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문제가 있네."
방주가 바로 허락할 줄 알았는데,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무슨 문제요?"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네."
방주의 말에 일 장로, 무치개, 상취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걸일번도 갔잖아요."
상취개가 답했다.
"십만대산은 그 지세도 험준하기로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정파에서 언제 그들을 공격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방비도 엄청나다네. 그냥 그렇고 그런 문파나 세가의 방비가 아니야. 무려 마교의 방비라네. 수백 년 동안 보완하고 보완해 온 마교의 방비."
"그게 어느 정도인데요?"
"100명이 가면 100명이 죽고. 1,000명이 가면 1,000명이 죽고. 10,000명이 가면 10,000명이 죽는다네. 그래서 우리 정파 무림의 힘이 넘쳤던 시기에도 마교를 어쩌지 못했던 것이야. 발을 들이는 순간 죽음일세."
"걸일번은요? 걸일번은 갔잖아요."
내가 묻자 상취개는 대답 대신, 본인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방주를 쳐다봤다.
그러자 방주가 망설이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도움을 받았다."
"누구의 도움이요?"
"그건 말할 수 없다."
"왜요?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천하에 그 일을 아는 건 나와 그쪽 사람들밖에 없어. 무림맹주도 모른단다."
"방주님! 걸일번을 만나야 불사괴의 일을 끝낼 수 있잖아요. 어쩌면 걸일번이 현재 위험에 처해 있을 수도 있고요. 말하셔야 해요."
내 다그침과 같은 말에 방주의 동공이 떨려 왔다.
크게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끄응."
혼잣말까지 하며 갈등하는 그.
하지만…….
"휴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말할 수 없어."
"그럼 저는요? 걸일번은요?"
"내가 그들에게 한번 부탁해 보겠네. 걸일번을 보내는 것도 내가 방주로 있으면서 마지막 부탁이라고 해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어쩔 수 없지. 내가 다시 그들과 접촉해 상의해 보겠다."
방주는 입을 굳게 닫고, 더 이상 그와 관련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자가 위험할 수도 있고, 천하의 명운이 걸린 일임에도 말이다.
어쩌면 그런 방주가 답답해 보일 수도 있고, 또 불합리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천하제일 정보통은 그 다루는 정보의 질과 양이 엄청나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보를 지키는 무거운 입이야말로 천하제일 정보통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것이다.
당장 급해서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눈앞에 닥친 일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시점으로는 자신과 모두에게 화가 되는 일인 것이다.
우리 방주는 개방의 방주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답답한 건 답답한 거다.
"그럼 저는요? 전 어떻게 해요? 그냥 막 십만대산 갔다가 개죽음당할 수는 없잖아요."
"며칠만 기다려라. 내가 며칠 안에 답을 주겠다."
결국, 나는 며칠을 더 신성교에 꾸려진 임시 무림맹 본부에서 기다려야 했다.
괜찮다.
마침 할 일도 있고.
원래 며칠이 더 필요했었다.
* * *
오늘도 무림맹 불사괴 대책 회의에 참석했다.
삼존이성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니만큼 그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서 두 번째 자리.
바로 살아 있는 부처님이라는 불존 옆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낭만개 아저씨.
와!
그냥 신기방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깡시골 황천 길바닥에서 동냥 그릇 휙 던져 놓고 낮잠이나 자던 아저씨가. 큭큭큭.
더 대단한 건 말이다.
우리 낭만개 아저씨가 제법 이 회의에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거다.
며칠을 계속 봐 왔는데, 자세도 정자세에 눈을 부릅뜨고 모든 이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오! 뭔가 있어 보인단 말이지.
우리 엄마가 이런 아저씨의 모습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회의에 참석한 아저씨를 볼 때마다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그리고 내가 막 그렇게 기분이 좋아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무림맹 제갈 장로가 한창 입에서 침을 튀기며 불사괴를 대비한 조직에 관한 주장을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 태한아.
- 네, 아저씨.
- 이거 언제 끝나냐?
- 네?
- 지루해 죽겠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저 제갈 성씨의 노인네는 왜 저리도 말이 많은 거냐?
- 아, 아저씨?
- 아! 따스한 햇빛을 맞으며, 낮잠이나 실컷 자고 싶구나.
그렇다.
우리 낭만개 아저씨는, 회의에 집중하고 있던 게 아니라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다.
감기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 휴우. 아저씨, 오늘 회의 끝나고 저랑 어디 좀 가요.
- 어디?
- 순천검의 주인, 한화덕 그 사람 만나러요.
* * *
야검당에 왔다.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야검당에서 꽤 떨어진 곳에 슬쩍 몸을 숨긴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곧.
내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야검당의 쪽문을 통해 나오는 게 보였다.
"노야장, 오늘도 한잔해야지?"
"당연한 소리를 또 하네. 가자고!"
"그래, 가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생, 우리끼리 술이나 마시며 서러움을 달래야지."
"맞아, 맞아. 에휴, 천하제일 야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잡소리 집어치워. 언제 적 얘기를 해? 됐으니 가서 술이나 진탕 마시자고."
"그나저나 품삯은 왜 자꾸 깎는 거야? 이러다 술 마시는 거는커녕, 자식새끼들 굶겨 죽이게 생겼어."
"어쩌겠나? 당주가 야장을 박대하고 무인들만 우대하는데. 억울하면 자네도 검술 배워."
"풋. 이 나이에? 첫째하고 둘째 장가 다 보내고. 이제 막내딸 시집만 보내면 나도 이 짓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을 거야. 아니면 어디 가서 내 이름으로 된 대장간을 열든가."
"대장간 열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줄 아나? 그리고 그걸 야검당에서 그냥 지켜보기만 할 거 같아?"
"에잇, 퉤! 더러워서 살겠나. 가자, 가. 그냥 술이나 잔뜩 퍼마시고 다 잊어버리자고. 이번 인생은 글러 먹었어."
젊은 야장들이 아닌 늙은 야장들.
전전대의 당주부터 야검당에서 일을 했던 진정한 야검당의 장인들.
그들이 신세를 한탄하며 오늘도 술을 한잔하러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들이 싸구려 술집을 향해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엇! 자네는… 뺀질이?"
"헙! 노야장! 말조심해! 죄, 죄송합니다, 나태한 대협. 무식한 늙은이가 말실수를… 죄송합니다."
노야장이 나를 보고는 놀란 얼굴로 그리 말했고, 옆에 있던 야장들이 서둘러 허리를 연신 숙여 나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나는, 씨이이익 웃었다.
"우리 사이에 뭐 사과까지 하고 그래요. 하하. 가요! 오늘은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아무도 나를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얼굴들이었고, 불편해하는 분위기였다.
괜찮다.
"왜요? 뺀질이랑은 술 먹기 싫어요?"
슬쩍 위협을 가하자.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대협."
그들은 죽을상을 하며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콧노래를 불러가며 앞장을 섰다.
* * *
한참을 가야 했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 큰길에 접어들었고.
항주의 중심가를 지났다.
그렇게 중심가에서는 살짝 떨어졌지만, 무림 문파들이 집결해 있고, 꽤 목이 좋은 자리의 어느 장원에 도착하였다.
"저… 나 대협, 아까… 술 마시러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늙은 야장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여기요. 여기서 한잔해요. 준비는 다 돼 있으니, 돈 걱정 마시고 실컷 드세요."
내 말에 늙은 야장들이 일제히 정문의 윗부분을 쳐다보았다.
보통 문파고, 가게고, 술집이고, 당연히 현판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서 들어가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야장들은 슬쩍 두려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뒤를 따라 정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
노야장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허걱! 여, 여긴… 대장간이… 대장간인데… 어떻게 이렇게 멋진 대장간이……."
노야장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야장들이라면 누구나 꿈꿔 봤을 법한, 그 어떤 무림 문파나 세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장원에 멋지게 꾸며진 대장간이 그곳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렇게 놀라 걸음을 멈추고 입을 쩍 벌린 늙은 야장들 앞으로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어르신들… 제가… 제가 왔습니다."
순천검과 역천반검의 주인, 한화덕이다.
"공, 공자님! 둘째 공자님!"
"공자니이이임! 엉엉엉!"
"엉엉엉엉. 왜 이제야 오셨어요! 엉엉엉."
"죄송합니다. 제가… 엉엉, 너무 늦었어요. 엉엉엉."
장내는 순간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한화덕도 그리고 늙은 야장들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럽게 울고 또 울고.
나와 낭만개 아저씨는 슬쩍 뒤로 물러나 그런 감동의 상봉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모두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 * *
다음 날.
노야장을 선두로 야검당의 늙은 야장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쓰고 야검당을 나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당주가 ‘건방지다’, ‘배가 불렀다’, ‘반경 100리 안에 대장간을 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 등등의 저주와 협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더 지나서.
무림 맹주와 멸존, 무존, 무림맹의 장로 세 명, 거기에 더해 개방의 방주와 일 장로까지 참여하는 화려한 개문식(開門式)이 열렸다.
무림 문파가 개파한 게 아니다.
그저 대장간이 문을 열었는데, 그 어마어마한 인사들이 모두 참여해 축하를 해 준 것이다.
깜짝 인사까지 방문하였다.
녹림삼십육채의 총채주가, 엄청난 고수들을 이끌고 대장간의 개문식에 참석.
첫 번째 주문으로 도끼 5,000자루를 주문하였다.
무림 맹주 또한 2,000자루의 검과 1,500자루의 도, 그리고 다시 여러 종류의 병기를 주문하였다.
당연히 이를 지켜보던 항주와 절강의 무문과 세가들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주문 폭주로 몇 년 치 일거리와 예산을 확보한 대장간이었다.
그렇게 대장간은 문을 염과 동시에 화려한 출발을 보였다.
그 대미를 장식한 것은 대장간의 이름, 현판을 직접 쓰고 제작해 가지고 온 한 명의 사내였다.
무황성의 이인자.
무황성의 부성주.
무존이 무황성을 떠나 있는 사이, 무황성을 홀로 다스리던 그가 직접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바로 순천검의 다른 한쌍.
역천반검의 주인인 외팔이 검객 독비검절(獨譬劍絶) 태사경이 방문한 것이다.
"드디어 내 역천반검을 만든 그대를 보게 되었군요. 나의 목숨을 수십 번이나 살려 준 역천반검을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오. 이건 내 작은 감사의 표현이오."
그는 감개무량해하는 한화덕에게 직접 들고 온 현판을 건넸다.
"어떻게… 마음에 드시오?"
한화덕은 너무 감동해 눈물까지 글썽이며 답했다.
"쌍천주(雙天主)! 감사… 감사합니다, 대협! 흑흑."
순천검과 역천반검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가 이를 건넸다면 허세 작렬이니, 근거 없는 말이라며 한화덕을 비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천반검의 주인인 태사경이 이를 직접 쓰고 제작하여 건네지 않았겠는가.
멸마협인 나의 순천검과 무황성의 부성주인 독비검절 태사경이 쓰는 애검인 역천반검을 만든 장본인이 한화덕임을, 만천하가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한화덕 그리고 내 순천검의 다른 반쪽의 주인인 태사경과 함께 오랜 시간 술자리를 함께했다.
맹주도, 무존도, 또 낭만개 아저씨와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였다.
아! 야검당?
이틀 뒤에 대장간을 아예 접었다.
젊은 야장들까지 죄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쌍천주로 넘어와서, 검이 아니라 호미 한 자루 만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검당주가 호기롭게 무림 문파로서의 역량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는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노야장이 말한 대로, 그들이 갖춘 힘의 원천은 훌륭한 검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뭐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뻔할 것 같다.
* * *
"태한아."
"네, 방주님."
"그쪽으로부터 답이 왔다."
"십만대산으로 가는 일을 도와주는 거기요?"
"그래."
"생각보다 답을 빨리 줬네요? 방주님 덕분입니다."
"아니, 내가 한 건 거의 없어. 네 이름을 대자마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돕겠다던데?"
"네? 누군데 저를 그렇게 돕는다고 해요? 아! 그건 말씀해 주실 수 없다고 했죠?"
"아니, 그들이 너한테는 말해도 된다고… 어허! 수백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너만은 예외라고 하더구나."
"그게… 누군데요?"
"만. 리. 상.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