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무림맹 고수들이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를 체포했다.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변명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돼 끌려갔다.
그런데 남궁무검.
왜지?
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지?
체념한 눈빛은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한 원망의 눈빛이다.
자신의 계획이 모두 들통나서?
당연히 그러할 테다.
그런데 왜?
이 찝찝함은 뭘까?
그렇게 남궁무검과 창궁검무대가 끌려갔고.
성존과 신성교도들은 체포의 형식은 아니었지만, 삼엄한 무림맹과 무림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신성교로 향했다.
"제자야!"
무치개다.
상황이 수습되자 무치개가 환히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 내게 다가왔다.
내가 많이도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이 장로님,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장로님 제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러한들 어떻고 저러한들 어떻냐? 예비 제자도 제자고, 나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하하하! 네 사매와 사제도 훌륭한 무인이 됐으니, 곧 만천하에 그 명성이 너만큼 진동할 것이다. 하하하하!"
아! 이 인간은 못 말린다.
"장로님."
"그래, 제자야."
"은혜, 아까 구해 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인상을 슬쩍 구기는 무치개.
"섭섭하구나. 사제지간에 은혜라니."
아! 됐다.
이 인간은 포기다.
그래도 할 일이 남았다.
"장로님."
"준비하고 계십시오."
"준비? 뭘?"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다만……."
"……?"
"장로님의 힘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할 때가 곧 올 겁니다."
눈에 힘을 주어 나를 보는 무치개.
그러더니…….
척!
내 어깨에 자신의 솥뚜껑만 한 손을 척 하고 올려놓는다.
"내가 전력을 다할 일은 오직 낭만개를 상대할 때뿐이다. 그래도 우리 제자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마."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렇게 그와 헤어졌다.
좀비에 의해 시산혈해가 된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 근처로 향했다.
직접적으로 접촉하지는 않고,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 자시(子時, 밤 12시경), 야검당으로 와 주십시오. 아직 밝히지 않은 진실이 있습니다.
"이보게! 거기 시신을 조심해서 옮기시게. 아무리 불사괴로 변했다지만, 한때는 우리와 같은 무림의 동도였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분주히 현장 수습을 지휘하며, 미세하게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단 형님들, 가시죠."
"넵, 매제 형님."
* * *
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더니, 야검당에서 우리에게 내준 전각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늦은 밤이 되었고 나는 그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자시가 지나고 축시가 될 때까지 상취개와 순화자, 속리자는 오지 않았… 아! 이제 오는군.
긴 피풍의로 얼굴까지 가린 채 내가 머물고 있는 전각으로 들어온 세 사람.
야검당에서는 아무도 감히 그들의 신분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아니, 자리를 잡기도 전.
그리고 내가 늦은 걸 뭐라고 하기도 전.
속리자가 다급히 말했다.
"남궁무검이 풀려났네."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곧바로 순화자가 설명했다.
"늦은 저녁, 검제께서 도착하셨네."
"아무리 검제라고 해도! 남궁무검이 지금 저지른 일이 있는데. 아니! 검제도 한패라니까요!"
내가 버럭 소리까지 질렀지만, 세 노인은 씁쓸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곧 상취개가 말했다.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을 묻혔다고 하더군."
"천리…추종향이요?"
"그렇다. 다른 인간 불사괴 두 놈까지 잡기 위해서 일부러 그놈을 풀어 준 거라 하더군."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속리자가 말했다.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만약 남궁무검이 정말 그렇게 했다면, 그건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한 계책을 펼친 일이고."
순화자가 말을 이었다.
"어쩌면… 이번엔 자네가 틀렸는지도 모르겠네. 현재 신성교 내에서 대대적인 작전 준비가 이뤄지고 있어. 남궁무검은 자신의 목을 걸었네."
머리가 띵했다.
쇠망치로 한 대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이 내 머리로 전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어쩌면…….
한패가 아니었나?
아니다.
첫 번째!
신성교에서 내가 남궁무검을 뒤쫓으려 할 때, 성존은 분명히 일부러 나를 붙들어 시간을 지체했다.
그건 명확한 사실이다.
두 번째!
내가 단 형들과 남궁무검, 창궁검무대를 상대로 싸우려고 할 때.
성존과 남궁무검은 무척 친밀하고 긴밀한 사이로 보였다.
심지어 남궁무검이 저지른 일을 감추기 위해 나를 죽여 살인멸구 하려고 하지 않았나.
이 또한 명확한 사실이… 이건 사실이 아니군.
성존 말도 맞다.
그는 남궁무검이 저지른 일을 보지 못했… 아니다!
분명 봤을 테다.
그가 못 봤을 리 없고, 기가 막힌 순간 나타나 남궁무검을 도운 것이다.
아!
헷갈리네.
"괜찮나?"
상취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잠시만요. 생각을… 생각을 정리해야겠어요."
뭐지?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이지?
남궁세가와 신성교는 어떤 관계지?
됐다.
헷갈릴 때는, 확실한 것부터 하면 된다.
다른 건 다 몰라도.
한 가지 사실.
이것만큼은 정확하다.
인간 불사괴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장로님들."
"그래, 태한아."
"무치개 장로님을… 어디까지 믿으세요?"
순간, 세 노인네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답을 한 건 상취개였다.
"이 장로? 무치개 이 장로 형님? 어디까지 믿냐니? 갑자기 무슨 말이 그렇냐?"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어쩌면 무림의 명운이 걸린 일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일단 묻는 말에 답해 주세요."
"음… 너보다 더 믿는다. 코흘리개 시절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그 인간한테 맞았다. 성격은 더러워도 분명 나는 무치개 장로를 믿는다."
상취개가 확고부동한 눈빛, 절대 불변의 눈으로 목소리에 힘까지 주어 그리 말했다.
"좋아요, 그럼 무치개 장로님 통과. 그다음은… 화산파 검선. 순화자 장로님하고 속리자 장로님은 그분에 대해 좀 아세요?"
"그런데 정말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느냐?"
"부탁이에요. 일단 말해 주세요."
"어험.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순화자와 속리자가 서로 뻘쭘한 듯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다. 그 양반이 지금은 삼존삼성이니, 검선이니 어쩌니 해도. 소싯적 우리 셋이서 한데 뭉쳐 다니며 사고란 사고는 죄다 치고 다녔다. 멧돼지 똥구멍에 불을 질렀다가 산을 홀라당 태워 먹은 적도 있고, 백리세가 외동딸 목간하는 거 몰래 훔쳐본……."
"예끼! 그런 것까지는 왜 말해!"
"어험. 태한이가 너무 심각해서……."
"아무튼 검선은 우리와 어렸을 적부터 가장 친한 동무이자 친구다. 지금도 가끔 남몰래 술도 한잔하고 그러는 사이다. 이건 절대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좋아요, 그럼 검선도 통과. 마지막으로 무림맹주님은요?"
순화자가 바로 답했다.
"구파일방도 아니고 오대세가 출신도 아닌 그 인간을 무림맹주 자리에 앉힌 게 우리다. 삼존삼성도 아니고 화경의 고수도 아닌데, 그래도 우리가 다른 장로들하고 멱살 잡고 시정잡배같이 싸움질하며 그 양반을 맹주 자리에 앉힌 이유가 바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음… 좋아요. 세 사람이면 충분해요. 아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뭔데? 도대체 뭔데 그래?"
"상취개 장로님."
"그래, 태한아."
"오랜만에 무치개 장로님한테 몇 대만 맞을 수 있어요?"
"미친! 갑자기 내가 그 인간한테 왜 맞아야 하는데?"
"무치개 장로님이 진짜 무치개 장로님인지 확신할 수 있잖아요."
"너… 너 지금 설마……?"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잘 들으세요. 절대!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날 나는 상취개, 순화자, 속리자와 날이 샐 때까지 긴 이야기를 나눴다.
* * *
항주를 중심으로 절강 일대에 천리지망이 펼쳐졌다.
근 50년 만에 펼쳐진 최고의 천라지망이라 하였다.
흉수로 의심을 받고 있는 남궁세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인간 불사괴를 추적하였다.
소림, 무당, 화산, 무황성, 우리 개방 등등 이곳 항주에 모인 수많은 문파에서도 역시나 남궁세가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수색 활동 중이다.
속속 내 귀에도 보고가 들어왔다.
하루 만에 실제 인간 불사괴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틀이 되어서는 다른 인간 불사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남궁무검이… 휴우.
실제로 인간 불사괴에게 천리추종향을 묻힌 것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내 입장이 많이 곤란해지는 순간이었지만,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 마셔야 합니까, 매제 형님?"
단씨 삼 형제와 함께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들 앞에는 각기 한 잔의 술이 가득 따라져 있다.
그런데 단씨 삼 형제는 술 마시기를 주저하고 있다.
왜?
내가 거기에 내 피를 몇 방울씩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생긴 건 산적이고 익힌 무공은 마공인데, 산 짐승도 못 죽이고 피 몇 방울 떨군 술도 못 마신단다.
아! 이걸 어디 가서 말하면 누가 믿겠나?
"왜요? 제 피가 더러워요?"
"그, 그건 아니지만……."
난감해하는 얼굴.
세 형제는 서로의 눈치만 보며, 또 식은땀까지 흘리며 아무도 술잔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꼭 마셔야 한다.
불사괴를 상대하려면, 이들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여도 위험할 수 있다.
소자연단은 복용했고, 만치자연단도 몇 알씩 이미 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불사괴를 상대할 수 없다.
내 피, 실버 드래곤의 기운을 머금은 내 피가 그나마 이들을 도울 수 있다.
"마셔요. 이제 우린 형제고 가족이라면서요?"
"그, 그렇기는 한데… 꼭 이걸 마셔야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매제 형님?"
확고부동하다.
절대, 사람의 피는 마실 수 없다는… 큭큭.
이럴 땐 방법이 다 있지.
"건배하면, 금자 한 냥."
"건배!"
"건배!"
"건배!"
단번에 술잔을 비우는 걸 넘어, 깨끗해진 술잔을 머리에 털기까지 하는 삼 형제였다.
역시, 이 집안에서는 돈이 최고라니까.
그리고 그때였다!
쾅!
우리 전각의 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고.
"나 대협! 지금 인간 불사괴 세 놈을 모두 포위했다고 합니다. 항주 전체의 무인들이 그곳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단 형님들! 가시죠."
* * *
휴먼 언데드.
그 죽지 않는 존재들의 무위를 무림으로 비교하자면 이렇다.
고작 초절정 고수급이다.
맞다, ‘고작’.
다른 상황이었다면 휴먼 언데드를 그리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휴먼 언데드 세 구가 포위당한 이곳.
10만 명이 넘는 무인들이 몰려 있다.
그들 중 초절정도 아닌 화경의 고수만 넷이다.
무치개, 검선, 검제 그리고 성존까지.
초절정 극상의 맹주도 있다.
능히 한 명의 화경급 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창궁검무대와 질풍백호대, 철권무적대, 항룡십팔대 등등의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력대의 숫자만 열 개다.
거기에 이름만 들어도 울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친다는 고수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있다.
어찌 세 구의 휴먼 언데드 따위를 ‘고작’이라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냔 말이다.
이미 겹겹에 겹겹으로 철통같은 포위가 펼쳐지기까지 했다.
오늘 인간 불사괴는 도망갈 곳이 없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이미 팔 한쪽을 잃고, 또는 가슴이 뻥 뚫리고, 주먹이 사라지고, 다리의 무릎 아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 인간 불사괴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애초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끝까지 저항하려 하고 있다.
그래 봤자 벗어날 길은 없다.
고수 중에서도 최고의 고수들.
네 명의 화경급 고수와 무림 맹주가 이미 가장 선두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 난리들을 쳐서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가 싶었는데, 별 대수롭지도 않은 놈들이군. 이보시오들, 이놈들은 내가 처리하겠소."
무치개가 성큼성큼 인간 불사괴 녀석들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며 말했다.
성존, 검선, 검제, 무림맹주까지.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 혼자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 역시 같은 판단이다.
인간 불사괴 따위는 무치개 장로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곧, 무치개 장로의 오른손에서 1장에 달하는 거대한 봉강(棒剛)이 치솟았다.
"큭큭큭. 인세를 혼란에 빠뜨린 더러운 불사괴들아. 이제 그만 지옥으로 돌아가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번쩍 도약하는 무치개.
그런데 그가 향한 방향은 궁지에 몰린 인간 불사괴가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뭐 하는 짓이오!"
다급히 외치는 성존!
그가 곧바로 허리춤의 검을 뽑아 엄청난 검강을 뿜어 무치개를 상대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런데 그때!
쉬이이이이이익!
쉬이이이이이익!
성존의 양옆에 있던 화산파의 검선과 무림 맹주.
그들이 출검과 동시에 곧바로 성존을 공격했다.
무림 맹주가 성존의 심장을 무지막지한 검강으로 관통했고.
곧이어 검선이 화산의 절기, 자하신검으로 성존의 목을 베어 버렸다.
성존은, 불사괴다.
휴먼 언데드도 아닌, 데몬 언데드.
나는 놈이 데몬 언데드인 것을, 신성교에서 첫날 보았을 때부터 알았다.