소문을 내기도 하고, 그러다 자연스레 마공은 악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거다."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잖아요. 여전히 좋지 않은 시선이 있긴 하지만, 무림맹에서도 마공을 금기 무공으로 분류하지 않고요."

"그게 다 『오늘부터 천재다』의 위건무 대협과 『오늘도 램프를 주웠다』의 곽청 대협 그리고 『대마두가 된 이유』의 마악치 대협 덕분이지."

"음… 방주님?"

"……?"

"지금 홍보하시는 거예요?"

"내가? 왜? 그런 무림 영웅전을 홍보해서 무슨 득이 있다고?"

"아, 아니에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네 착각이다. 그래도 셋 다 읽어 볼 만한 재미난 책들이니 시간 되면 꼭 읽어 보도록 하여라."

"홍보, 맞는데요?"

"아니라니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오늘도 램프를 주웠다』를 강력히 추천한다. 제일 재밌단다."

"적당히 하시죠?"

"어험! 어험! 그래. 좀 과했구나. 미안하다. 사과하마."

"그래서 일월신교가 십만대산으로 간 후 어떻게 됐는데요?"

"그들은 중원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가족이 있고, 조상의 묘가 있으며, 그들의 언어가 통하고, 그들의 문화가 바로 중원 아니겠느냐."

"저라도 간절히 바랐겠네요. 하지만 정파 무림에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일월신교의 고수들이 다시 무림 한가운데 터를 잡으면, 그 미래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결국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십만대산을 벗어나지 못한 게 그런 이유군요."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들에게는 마공이 있지 않겠느냐. 역천의 힘은 실로 무서웠다. 몇 번의 정마대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중원은 일월신교의 기치 아래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결국은 막아 냈잖아요."

"딱 한 번은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봐줬다고."

"누가요?"

"일월신교가 정파 무림을 봐줬다고요?"

방주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답했다.

"그때 등장한 게 천마라는 사내였다. 일월신교의 5대 교주가 바로 훗날 천마라 불리게 된 사나이다."

"아! 천마……."

"그전까지 일월신교는 수백, 수천 종의 마공이 난립하고 있었다. 역천의 힘을 얻은 대가는 컸고, 그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걸려 죽거나, 또 비슷한 엄청난 희생을 치르기도 했지. 그래도 마공은 상상도 못 할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월신교의 교도들은 이를 익히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수라신공이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맞다. 당시 모든 마공의 중심에는 아수라신공이 있었고, 수천 종의 마공 역시 그 아수라신공을 원류로 파생된 것이었다. 하지만 천마가 나타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지."

"엄청나게 강했다고 들었어요."

"강한 정도가 아니다. 천마를 위시한 일월신교가 중원을 넘어왔을 때, 중원 무림은 정사를 가리지 않고 힘을 뭉쳐 항거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무림 10대 고수를 마치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놀 듯 가지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 그건 좀 과장된 거 아니에요?"

"과장된 게 아니라, 최대한 줄이고 폄훼한 게 그 정도였다."

뭐야?

천마라는 인간은 신이야?

"몇몇 비공식적인 기록에 그는 신의 경지에 접어든 자라는 표현이 있었다."

"음… 도저히 그 경지가 상상이 안 가는데요?"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고, 실제 당시의 기록들이 그의 경지가 그만큼 대단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중원을 침공하고 석 달이 되기도 전에 정파와 사파의 최고수 열 명을 해치웠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모두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그럼 거의 끝난 거 아니에요? 천하 무림 통일."

"그렇지, 끝났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반전요? 무슨 반전?"

"마교에서 그를 배신한 거지."

"설마……."

"두려웠다고 하더구나. 절대적인 천마가. 신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자를 매일 보는 게 두려워 그랬다고 한다. 부교주 두 명과 장로 여덟 명, 거기에 은퇴한 마교의 전대 교주와 고수들이 죄다 합심해 방심한 천마에게 극독을 먹이고, 일제히 기습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요? 그때 죽은 거예요?"

"다 죽었다. 천마만 빼고."

"아……."

"그날 천마는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도를 모두 비웃으며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더구나. 누군가는 우화등선하여 마선이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용한 곳에 은거를 한다고도 하고. 하지만 아무도 그날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천하를 삼키고, 그냥 버렸다는 말이 맞네요."

"그렇지. 천마가 사라지고, 그에 의해 일월신교의 최고수들이 모두 죽자 정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일월신교는 다시 혼비백산하여 십만대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일월신교가 천마신교가 된 거예요?"

"맞다. 정파에 무참히 깨져 십만대산으로 돌아간 일월신교의 교도들은 천마를 신으로 추앙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천마신교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당연히 우리 정파에서는 이를 마교라 부르며 폄훼했고. 그 외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공이요."

"그렇지. 아수라신공이 위주였던 무공이 모두 천마신공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마교의 교도들이 익히는 무공의 9할 이상이 천마신공에서 파생된 무공이라 보면 된다."

"대단한 양반이었네요.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그가 진짜 신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고금제일인이 소림의 달마 대사나 무당의 장삼봉 진인이 아닌, 천마일지도 모를 일이네요."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이 될 테니, 미움을 받는 건 너일 것이다."

"네, 저만 알고 있을게요.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이야기를… 아! 맞다. 마교도들도 중원인이라는 말을 하려다 여기까지 왔네요."

"그들은 아직도 중원의 언어를 쓰고, 중원의 음식을 먹으며, 중원의 의복을 입고, 중원의 문화권에서 생활한다."

"십만대산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품을 만리상단에서 보낸다는 말씀이세요?"

"극비 중에서도 극비다. 이는 수백 년 동안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며, 나를 포함한 역대의 개방 방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만리상단의 허락으로 너만 예외가 된 상황이야.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된다. 사실이 알려지면, 만리상단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음… 명심에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리하면 된다. 만리상단이 망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어차피 거지들이다. 1년도 안 되어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

"그렇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함구하겠습니다."

"그런데 태한아, 너, 조금 전에 왜 뭔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것이더냐?"

"앗! 마교 얘기하다가 까먹고 있었는데… 휴우. 그게요. 그게 말이죠. 이거 비밀인데……."

"알잖느냐? 내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정말 방주님만 알고 계셔야 해요?"

"그래, 알겠다. 얼마나 심각한 일이기에 네가 그런 얼굴까지 하고 그러느냐?"

"실은요… 만리상단에서 저를 사위로 삼으려고 해요."

역시!

방주는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상을 와락 구기며 심각한 얼굴을… 어?

"풉! 푸우우욱. 풉. 큭큭. 잠, 잠깐만… 미안하구나. 잠깐만. 풉. 큭큭큭."

방주가 배를 움켜잡더니 방의 구석으로 가 허리까지 숙여 가며… 젠장!

침까지 마구 튀겨 가며 웃기 시작했다.

결국.

"푸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와! 네가 그런 농담을 할 줄은… 푸하하하하! 태한아, 이번엔 진짜 웃겼다. 넌 무공보다 사람 웃기는 데에 소질이 더 있느… 푸하하하하! 만리상단에서 거지를 사위로… 푸하하하하! 올해 들었던 농담 중 제일 웃긴… 푸하하하하하! 사위로 삼는대……. 푸하하하하!"

아! 우리 방주.

입은 무거울지 모르나, 웃음은 참지 못하는… 젠장!

내가 뭐?

왜?

나 정도면 만리상단에서 탐낼 만하지.

"푸하하하하! 천하 2대 미녀 연주언이… 푸하하하! 너… 태한이, 너… 푸하하하하하! 동경 좀 보고… 세수도 좀… 아! 세수로는 안 되겠다. 다시 태어나야… 푸하하하하하!"

빌어먹을!

방주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고, 우리는 일다경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다시 나눌 수 있었다.

난, 내일 떠난다.

목적지는 십만대산이다.

* * *

잠을 자고 있었다.

내일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운기조식을 할까 하다가 그냥 잤다.

잠을 자면서도 운기조식은 가능하니까.

그렇게 막 잠이 들었는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수백 마리의 전서구가 신성교로 날아드는 게 감지된 것이다.

서둘러 내가 머무는 전각의 지붕 위로 올라가 보니.

낭만개 아저씨는 이미 지붕 위에 올라와 있고.

"무슨 일이죠?"

"뭔가 일이 터진 것 같구나. 일단 맹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 보자."

"네, 아저씨."

우리는 전각과 전각의 지붕을 밟으며, 임시 맹주전으로 향했다.

곳곳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고수들, 불존과 무존, 독선 등이 일제히 맹주전을 향해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렇게 도착한 맹주전.

이미 여럿이 그곳에 있었고.

맹주가 어두운 얼굴로 달려온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불존을 향해 말했다.

"대사님, 조금 전 소림사에 불사괴들의 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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