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41화 (140/174)

141화

"아, 아저씨……."

낭만개 아저씨가 왔다!

난 혼잣말도 아니고 아저씨를 향해서 한 말도 아닌 말을 했다.

살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여전히 내게 등을 보이며 데몬 언데드를 향한 채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금방 끝내고 올 테니, 편히 기다리고 있어라."

아저씨의 손에는 대성검이 들려 있었다.

곧, 아저씨가 데몬 언데드를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잠시만요!"

멈칫하는 낭만개 아저씨.

여전히 성존을 향해 있는 그의 손목을 잡고, 내가 말했다.

"상대는 인간 불사괴가 아닌, 불사괴의 왕이라는 악령 불사괴예요. 대성검으로 놈을 죽이지 못할 수 있어요. 제 우룡검을 들고 가세요."

순간…….

계속해서 데몬 언데드를 주시하고 있던 낭만개 아저씨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손으로 내 머리까지 쓰다듬으며 말했다.

"충분하다, 네가 준 대성검이면."

그러고는 곧!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뭔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와! 내 시력으로도 쫓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움직임이다.

데몬 언데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지는 오래.

놈도 곧장 움직였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하늘이다.

하늘에서 낭만개 아저씨와 데몬 언데드가 격돌했다.

태양이 폭발하여 수천, 수만 개의 별똥별이 되어 사방에 흩뿌려지는 듯하다.

인간의 싸움이 아니다.

이건 신과 악마의 싸움이다.

그 싸움과 폭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상 위에서 한창 인간들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던 좀비와 스켈레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인간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 위대한 싸움은 그렇게 모두를 멈추었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보인다.

낭만개 아저씨가 말했던 ‘틀에서 벗어나라’는 의미가.

낭만개 아저씨는 무려 데몬 언데드를 상대로 싸우며 내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야 할 무도(武道)가 무엇인지.

이는, 낭만개 아저씨가 데몬 언데드를 상대로 싸우면서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이 아니라… ‘어쩌면 정말로’ 천하제일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

눈 깜짝할 사이 수백 번의 공방이 오간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하늘을 통으로 찢어발길 것 같은 폭발이 하늘의 중심에서 일었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낭만개 아저씨가 휘두른 대성검에 의해, 수천, 수만, 아니 수천억의 작은 조각들로 갈기갈기 찢겨 마치 모래와 같이 변해 버린 데몬 언데드.

그 죽음의 증거가 땅으로 추락하기도 전에 모두 한 줌의 재로 타 버리는가 싶더니.

결국,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소멸해 버렸다.

혹시 몰라 우룡검으로 확인 사살을 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처억!

허공에서 곧장 나에게로 날아와 착지하는 낭만개 아저씨.

와!

X팔!

개멋있어.

내가 알던 그 거지 아저씨가 아니다.

진심 멋있다.

"이제 안전하다, 태한아."

"아저씨……."

아놔!

뭐가 이렇게 멋있냐?

그런데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X이이파아아알! 내가 죽였어야 했는데!"

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전장의 중심에서 미칠 듯한 폭발이 마구잡이로 일어났다.

조금 전 데몬 언데드와 싸우기 위해 몸을 날렸다가 고스트 언데드와 휴먼 언데드에게 막혔던 무치개다.

그도 낭만개 아저씨가 데몬 언데드를 물리치는 것을 똑똑히 본 모양이다.

그리고 아쉬움에, 자기가 데몬 언데드를 물리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에.

마구잡이로 강기의 봉을 휘두르는 것이다.

"죽어라! 죽어! 아! 분해! 이 잡귀들아! 죽어!"

콰콰콰콰콰콰콰쾅!

어째 큰 상처를 입은 듯한데, 그 움직임과 기운은 아까보다 더 강력해진 것 같다.

역시 무치개 장로의 진정한 힘은 낭만개 아저씨에 대한 질투에서 나오는 듯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낭만개 아저씨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쯧쯧. 저 녀석은 아직도 저렇게 무식하게 싸우네.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어. 한심한 놈."

궁금했다.

내가 보기에는 엄청난 신위를 보이는 듯한데, 왜 낭만개 아저씨가 혀까지 차며 그런 소리를 하는지 말이다.

"아저씨, 제 눈에는 정말 용맹하게 싸우는 것 같은데요? 저 귀신 같은 불사괴들과 인간 불사괴들이 꼼짝도 못 하고 당하고만 있잖아요."

그러자 아저씨가 여전히 무치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해 주었다.

"아마 저 사람같이 생긴 게 인간 불사괴겠지?"

"네, 맞아요."

"인간 불사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 저 귀신 불사괴가 문제라는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인간 불사괴보다 더 약해 보이는데요?"

"맞다. 인간 불사괴보다는 약하다. 하지만 저놈들은 특별한 힘이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무치개가 아니라 무치개 할아버지가 온다고 하여도 저들을 죽일 수 없다. 반대로 놈들의 특별한 힘을 깨닫는 순간, 이는 귀신 불사괴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쉽게 소멸시킬 수 있다."

"그게 뭔데요?"

"잘 보아라."

"계속 보고 있는 중인데요?"

"좀 더 잘 보아라."

"음… 그냥 설명해 주시면 안 돼요?"

"아니다. 이번엔 네가 보아야 한다. 아비규환의 전장이지만, 언젠간 너도 저놈들을 상대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설명이 아닌 네가 직접 보고 깨달아야, 저들을 물리칠 수 있고, 그래야 지금 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다. 보아라, 태한아."

"네, 아저씨."

난 답을 한 후, 심호흡까지 길게 하였다.

청력과 안력 그리고 기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보았… 아! 보인다.

너무 전장이 급박하게 돌아갔고, 또 내가 데몬 언데드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남궁무검과 사람들의 죽음으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여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인다.

내가 그걸 깨닫자마자, 무치개도 깨달았는지 움직임이 변했고.

곧바로 낭만개 아저씨가 그런 무치개를 보며 말했다.

"오! 저 무식한 녀석도 뭔가 좀 깨달은 모양이구나. 보이냐, 태한아?"

"네, 저 귀신 불사괴들… 이형환위가 아닌,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싸우고 있네요."

"이 잡귀들아! 죽어! 죽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너희도 다 죽어라!"

순식간에 여덟 구의 고스트 언데드와 세 구의 인간 불사괴를 모두 찢어발긴 후 소멸시켜 버린 무치개.

데몬 언데드를 낭만개 아저씨한테 빼앗긴 울분을 대신 풀려는 듯, 남은 좀비와 스켈레톤들을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지?

낭만개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요? 조금 전 제 답이 틀렸나요?"

"그건 아닌데……."

"그런데 왜요? 왜 그렇게 보세요?"

"귀신 불사괴들이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

"네? 아저씨가 보라면서요? 보라고 해서 봤더니 보여서 그리 답한 건데요?"

"아! 그게… 허허, 난 그냥… 공간을 오간다는 것을 말하려던 것이었는데. 허허허. 역시 너는 언제든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구나. 귀신 불사괴들이 공간을 넘어간 곳이 저승이었다니 정말 놀랍구나. 그걸 감지한 네 능력은 더 놀랍다. 내공뿐만 아니라, 어쩌면 기감에서도 네가 천하제일일지 모르겠구나. 저승의 공간까지 감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그런가요? 전 그냥 그런 것 같아서 그리 말했던 것뿐인데."

"언젠가 네가 진정한 상승의 경지에 이른다면, 어쩌면 자유자재로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힘까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건 농담이 아닌 진담이다."

그리됐으면 좋겠다.

바위를 부숴라 형님과 소인국 친구들도 보고 싶고.

칵뉴족의 전사들도 보고 싶고.

드워프 친구들과 자연이들도 보고 싶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부인들!

잘 살고 계시오?

내 자식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나요?

미인국의 미녀 부인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태한아, 우리도 나서야겠구나.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네, 아저씨."

나와 아저씨는 동시에 전장의 중심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치개가 미쳐 날뛰고 낭만개 아저씨가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자, 모두가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끔찍했던 싸움은 삽시간에 종료되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영웅은 누구시냐!"

"개방의 무치개 이 장로님이시다!"

"아니, 악령 불사괴를 물리치신 저 대협!"

"누구야?"

"누군데?"

"옷이… 거지 같은데? 개방 아니야?"

"저분은 우리 개방의 수호존, 낭만개 대협이십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낭만개 만세!"

"개방 만세!"

"낭만개 대협이 우리를 구했다!"

"낭만개 대협께서 천하를 구하셨다!"

"악령 불사괴를 소멸하셨다!"

"멸마존(滅魔尊) 만세!"

그날, 깡시골 황촌에서 구걸이나 하던 거지 아저씨는 멸마존이 되었다.

* * *

땅까지 흔들릴 정도의 커다란 함성이 끝나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공허함은 사부의 죽음, 제자의 죽음 그리고 가족과 동료의 죽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무려 하루 사이 7만 명이나 죽었다.

이는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슬픔은, 무림 전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거기에, 삼존삼성 중 무려 세 명이 죽었다.

성존이 불사괴의 왕인 악령 불사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에 검제와 검선까지 죽었다는 이야기는 모두를 극도의 슬픔에 잠기게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무림은 곧 아픔을 잊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흥분했다.

삼존삼성은 삼존이성이 되었다.

성존의 자리를 대신해 멸마존(滅魔尊), 그러니까 불존, 무존과 더불어 낭만개 아저씨가 멸존(滅尊)이 되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검제와 검선의 자리는 무치개 이 장로가 걸성(乞星)이 되어 대신하게 되었다.

무림은 이 끔찍했던 전쟁을 신성불사대전(神聖不死大戰)이라 명명하였다.

아! 내 소식도 있다.

내 이름이 칠룡사봉에서 빠졌다.

도토리국 언어로 어나더 레벨(Another Leve)이라고 한다.

칠룡사봉과 같은 후기지수와 내가 그 급을 달리한다는… 큭큭.

나와 낭만개 아저씨의 각별했던 사연까지 더해지자, 멸마존에 멸마협이란 별호가 운명이었다니 어쨌다니. 하하하!

이 정도면 거의 천하무적 새아빠와 새 아들 아니겠는가.

아무튼 낭만개 아저씨에 무치개 이 장로, 거기에 나까지.

우리 개방의 명성이 천하를 진동하는 순간이었다.

싸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신성교에 임시 무림맹 본부를 만들었다.

데몬 언데드와의 싸움으로 맹주가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무림맹에서는 천하의 무문과 세가에 무림 배첩을 돌렸다.

천하 각지에서 고수들이 절강 항주로 몰려들고 있었다.

동시에 신성불사대전의 후속 조치도 이어졌다.

신성교는 강제 해산하였다.

신성불사대전 살아남은 고수들은 모두 무림맹 본맹으로 압송되어 뇌옥에 갇혔다.

모두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고수뿐만 아니라, 일반 무인들과 광신도들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관부로 넘겼다.

그 숫자가 수만 명에 달했고, 그들 모두 변방의 성벽을 쌓는 노역장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항주는 빠르게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나와 낭만개 아저씨는…….

임시 무림맹 본부, 신성교에서도 가장 좋은 전각에 함께 잠시간 머물고 있다.

"그런데 아저씨,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알긴. 내가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

"그런데 어떻게 온 건데요?"

"네가 서신을 보냈지 않았느냐?"

"아! 녹림삼십육채의 총채에 있던 그 사람! 순천검의 주인."

"그래, 맞다. 네 서신을 받자마자 그 사람을 꼭 만나고 싶어 움직였다. 녹림 총채를 찾아가 그를 만났고, 수십 년 만에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단다."

"사과… 받아 주죠? 좋은 사람이던데."

"괜찮다고 하더구나.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굉장히 좋아하던데?"

"좋아해요?"

"그래, 네가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 줬는지 모르겠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그 친구와 밤새 술까지 마셨다. 허허허."

"다행이네요."

"맞다. 이곳에 올 때 내가 데리고 왔으니, 나중에 얼굴이나 한번 보도록 하자꾸나."

"항주에요? 항주에 왔어요?"

"그래."

"왜요?"

"내가 데리고 왔다고 했잖느냐."

"왜 데리고 왔는데요?"

"음… 그 친구야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 내 마음도 괜찮겠느냐? 그 귀한 검을 내가 부러뜨렸는데. 잘못을 했으면, 보상을 해야지. 여기다 대장간 하나 차려 주려고."

"아저씨 돈 있어요?"

"없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대장간을 차려 줘요?"

"그야… 이제 나가서 구걸 좀 해 봐야지. 하하하."

"큭큭큭. 대장간 차리는 거 기다리다가 늙어서 망치 들 힘도 없어지겠네요."

"그런가? 하하하. 구걸은 농담이고, 사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긴 하다."

낭만개 아저씨가 생각하는 거야 뻔하다.

됐다.

이 아저씨가 무공에서는 천재일지 몰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아니다.

"아저씨, 그 건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대장간?"

"네, 아시잖아요. 저 부자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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