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신성교에서 급히 창궁검무대를 이끌고 출동하려던 남궁무검의 뒤를 쫓으려고 할 때 처음으로 성존을 만났었다.
나는 성존이 내 기감을 감지하지 못할 거리를 확신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내 앞길을 막아선 놈 때문에 꽤 놀랐다.
그때 나는 이런 독백을 했었다.
하아!
알고 있었구나.
최대한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다 알고 있었던 거였어.
아니다.
내 탓이 아니야.
놈이 내가 예상하던 능력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내 계산이 틀려 버린 것이다.
그때 나의 독백은 성존을 두고 한 독백이 아니었다.
성존을 처음 만나자마자 내 몸이 그가 인간이 아님을 감지했다.
허리에 매달려 있는 우룡검이 검명을 울어 댔다.
그리고 나의 기감이, 놈의 기운이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지옥의 것임을 확신했다.
내가 예상했던 능력 이상의 힘이란, 성존이 아닌 데몬 언데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런 독백도 했었다.
성존이 남궁무검과 한패인 것보다, 남궁무검이 성존과 한패인 게 나에게는 더 충격이다.
성존은… 성존 이 새끼는 말이다.
그렇다.
데몬 언데드가 남궁무검과 한패인 것보다,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던 남궁무검이 데몬 언데드와 한패였던 것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기에 이런 독백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내가 성존을 피해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의 뒤를 쫓을 때.
난 이런 독백도 했었다.
성존의 기운, 그것의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쫓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것의 능력은 훨씬 더 대단하다.
나는 그때 ‘그것’이란 표현을 썼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존의 인두겁을 뒤집어쓴 데몬 언데드라 그리 말했었다.
몇 번을 살펴본 결과.
데몬 언데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그 어떤 인간보다 교활했다.
내가 계속, 고심에 고심에 고심을 하며 그의 존재를 말하길 망설였던 이유다.
그리고 며칠 전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와 밤새 나누었던 이야기가 바로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문제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천하의 삼존 중 일인인 성존을 어떻게 불사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성존 자체가 처음부터 불사괴였을 수도 있다.
아직 그 부분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성존이 데몬 언데드였기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세 장로에게 그렇게 신중을 기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고.
됐다.
결국 해냈다.
언데드의 왕, 데몬 언데드를 물리친 것이다.
두 명의 화경급 고수와 한 명의 초절정 극상의 고수.
무치개 장로와 검선, 무림맹주가 완벽하게 이를 물리쳤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무슨… 검선,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오?"
10만 명이 넘는 무인이 몰린 상황.
거짓말처럼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이미 일은 끝났지만, 이 상황이 꿈인 것처럼 놀라기만 한 사람들.
그 거짓말 같은 정적을 깬 것은 검제 남궁위결이었다.
그 역시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검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무량수불. 남궁 대협, 성존이… 휴우, 그가 바로 불사괴의 종주이자 불사괴의 왕인 악령 불사괴였습니다."
검선은 부드러우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로 검제에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다.
지금 당황한 모두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말한 것이다.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던 상황, 검선의 말은 10만이 넘는 무인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고.
이는 다시 한번 모두를 커다란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는 검제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그게……."
얼마나 놀랐는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였다.
"무량수불. 남궁 대협. 자초지종은 이놈들을 마저 처리한 후 제가 직접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검제에게 합장을 한 후 몸을 돌리는 검선.
그가 향한 곳은 여전히 인상을 구기며 항거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세 구의 인간 불사괴들이었다.
"무량수불. 지옥으로 돌아가라."
곧, 검선이 다시 한번 출검했다.
그의 검이 검집을 벗어나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치 한겨울에 눈이 내리듯, 허공에 강기로 형성된 매화가 개화하며 흩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검선은 그 매화들 사이를 스치며, 곧장 인간 불사괴 세 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인간 불사괴는… 살았다.
죽은 건, 검선이다.
온몸이 천참만륙.
그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기고 터져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붉은 피와 찢기고 터진 살점들이 비처럼 내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화로 가득했던 공간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 피의 비를 맞으며 등장한… 젠장!
성존이… 머리가 사라진 성존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성존이… 서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기사에 모두가 얼음이 되었다.
터벅터벅.
머리가 없는 성존의 육체가 터벅터벅 어디론가 걸었다.
자신의 머리가 떨어져 있는 땅.
그러더니 머리를 주워 목에 얹어 놓는다.
곧, 그것이 붙었는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기까지 했다.
10만이 넘는 무인 전체가 공포와 경악의 도가니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목을 자르고 지랄이야. 얼굴에 흙 다 묻었네. 클클클."
혼잣말을 하며 웃기까지 하는 데몬 언데드.
천하의 무치개까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잠시.
무치개가 분노했다.
"네 이노오오오오옴!"
사자후를 터뜨리며, 봉강을 발현해 곧바로 몸을 날리는 무치개.
맹주가 다급히 그런 그를 말리려 했다.
"함께해야 하오!"
하지만 무치개는 이를 듣지 않았다.
아니, 맹주가 외쳤을 때 이미 무치개는 성존에 닿아 있었다.
곧바로 맹주가 몸을 날렸고, 상황을 파악한 검제가… 아! 남궁세가는 정말 아니었군.
검제까지 성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었다.
이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치개, 맹주, 검제와 성존이 격돌한 그곳.
단 한 번의 격돌로 지름 200장(600M)이 넘는 구덩이가 파였다.
그 깊이도 족히 50장은 될 것 같다.
땅과 바위, 나무와 모든 것들이 통으로 터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주위에 있던 무인들은 오로지 폭발의 여파로 수십이 죽고 수백이 크게 다쳤다.
10만의 엄청난 무인들이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다시 이어지는 엄청난 폭발.
두려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용기를 냈고, 우룡검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이고 뭐고.
초인의 경지에 이른 저들의 싸움.
이건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래도 힘을 내야 했고, 그랬는데.
X팔!
발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스레 내가 끼어들었다가, 무치개와 검제 그리고 맹주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심한 놈이었다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또 한 번 이어진 엄청난 폭발.
조금 전의 것들과 다르다.
그들이 있던 곳, 수백 장이 아니라 아예 모든 것이 터져 사라져 버렸다.
쉬이이이이이이잉.
쿠당탕탕.
쿠다다탕탕쾅!
무치개 장로가 힘을 잃고 날아갔다.
맹주가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아갔다.
그렇게 폭발의 여운이 가시자, 성존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 칠갑을 하고 축 늘어진 검제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은 채, 그는 모두를 비웃고 있었다.
난 우룡검을 불끈 쥐었다.
나서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네 이놈!"
모든 것을 끌어 올렸다.
단 한 번, 오직 이 한 번의 수로 놈을 죽인다.
빛의 속도로.
대자연의 힘을 모두 끌어모아.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곧, 데몬 언데드가 나를 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또… X새끼.
웃는다.
저 면상을… 통으로 터뜨릴 것이다.
"아버지!"
"가주님!"
나만 데몬 언데드를 향해 몸을 날린 게 아니다.
검제가 데몬 언데드에게 잡히자 남궁무검이 제왕검을 들었고, 다시 그 뒤를 창궁검무대 전원이 필사의 각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내가 먼저다.
난, 나는!
우룡검을 휘둘렀다.
실버 드래곤의 기운과 레드 드래곤의 힘 그리고 대자연의 기운.
난,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내 우룡검이 놈에게 닿을 때쯤, 데몬 언데드가 나에게 말했다.
"쥐방울 같은 새끼."
그러면서 웃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데몬 언데드는 건힐드가 말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소드 마스터, 화경의 고수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이상이다.
그리고 난…….
아직 나는 무린가 보다.
모든 것을 걸었는데.
X팔.
놈은 가볍게 그 나의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곧, 놈의 검붉은 검이 내 목을 깨끗하게 그으려 했다.
‘행운석아! 행운석아! 제발… 제발 도와줘.’
눈을 감지 않았다.
데몬 언데드가 나를 보고 웃는 걸 똑똑히 보았다.
행운석이 돕는다면.
살 수 있다.
그런데…….
왜지?
놈의 검붉은 검이 내 목에 닿으려 하는데, 아니 이제 닿았는데.
행운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걸이번 비켜!"
남궁무검이 데몬 언데드를 향해, 다시 창궁검무대 100명의 고수가 동시에.
놈을 덮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폭발.
나는 살 수 있었다.
그들이 격돌한 폭발의 충격으로 50장을 뒤로 날아가 땅을 뒹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 다시 놈을 향해 몸을 날리려 하는데.
쉬이이이이이이이잉.
남궁무검 이 새끼… 아니, 걸사번.
네가… 네가 왜?
네가 왜 나 대신……?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아가는 걸사번.
툭!
녀석이 한참을 날아 땅에 곤두박질쳤다.
축 늘어진 몸.
난 데몬 언데드를 향해 달려가는 대신, 일단 녀석에게 먼저 달렸다.
온몸에 크고 작은 관통상이 있다.
피를 폭포수처럼 흘린다.
무엇보다… X팔!
목, 걸사번의 목에 한 치나 되는 구멍이 뚫렸다.
검은 피를 계속 쏟아 내는 걸사번.
난 서둘러 지혈을 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때였다.
"신성교의 교도들은 들어라!"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데몬 언데드의 괴성.
신성교도들도, 수만의 무인들도.
모두 두려움과 놀라움에 귀신을 본 것과 같은 얼굴로 얼음이 되어 데몬 언데드를 보고만 있다.
창궁검무대는 전멸.
데몬 언데드의 왼손에는 여전히 축 늘어진 검제 남궁위결의 머리가 잡혀 있다.
"내가 약속하지 않았느냐! 나를 믿으면 불사의 신체를 주겠노라고! 영생을 살 수 있다고! 부를 가질 수 있고, 명예를 누릴 수 있다고!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신성교는 영원할 것이고, 나와 너희는 천하에 군림할 것이다! 죽여라! 모두 죽여! 신성교를 따르지 않는 저 사악한 무림의 종자들을 모두 죽여 나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라! 나는 불사의 신이 되었다!"
콰아앙!
데몬 언데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놈의 손에 들려 있던 검제의 머리가 터졌다.
그의 피가 사방에 뿌려졌고.
주춤주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신성교의 교도들.
그들 중 한 명이.
"죽, 죽인다! 교주님의 명을 따라 죽인다!"
그가 시작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신성교 만세!"
"교주님 만세!"
"모두 죽여라!"
"우리는 불사신이다!"
10만 명 중 거의 절반에 달하던 신성교의 교도들이 일제히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여전히 살아 있던 세 구의 인간 불사괴까지 혼란한 틈에 섞여 마구잡이 살육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항주로 온 무림의 무인들은 약하지 않았다.
소림이 있고, 무당이 있으며, 무황성이 있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아줄 고수들이 몰린 상태다.
처음 데몬 언데드의 기세에 놀라고 두려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무림인들이,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정신을 차리고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보았고, 여전히 그 피해는 막심하기 그지없었다.
난!
나는!
X팔.
걸사번, 이 녀석을 살리고 싶은데.
내 의술은 이미 약선을 넘어섰는데.
이 녀석을 살리고 데몬 언데드를 죽여야 하는데.
걸사번의 목에서 손을 뗄 수 없다.
내가 손을 떼는 순간, 녀석은 죽는다.
눈물이 났다.
녀석에게 너무 미안했다.
녀석을 미워했던 것도, 녀석을 의심했던 모든 게 후회됐다.
"미안… 흑흑. 미안해, 걸사번. 흑흑흑."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녀석에게 사과했다.
녀석은 이미 정신이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울며 사과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툭.
힘없는 무언가가 나를 건드렸고.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려 보니.
걸사번 남궁무검이 입으로도 검은 피를 줄줄 흘리며 웃는다.
"미안… 미안해, 걸사번. 아니, 남궁무검. 미안… 흑흑. 엉엉. 정말 미안해."
툭.
다시 나를 힘없는 손으로 건드리는 녀석.
걸사번이 나를 그렇게 건드리고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
‘흉수(兇手)’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다급했다.
상황이 상황이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마구 흐르던 눈물까지 허겁지겁 닦아 내고, 걸사번에게 물었다.
"성존이 원흉 아니었어? 진짜 흉수가 따로 있어?"
걸사번이 이제는 힘에 겨운 듯, 미소까지 지운 얼굴로 간신히 눈을 깜빡인다.
그러더니 다시 손가락으로 땅에다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흉수? 지금 네가 쓰는 게, 흉수야?"
난 걸사번에게 재차 확답을 들어야 했고.
그는 힘에 겨워하면서도 나를 향해 다시금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곧,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땅바닥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걸(乞)’
첫 글자는 걸이다.
걸?
구걸할 걸(乞)이다.
개방?
갑자기 여기에 ‘걸’이라는 글자를 왜?
이해할 수 없었다.
곧, 걸사번이 두 번째 글자를 쓰는데.
‘일(一)’
툭.
두 번째 글자까지 쓴 후 걸사번의 팔이 힘을 잃고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