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이번 여행기-140화 (139/174)

140화

"걸일번은 어떻게 지내요?"

"걸일번은 너 못지않게 훌륭한 일들을 처리 중이다."

"무슨 일을 하는데요?"

"걸일번은 정식으로 비걸개가 된 후부터 계속 사술(邪術)과 사마외도(邪魔外道), 좌도방문(左道傍門), 환술(幻術) 등 사이한 술법과 주술, 그런 문파 등에 관한 일을 전문적으로 맡겼다."

"불사괴가 출현하기 전부터요?"

"그렇다. 그런데 불사괴가 출현하고 나서 그 아이의 임무가 더 막중해졌지."

* * *

이곳 절강 항주로 오기 전.

상취개가 나에게 이번 임무에 관해 설명하던 중 내가 걸일번과 걸삼번의 근황을 물었고.

그때 상취개는 이런 말들을 해 줬었다.

불사괴가 출현하기 전부터.

그녀는…….

걸일번은……!

그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다고.

사술, 사마외도, 좌도방문, 환술 등.

최근 배교의 흔적을 찾으러 십만대산으로 갔다고 했는데.

방에서 보낸 게 아니라, 분명 그녀가 자청해 갔다고 했다.

설마……?

배교의 흔적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접선을 위해 간 건가?

마교?

아니면 배교?

그 윗선과의 접선을 위해?

설마 배교나 마교의 교주를 직접 만나려는 것인가?

정말 배후에 마교가 있었던 거였어?

아!

갑자기 일이 너무 커졌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니, 해야 한다.

해야 하는데.

마교라니, 젠장!

정말 최후에는 마교주까지 상대해야 하는 건가?

돌아 버리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데몬 언데드도 어쩌지 못하는 내가.

그도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 9할 이상 확신했다.

남궁무검을 오해한 건 나의 잘못이고.

남궁무검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이를 숨기려고 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상황을 보아하니, 죽은 검제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창궁검무대의 대주 정도나 알고 있었으려나?

그 역시 이미 데몬 언데드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창궁검무대는 전멸했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데.

남궁무검은 왜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숨기다가, 죽기 직전 나에게 말한 것일까?

사실… 알고 있다.

내가 녀석을 미워했지만.

녀석은 언제나 재수 없었지만.

그래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놈이었지만.

그거 아는가?

걸삼십육번은 천재였다.

하지만 걸사번은 천재 근처에도 가지 못하던 녀석이다.

지극히 평범한 무재.

나나 걸삼번이나 걸사번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녀석은 비걸개 훈련생 때, 단 한 번도 2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될 것을 계획하고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걸 창피해하지 않았고, 더러운 찬밥을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남들이 잘 때 검을 휘둘렀고.

남들이 쉴 때 책을 읽었으며.

내가 너무 힘들어 무리에서 낙오했을 때, 놈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꾸역꾸역 언제나 무리의 선두에서 달렸다.

그래서 미웠다.

녀석이.

나와 똑같이 평범한 재능을 가진 녀석이.

항상 선두에서 달리고, 항상 2등을 하고, 항상!

항상 녀석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부러워서 미워했다.

구걸한 밥을 나눠 주지 않아 미워했다는 건 핑계다.

그냥 부러워서.

녀석을 질투해서.

녀석이 한없이 멋져 보여서.

난 녀석같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하다, 걸사번.

녀석은 좋은 놈이었다.

비걸개 마지막 시험에서 후공마를 처치하러 갈 때도 그랬다.

녀석은, 내가 죽거나 다치길 바라지 않았던 거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 얄팍한 자존심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차갑게 식어 가고 있는 걸사번 녀석을 보고 있자니 알 것 같았다.

녀석이 왜 마지막 순간까지 걸일번에 대한 일을 말하지 않고 숨겼는지.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테다.

내가 걸사번 녀석을 미워하고 질투하면서도, 끝까지 믿고 싶은 심정을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녀석도 걸일번을 끝까지 믿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자신만 알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비걸개 동료들이 실망할까 봐.

큰 충격을 받을까 봐 그랬던 거였다.

걸일번도 나와 걸사번의 친구며, 동료며, 전우였으니 말이다.

걸일번.

그녀가… 흉수다.

더 나아가 그 배후에 마교나 배교가 있을 수도 있다.

남궁무검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또 홀로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걸사번.

내가…….

바보다.

꼭 불사괴에 관한 모든 음모를 밝히고.

네 복수는… 내가 꼭 해 주겠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걸사번 남궁무검은 죽었다.

* * *

난 차갑게 식어 가는 친구를 보내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존의 탈을 쓴 데몬 언데드.

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웃으면서.

X새끼.

또 웃네.

죽인다.

그런데, 내가 그런 각오를 다지자마자 놈이 더 짙은 비웃음과 함께 손가락으로 전장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 전장을 바라보니.

젠장!

좀비, 스켈레톤, 거기에… 저건, 저건……!

고스트 언데드(Ghost undead)까지 출현했다.

유령 불사괴.

고작 여덟 구의 고스트 언데드가 출현했을 뿐인데.

상황은 끔찍하다.

허공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거의 이형환위(移形換位)급의 움직임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아무도 고작 여덟 구의 고스트 언데드를 막지 못하고 있다.

또!

젠장!

10만에 달하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목숨을 잃었고, 계속 죽어 가고 있다.

더 끔찍한 건.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 산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신성교의 교도들이지만, 그들 중에는 분명 신성교와 싸우던 무림인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부고 제자며, 사형제이고 친구며 가족일 테다.

그래서 그러나 보다.

죽은 자가 되살아나 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차마 자신의 사부를, 제자를, 사형제를, 가족을 죽일 수 없어서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끔찍한 현장.

해골들이 땅을 헤집어 계속 기어 나오고.

죽은 이들은 되살아나, 조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를 죽이고.

사람들은 그렇게 울면서 적들과 끔찍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불사괴가… 너무 무섭다.

어쩌면 정말, 세상에 종말이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걸일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나무아미타불! 항마의 힘을 실어 놈들을 격퇴하시오!"

"무량수불! 두려워하지 마시오! 복마의 힘으로 싸우십시오!"

"힘들어도! 머리를! 죽은 자들이 되살아납니다! 머리를 찌르고 목을 베십시오! 사부의 목을 베고, 제자의 머리를 찌르고, 사형제들의… X팔!"

스님들과 도사들 그리고 술사들이 불경을 읊고 또 사람들을 큰 목소리로 독려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사람들을 독려하던 무당파의 도사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전장은 점점 더 끔찍한 상황을 그려 가고 있었다.

아무리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노고수라 하여도, 기겁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림은 강하다.

어떻게든 불사괴 놈들을 막고 죽이고.

아! 상황이… 어렵다.

저 멀리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가 온몸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로 쉼 없이 적들을 도륙하는 게 보였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그들의 얼굴에 가득 흘러내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다.

나는 성존을 상대해야 하는데.

좀처럼 전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방법이… 콰콰콰콰쾅!

쾅쾅쾅!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단두령, 단행령, 단발령 형제가 열심히 싸운다.

내 피 덕분이었을까?

불사괴들은 그 경지를 떠나 모두 세 형제를 두려워한다.

또 세 형제의 공격이 가해지는 족족, 놈들은 죽고 소멸한다.

하지만 셋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항룡십팔대도, 철권무적대도,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적들은 계속 그 숫자가 늘어나고, 더 강해지고 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시선을 돌려 데몬 언데드에게 향했다.

여전히, 내가 전장을 살피는 동안에도 계속 나만 보고 있던 데몬 언데드.

웃고 있다.

X팔 놈.

저 웃는 입을 찢어 버리고 싶다.

됐다.

일단 데몬 언데드만 죽이면,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릴 수 있다.

놈부터 죽이자.

난 우룡검을 손에 쥔… 어?

맹주다.

그리고 무치개 장로가 함께다.

이번엔 따로가 아니라 동시에 움직인다.

그것도 정확히 데몬 언데드의 양옆에서 몸을 날렸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엄청난 힘이다.

무치개 장로 스스로 천하제이인이라고 말한 게 조금도 거짓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마치 천하를 모두 뒤엎을 힘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혜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

순간, 데몬 언데드가 나에게서 시선을 떼었고, 웃음기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놈은 미동하지 않은 채, 오로지 양손을 쭉 뻗었다.

맹주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 장의 청룡검강.

무치개 장로는… 아!

무려 30장에 달하는 타구봉이 사방에 빛을 뿜으며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십만의 사람들에 스켈레톤까지 더해져, 이제는 십수만이나 된 전장의 싸움이 일순간 멈추었을 정도의 큰 폭발.

한 번이 아니다.

콰콰콰콰콰르르르르르르르릉!

맹주와 무치개 장로가 연이어 데몬 언데드를 공격한다.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번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데몬 언데드, 저 새끼……!

맹주가 피투성이가 되어 혼절한 채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무치개 장로는 정신이 있지만, 데몬 언데드의 반격에 무려 200장을 날아갔다.

하지만 땅을 밟고 다시 곧바로 데몬 언데드를 향해 몸을 날리는 무치개.

그의 표정이, 그의 눈빛이!

지금 그가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그때!

번쩍!

버버버버버버번쩍!

여덟 구의 고스트 언데드.

무치개가 마치 혜성과 같이 커다란 빛의 줄기를 그리며 무지막지한 기운을 머금고 데몬 언데드를 향해 날아가는 그곳.

그곳에 여덟 구의 고스트 언데드가 나타나 길목을 차단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고스트 언데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무치개 장로를 괴롭혔다.

그게 끝이 아니다.

"죽어라, 거지야!"

"크하하하하하! 여기도 있다!"

세 구의 인간 불사괴.

놈들까지 가세해 무치개 장로의 발목을 잡아 버린 것이다.

다급한 상황.

시선을 데몬 언데드에게 돌렸는데.

젠장!

놈이… 언제 싸움을 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오늘 진짜 저 새끼 입 찢어 버린다.

아니면, 내가 나태한이 아니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한다.

우룡검을 손에 꽉 쥐고.

터벅터벅.

천천히 걸었고.

다시.

타타타타탓.

달리기 시작했고.

쉬이이이이이이이익!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죽어라, 데몬 언데드!"

데몬 언데드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쉬움도 보인다.

나를 더 데리고 놀고 싶었는데, 이젠 정말 죽여야 한다는 아쉬움?

미친 새끼.

죽는 건, 너다.

허공으로 30장까지 치솟은 내가, 양손으로 우룡검을 쥐고, 이내 대자연과 드래곤, 칵뉴족과 소인국, 미녀국, 드워프들의 힘까지 모두 실어!

놈에게 내리꽂았다.

힘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천하제일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땅이 터져 갈렸다.

하나였던 산이 두 개가 되었다.

하늘마저 일그러졌다.

대기마저 혼비백산, 찰나의 순간 이 모든 공간이 진공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놈!

데몬 언데드.

놈은 아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웃으면서.

X팔.

조금의 타격도.

작은 생채기조차.

놈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는 놈이 또 웃는다.

아니, 계속 웃고 있다.

그렇게 놈이 30장 거리를 두고 땅에 착지한 나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지옥의 기운이, 땅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악마의 기운이.

놈의 몸을 통해 스며들고, 다시 그것이 그의 장심(掌心)에 쏠리는 것이 보였다.

이내 하나의 검은 구체를 만들어 낸 데몬 언데드.

"재밌었다, 아가야. 큭큭큭."

검은 구체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안다.

저건.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1할도 아니고, 1푼도 아니며, 1리의 가능성조차 없다.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아니다.

행운석이 있다.

제발! 제발! 제발 작동해라!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행운석이 작동해 주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행운석은 작동하지 않았고.

나는… 하아!

죽었다.

죽는 느낌이 참 묘하다.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많이 괴로울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아프네.

뭐지?

살았나?

그럴 리 없는데?

슬쩍 감았던 눈을 떴다.

뭐가 내 앞에 있다.

무치개 장로는 아닌데.

무치개 장로보다 훨씬 작은 등이 보였는데, 태산보다 더 커다랗게 느껴지는 등이다.

보고 싶었어요.

왜 이제 왔어요?

그 굳건한 등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우리 새아빠 등장하시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