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43화 (142/174)

143화

가능성은 반반이다.

성존이 진짜 불사괴의 왕이며 종주이자, 이 모든 일을 꾸민 원흉.

그 가능성이 절반이다.

그리고 다른 절반의 가능성.

성존이 불사괴를 만든 진짜 원흉에게 먹혔다는 가능성이다.

후자는 상황이 심각하다.

삼존 중 일인인 그 아닌가?

그런 성존을 불사괴로 만들었다면, 이건 나를 포함한 모두가 예상한 것의 수십 배와 수백 배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해진다.

간절히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간절히 바라며 기도만 하고 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준비하는 자만이,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다.

그리고 당금의 무림 맹주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준비하는 부류의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천하에 무림 배첩을 돌리고, 죽는 연기까지 하며 불존과 무존을 끌어들였다.

일단 불존과 무존이 도착하자, 무림맹은 그 힘이 근 일이백 년 사이 가장 강력한 상태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불사괴 관련 긴급 대책 회의가 진행되었고.

각 문파와 세가 그리고 무림맹에서 그간 연구했던 불사괴에 대한 자료가 하나로 집결해 정리되었다.

맹주가 상석에.

그 좌우로 불존과 무존.

그다음이 우리 낭만개 아저씨.

낭만개 아저씨 반대편에 독선.

무치개 장로는 같은 개방도인데, 굳이 낭만개 아저씨 옆자리가 아닌 독선 옆에 앉겠다고 고집을 부려 그렇게 자리가 배정되었고.

그다음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나이나 배분, 무력, 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리하였다.

원래 나는 이런 노인네들이 모인 자리에 낄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신성불사대전에서의 활약에 맹주까지 치료한 덕분에…는 개뿔.

낭만개 아저씨가 "태한이 안 끼워 주면, 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소."라고 한마디 해 줘서 끼게 되었다.

낭만개 아저씨 뒷자리에 서서 대책 회의에 매일 참석 중이다.

아!

무림 맹주?

첫날 회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 그가 등장하자 모두가 놀란 얼굴들을 했다.

어찌 아니겠는가?

불사괴는 핑계고, 차기 무림 맹주를 누구로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바빴던 인간들 앞에 맹주가 멀쩡한 걸 넘어 기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맹주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뭔 얼굴들이 그렇습니까? 마치 간절히 죽길 바랐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실망한 것 같은 얼굴들입니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을 빠르게 지우고, 가식적인 웃음까지 지어 가며 맹주의 복귀를 반겼다.

맹주와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는 나를 부려 먹을 때처럼 간사한 혀를 마구 놀려 대며, 그들이 이번 일에서 발을 빼지 못하게 못을 박아 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하루 이틀 계속 흐르며, 불사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도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이번 대책 회의에 진심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무림맹 대책 회의가 끝난 후, 나는 개방 긴급 비밀 회동을 방주에게 요청했다.

* * *

방주 귀행개(鬼行丐).

수호존 낭만개(浪漫丐).

일 장로 파완개(破碗丐).

이 장로 무치개(武痴丐).

무림맹 개방 장로 상취개(常醉丐).

그리고 나까지.

일부러 신성교에서 조금 떨어진 폐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큰 공을 세운 나라지만, 고작 사결제자인 내가 긴급 비밀 회동을 부탁하였음에도, 아무도 불평이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를 잡은 상황.

방주부터 상취개 장로까지 모두가 궁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불사괴의 원흉으로 의심 가는 자가 있습니다."

순간,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곧바로 일 장로가 말했다.

"그런 일을 어찌 이 자리에서 말하느냐? 무림맹 대책 회의 때 말했어야… 설마?"

말을 하던 일 장로 파완개의 눈빛에 순간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방주와 상취개까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었다.

응, 무치개 장로와 낭만개 아저씨는 그냥 눈만 껌뻑껌뻑.

곧바로 방주가 말을 이었다.

"그 원흉이… 설마 우리 개방의 방도이더냐? 그래서 무림맹 대책 회의 때 말하지 않고, 우리만 불러 말하는 것이고?"

방주가 말하고 나서야 무치개와 낭만개 아저씨도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난 자리에 있는 모두와 눈을 한 차례 마주한 후,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긴 탄식을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마를 잡으며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주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다시 물었다.

"그게… 그게 누구인가?"

"걸사번, 남궁무검이 죽기 전에 한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저는 남궁무검이 죽기 훨씬 전부터, 그가 이번 일에 관하여 남들이 모르는 커다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의심했던 것이고요. 결국 남궁무검은 아니었고, 남궁무검은 확신이 설 때까지는 그를 지켜 주고자 끝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곧바로 상취개가 방주보다 더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물었다.

"비걸개… 걸사번 남궁무검과 자네와의 동기 중에 한 명인가?"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금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 탄식과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다는 그런 얼굴들을 한 채 말이다.

그나마 무덤덤한 얼굴의 낭만개 아저씨.

아저씨가 물었다.

"누구냐, 그게?"

난 다시 한번 모두와 한 차례 눈을 마주친 후.

마지막으로 방주의 눈을 마주한 채 답했다.

"방주님, 걸사번이 남긴 죽음의 전언은… 걸일번 홍설아를 지목하였습니다."

순간, 방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너무나 큰 충격에, 앉은 상태에서 휘청이기까지 하였다.

걸일번 홍설아는 방주의 네 제자 중 막내 제자이다.

걸삼십육번이 죽어, 이제는 세 명의 제자 중 셋째가 되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그녀를 주웠다 하여, 방주의 성씨인 홍씨에 설아(雪兒)라는 이름까지 직접 지어 주었다.

방주만큼 충격을 받은 듯한 상취개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사술과 좌도방문을……."

상취개는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궁무검의 마지막 전언이 그러한 것이고. 그녀가 아닐 가능성도 있고, 혹은 그녀 역시 이용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내가 목소리에 힘까지 주어 말했지만, 이미 자리의 분위기는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방주나 상취개의 상태는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치개나 낭만개 아저씨는 제대로 된 사정을 모를 것 같고.

일 장로에게 물었다.

"일 장로님, 걸일번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십만대산으로 정보를 얻으러 간 것으로 아는데. 돌아왔나요?"

내 물음에 일 장로 파완개가 참담한 얼굴로 주저하다가 답했다.

"약속대로라면 보름 전에 돌아와 보고를 했어야 하는데, 소식이 없네. 아무래도 그 아이가 간 곳이 십만대산이다 보니, 비걸개와 무걸개를 중심으로 구조대를 편성해야 하나 고민 중에 있었다네."

"제가 가겠습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허락을 해 줘야 떠날 수 있다.

나도 개방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방주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방주의 허락이 필요했다.

"방주님! 방주님께는 사랑스러운 제자이겠지만, 저에게도 10년이 넘는 전우며, 친구고, 한때는 남몰래 좋아했던 여인입니다. 제가 직접 그녀를 만나 진실을 밝힐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결국, 방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많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여전히 내 말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그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사람들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게 시간을 주었다.

충분히 이해됐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내가 그랬는데, 그녀의 사부인 방주는 어떻겠는가.

그렇게 더럽고 좁은 폐가 안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한참이나 흘렀다.

결국 방주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 * *

모두가 마음을 진정시킨 후 방주가 돌아왔다.

어디 냇가에서 세수라도 하고 온 모양이다.

그래도 퉁퉁 부은 눈을 감출 수는 없었다.

"못 보일 꼴을 보였네. 미안하네들."

"아닙니다, 방주님."

다시 자리가 완성되었다.

방주가 퉁퉁 부은 눈으로 힘을 주어 나에게 말했다.

"자네는 할 일이 있네."

"현 상황에서는 걸일번을 만나 진실을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말도 맞아. 하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를 인간 불사괴나 악령 불사괴를 구별하는 일도 중요하다네. 걸일번을 찾아 만나고, 또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자네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인간 불사괴와 악령 불사괴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네. 특히 다시금 악령 불사괴가 나타난다면, 또 몇만 명이 죽을지도 모르니 자네의 어깨가 무겁네."

"화경급 고수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낭만개 아저씨나 무치개 장로님 그리고 불존, 무존, 독선이 있지 않습니까?"

"다섯 명이 전부네. 한 사람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 아니겠는가? 자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대의를 위해 이번에도 자네가 헌신해 줘야겠네."

곧바로 상취개가 방주의 말을 이었다.

"신성불사대전 때 보지 않았나? 악령 불사괴가 다시 출현하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일 걸세. 자네가 꼭 필요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일 장로까지 방주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고.

곧바로 무치개와 낭만개 아저씨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맞는 말이다.

아마 방주는 방주가 직접 걸일번을 만날 생각인 것 같다.

방주는 대단한 인물이다.

천하제일 정보통이 바로 그이며, 개방의 방주로 지금껏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현재의 자리에 이른 인물이다.

어쩌면 그가 직접 걸일번을 찾아 만나고, 진실을 밝히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이곳에 머물며 불사괴에 대비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그런데 말이다.

가끔은 합리적인 계산보다 강렬한 예감을 따라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지금 내 예감이 강하게 나를 십만대산으로 가라 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 방법이 있다.

"방주님, 장로님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일 장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네, 저를 대신해서 불사괴를 구분하는 일에 투입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를 부를 테니, 저를 십만대산으로 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상취개가 물었다.

"그녀? 여인인가? 그녀가 누구인가?"

"그게… 제가 말씀을 드려도 잘 모르실… 아! 공주 양꼬치! 기억하세요? 우리 황천에 오셨을 때, 먹었던 양꼬치요."

방주와 상취개가 곧바로 기억이 떠오르는 얼굴을 했다.

"갑자기 양꼬치는 왜?"

"그 집 주인이요. 그녀가 불사괴를 구분할 수 있는 보검을 지니고 있어요."

"아! 그 어린 처자가 어찌 그런 보검을……?"

상취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제가 준 거예요. 불사괴를 구분하는 걸 넘어, 그녀의 검이라면 낭만개 아저씨의 대성검보다 불사괴를 상대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음, 어차피 아시게 될 테니 미리 말씀드릴게요. 저와 함께 다니는 세 명의 산적 형제들 있죠?"

"삼부협(三部俠)?"

일 장로가 곧바로 답했다.

단씨 삼 형제도 신성불사대전에서 무지막지한 활약을 하며 별호를 얻게 되었다.

셋이 물리친 불사괴의 숫자도 숫자며, 그들 덕분에 산 사람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명명백백 마공을 익힌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을 가리키는 팔부신장에서 그 이름을 따 삼부협이라는 별호를 주었다.

"생각났다! 어디서 봤다 했더니, 맞아! 그때 양꼬치를 굽던 세 사람이 바로 그들이었군?"

상취개가 그제야 단씨 삼 형제가 누군지 떠오른 듯 말했고.

"삼부협의 막내 여동생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삼부협과 그녀가 바로 300년 동안 우리 개방의 방도로 혈교에 잠입해 첩보 활동을 한 가문의 혈육들입니다."

"아!"

"어허!"

방주와 상취개, 일장로 모두가 놀람과 감격의 얼굴을 동시에 해 댔다.

"그녀 역시 엄청난 고수예요. 그리고 제가 준 성녀검은 불사괴를 감지하면 검명을 울리고요. 그녀를 부를 테니, 저를 보내 주세요."

"그녀가 바로 와 주겠나?"

상취개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바로 와요. 바로 올 수밖에 없어요."

만리전장에 가서 돈 좀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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